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 a True Story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1
페르디난 트 폰쉬라크 지음, 김희상 옮김 / 갤리온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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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는 현직 독일 변호사로, 그가 실제로 담당한 11건의 사건의 이야기를 엮은 책입니다. 살인자의 변호라는 자극적인 제목과 다르게 그는 담담히 사건 관계자들의 인생을 이야기합니다. 수십년을 같이 살아온 아내를 토막 살인한 의사, 자기 동생을 익사시킨 첼리스트, 미녀 여대생의 미제사건, 식인 사례, 은행 강도 이야기 등을 간결한 문체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지은 죄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법의 선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재판에는 두 가지 차원이 얽혀 있다.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가 유죄 여부를 판단하는 데 충분한가의 문제가 첫번째다. 그것은 도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유죄 여부를 판단하면서 목사처럼 접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음 피의자가 범인이라는게 확정되었다면 형량을 얼마로 보아야 하는가가 두번째 문제이다. 범인의 범죄가 얼마나 위중한 것인지, 그에 알맞는 형량은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는 일에는 언제나 도덕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인생에서 어떤 경험을 했으며, 어떤 문제를 갖고 있었는지 살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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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과학 - 환경.보건 분야의 전문가가 파헤친 자본과 과학의 위험한 뒷거래
데이비드 마이클스 지음, 이홍상 옮김 / 이마고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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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과학의 발달로 사람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물질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고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환경정책과 기업간의 관계는 대립구조로 발전하는데, 이런 환경정책과 시민단체들의 요구에 공중보건에 악영향을 끼치는 회사들은 어떻게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을까요? 그 답은 바로 회사들을 공격하는데 사용되었던 과학을 이용하는 것이였습니다.

담배는 건강에 해롭습니까? 라는 질문을 한다면 열에 아홉은 해롭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담배를 구성하는 물질들의 해로움, 담배에 대한 수많은 과학적 조사들과 증거들이 그런 답변을 뒷받침합니다. 하지만 담배업계는 그러한 과학적 조사들을 공격합니다. 담배는 폐암 원인의 100%인가? 100살까지 담배를 피운 사람이 존재하지 않은가? 담배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처럼 질병의 또 다른 원인을 찾고, 병에 걸리지 않은 흡연자를 찾아내며, 어떤 것이든 새로운 연관관계를 만들어내고, 진실을 제외한 무엇이든 이것저것 찾아내어 초점을 흐리는 방법입니다. 이런 방법을 저자는 불확실성의 제조 라고 부르는데, 이 방식은 대단히 효과적이여서 신뢰성있는 과학조사에도 불구하고 담배에 대한 규제를 오랜 세월동안 늦추는 데 성공합니다. 담배 외에도 수많은 물질과 관련된 회사들이 이런 방식을 사용합니다. 석면, 벤지딘, 크롬, 디아세틸, 베릴륨, 각종 의약품들 등의 물질들은 장기간에 걸쳐 수많은 병과 환자들, 사망자들을 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정부의 개입이 시작되기 전까지 아무런 보호조치도 취하지 않고 생산을 계속했습니다.

이런 물질들은 공장 노동자들에게만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전자레인지에서 데워먹는 팝콘에 쓰이는 디아세틸 같은 경우 콜로라도의 웨인 왓슨과 같은 사례처럼 공장과 아무 관련이 없는 소비자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소송이 일어나지만 이런 법정 싸움에서는 피고인측인 기업에게 월등히 유리한 상황입니다. 판사들이 각각의 과학적 증거들을 개별적으로 판단함으로서 증거로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할 뿐더러 원고측에게 충분한 인과적 연결성을 요구함으로서 사실상 원고에게 소송을 포기하도록 만듭니다. 대단히 낮은 확률로 과학적 증거가 확실한 경우에도 기업측의 지연작전으로 인한 높은 소송비용으로 인해 원고가 패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1970년대 들어 환경과 공중보건의 가치가 부각되고 시민들의 요구에 힘입어 규제가 강화되자 새로운 회사들이 생겨납니다. 제품방어 사업이라는 이 인상적인 사업은 수많은 과학자들을 거느리고 회사들이 맞닥뜨린 공중보건과 환경보호 문제를 최소화하고 상해와 질병으로 인한 소송에 맞서 싸우도록 돕는 일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이 발전해 독성물질 노출을 확인할수 있는 능력이 발전할수록 이들에겐 더 많은 일거리와 이윤을 가져옵니다.

