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정병선 옮김 / 돌베개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매년 봄마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불청객은 황사만이 아닙니다. 조류독감 또한 매년 우리나라에 찾아와 많은 피해를 줍니다. 2008년엔 그 위세가 매우 강해 가금류 1000만 마리를 살처분했고 6300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조류독감이 무서운 것은 단순히 경제적 이유만은 아닙니다. 조류독감은 사람을 죽이는 질병입니다. 뉴스를 보면 매년 전세계에서 조류독감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류독감을 발생시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갈수록 진화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인플루엔자가 지구에서 가장 두려운 생물학적 위험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인플루엔자를 이렇게 강하게 만든 것이 우리 인류라고 지적합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막강한 영향력의 기록은 19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H1N1의 대유행은 전세계적으로 4000만명에서 최대 1억명까지 사망자를 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후 1957년의 H2N2가 유행했고, 1968년엔 H3N2가 유행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흔히 조류독감이라 불리우는 H5N1은 1997년에 홍콩에서 발병했습니다. 2003년엔 H7N7이 네덜란드에서 발병했고, 2004년엔 캐나다에서 H7N3이 발병했습니다. 이런 기록에서 알 수 있는것은 인플루엔자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HA 15종과 NA 9종을 확인했습니다. 때문에 이론적으로 인플루엔자는 총 135개의 아형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우려해야 할 점은 인플루엔자가 미세한 변화로도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도록 변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H5N1에서 조류와 사람 간의 종 도약에 성공했고, 훗날 등장할 변종은 사람과 사람 간의 감염체계를 가진 바이러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사람간의 감염이 가능해진다면, 에이즈보다 위력적인 대유행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우리나라에 특히나 위협적인데, 매년 3~4월과 10~11월에 조류독감을 지닌 철새가 우리나라를 지나는 데다 조류독감의 주요 진원지가 바로 우리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은 가금류를 대규모 기업식으로 생산하는 축산업 혁명을 일으키면서 전세계에 가금류를 공급하는 생산지가 됬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조류독감이 발병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질병생태학자들은 집약적인 산업적 공장 주위로 소규모 생산자들이 고도로 밀집해 있는 현실이 매우 위험한 상황을 야기한다고 말합니다. 야외에서 사육되는 닭들은 도화선이며, 공장형 시설에 밀집해 있는 닭들은 충전된 폭약이라는 것입니다.

인플루엔자가 대규모로 유행할 수 있는 환경적 조건은 비단 가금류가 밀집된 지역에서 대규모로 키워지는 것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 또한 가금류 못지않게 밀집된 지역에서 살아갑니다. 바로 도시 지역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3세계 국가의 도시화와 대규모 슬럼의 성장입니다. 양쯔강 어귀의 지역은 최대 2700만명을, 인도의 봄베이는 3300만명을 수용할 계획입니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 광역 메트로폴리스는 3700만명에 이르고, 멕시코시티는 5000만명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슬럼의 환경은 대단히 열악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개미굴 같은 빽빽한 슬럼에 몰아넣고 부자들이 정원과 공터를 마음껏 이용하는 것은 수많은 도시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슬럼은 수많은 자연재해와 비위생적인 환경, 공해 등에 시달립니다. 바이러스의 입장에선 이보다 좋은 환경이 없습니다. 이런 현상은 슬럼인구수로 따지면 국가순위 12위인 우리나라 또한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러한 생물학적 위험이 증가하고 있지만, 그에 대항하는 백신 체계는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제약 산업계가 민간화되면서 이윤을 우선시해야 하므로 돈이 되지 않는 백신 개발을 기피하고, 충분한 항바이러스제 비축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백신은 전염병이 유행하기 적어도 한 달 전에 대량 생산되어야 하지만, 시장 수요는 전염병이 한창일 때 발생합니다. 전염병이 절정일 때 백신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면 전염병이 지나가 대규모 재고가 쌓이게 됩니다.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백신을 언제나 적게 생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인플루엔자의 진화 속도 때문에 백신을 만든다고 해도 짧은 기간에만 효과를 볼 수밖에 없어서 경제적으로 큰 이윤을 남기기 힘듭니다. 가난한 나라는 물론 일부 부국마저도 보건 의료체계가 제 구실을 못하거나 와해되면서 새롭게 출현하는 질병에 점차 취약해지고 있습니다.

인플루엔자 전문가들은 1957년과 1968년의 경험에서 다른 교훈을 이끌어냈다. 그들은 이윤에 의해 추동되는 백신 시장의 무능과 불필요한 인명 손실에 경악했다. 제약회사들은 백신을 너무 적게 생산했고, 그 백신도 대부분 노년층과 임산부, 천식 환자들처럼 인플루엔자에 매우 취약한 집단에 제공되지 못했다. 백신이 필요했던 인구집단의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백신의 상당수는 독감으로 인한 겨울철 손실을 줄이기 위해 젊고 건강한 직원들에게 독감 백신을 대량으로 투여한 기업들에 의해 소비되었다. - p.50 

결국 조류독감은 지구적 규모의 농업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생태적 조건에 적응하면서 점차 강해졌고, 빈부격차가 만들어낸 슬럼의 가난한 사람들을 양식으로 전세계적인 규모의 대유행병의 가능성을 지닌 위험입니다. 인플루엔자는 가난한 국가에서 질병이 퍼지면 그 여파는 전 세계 모든 국가로 퍼지며,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질병이 퍼지면 국가의 모든 사람들이 질병의 영향권에 들어옵니다. 지금까지의 인플루엔자의 해법은 감염체의 격리와 살처분이였습니다. 하지만 이 해법은 인플루엔자가 사람에게 감염되기 시작하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저자는 백신 생산을 사기업 부문에서 공적 영역으로 이전하고, 기업형 축산업의 구조를 개선하며, 전세계적인 빈곤과 빈부격차를 개선해 대규모 슬럼과 같은 환경을 없애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어찌보면 물질에 대한 우리 인간의 욕심과 싸워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인플루엔자와 사람의 욕심 중 어느것이 더 무서운 것인지는 미래에 인플루엔자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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