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 그 치명적 유혹
피터 H. 글렉 지음, 환경운동연합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공중보건의 역사 중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를 고른다면, 그것은 깨끗한 물의 보급일 것입니다. 청결한 물의 공급과 하수 체계는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질병과 죽음의 위협에서 구해 냈습니다. 하버드 의대 교수인 제임스 길리건은 근대사회에서 수많은 병을 물리친 가장 효과적인 의학적 업적은 의사, 병원, 혹은 약의 역할이 아니며, 이 상하수도 체계야 말로 인류의 역사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의학적 업적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더러운 물이 주범인 설사로 인한 사망자는, 전쟁과 내전으로 죽는 사망자의 6배에 달한다는 통계만 보더라도, 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물과 공기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대표적인 물질이지만, 모든 사람이 비교적 동등하게 얻는 공기와는 다르게 물의 경우 가진자와 못가진 자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물질입니다. 여전히 10억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국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싸게 공급한다는 공중보건의 개념은, 그 사회가 얼마나 진보적이며, 얼마나 발달된 곳인지를 나타내주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현대 상수도 기술의 근원은 의외로 그 역사가 대단히 오랜 옛날부터 개량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로마의 경우 BC 312년에 18km의 수로를 건설하여 급수를 개시했고, AD 305년까지 578km에 달하는 수로가 건설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주 안압지에서 7~10세기경 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된 토기로 만들어진 상하수도관이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과 유사한 수도운영체계가 가장 먼저 발달한 나라는 영국으로, 1619년에 관부설에 의한 일반급수가 행해졌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오염되기 시작한 수질자원으로 인해 상하수도 시설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1858년 대악취 사건을 계기로 근대적 하수처리시설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1873년엔 연속급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발달된 상하수도 시설이 합리적인 건설비와 유지 관리비를 투자하여 소비자에게 질적으로 안전하고 양적으로 충분한 물을 공급함으로써 근대사회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합니다.

19~20세기에 깨끗한 물의 보급은 공공보건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수돗물의 안전성이 의심을 받는 시대가 왔습니다. 도시의 인구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도시의 배수 시설들이 감당할 수 없게 되었고, 수질 체계를 유지하고 개선하는데 필요한 투자는 줄어들었습니다. 종전의 수질 관리 체계를 감독, 규제하고 평가하며, 신기술에 입각해서 표준을 강화할 책임이 있는 기관들의 미흡함 또한 수돗물의 신뢰에 타격을 입힙니다. 이러한 수돗물 불신 현상에 힘입어 생수산업이 대두했습니다. 생수업계는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던 수돗물에 대한 불안감을 성공적으로 자극시켰고, 생수를 깨끗한 이미지로 포장함으로써 생수시장의 전성기를 마련합니다. 생수 판매량은 1976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2배씩 증가해 한해에 90억 갤런에 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수돗물을 버리고 생수를 선택한 소비자들의 선택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았습니다. 생수는 수돗물보다 더 값싸지도, 깨끗하지도,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생수는 수돗물보다 안전하지 않습니다. 생수와 수돗물을 관리, 감독하는 법은 차이가 있는데, 생수품질관리 규정이 수돗물에 비해 더 관대합니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더 관대한 기준으로 장사할 수 있다면, 수돗물과 같은 수준의 안전성을 추구할 경제적 인센티브가 없는 셈입니다. 대장균 검사의 경우, 수돗물은 급수 대상자가 5만명 이하의 경우 월 60회, 250만 이상이면 월 420회를 검사해야 합니다. 그에 반해 생수는 월4회만 검사하면 됩니다. 더군다나 대장균이 확인되더라도 박테리아 과다 함유 레이블만 부착하면 시중에서 판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알리거나 리콜할 의무도 없습니다. 때문에 생수의 품질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1990년엔 유명한 생수 회사 페리에에서 벤젠이 발견되었고, 1994년 텍사스의 생수에선 귀뚜라미가 발견되었고, 버지니아에선 곰팡이가 발견되었고, 최근의 사례만 봐도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생수에서 성조숙증, 자궁내막증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인공 에스트로겐이 기준치 이상 검출되는 등 생수의 품질 문제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에게 생수를 마시는 이유를 물어보면, 가장 많은 답변은 수돗물의 맛은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답변은 사람들이 내세우는 합리적 판단 근거로 받아들일 수 있을 법 하지만, 이 또한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간단한 실험으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바로 블라인드 테스트입니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생수와 수돗물의 맛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많은 생수의 경우 수돗물에서 취수해서 판매하기도 합니다. 한 예로 알래스카 프리미엄 글레이셔라는 생수의 경우 주노 시의 수도배관에서 취수하는 물입니다. 생수 레이블에 써져 있는 'PWS'을 약자로 표시하지 말고 '원수는 수돗물Public Water Source'으로 표기하라고 시민단체들이 압력을 넣기도 했습니다. 또한 제품 레이블 표기 방식도 일반식품의 영양성분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실제로 물맛을 좌우하는 광물질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들이 얻을 수도 없습니다. 물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생수를 이미지와 이름으로 판단합니다.