그들은 편향된 데이터와 거짓 추론 그리고 논리적인 잔재주가 뒤범벅된 그 무엇이다. 숨겨진 데이터, 특정 결과를 염두에 둔 추론, 공격적인 독단주의, 그러므로 다시 말해 완전한 사기인 것이다. - p.103 

이러한 업계의 민감한 대응들을 보면 환경규제가 기업들이 돈을 벌기에 치명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플라스틱 업계는 '플라스틱업계는 1ppm이라는 권고기준을 거부한다. 동물실험과 역학조사에서 공히 암이 확인됬지만 현재의 노출수치에서 발암위험이 확실히 증명된 것은 아니다. 10ppm 이하의 수치는 파산을 초래할 수도 있다. 수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게 될 것이 분명하며 급격한 경기침체와 또 다른 대공황을 부를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늘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라는 성명을 내며 격렬히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염화비닐 생산에 대한 엄격한 환경기준이 부과됬으나 경제가 흔들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제대로 관리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결국 업계를 파산으로 몰고 가지 않았습니다. 강력한 규제를 함으로써 노동자나 대중은 말할 것도 없고 업계 자체에도 이득이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례로 강력한 환경규제중 하나였던 공기정화법은 업계측에서 400억 달러가 넘는 연간 비용을 발생시킬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지만 결과적으로 수만명을 질병과 사망으로부터 구했을 뿐더러 수십만 명의 천식 발병을 막아냈고 규제에 가장 회의적이였던 조지 부시 행정부의 전문가들마저 경제적 이득이 500~4000억 달러 많다고 평가했습니다.

환경을 보호하고 공중보건을 향상시키는 일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은 합리적인 의심을 벗어난 증거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으며 그것을 얻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인정합니다. 우리의 규제 시스템은 현재 입수 가능한 최선의 증거들을 적용할 것을 요구하며 절대적인 확실성을 기다리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입니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죽어갈 것이며 환경을 파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악영향을 끼쳤던 문제들이 반규제 열성당원들과 기업들에 의해 수많은 피해들을 야기했고 그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수십년이 흐른 뒤 지금 해결할 수도 있었던 문제들에 대해 뒤늦게 후회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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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어 좌파의 역사 -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선 부자들의 이야기
로랑 조프랭 지음, 양영란 옮김 / 워드앤코드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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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들의 편에 선 부자들, 그들을 프랑스에서는 '캐비어 좌파'라고 부릅니다. '평화의 전사'처럼 양립 불가능한 두 단어를 결합한 결과물인 이 단어는, 부의 상징인 캐비어와 가난한 자들의 진영인 좌파가 접목된 단어입니다. 이들은 좌파 내부에선 부르주아라고 손가락질당하는가 하면 우파로부터는 배신자 취급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이 가진 돈으로 미루어 이들의 정치참여가 위선이며 편의상의 신조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캐비어 좌파는 역사적으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소임을 수행해 왔습니다. 괄목할 만한 진보주의적 전진이 있을 때나 계급관계에서 변화가 있을 때, 혹은 중대한 개혁의 시기엔 언제나 그들이 있었습니다.

캐비어 좌파는 아주 오랜 시절부터, 어느 곳에나 존재해 왔습니다. 독일에서는 이들을 '토스카너 프락치온'이라 부르며, 영국에서는 '샴페인 좌파', 미국에서는 '피프스 애비뉴 리버럴'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대동법의 제정이 이루어지는 등 역사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이러한 캐비어 좌파들이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현재는 이들을 '강남 좌파' 라고 부릅니다. 모순투성이인 캐비어 좌파는 역사적 흐름에서 오히려 본질적인 기능을 맡아 왔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모호한 좌파는 좌파를 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의 개척자들이며, 비인간적으로 착취당하는 노동계급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노동자들의 편에 섰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대다수 좌파 정당의 지도자들은 부르주아 출신입니다.

