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어 좌파의 역사 -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선 부자들의 이야기
로랑 조프랭 지음, 양영란 옮김 / 워드앤코드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선 부자들, 그들을 프랑스에서는 '캐비어 좌파'라고 부릅니다. '평화의 전사'처럼 양립 불가능한 두 단어를 결합한 결과물인 이 단어는, 부의 상징인 캐비어와 가난한 자들의 진영인 좌파가 접목된 단어입니다. 이들은 좌파 내부에선 부르주아라고 손가락질당하는가 하면 우파로부터는 배신자 취급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이 가진 돈으로 미루어 이들의 정치참여가 위선이며 편의상의 신조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캐비어 좌파는 역사적으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소임을 수행해 왔습니다. 괄목할 만한 진보주의적 전진이 있을 때나 계급관계에서 변화가 있을 때, 혹은 중대한 개혁의 시기엔 언제나 그들이 있었습니다.

캐비어 좌파는 아주 오랜 시절부터, 어느 곳에나 존재해 왔습니다. 독일에서는 이들을 '토스카너 프락치온'이라 부르며, 영국에서는 '샴페인 좌파', 미국에서는 '피프스 애비뉴 리버럴'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대동법의 제정이 이루어지는 등 역사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이러한 캐비어 좌파들이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현재는 이들을 '강남 좌파' 라고 부릅니다. 모순투성이인 캐비어 좌파는 역사적 흐름에서 오히려 본질적인 기능을 맡아 왔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모호한 좌파는 좌파를 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의 개척자들이며, 비인간적으로 착취당하는 노동계급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노동자들의 편에 섰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대다수 좌파 정당의 지도자들은 부르주아 출신입니다.

마음으로는 아파하지만 몸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특징은 이 특이한 좌파의 모호함을 정의해 준다. 솔직히 이는 일말의 정직함을 지닌 높은 양반들이 비천한 아래 사람들의 운명에 다소나마 관심을 둘 때면 으레 나타나는 보편적인 작태이다. 위선이나 자기기만이 아니냐고? 그럴 확률도 상당히 높다. 하지만 모두들 동의하겠지만, 위선과 자기기만이라는 악이 간혹 이웃을 염려하는 선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거만한 자들의 냉소주의보다는 백 배 낫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안 된 말이지만, 억울하면 그들도 부자가 되면 되잖아"라는 말만 해댄다면, 이 사회는 당연히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힘든 곳이 될 것이다. - pp.29~30 

기업의 경영자들은 캐비어 좌파를 증오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이들이 아는 것이 너무 많은 데다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궁정 작가이면서 엄청난 부자였던 볼테르는 모두에게 평등한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해 투쟁했습니다. 공화주의자이며 하층민들과 가깝게 지낸 빅토르 위고는 성공한 작가였고, 호화스러운 삶을 영위했습니다. 정치경제학에 혁명을 몰고 왔으며 노동자들을 위해서 누구보다 많은 일을 했던 캐비어 좌파인 케인스는, 가장 훌륭한 교육을 받고, 가장 훌륭한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캐비어 좌파에게 실존은 본질에 우선합니다. 엘리트 진보주의자들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원래부터 품고 있던 사상이나 계급에 따른 편견, 물려받은 신념 등이 아닙니다. 캐비어 좌파들은 사회에 대한 경험, 특히 대규모 사건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바꾸며 정치적인 선택을 합니다.

프랑스에서 캐비어 좌파가 대두하게 된 계기는 볼테르의 투쟁이였습니다. 하지만 캐비어 좌파가 사회적으로 가장 큰 이슈를 몰고왔던 사건은 바로 '드레퓌스 사건'이였습니다. '나는 고발한다'라는 유명한 글을 기고한 에밀 졸라는 격조 있는 아파트에 살았던 캐비어 좌파였습니다. 에밀 졸라는 역설적이게도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고발함으로써 점점 더 부자가 되어갔습니다. 그는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예와 부의 정상에 오른 뒤, 반역이라는 누명을 쓴 무명의 유대인 대위를 변호하기 위해 그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열렬한 사회주의자이자 웅변가, 마르크스주의를 프랑스에 보급한 자, 노동자계급의 상징인 쥘 게드는 드레퓌스 사건은 부르주아 내부의 패권 다툼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여론은 극명하게 이분되었고 가족들 간에도 찬반이 갈렸고 친구들끼리도 서로 상대방을 비방했으며 정당들도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우파, 한림원, 사제단, 군대는 반 드레퓌스파였고, 좌파, 인권연맹, 지식인, 사회주의자, 공화주의자들은 친 드레퓌스파였습니다. 결국 드레퓌스 사건은 무죄로 밝혀졌고, 캐비어 좌파는 역사적인 승리를 거둡니다.

