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 그 치명적 유혹
피터 H. 글렉 지음, 환경운동연합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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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보건의 역사 중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를 고른다면, 그것은 깨끗한 물의 보급일 것입니다. 청결한 물의 공급과 하수 체계는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질병과 죽음의 위협에서 구해 냈습니다. 하버드 의대 교수인 제임스 길리건은 근대사회에서 수많은 병을 물리친 가장 효과적인 의학적 업적은 의사, 병원, 혹은 약의 역할이 아니며, 이 상하수도 체계야 말로 인류의 역사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의학적 업적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더러운 물이 주범인 설사로 인한 사망자는, 전쟁과 내전으로 죽는 사망자의 6배에 달한다는 통계만 보더라도, 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물과 공기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대표적인 물질이지만, 모든 사람이 비교적 동등하게 얻는 공기와는 다르게 물의 경우 가진자와 못가진 자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물질입니다. 여전히 10억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국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싸게 공급한다는 공중보건의 개념은, 그 사회가 얼마나 진보적이며, 얼마나 발달된 곳인지를 나타내주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현대 상수도 기술의 근원은 의외로 그 역사가 대단히 오랜 옛날부터 개량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로마의 경우 BC 312년에 18km의 수로를 건설하여 급수를 개시했고, AD 305년까지 578km에 달하는 수로가 건설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주 안압지에서 7~10세기경 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된 토기로 만들어진 상하수도관이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과 유사한 수도운영체계가 가장 먼저 발달한 나라는 영국으로, 1619년에 관부설에 의한 일반급수가 행해졌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오염되기 시작한 수질자원으로 인해 상하수도 시설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1858년 대악취 사건을 계기로 근대적 하수처리시설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1873년엔 연속급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발달된 상하수도 시설이 합리적인 건설비와 유지 관리비를 투자하여 소비자에게 질적으로 안전하고 양적으로 충분한 물을 공급함으로써 근대사회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합니다.

19~20세기에 깨끗한 물의 보급은 공공보건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수돗물의 안전성이 의심을 받는 시대가 왔습니다. 도시의 인구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도시의 배수 시설들이 감당할 수 없게 되었고, 수질 체계를 유지하고 개선하는데 필요한 투자는 줄어들었습니다. 종전의 수질 관리 체계를 감독, 규제하고 평가하며, 신기술에 입각해서 표준을 강화할 책임이 있는 기관들의 미흡함 또한 수돗물의 신뢰에 타격을 입힙니다. 이러한 수돗물 불신 현상에 힘입어 생수산업이 대두했습니다. 생수업계는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던 수돗물에 대한 불안감을 성공적으로 자극시켰고, 생수를 깨끗한 이미지로 포장함으로써 생수시장의 전성기를 마련합니다. 생수 판매량은 1976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2배씩 증가해 한해에 90억 갤런에 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수돗물을 버리고 생수를 선택한 소비자들의 선택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았습니다. 생수는 수돗물보다 더 값싸지도, 깨끗하지도,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생수는 수돗물보다 안전하지 않습니다. 생수와 수돗물을 관리, 감독하는 법은 차이가 있는데, 생수품질관리 규정이 수돗물에 비해 더 관대합니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더 관대한 기준으로 장사할 수 있다면, 수돗물과 같은 수준의 안전성을 추구할 경제적 인센티브가 없는 셈입니다. 대장균 검사의 경우, 수돗물은 급수 대상자가 5만명 이하의 경우 월 60회, 250만 이상이면 월 420회를 검사해야 합니다. 그에 반해 생수는 월4회만 검사하면 됩니다. 더군다나 대장균이 확인되더라도 박테리아 과다 함유 레이블만 부착하면 시중에서 판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알리거나 리콜할 의무도 없습니다. 때문에 생수의 품질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1990년엔 유명한 생수 회사 페리에에서 벤젠이 발견되었고, 1994년 텍사스의 생수에선 귀뚜라미가 발견되었고, 버지니아에선 곰팡이가 발견되었고, 최근의 사례만 봐도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생수에서 성조숙증, 자궁내막증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인공 에스트로겐이 기준치 이상 검출되는 등 생수의 품질 문제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에게 생수를 마시는 이유를 물어보면, 가장 많은 답변은 수돗물의 맛은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답변은 사람들이 내세우는 합리적 판단 근거로 받아들일 수 있을 법 하지만, 이 또한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간단한 실험으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바로 블라인드 테스트입니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생수와 수돗물의 맛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많은 생수의 경우 수돗물에서 취수해서 판매하기도 합니다. 한 예로 알래스카 프리미엄 글레이셔라는 생수의 경우 주노 시의 수도배관에서 취수하는 물입니다. 생수 레이블에 써져 있는 'PWS'을 약자로 표시하지 말고 '원수는 수돗물Public Water Source'으로 표기하라고 시민단체들이 압력을 넣기도 했습니다. 또한 제품 레이블 표기 방식도 일반식품의 영양성분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실제로 물맛을 좌우하는 광물질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들이 얻을 수도 없습니다. 물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생수를 이미지와 이름으로 판단합니다.