마음으로는 아파하지만 몸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특징은 이 특이한 좌파의 모호함을 정의해 준다. 솔직히 이는 일말의 정직함을 지닌 높은 양반들이 비천한 아래 사람들의 운명에 다소나마 관심을 둘 때면 으레 나타나는 보편적인 작태이다. 위선이나 자기기만이 아니냐고? 그럴 확률도 상당히 높다. 하지만 모두들 동의하겠지만, 위선과 자기기만이라는 악이 간혹 이웃을 염려하는 선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거만한 자들의 냉소주의보다는 백 배 낫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안 된 말이지만, 억울하면 그들도 부자가 되면 되잖아"라는 말만 해댄다면, 이 사회는 당연히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힘든 곳이 될 것이다. - pp.29~30 

기업의 경영자들은 캐비어 좌파를 증오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이들이 아는 것이 너무 많은 데다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궁정 작가이면서 엄청난 부자였던 볼테르는 모두에게 평등한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해 투쟁했습니다. 공화주의자이며 하층민들과 가깝게 지낸 빅토르 위고는 성공한 작가였고, 호화스러운 삶을 영위했습니다. 정치경제학에 혁명을 몰고 왔으며 노동자들을 위해서 누구보다 많은 일을 했던 캐비어 좌파인 케인스는, 가장 훌륭한 교육을 받고, 가장 훌륭한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캐비어 좌파에게 실존은 본질에 우선합니다. 엘리트 진보주의자들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원래부터 품고 있던 사상이나 계급에 따른 편견, 물려받은 신념 등이 아닙니다. 캐비어 좌파들은 사회에 대한 경험, 특히 대규모 사건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바꾸며 정치적인 선택을 합니다.

프랑스에서 캐비어 좌파가 대두하게 된 계기는 볼테르의 투쟁이였습니다. 하지만 캐비어 좌파가 사회적으로 가장 큰 이슈를 몰고왔던 사건은 바로 '드레퓌스 사건'이였습니다. '나는 고발한다'라는 유명한 글을 기고한 에밀 졸라는 격조 있는 아파트에 살았던 캐비어 좌파였습니다. 에밀 졸라는 역설적이게도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고발함으로써 점점 더 부자가 되어갔습니다. 그는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예와 부의 정상에 오른 뒤, 반역이라는 누명을 쓴 무명의 유대인 대위를 변호하기 위해 그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열렬한 사회주의자이자 웅변가, 마르크스주의를 프랑스에 보급한 자, 노동자계급의 상징인 쥘 게드는 드레퓌스 사건은 부르주아 내부의 패권 다툼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여론은 극명하게 이분되었고 가족들 간에도 찬반이 갈렸고 친구들끼리도 서로 상대방을 비방했으며 정당들도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우파, 한림원, 사제단, 군대는 반 드레퓌스파였고, 좌파, 인권연맹, 지식인, 사회주의자, 공화주의자들은 친 드레퓌스파였습니다. 결국 드레퓌스 사건은 무죄로 밝혀졌고, 캐비어 좌파는 역사적인 승리를 거둡니다.

