전자책의 충격 - 책은 어떻게 붕괴하고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
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한석주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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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으로 전자로 된 텍스트를 본 것은 PC 통신 서비스 시절에 하이텔에서 이영도의《드래곤 라자》를 통해서였으니, 예상외로 꽤 오래 전부터 전자책의 가능성이 대두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환경은 전자책이라는 것을 만들기엔 매력적이지 못했습니다. 종이책에서 얻을 수 있었던 콘텐츠를 전자기기를 통해 얻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금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손해였습니다. 결국 이영도의《드래곤 라자》를 끝까지 읽었던 것은 종이책을 통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종이책이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었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저자는 전자책 시스템이 소비자들이 원하는 책을 종이책보다 싸고 편하고 빠르게 읽을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시기가 왔다고 말합니다.

전자책의 등장을 말함에 앞서, 전자책보다 한발 앞서 변화한 콘텐츠가 있습니다. 바로 음악입니다. 과거의 음악은 LD로, 카세트 테이프로, CD로 듣는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데뷔하지 않은 아마추어 밴드들의 곡들을 인터넷에서 제공했고, 더 나아가 냅스터로 대표되는 불법 다운로드 방식이 등장했습니다. 이에 대항해 대형 음반사들은 자신들이 중심이 되어 음악전송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부터 말하면 음반사들의 합법적인 다운로드 서비스는 대실패였습니다. 소비자들이 단순히 공짜를 좋아해서 그런 것은 아니였습니다. 음반사끼리 호환이 되지 않았고, 다운로드한 곡은 30일이 지나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후 등장한 애플의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는 음악 시장을 바꿔버렸습니다.

애플은 무료 파일 공유서비스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료 음악전송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애플의 성공은 제 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데, 다양한 콘텐츠를 싸고 풍부하게 갖추고 있을 것, 사용자에게 편리할 것, 앰비언트 환경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애플은 한곡당 99센트라는 저렴한 가격과, 구입한 즉시 유저의 기기에 들어가는 간편한 시스템, 한번 구입한 곡은 특별한 제한 없이 다른 기기로 옮기거나 시디로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서 인터넷 음악의 맹주가 되었습니다. 애플의 사례는 플랫폼을 장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런 음악의 변화과정은 전자책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전자책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플랫폼을 장악하는 것입니다.

전자책 시장에서 플랫폼을 장악하기 위한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과거 출판사들도 다양한 형태로 전자책 플랫폼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전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실패 원인은 음반사들과 동일했습니다. 소비자들에게 어필할만한 환경을 만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적으로도 시기상조였습니다. 전자책에서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건 아마존이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은 이미 다양한 콘텐츠를 풍부하게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낮은 가격과 앰비언트 환경을 갖춰야 했습니다. 아마존은 초기에 25달러의 책을 10달러에 파는 등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낮은 가격을 유지했고 킨들이라는 전자책 리더를 통해 훌륭한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에 전자책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마존에 대항해 애플이 전자책 시장에 진출했고, 구글도 플랫폼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의 변화는 단순히 인쇄에서 전자로의 변환, 혹은 기존 출판사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플랫폼 회사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 이상의 변화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20세기 후반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베스트셀러로 대표되는 기호소비의 시대가 지났음을 의미하며, 이러한 환경을 지탱해주던 유통망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또한 새로운 출판문화인 자가출판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수많은 종류의 어플리케이션과 상부상조하면서 성장한 것처럼, 전자책 또한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도 누구나 자신의 책을 내고 판매할 수 있게 함으로써 서로의 콘텐츠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저자는 결과적으로 전자책은 책의 의미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자책은 커다란 공간의 일부로서 기능할 것이며, 기존의 독서라는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구조로 바뀔 것이라는 것입니다.

전자책이라는 새로운 생태계는 결국 독자와 능력 있는 필자를 위한 가장 좋은 독서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전자책의 갈길은 아직도 멉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자책을 살펴보면 다양한 콘텐츠도 없고, 가격도 종이책과 크게 차이가 없으며, 플랫폼이 너무 다양해서 호환성이 떨어집니다. 하드웨어적인 불편함도, 소프트웨어적인 불편함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전자책이 더 나은 생태계를 소비자들에게 보여준다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전자책으로 향할 것입니다. 과거에 메일은 순수한 첫사랑을 고백하거나 가족간에 안부를 묻는 종이로 된 편지를 의미했습니다. 이메일이 등장했을때만 해도 사람들은 메일과 이메일을 구분지어 생각하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메일 하면 대부분 이메일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책이라고 말하면,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먼저 떠올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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