2005년 5월, ABC의 시사 탐사 프로그램 '20/20'은 뉴욕 시민을 대상으로 생수5종과 수돗물을 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다. 실험 결과, 뉴욕 수돗물을 싫어한다고 한 사람중에는 비싼 생수 대신 수돗물이 좋다고 선택한 경우도 있었다. 사람들의 선호도가 가장 낮은 것은 가장 값비싼 생수였다. 2008년 런던의 물맛 실험에서는 수돗물과 20종이 넘는 생수가 등장했는데, 런던의 수돗물이 3위를 차지했다. 2006년 10월 영국 원즈워스의 물맛 실험에서는 참가자 650명 가운데 80퍼센트가 수돗물과 유명 생수의 맛을 구별하지 못했으며, 그중 3분의 2는 생수보다 수돗물 맛이 좋다고 했다. - p.139 

생수가 기업들의 마케팅과 Pet병의 투명함 등을 통해 깨끗함, 건강함이라는 이미지를 가져오게 되면서, 독특한 부류의 시장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수와 사이비 과학의 만남입니다. 이것은 다른 산업의 사기꾼들보다 더 문제가 되는데,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기꾼들을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데, 신진대사 노폐물을 배출해준다는 물, 고농축 산소가 들어있다는 물, 비타민O가 들어있다는 물, 체중 감량 물, 물의 분자 구조가 바뀌는 마법의 물, 영적인 충만함을 가져다 준다는 카발라 생수 같은 물 뿐만 아니라 진지하게도 육욕과 오만, 탐욕의 죄를 사할 뿐만 아니라 물을 마심으로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성수 판매까지 나타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판매에 마돈나,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같은 유명인까지 가세해 팬들과 소비자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도 '산소수'가 등장하는 등 사이비과학은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한 번 호흡함으로써 생수에 포함된 것보다 많은 산소를 들이마시는 셈이다. 일상적인 호흡만으로도 혈액 속 헤모글로빈은 산소 포화 상태고, 이런 상태에서 산소 물이 최대 운동 역량을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2001년 조지아공과대학의〈스포츠의학 소식지〉편집장 하워드 너트겐 박사는 산소 물을 마심으로서 얻는 효과를 일회용 사치성 트림이라 했다. 이런 물을 마셔서 얻는 효과는 지갑에서 35달러 이상을 뽑아내는 지갑 다이어트라 부르는 게 나을 것이다. - p.160 