캐비어 좌파는 개혁을 신봉하는 자들입니다. 캐비어 좌파는 계급 간의 타협을 주장할 뿐, 구체제의 전격적인 전복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이들은 똑똑한 개혁주의자가 고집스러운 보수주의자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믿는 혁명주의자들로부터 줄곧 야유와 지탄을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캐비어 좌파는 우파와 좌파를 연결해주는 일종의 다리와 같습니다. 만약 캐비어 좌파가 없었다면 우파와 좌파 사이에는 지금보다 훨씬 치명적이고 불행한 단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캐비어 좌파는 그 과격한 역사적 변화에 완충재 역할을 수행하면서, 실질적으로 극좌파나 극우파보다 훨씬 많은 업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하지만 캐비어 좌파들의 그 같은 추이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느냐는 물음엔 자신있게 답할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대두와 경제의 금융화, 세계화 등은 지배계급을 이전 시대보다 훨씬 부유하고 강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엘리트들은 우파나 좌파를 가릴 것 없이 모두를 똑같은 도약 속으로 끌어들였고, 그 결과 지배 계층에 속하는 진보주의자들 중 일부는 자신의 정치적 뿌리를 부정하며 우파의 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캐비어 좌파는 그들의 강점인 도덕적이고 이념적인 헤게모니를 강경한 자유주의 옹호자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캐비어'가 '좌파'에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그 결과 많은 부르주아 좌파가 사라지게 되었고, 부르주아 좌파는 이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포퓰리즘, 즉 대중영합주의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명분을 들먹이며 민중의 정당한 이익마저 망각해 버렸습니다. 이들은 유권자들의 동요를 읽지 못하고 부르주아의 사상을 여과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독창성을 상실했으며, 노동자 계급과 유산 계급 사이의 중개인으로서의 역사적 역할을 포기함으로써, 냉소주의와 이기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신 엘리트 집단과 마찬가지로 배척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나는 지역주의의 수혜지역인 경상도 지방에서 남성으로 자라나서, 입시경쟁의 승자가 되어 대학에 들어간 후 미국물까지 먹고 돌아왔으며, 집값 비싼 강남 지역에 거주하면서 학벌의 정점이라는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 침팬지 세상의 승자가 된 것이다.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식,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에 따르면, 나는 지금 숭미보수우파로 활약하고 있어야 할게다. 그런데 나는 사회적으로 반대성향의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스스로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다. 세상에는 좌도 우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 시기 우리 사회의 구조와 문화를 생각할 때 우가 아니라 좌로의 한걸음이 필요하며, 보노보적 본성이 더욱 많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전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여 과잉우편향을 강화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 앞에서, "그럼에도 나는 좌파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중립 또는 중도의 이름하에 숨어 있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드러내며 비판하고 비판받는 것이 진리를 찾는 길이라 생각한다. 설사 누가 나를 '좌파 부르주아'라고 부르며 폄하할지라도, 나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정신을 좇아 의식적으로 왼편에 서서 나의 존재에 대한 '배신'을 계속하고자 한다. - 《보노보 찬가》, 조국 

캐비어 좌파의 다수가 우파로 전향했기 때문에, 캐비어 좌파는 더 이상 과거만큼 역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힘들어 졌습니다. 이는 최악의 경우 사회의 상층과 하층의 대립이라는 위협적인 양상을 낳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자는 자유와 현실주의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민중에게 신뢰감을 주는 좌파를 되찾을 수 있는 시기가 오고 있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에 충실하고, 자유로운 인간들을 지지하며, 도덕적 가치에 토대를 두고, 본질적으로 개혁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원칙과 준거, 가치에 토대를 두고 그것을 존중하는 확고한 의지를 가질 수 있다면, 캐비어 좌파는 그들이 기꺼이 수행해왔던 역사적인 역할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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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계급사회 - 누가 대한민국을 영어 광풍에 몰아 넣는가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4
남태현 지음 / 오월의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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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학문을 고르자면 어떤게 가장 중요할까요? 한국어일까요? 수학일까요? 아마 십중팔구는 '영어'를 고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단연 독보적으로 중요합니다. 진학, 취직, 승진 등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비마다 영어가 필요합니다. 과거에 미군정 시기와 건국 초기를 보면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출세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도 출세를 하는데 있어서 영어는 필수적입니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영어열풍이 일종의 사회적 사기이며,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의 문제이자 계급 간의 갈등을 낳고 있다고 말합니다.

