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차백만 옮김 / 미래의창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영국계 미국 언론인이자 대표적인 대중적 지식인인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젊은 대학생들을 위한 조언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은 형식을 빌려서 전해주는 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자기계발서라고도 할 수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자기계발서들과는 너무도 방향이 다릅니다. 이 책은 '힐링'을 이야기하지도,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이루어진다'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가시밭길'을 권고합니다. 히친스는 위기와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자기만의 생각을 정립해 '소수 반대파'로서의 삶을 걸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조언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자기계발서로서의 탁월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회의주의자로서의 삶은 히친스의 말대로 고달픈 삶입니다. 대중에 동조해서 동질감이나 소속감을 얻으려 하는 건 모든 시대에 걸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반대파로서 살아가기에 적합한 시대는 없습니다. 반대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급진주의자, 혹은 악동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더 악질적인 표현으로는 불평분자나 사회부적응자라고도 불리웁니다. 하지만 어느 시대에나 스스로 대중과 거리를 두려고 애썼던 사람들이 있었으며, 역사의 모든 중요한 시기에 일치단결, 사회 결속과 같은 공익이 정의 구현보다 더 중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이들은 늘 존재했습니다. 우리가 현재 이룩한 사회는 이런 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급진주의자 중 한명인 에밀 졸라는 인간의 권리를 주장했을 뿐 아니라 교회의 지나친 권력남용, 특정 인종에 대한 증오, 군국주의, 민족과 국가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 맞서 싸웠습니다.

부끄러운 공포가 지배한다. 가장 용감한 자들은 겁쟁이로 변했으며, 배신자나 부패한 인간으로 비난받을까 두려워서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한다. 그나마 처음에는 정의를 말하던 몇 안되는 언론들조차 이제는 여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양심을 들여다보라. 그대들이 지키고자 한 것이 과연 군대였단 말인가? 하지만 도대체 누가 군대를 공격하고 있단 말인가? 오히려 그대들은 그보다는 갑자기 총칼의 미덕을 옹호하고 싶은 것 아닌가? 결론적으로 그대들의 혈관에는 아직도 진정한 공화제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 그대들의 심장은 여전히 깃털 장식이 달린 투구만 봐도 환희로 쿵쾅댄다. 그대들은 여전히 왕정과 사랑에 빠져 있다. - 에밀 졸라 

흔히 반대파의 삶은 무언가 대의명분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반대파가 되었다고 설명하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히친스는 반대파의 삶은 굳이 몸 바칠 대의명분이 없더라도 그 자체로도 충분히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에 들어와서 더 중요해졌습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서는 민주화 운동과 인권투쟁, 반전시위,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저항 등 대의명분이 충분히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수용주의와 변화 없는 정체가 계속되었고, 쉽게 반대파가 될 수 없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반대파들은 생존전략으로서 '가정'하는 삶을 추구합니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부조리하지 않다고 '가정'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삶의 모습 그대로 부조리에 대해 저항하고, 기꺼이 논쟁과 반목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고, 인간이 생존한 이유도 이런 적응력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적응력 때문에 특정한 위험에 대해 불감해지고 위험을 너무 늦게 알아차릴수도 있습니다. 국가안보라는 가치의 지나친 추구는 핵무기 시대를 초래했고,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터에 떠밀렸고, 생사여탈권을 남에게 부여했습니다. 때문에 반대파는 내 손으로 뽑은 선출직 지도자들이 나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가져가지 않았으며, 나에게 다른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할 수도 없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자각해야 합니다. 때문에 반대파는 심적으로, 의식적으로 고위공직자들과 불화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반대파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더 나은 날이 오길 기다리며 의도적으로 그들과 반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입증했듯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의 권위는 언제나 반대파를 억누를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침묵은 무덤 속에서도 한없이 할 수 있으니, 논쟁과 반목을 기쁘게 찾아 나서라. 아무리 귀에 달콤해도 비이성을 경계하라. 초월적인 경험을 주장하면서 무언가에 복종하라고 말하거나 자신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이들의 말은 듣지도 말라. 남의 동정을 불신하고 자신과 타인의 존엄성을 더욱 중시하라. 남들 눈에 교만하고 이기적으로 비치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 모든 전문가를 그저 포유동물로 여겨라. 불공정과 우둔함을 절대로 방관하지 말라. 그대 가슴속에 존재하는 대의명분과 변명을 늘 의심하라. 남들이 그대에게 맞춰 살아가길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그대 또한 남에게 맞춰 살아가지 말라. 히친스는 이런 자세가 젊은 회의주의자들에게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반대파가 만드는 의견의 불일치야 말로 개인의 진실성, 사실이 뒷받침된 논쟁, 진정한 진보, 나아가 민주주의의 앞날에 진정으로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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