고급 레스토랑이나 백화점에 있는 워터바에선 워터 소믈리에가 물 메뉴판을 들고 프리미엄 생수를 권합니다. TV에선 끊임없이 생수야말로 깨끗하며 유일무이한 마실거리라고 소비자를 유혹합니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너도나도 생수를 들고 다니는 바람에 일종의 패션화가 되었습니다. 생수 광고가 팔려는 것은 물이 아닙니다. 젊음, 건강, 아름다움, 낭만, 지위, 이미지를 강조하며 성적 매력과 두려움까지 가세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사태를 관망하고 있으며, 때론 조장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정부가 나서서 수도 민영화에 앞장섰고, 수돗물의 음용률은 1퍼센트까지 추락했습니다. 2009년, 2010년에도 생수 업체 지원 정책을 쏟아내 수질개선부담금의 폐지, 생수 관리에 대한 각종 규제 완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생수의 수질 관리는 해당 업체에서 자체적으로 검사하는 실정입니다. 심지어 아리수를 비롯해 지자체가 생수산업에 뛰어들어 기존의 생수보다 더 싸게 공급하면 서민 정책이라는 얼빠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물을 마신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조건입니다. 깨끗한 물을 마신다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조건입니다. 현재 우리는 물을 공급한다는 부분에서 많은 부분을 민간 기업에 넘겼습니다. 환경부가 하는 일은 생수 업자가 사전에 보고된 일정에 따라 수질 분석을 하는지만 점검할 뿐, 수질의 적합성을 확인하는 데 등한시합니다. 그 결과 2010년에 전체 생수 업체의 20%인 12개 업체가 징계를 받았는데, 대부분 경고에 그쳤고 과징금의 경우 2곳에서 450만원과 1,860만원이 전부였습니다. 소비자들에게 판매된 물이 리콜되었다는 사례도, 얼마나 피해를 받았는지 조사한 사례도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러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선, 수돗물이 좋지 않기 때문에 수돗물을 포기하고 생수를 선택하는 것은, 수돗물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생수가 가져오는 치명적인 유혹들을,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관점으로 뿌리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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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바꿔야 하는 것들 - 정글 대한민국 개조론
조국 지음 / 보아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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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물은 무엇일까요? 이 동물의 사회는 수컷이 지배합니다. 수컷중심의 수직적 서열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컷은 서열을 놓고 격렬한 다툼을 벌이기도 합니다. 폭력을 수반하는 내부의 치열한 권력투쟁을 하며 다른 집단과의 전쟁도 일으킵니다. 암컷과 새끼는 심각한 침해가 발생할 경우 서로 신뢰할 때에만 지도자인 수컷에게 보호를 요청합니다. 교미는 종종 우월한 지위의 상징으로 이용되며 본래 번식 수단으로서의 교미는 집단과 떨어진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동물은 무한경쟁, 권력투쟁, 전쟁, 학살, 남성지배 등의 생물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설명이 의미하는 동물은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침팬지입니다. 하지만 침팬지와 인류는 유전형질에서 1퍼센트 남짓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침팬지의 이러한 특성은, 마치 사람의 생물학적 기원 또한 침팬지와 유사하다는 함의를 던지고 있습니다.

침팬지식 정글의 논리는 우리 사회에서 어느 분야를 가리지 않고 존재합니다. 정치에서는 권력투쟁과 당파적 이익을 우선하며, 많은 정치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자가 실력자 행세를 합니다. 경제에서는 수단 방법 가리던 가리지 않던, 무조건 돈을 벌어야 성공한 사람이 됩니다. 어렸을때부터 입시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친구를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국제중, 특목고는 물론이고 유치원마저 영어유치원이라는 미명 하에 서열화를 강요합니다. 초등학생 사이에도 선후배 문화가 군대식으로 이루어져 거부할 경우 왕따가 되기도 합니다. 2008년에 한국투명성기구가 발표한 청소년 반부패인식지수를 보면 이러한 정글의 논리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10억원을 주면 감옥에서 10년을 살아도 부패를 저지르겠다고 답한 청소년은 전체의 17.7퍼센트로, 2002년에 비해 더 상승했습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부패를 저지르겠다고 한 답변이 여중생과 여고생은 7.6퍼센트, 15.7퍼센트인 반면, 남고생은 24.4퍼센트, 남중생은 22.4퍼센트로 남자가 더 정글의 논리에 순응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콩고의 밀림지대에서 파니스쿠스라는 종명을 가진 영장류가 발견됩니다. 흔히 보노보라고 부르는 이 영장류는, 침팬지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학자들을 매료시켰습니다. 보노보의 경우 암컷끼리의 연대가 매우 강하고, 수컷이 암컷을 지배하지 못하며, 공동체 내에서 부자보다 모자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암컷 중심의 사회입니다. 보노보는 엄격한 수직적 서열을 만들지 않으며 상당히 평등한 문화를 유지합니다. 보노보는 무리 내 병자나 약자를 소외시키거나 구박하지 않고 그들을 보살피며 끌어안습니다. 보노보 무리 내부에서 성은 일방적 지배나 욕망해소의 수단이 아니라 상호적 기쁨과 유대를 위한 놀이입니다. 보노보 무리가 다른 보노보 무리와 만나도 이들은 서로 전쟁을 벌이는 대신 애정표현을 하면서 긴장을 풀고 평화를 유지합니다.

마치 보노보는 남녀평등과 여성연대를 강조하고 여성적인 것의 가치를 중시하는 페미니즘의 정신, 사회와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지향하는 자유주의를 제창한 존 롤스의 정의론, 관용을 제일의 덕목으로 삼는 상시적 소수자의 자유주의를 정립한 주디스 슈클라의 철학, 복지와 참여와 연대를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오랜 전통, 공존과 돌봄과 협력의 경제 패러다임을 제창한 칼 폴라니의 사상, 전쟁이 아니라 연애를 하자라는 1960년대 반전평화운동의 슬로건 등을 이미 실천하는 듯하지 않은가. - p.14 