한 영어학원은 영어회화 초급반의 목표에서 '실생활에서 필요한 회화를 자연스레 습득하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 및 질문에 답변하는 순발력을 향상시킨다'고 광고합니다. 이처럼 영어가 된다는 희망이 가득찬 메시지는 학원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흘러나옵니다. 수많은 교재와 미디어에서 영어를 당신도 잘 할수 있다고 외칩니다. 이런 메시지의 기반에는 돈만 좀 들이면 별 문제 없이 영어 실력을 챙길수 있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풀이를 반복해서 토플이나 토익을 잘 본다고 영어를 잘할 수는 없습니다. 외국 말이 다 그렇듯이 영어 또한 언어만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미계의 사고체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넓게는 문화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것은 아무나 할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영어를 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대부분 원래 되지도 않는 것을 하면서 안되면 좌절합니다. 처음부터 사회의 요구가 무리였다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영어 열풍은 대학가에서도 불고 있습니다. 갈수록 영어로 수업을 하는 과목이 늘어나고 있고, 영어로만 대화를 해야 하는 캠퍼스도 생기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마치 대학이 국제화를 선도하며 긍정적인 변화를 주고 있는걸로 보이기도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고역인 변화입니다. 영어 강의를 듣는 대학생들의 설문조사에서 전공 내용의 전달이 약화된다는데 크게 동의한 반면, 실력이 향상된다는 데에 강한 부정을 보였습니다. 교수들 또한 영어강의에 부정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영어로 수업을 함으로써 전공수업을 단순히 교과서 겉핥기 수준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대학들이 영어에 안달인 이유는 신문사들의 대학 평가에 있습니다. 중앙일보의 대학평가 배점을 보면 영어 강좌 비율은 20점으로, 전체 비율의 5.7%에 달하는데, 이와 같은 점수는 교수 당 학술지 논문 게재 수, 외국인 교수비율밖에 없습니다. 또한 외국인 유학생의 수는 15점으로 전체 평가의 약 4.2%에 달합니다. 외국인 유학생의 대부분은 한국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대학들은 영어강의를 제공해야 합니다. 젊은 학생들의 잠재력을 계발하는 것이 주요 책임인 대학에서, 드는 노력에 비해 형편없는 결과를 내는 비효율적인 행동을 통해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영어산업은 막대한 이권이 걸려있기 때문에 섯불리 건드리기 힘든 곳입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학원산업은 전체 서비스 업종중 17%를 차지하고 있으며, 종사하는 사람들도 서비스업종 중 10%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09년 기준으로 사업체 수는 141,525개이며, 51만명의 일자리가 걸려있는 것입니다. 영어교재는 서점에서 전체 판매액의 10.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영어 사교육비는 2009년 기준으로 정부 공식 통계 발표는 7조, 증권가에서는 15조원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산업 규모가 크다보니 영어를 통해 해외에 지불해야 하는 금액도 막대합니다. 한국의 토플 응시자는 세계 최대이고, 토익은 전 세계 응시자의 절반이 한국인입니다. 2008년 한해에 토플비용으로 250억원에 달하는 돈을, 토익비용으로 850억원을 미국의 기관에 지불했습니다. 요새 대기업 취직시 각광받고 있는 영어 말하기 시험 중 하나인 오픽은 2006년에 국내에서 처음 실시되었는데,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매출액은 한해에 100억원에 이릅니다.

이처럼 많은 돈과 시간을 영어교육에 투자하고 있지만, 비영어권 국가의 성인들의 영어실력을 평가한 결과 한국은 중위권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에 목을 매는 이유는 미국의 지식, 가치, 언어는 한국사회에서 유용한 재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2011년 7월 기준 정부 장관급 인사의 45%가 최종학력이 미국 소재 대학들 나왔으며, 299명 국회의원 중 21%가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고, 2011년 삼성의 임원 승진자의 62%가 미국 대학에서 석박사를 받았고, 서울대 정치학 전공 교수를 보면 85.7%가 미국 대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학벌 연줄은 미국대학에서도 이어지며 각종 모임을 통해 그들만의 연결고리를 튼튼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능숙한 영어는 상위 1%에겐 계급을 상징하는 수단입니다.