2005년 5월, ABC의 시사 탐사 프로그램 '20/20'은 뉴욕 시민을 대상으로 생수5종과 수돗물을 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다. 실험 결과, 뉴욕 수돗물을 싫어한다고 한 사람중에는 비싼 생수 대신 수돗물이 좋다고 선택한 경우도 있었다. 사람들의 선호도가 가장 낮은 것은 가장 값비싼 생수였다. 2008년 런던의 물맛 실험에서는 수돗물과 20종이 넘는 생수가 등장했는데, 런던의 수돗물이 3위를 차지했다. 2006년 10월 영국 원즈워스의 물맛 실험에서는 참가자 650명 가운데 80퍼센트가 수돗물과 유명 생수의 맛을 구별하지 못했으며, 그중 3분의 2는 생수보다 수돗물 맛이 좋다고 했다. - p.139 

생수가 기업들의 마케팅과 Pet병의 투명함 등을 통해 깨끗함, 건강함이라는 이미지를 가져오게 되면서, 독특한 부류의 시장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수와 사이비 과학의 만남입니다. 이것은 다른 산업의 사기꾼들보다 더 문제가 되는데,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기꾼들을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데, 신진대사 노폐물을 배출해준다는 물, 고농축 산소가 들어있다는 물, 비타민O가 들어있다는 물, 체중 감량 물, 물의 분자 구조가 바뀌는 마법의 물, 영적인 충만함을 가져다 준다는 카발라 생수 같은 물 뿐만 아니라 진지하게도 육욕과 오만, 탐욕의 죄를 사할 뿐만 아니라 물을 마심으로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성수 판매까지 나타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판매에 마돈나,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같은 유명인까지 가세해 팬들과 소비자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도 '산소수'가 등장하는 등 사이비과학은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한 번 호흡함으로써 생수에 포함된 것보다 많은 산소를 들이마시는 셈이다. 일상적인 호흡만으로도 혈액 속 헤모글로빈은 산소 포화 상태고, 이런 상태에서 산소 물이 최대 운동 역량을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2001년 조지아공과대학의〈스포츠의학 소식지〉편집장 하워드 너트겐 박사는 산소 물을 마심으로서 얻는 효과를 일회용 사치성 트림이라 했다. 이런 물을 마셔서 얻는 효과는 지갑에서 35달러 이상을 뽑아내는 지갑 다이어트라 부르는 게 나을 것이다. - p.160 

고급 레스토랑이나 백화점에 있는 워터바에선 워터 소믈리에가 물 메뉴판을 들고 프리미엄 생수를 권합니다. TV에선 끊임없이 생수야말로 깨끗하며 유일무이한 마실거리라고 소비자를 유혹합니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너도나도 생수를 들고 다니는 바람에 일종의 패션화가 되었습니다. 생수 광고가 팔려는 것은 물이 아닙니다. 젊음, 건강, 아름다움, 낭만, 지위, 이미지를 강조하며 성적 매력과 두려움까지 가세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사태를 관망하고 있으며, 때론 조장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정부가 나서서 수도 민영화에 앞장섰고, 수돗물의 음용률은 1퍼센트까지 추락했습니다. 2009년, 2010년에도 생수 업체 지원 정책을 쏟아내 수질개선부담금의 폐지, 생수 관리에 대한 각종 규제 완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생수의 수질 관리는 해당 업체에서 자체적으로 검사하는 실정입니다. 심지어 아리수를 비롯해 지자체가 생수산업에 뛰어들어 기존의 생수보다 더 싸게 공급하면 서민 정책이라는 얼빠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물을 마신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조건입니다. 깨끗한 물을 마신다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조건입니다. 현재 우리는 물을 공급한다는 부분에서 많은 부분을 민간 기업에 넘겼습니다. 환경부가 하는 일은 생수 업자가 사전에 보고된 일정에 따라 수질 분석을 하는지만 점검할 뿐, 수질의 적합성을 확인하는 데 등한시합니다. 그 결과 2010년에 전체 생수 업체의 20%인 12개 업체가 징계를 받았는데, 대부분 경고에 그쳤고 과징금의 경우 2곳에서 450만원과 1,860만원이 전부였습니다. 소비자들에게 판매된 물이 리콜되었다는 사례도, 얼마나 피해를 받았는지 조사한 사례도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러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선, 수돗물이 좋지 않기 때문에 수돗물을 포기하고 생수를 선택하는 것은, 수돗물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생수가 가져오는 치명적인 유혹들을,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관점으로 뿌리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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