일반 침팬지가 영장류 중에서도 가장 사납고 난폭하며 잔인한 데 반해, 보노보들은 온순하고 폭력을 꺼리며 공동체 내의 평화를 가장 중시합니다.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보노보 또한 인류와 유전형질에서 비슷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는 인류의 유전자에는 침팬지 뿐만 아니라 보노보의 속성도 들어있음을, 침팬지식 삶의 방식과 보노보의 삶의 방식을 둘 다 가질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기존의 인간 본성 연구에 침팬지가 많이 관찰되면서 인간의 폭력성과 이기심이 많이 부각되었었으나, 이러한 보노보들의 생태가 알려지면서 고전적인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에 기반한 인간 진화 모델에 대한 반론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인류는 두가지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의 세상은 여전히 침팬지가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저자는 우리 자신과 사회 속에 이미 침팬지가 너무 많다고 지적합니다. 우리 자신과 사회 속에 움츠려 있는 보노보를 찾고 키워야 하며, 침팬지의 속성과 세상의 원리를 정확히 직시하는 보노보, 침팬지에 대항해 정당방위로 받아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보노보, 법과 제도와 문화를 구상하고 모색하는 보노보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세계적으로도 침팬지식 자본주의 사회운영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해리 포터》의 저자 조앤 롤링이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마법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속에 우리가 필요한 모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더 나은 것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마법같은 힘의 도움 없이도 변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류의 친척, 침팬지처럼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인류의 또 다른 친척, 보노보처럼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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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 찬가 - 정글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
조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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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물은 무엇일까요? 이 동물의 사회는 수컷이 지배합니다. 수컷중심의 수직적 서열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컷은 서열을 놓고 격렬한 다툼을 벌이기도 합니다. 폭력을 수반하는 내부의 치열한 권력투쟁을 하며 다른 집단과의 전쟁도 일으킵니다. 암컷과 새끼는 심각한 침해가 발생할 경우 서로 신뢰할 때에만 지도자인 수컷에게 보호를 요청합니다. 교미는 종종 우월한 지위의 상징으로 이용되며 본래 번식 수단으로서의 교미는 집단과 떨어진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동물은 무한경쟁, 권력투쟁, 전쟁, 학살, 남성지배 등의 생물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설명이 의미하는 동물은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침팬지입니다. 하지만 침팬지와 인류는 유전형질에서 1퍼센트 남짓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침팬지의 이러한 특성은, 마치 사람의 생물학적 기원 또한 침팬지와 유사하다는 함의를 던지고 있습니다.

침팬지식 정글의 논리는 우리 사회에서 어느 분야를 가리지 않고 존재합니다. 정치에서는 권력투쟁과 당파적 이익을 우선하며, 많은 정치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자가 실력자 행세를 합니다. 경제에서는 수단 방법 가리던 가리지 않던, 무조건 돈을 벌어야 성공한 사람이 됩니다. 어렸을때부터 입시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친구를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국제중, 특목고는 물론이고 유치원마저 영어유치원이라는 미명 하에 서열화를 강요합니다. 초등학생 사이에도 선후배 문화가 군대식으로 이루어져 거부할 경우 왕따가 되기도 합니다. 2008년에 한국투명성기구가 발표한 청소년 반부패인식지수를 보면 이러한 정글의 논리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10억원을 주면 감옥에서 10년을 살아도 부패를 저지르겠다고 답한 청소년은 전체의 17.7퍼센트로, 2002년에 비해 더 상승했습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부패를 저지르겠다고 한 답변이 여중생과 여고생은 7.6퍼센트, 15.7퍼센트인 반면, 남고생은 24.4퍼센트, 남중생은 22.4퍼센트로 남자가 더 정글의 논리에 순응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콩고의 밀림지대에서 파니스쿠스라는 종명을 가진 영장류가 발견됩니다. 흔히 보노보라고 부르는 이 영장류는, 침팬지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학자들을 매료시켰습니다. 보노보의 경우 암컷끼리의 연대가 매우 강하고, 수컷이 암컷을 지배하지 못하며, 공동체 내에서 부자보다 모자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암컷 중심의 사회입니다. 보노보는 엄격한 수직적 서열을 만들지 않으며 상당히 평등한 문화를 유지합니다. 보노보는 무리 내 병자나 약자를 소외시키거나 구박하지 않고 그들을 보살피며 끌어안습니다. 보노보 무리 내부에서 성은 일방적 지배나 욕망해소의 수단이 아니라 상호적 기쁨과 유대를 위한 놀이입니다. 보노보 무리가 다른 보노보 무리와 만나도 이들은 서로 전쟁을 벌이는 대신 애정표현을 하면서 긴장을 풀고 평화를 유지합니다.