흔히 영어사용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하는 주장 중 하나는, 세계화 시대에 뒤쳐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분명 영어는 많이 쓰이는 말 중 하나이지만, 영어 외에도 세계화에 대처할만한 언어는 더 있습니다. 유엔의 공식언어도 아랍어, 중국어, 영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프랑스어를 사용합니다. 진정으로 세계화를 준비하는 것이 우리사회의 중요한 목표라면, 영어를 열심히 하는 만큼 프랑스어, 중국어, 몽골어, 스와힐리어, 포르투갈어, 네델란드어, 아랍어, 이란어 등도 열심히 해야 하고 사회는 이를 응원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영어라는 한 언어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가 필수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미국은 세계와 동의어라는 가정을 깔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생각한 세계화는 미국화 내지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교 프로그램들은 언어의 소실을 돌이키지 못했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알래스카 어는 더 이상 아이들 사이에서 말해지지 않았다. 상류 쿠스코큄 아타바스카 어가, 타나이나 아타바스카 어가, 쿠친 아타바스카 어가, 이누피아크 에스키모 어가, 알루티크어가 더 이상 말해지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은 오직 영어로만 말하며 학교로 오기 시작했다. - 《언어의 종말》, p.298 

우리는 많은 경우에 미국 드라마를 보거나 팝송을 따라 부르기 위해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드라마를 보거나 팝송을 부릅니다. 우리의 영어는 대부분 진학과 취직, 승진을 위해, 한국사람들에게 보여줄 점수를 위한 영어입니다. 즉 영어는 내수용이며 일종의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사용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영어 경쟁은 계급적입니다. 영어유치원은 물론이고 국제중, 외국어고의 경우 가난한 학생은 갈 수 없습니다. 대학교 등록금보다 더 많은 돈이 들기 때문입니다. 영어실력으로 사회적 계급이 나뉘는 상황에서, 그 출발은 지극히 불공평합니다. 우리는 현재 언어를 배우기 위해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 아닌, 계급경쟁의 방법으로 영어를 공부합니다. 때문에 이런 구도는 영어 열풍 덕에 만약 전 국민이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영어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또 경쟁을 계속할 것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이런 흐름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비효율적인데다, 또 하나 흥미로운 질문을 제시합니다. 영어 광풍의 끝자락에서 모든 한국인들이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과연 한국어를 계속 사용할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역사의 한 시점에서,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그리고 공통의 링구아 프랑카를 채택함으로써 다른 공동체에 보다 가까워지려고 시도할 수도 있다. 종종 그들은 지각되고 합리적이며 경제적인 목적을 추구한다. 그 목적이 바뀔 때 또는 그 목적이 이루어졌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되돌아갈 길이 없는 것이다. 구 언어가 부여했던 정체성 또는 선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오스틀러  

수없이 많은 문제와 이해관계가 엉켜있기 때문에 이를 쉽게 해결할 방법은 없습니다. 저자는 그나마 쉬운 방법으로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내놓을 수 있는 방안 두가지를 말합니다. 공무원시험에서, 대학입시에서 영어의 비중을 줄이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관점에서 봐도 대부분의 공무원들이나 대학생들은 현재처럼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가며 영어공부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더 이상 영어를 장려하지 않다는 모습을 보여 주면 KTX를 탄 듯이 달리고 있는 영어열풍에 조금이지만 브레이크를 걸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 나간다면, 우리는 그만큼 남는 열정과 시간을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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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차백만 옮김 / 미래의창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영국계 미국 언론인이자 대표적인 대중적 지식인인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젊은 대학생들을 위한 조언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은 형식을 빌려서 전해주는 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자기계발서라고도 할 수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자기계발서들과는 너무도 방향이 다릅니다. 이 책은 '힐링'을 이야기하지도,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이루어진다'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가시밭길'을 권고합니다. 히친스는 위기와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자기만의 생각을 정립해 '소수 반대파'로서의 삶을 걸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조언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자기계발서로서의 탁월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회의주의자로서의 삶은 히친스의 말대로 고달픈 삶입니다. 대중에 동조해서 동질감이나 소속감을 얻으려 하는 건 모든 시대에 걸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반대파로서 살아가기에 적합한 시대는 없습니다. 반대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급진주의자, 혹은 악동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더 악질적인 표현으로는 불평분자나 사회부적응자라고도 불리웁니다. 하지만 어느 시대에나 스스로 대중과 거리를 두려고 애썼던 사람들이 있었으며, 역사의 모든 중요한 시기에 일치단결, 사회 결속과 같은 공익이 정의 구현보다 더 중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이들은 늘 존재했습니다. 우리가 현재 이룩한 사회는 이런 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급진주의자 중 한명인 에밀 졸라는 인간의 권리를 주장했을 뿐 아니라 교회의 지나친 권력남용, 특정 인종에 대한 증오, 군국주의, 민족과 국가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 맞서 싸웠습니다.