캐비어 좌파는 개혁을 신봉하는 자들입니다. 캐비어 좌파는 계급 간의 타협을 주장할 뿐, 구체제의 전격적인 전복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이들은 똑똑한 개혁주의자가 고집스러운 보수주의자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믿는 혁명주의자들로부터 줄곧 야유와 지탄을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캐비어 좌파는 우파와 좌파를 연결해주는 일종의 다리와 같습니다. 만약 캐비어 좌파가 없었다면 우파와 좌파 사이에는 지금보다 훨씬 치명적이고 불행한 단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캐비어 좌파는 그 과격한 역사적 변화에 완충재 역할을 수행하면서, 실질적으로 극좌파나 극우파보다 훨씬 많은 업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하지만 캐비어 좌파들의 그 같은 추이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느냐는 물음엔 자신있게 답할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대두와 경제의 금융화, 세계화 등은 지배계급을 이전 시대보다 훨씬 부유하고 강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엘리트들은 우파나 좌파를 가릴 것 없이 모두를 똑같은 도약 속으로 끌어들였고, 그 결과 지배 계층에 속하는 진보주의자들 중 일부는 자신의 정치적 뿌리를 부정하며 우파의 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캐비어 좌파는 그들의 강점인 도덕적이고 이념적인 헤게모니를 강경한 자유주의 옹호자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캐비어'가 '좌파'에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그 결과 많은 부르주아 좌파가 사라지게 되었고, 부르주아 좌파는 이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포퓰리즘, 즉 대중영합주의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명분을 들먹이며 민중의 정당한 이익마저 망각해 버렸습니다. 이들은 유권자들의 동요를 읽지 못하고 부르주아의 사상을 여과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독창성을 상실했으며, 노동자 계급과 유산 계급 사이의 중개인으로서의 역사적 역할을 포기함으로써, 냉소주의와 이기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신 엘리트 집단과 마찬가지로 배척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나는 지역주의의 수혜지역인 경상도 지방에서 남성으로 자라나서, 입시경쟁의 승자가 되어 대학에 들어간 후 미국물까지 먹고 돌아왔으며, 집값 비싼 강남 지역에 거주하면서 학벌의 정점이라는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 침팬지 세상의 승자가 된 것이다.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식,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에 따르면, 나는 지금 숭미보수우파로 활약하고 있어야 할게다. 그런데 나는 사회적으로 반대성향의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스스로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다. 세상에는 좌도 우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 시기 우리 사회의 구조와 문화를 생각할 때 우가 아니라 좌로의 한걸음이 필요하며, 보노보적 본성이 더욱 많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전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여 과잉우편향을 강화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 앞에서, "그럼에도 나는 좌파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중립 또는 중도의 이름하에 숨어 있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드러내며 비판하고 비판받는 것이 진리를 찾는 길이라 생각한다. 설사 누가 나를 '좌파 부르주아'라고 부르며 폄하할지라도, 나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정신을 좇아 의식적으로 왼편에 서서 나의 존재에 대한 '배신'을 계속하고자 한다. - 《보노보 찬가》, 조국 

캐비어 좌파의 다수가 우파로 전향했기 때문에, 캐비어 좌파는 더 이상 과거만큼 역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힘들어 졌습니다. 이는 최악의 경우 사회의 상층과 하층의 대립이라는 위협적인 양상을 낳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자는 자유와 현실주의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민중에게 신뢰감을 주는 좌파를 되찾을 수 있는 시기가 오고 있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에 충실하고, 자유로운 인간들을 지지하며, 도덕적 가치에 토대를 두고, 본질적으로 개혁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원칙과 준거, 가치에 토대를 두고 그것을 존중하는 확고한 의지를 가질 수 있다면, 캐비어 좌파는 그들이 기꺼이 수행해왔던 역사적인 역할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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