마치 보노보는 남녀평등과 여성연대를 강조하고 여성적인 것의 가치를 중시하는 페미니즘의 정신, 사회와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지향하는 자유주의를 제창한 존 롤스의 정의론, 관용을 제일의 덕목으로 삼는 상시적 소수자의 자유주의를 정립한 주디스 슈클라의 철학, 복지와 참여와 연대를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오랜 전통, 공존과 돌봄과 협력의 경제 패러다임을 제창한 칼 폴라니의 사상, 전쟁이 아니라 연애를 하자라는 1960년대 반전평화운동의 슬로건 등을 이미 실천하는 듯하지 않은가. - p.14 

일반 침팬지가 영장류 중에서도 가장 사납고 난폭하며 잔인한 데 반해, 보노보들은 온순하고 폭력을 꺼리며 공동체 내의 평화를 가장 중시합니다.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보노보 또한 인류와 유전형질에서 비슷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는 인류의 유전자에는 침팬지 뿐만 아니라 보노보의 속성도 들어있음을, 침팬지식 삶의 방식과 보노보의 삶의 방식을 둘 다 가질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기존의 인간 본성 연구에 침팬지가 많이 관찰되면서 인간의 폭력성과 이기심이 많이 부각되었었으나, 이러한 보노보들의 생태가 알려지면서 고전적인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에 기반한 인간 진화 모델에 대한 반론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인류는 두가지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의 세상은 여전히 침팬지가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저자는 우리 자신과 사회 속에 이미 침팬지가 너무 많다고 지적합니다. 우리 자신과 사회 속에 움츠려 있는 보노보를 찾고 키워야 하며, 침팬지의 속성과 세상의 원리를 정확히 직시하는 보노보, 침팬지에 대항해 정당방위로 받아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보노보, 법과 제도와 문화를 구상하고 모색하는 보노보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세계적으로도 침팬지식 자본주의 사회운영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해리 포터》의 저자 조앤 롤링이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마법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속에 우리가 필요한 모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더 나은 것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마법같은 힘의 도움 없이도 변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류의 친척, 침팬지처럼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인류의 또 다른 친척, 보노보처럼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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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배신 - 화이트칼라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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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빈곤한 삶을 살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들은 대학에 못 갔기 때문에, 혹은 아이를 일찍 낳아버려서, 혹은 태어났을 때부터 집이 빈곤해서 빈곤의 덫을 탈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빈곤하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을 할 수 없는 빈곤층이 있습니다. 바로 화이트칼라 빈곤입니다. 이들은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실용적인 학문을 배우고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입니다. 성격적으로도 흠 잡을 데 없고, 때론 눈부신 성과를 올리며 흔히 말하는 성공가도를 달리던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렸을때부터 이렇게만 하면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들으며 자랐고, 이를 성공적으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이들은 부모들이 권장하는 이상적인 레일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빈곤층입니다.

화이트칼라가 빈곤층이 된 이유는 단순합니다. 직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화이트칼라 빈곤을 이해하기 위해서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자신의 저서《노동의 배신》에서 저임금 노동자가 됨으로써 워킹푸어를 체험한 것처럼 직접 구직자가 됨으로써 그들의 삶에 다가갑니다. 자신의 결혼 전 이름을 되살리고, 구직자를 위한 모든 형태의 도움을 받고, 직장의 위치나 면접 장소에도 개의치 않고 어떤 일이던 받아들이겠다는 지침을 정합니다. 유일한 요구사항은 구직자로서 의료보험이 제공되며 연봉 5만 달러라는 두가지 조건 뿐이였습니다. 바버라는 세포생물학 박사인데다, NGO경험도 있으며,〈뉴욕 타임스〉나〈타임〉,〈네이션〉등 미국 주요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는 작가라는, 그야말로 누구나 인정할만한 성공적 사회인이였기 때문에 그의 이력을 약간 낮추더라도 회사를 얻는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버라는 흔히 취업을 함에 있어서 유용하다고 판단되는 방법들을 모두 사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취업 네트워킹, 취업 전담 코치, 취업 박람회 등과 같은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구직의 세계에서도 허황된 긍정주의가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였습니다. 코치들은 한결같이 취업을 위해선 과도할 정도로 낙관적이고 쾌활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자기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어떤 것이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이른바 자기계발서적인 조언만을 반복합니다. 또한 해고를 당한 이유는 회사의 잘못된 운영 탓이 아니고 바뀌어야 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바로 '너' 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이는 건전한 경제구조나, 인간 친화적인 기업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것보단 구직자만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으면 된다는 결론으로 귀결되며, 취업을 하고 싶다면 경력을 속이고, 자기 자신을 속여서라도 상품으로서의 구직자 자신을 완성해야 했습니다.