부끄러운 공포가 지배한다. 가장 용감한 자들은 겁쟁이로 변했으며, 배신자나 부패한 인간으로 비난받을까 두려워서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한다. 그나마 처음에는 정의를 말하던 몇 안되는 언론들조차 이제는 여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양심을 들여다보라. 그대들이 지키고자 한 것이 과연 군대였단 말인가? 하지만 도대체 누가 군대를 공격하고 있단 말인가? 오히려 그대들은 그보다는 갑자기 총칼의 미덕을 옹호하고 싶은 것 아닌가? 결론적으로 그대들의 혈관에는 아직도 진정한 공화제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 그대들의 심장은 여전히 깃털 장식이 달린 투구만 봐도 환희로 쿵쾅댄다. 그대들은 여전히 왕정과 사랑에 빠져 있다. - 에밀 졸라 

흔히 반대파의 삶은 무언가 대의명분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반대파가 되었다고 설명하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히친스는 반대파의 삶은 굳이 몸 바칠 대의명분이 없더라도 그 자체로도 충분히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에 들어와서 더 중요해졌습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서는 민주화 운동과 인권투쟁, 반전시위,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저항 등 대의명분이 충분히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수용주의와 변화 없는 정체가 계속되었고, 쉽게 반대파가 될 수 없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반대파들은 생존전략으로서 '가정'하는 삶을 추구합니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부조리하지 않다고 '가정'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삶의 모습 그대로 부조리에 대해 저항하고, 기꺼이 논쟁과 반목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고, 인간이 생존한 이유도 이런 적응력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적응력 때문에 특정한 위험에 대해 불감해지고 위험을 너무 늦게 알아차릴수도 있습니다. 국가안보라는 가치의 지나친 추구는 핵무기 시대를 초래했고,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터에 떠밀렸고, 생사여탈권을 남에게 부여했습니다. 때문에 반대파는 내 손으로 뽑은 선출직 지도자들이 나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가져가지 않았으며, 나에게 다른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할 수도 없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자각해야 합니다. 때문에 반대파는 심적으로, 의식적으로 고위공직자들과 불화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반대파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더 나은 날이 오길 기다리며 의도적으로 그들과 반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입증했듯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의 권위는 언제나 반대파를 억누를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침묵은 무덤 속에서도 한없이 할 수 있으니, 논쟁과 반목을 기쁘게 찾아 나서라. 아무리 귀에 달콤해도 비이성을 경계하라. 초월적인 경험을 주장하면서 무언가에 복종하라고 말하거나 자신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이들의 말은 듣지도 말라. 남의 동정을 불신하고 자신과 타인의 존엄성을 더욱 중시하라. 남들 눈에 교만하고 이기적으로 비치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 모든 전문가를 그저 포유동물로 여겨라. 불공정과 우둔함을 절대로 방관하지 말라. 그대 가슴속에 존재하는 대의명분과 변명을 늘 의심하라. 남들이 그대에게 맞춰 살아가길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그대 또한 남에게 맞춰 살아가지 말라. 히친스는 이런 자세가 젊은 회의주의자들에게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반대파가 만드는 의견의 불일치야 말로 개인의 진실성, 사실이 뒷받침된 논쟁, 진정한 진보, 나아가 민주주의의 앞날에 진정으로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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