한 사람이 기업이 원하는 이상적인 상품으로 변신하는 방법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구직자들은 근로자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는데, 취업을 위해선 회사가 미처 몰랐던, 회사가 이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옷차림에도 더 신경써야 하고, 목소리도 관리해야 하며, 몸매도 관리해야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의 경우는 너무 아름다운 경우 취업하는데 있어서 장애물로 작용합니다. 존 몰로이는 어깨까지 닿은 머리카락, 지나치게 드러낸 다리, 너무 큰 가슴과 같은 성적 매력은 여성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며 사회생활 경력을 끝장내는 어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유머감각도 탁월하며 누구에게나 호감을 줄 수 있고 상사의 말에 복종하며 전문적인 느낌을 주면서 어디에도 튀지 않는 그런 상품만이 취업의 세계에서 다른 경쟁자들을 누르고 승리한 상품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소개서를 동봉한 이력서는 쓰레기 메일이다. 자기소개서가 없는 이력서는 새장 바닥 깔개로 사용된다. 무작정 보내거나 표준적으로 작성한 이력서는 받은 편지함에서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일부 기업은 거절 응답을 보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잠자코 무시한다. 이력서의 99.2퍼센트는 보지도 않고 버려진다. - 제프리 폭스 

구직의 세계에서 뛰어난 상품들이 즐비함에도 불구하고 취업의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바버라는 마침내 구직자의 세계로 뛰어든 뒤 6개월만에 애플랙이라는 보험회사로부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는 바버라가 생각했던 회사와 너무나 달랐습니다. 회사에서 사용해야 하는 노트북도 구직자가 부담해야 하며, 각종 자격증과 영업 기법 훈련도 자비로 내야 했습니다. 심지어 의료보험 상품을 파는 회사에서 의료보험도 지원해 주지 않았습니다. 바버라는 결국 1년에 가까운 구직 활동을 했지만 회사를 찾지 못했습니다. 바버라가 구직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도 연락해봤지만 어느 누구도 취업이 되지 못했습니다. 비싼 돈을 들여가며 코칭을 받고, 나이는 줄이고 경력은 늘리는 등의 위조를 하고, 연줄을 만들려고 온갖 행사에 참석했고, 화장법에 성격까지 바꿨지만, 일자리는 없었습니다. 결국 많은 구직자들이 취업을 포기하고 선택하는 것은, 부동산 중개업, 프랜차이즈 사업, 수수료에 의존하는 영업직과 같은 것들입니다.

기업이 직원들에게 안정적이면서도 성장을 장려하는 완벽한 환경을 제공해 줄 수는 없습니다. 사업은 실패하고, 소비자의 취향은 변하고, 기술은 저 혼자 앞서 나갑니다. 다시 말해 치즈는 언제나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업이 적어도 일자리만은 제공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세금 감면, 공공 보조금, 규제 완화 등 기업이 받는 혜택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법이라는 이름으로 기업들에게 혜택을 제공해 주며, 관료들은 기업을 애지중지하는 게 국민을 위해서라고 늘 말합니다. 하지만 기업이 흑자를 내도, 일자리는 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기업의 운영 경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가 비용 절감의 일차 대상이 됩니다. 또 CEO가 선호하는 인수 합병의 결과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면 필연적으로 정리 해고가 따릅니다. 주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다운사이징도 일상적으로 행해집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의 일자리를 없앰으로써 고위 경영자들이 수입을 늘릴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실제로 대량의 정리 해고를 단행한 CEO가 그렇지 않은 CEO보다 더 많은 보수를 챙겼습니다. 최근 몇 년간 CEO들이 막대한 보수를 챙기는 데 일등 공신이 된 것은 아웃소싱인데, 대부분의 서비스직을 아웃소싱한 50개 미국 기업CEO의 보수 인상폭은 다른 회사에 비해 5배나 높았습니다. 기업 고위직 운영진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는, 일자리를 줄이고 남은 사람들을 더 열심히 일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어느 컴퓨터 과학자가 상당한 실적을 올린 뒤 월급을 올려달라고 말하자 상사는 말했다. "왜 그런 걸 바라지? 월급을 많이 받는다는 건 등에 과녁을 새기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 p.301 

합리적인 기업이라면 당연히 가장 유능한 사람을 채용하고 승진시켜야 합니다. 가장 똑똑하고, 가장 경험이 많고, 가장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을 붙잡아야 합니다. 합리적 기업은 직원들의 창의성, 혁신, 비판적 사고를 장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화이트칼라에게 이런 능력은 경력을 끝장낼 자해 무기이기도 합니다. 훌륭한 성과를 거두어 월급 인상이라는 보상을 받은 사람은 비용 절감 조치로 제거될 위험에 노출됩니다. 바버라가 구직 도중 만난 한 구직자의 일화는 그러한 부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6개월 걸릴 일을 2개월만에 끝내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줬고 임금인상을 받았지만,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높은 임금을 이유로 해고당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 해야 할 행동은 자명합니다. 능력이 있더라도 일부러 일을 질질 끌거나, 유능한 능력을 바탕으로 남들보다 열심히 일해서 회사에 높은 이익을 남겨 주되, 승진이나 임금인상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저자는 현재 기업 문화를 바라보며 다윈 식의 이런 생존경쟁에 한계는 있다고 말합니다. 제거된 사람들이 맡았던 일을 생존자들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시점이 올 것이며, 이는 기업에 심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개인을 고용하고 해고하는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미시적 수준의 광기 이면에 거시적 수준의 비합리성이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희망의 배신》이 출간되고 나서 많은 호응이 이루어졌고 실재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미국의 화이트칼라들을 위한 조합 조직이 성립되기도 했습니다. 저자의 지적은 우리 사회에도 여실히 적용되고 있습니다. 화이트칼라는 더 이상 자본주의 사회에서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며, 화이트칼라라는 희망에 기댔다가는 배신당할 것이라는 교훈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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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콤플렉스
콜레트 다울링 지음, 이호민 옮김 / 나라원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TV프로그램〈스펀지 ZERO〉에서 작년에 방영한 내용 중에 흥미로운 실험이 있었습니다. 이 실험은 '여자가 실수로 진열된 상품을 훼손했을 때 여자는 남자가 어떻게 해주길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50명의 여성들에게 던졌습니다. 이 실험에서 여자들은 '여자에게 잘못을 지적하고 스스로 해결하게 한다'는 답변을 최악의 판단으로 꼽았습니다. 여성들이 원했던 것은 남자의 보호였습니다. 이 실험에서 나타나는 심리상태는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소해보일지 몰라도, 결국 더 나아가 여성들로 하여금 남성에게 복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저자는 타인의 보살핌을 받고자 하는 심리적 의존상태, 억압된 태도와 불안이 뒤엉켜 여성들이 그들의 의욕과 창의성을 한껏 발휘하지 못하는 일종의 미계발 상태에 묶여버린 심리상태를 가리쳐 '신데렐라 컴플렉스'라고 명명합니다.

이런 심리상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의존적인 자세는 여성에게만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해당되는 극히 당연한 현상에 불과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부터 지나칠 정도로 의존성을 길러나가도록 강요됩니다. 남성의 자립심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훈련을 통해서 얻어집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남성들이 자립심을 배우는 것과는 정반대로, 언젠가는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체계적으로 주입받습니다. 여아는 남아보다 성장도 빠르고 더 튼튼함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여아를 그저 약하게만 보려고 합니다. 1976년의 연구조사 결과를 보면 부모들은 여아와 남아의 울음 소리마저 그 의미를 달리 해석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부모들은 여아의 울음소리는 두려움으로 해석하는 반면, 남아의 울음소리는 화남으로 해석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어린이들이 자립심을 키워나갈 수 있는지의 여부는 만 6세 이전에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학자들은 여자 아이들이 정서발달상의 극히 중요한 고비를 극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은 이들에게 매사를 너무 안일하게 해주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여자 어린이들은 과잉보호와 지나친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계속 도움을 요구하는 것이 잘하는 일이라고 가르침을 받습니다.

여성은 이러해야 한다 저러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와 부모들의 과잉보호 속에서 여자들은 그러한 믿음을 갖도록 가르침을 받으면서 키워집니다. 교육 또한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는데,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 캐롤 재클린은 교사들이 남자 어린이들에게는 공부를 잘한다는 칭찬과 함께 분필을 던지고 시끄럽게 하는 나쁜 행실을 야단치지만, 여자 어린이에게는 공부와는 관련이 없는 것들, 가령 외양이 깨끗하고 단정하다든가, 오늘은 예쁘게 보인다던가 하는 행실에 대해서만 칭찬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미시건 대학의 심리학자 두반 교수는 소녀들이 자립에의 욕구를 나타내지 않고, 권위에 맞서 저항하는 데도 관심을 갖지 않으며, 또한 독자적인 믿음이나 자율적인 규율을 확립하고 지켜나가겠다는 그들의 권리를 내세우지 않고 있음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수동성과 어른들에 대한 의존적 경향이 성년이 될때까지 계속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즉 여자들은 성장해가면서 자유를 누릴만한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인 타인에의 종속감에만 길들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학생들은 머리가 우수한 경우에도 비슷한 수준의 남학생에 비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취득한 박사학위의 활용에 비교적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편이 그들을 부양할 수 있기 때문에 취업이냐, 가정에 안주하느냐 라는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종의 스트레스로부터의 도피에 해당합니다. 여성들은 두려움에 부딪치면서 이를 극복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며 가정에 안주하는 것을, 일명 '취집'을 꿈꾸기도 합니다. 가정에 안주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임신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연애관계에 있어서도 여성들은 소극적이며 남자에게 의존하고자 하는 심리를 여실히 보여 줍니다. 데이트를 할 때 여성을 차도에서 보호하며 걷거나, 데이트비용을 남성에게 모두 내게 하는 행위 등을 매너라고 인식하기도 합니다. 이는 엄연히 심리적 의존증이며, 어렸을 때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교육받아온 결과입니다.

그녀가 동일시하려는 대상은 아버지였다. 그렇다고 그녀 자신이 아버지처럼 강하고 활동적이며 모든 것을 베풀어주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남자'가 그러한 모습으로 등장해야 할 일이었다. 애인이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자 그녀는 과절과 분노를 느꼈다. - p.96 

흔히 남성이 사회생활을 하고 여성은 집안일을 하는 구도의 원인 중 하나로, 남성이 더 높은 급여를 받는다는 것이 있습니다. 실제로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형편없는 급료를 받는 직종에 근무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반숙련 직종에 근무하는 여성들이 전체 여성근로자의 80퍼센트에 달한다고 말하며, 이는 여성근로자들이 소득분포의 최하위 단계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음을 시사합니다. 때문에 남성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직장에서 남녀차별이 이루어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쥬디드 바드위크는 경제영역에서 남녀차별이 자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런 이유보다는 전문직종에 장기간 종사하려 하지 않는 여성들의 태도 때문에 여성은 남성보다 생산성이 낮다고 말합니다. 또한 사회에 진출한 많은 여성들이 자신감을 다져 나가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데,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과소평가하며 남성들이 추진하는 일들을 하기 꺼려합니다. 아마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발전적인 삶을 봉쇄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가정주부라는 매력적인 대안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성들의 이러한 의존성은 일종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입니다. 신데렐라 컴플렉스를 가진 여성은 삶의 도피처로 선택한 결혼생활에서도 자유로운 여성들에 비해 만족한 생활이 이루어지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쉽게 남성의 권위에 대해 복종하며, 남성들은 이러한 행동을 싫어합니다. 때문에 남성들은 점차 결혼생활에서 아내를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이며, 심한 경우엔 이혼에 다다르기도 합니다. 의존적인 여성들은 자녀에게도 악영향을 미치는데, 이들은 자녀들의 자립적인 성장과 개체성을 방해하는 경향이 높으며 또 다른 신데렐라 컴플렉스를 지닌 여자아이를 키우는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여성들은 남편과 이혼하거나 사별하면 그날부터 허탈함과 상실감에 빠지게 되는데, 이 상실감은 단순히 남편을 잃었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느닷없이 냉엄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버려진 주부'라는 새로운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생계를 꾸려나갈 뚜렷한 기술이나 재능이 없는 미망인이나 이혼당한 여성들입니다. 지금껏 신데렐라의 환상 속에서 자신을 부양하고 보호해줄 남자들이 언제나 주변에 있는 것이라 믿으며 인생을 살아왔지만, 이들의 종착지는 여성 구호센터였습니다.

저자는 자유와 독립은 남자들로부터 억지로 쟁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여성들이 받아들여야 하며, 자신의 내부로부터 고통스럽게 개발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지금까지 안전의 도구로 사용해온 의존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더 고통스러운 길을 걷는 것은 아니며,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길이 그저 남성과 동등해졌을 뿐입니다. 자신을 믿고 있는 여성은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헛된 망상을 갖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으며, 자신의 능력이 미치는 일을 앞에 두고 포기하거나 망설이지 않습니다. 자유로운 여성은 현실적이며 자기 자신을 깊이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데에도 자유로운, 그야말로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의존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남으로서, 자유로의 도약을 성취한 여성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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