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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콤플렉스
콜레트 다울링 지음, 이호민 옮김 / 나라원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TV프로그램〈스펀지 ZERO〉에서 작년에 방영한 내용 중에 흥미로운 실험이 있었습니다. 이 실험은 '여자가 실수로 진열된 상품을 훼손했을 때 여자는 남자가 어떻게 해주길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50명의 여성들에게 던졌습니다. 이 실험에서 여자들은 '여자에게 잘못을 지적하고 스스로 해결하게 한다'는 답변을 최악의 판단으로 꼽았습니다. 여성들이 원했던 것은 남자의 보호였습니다. 이 실험에서 나타나는 심리상태는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소해보일지 몰라도, 결국 더 나아가 여성들로 하여금 남성에게 복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저자는 타인의 보살핌을 받고자 하는 심리적 의존상태, 억압된 태도와 불안이 뒤엉켜 여성들이 그들의 의욕과 창의성을 한껏 발휘하지 못하는 일종의 미계발 상태에 묶여버린 심리상태를 가리쳐 '신데렐라 컴플렉스'라고 명명합니다.
이런 심리상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의존적인 자세는 여성에게만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해당되는 극히 당연한 현상에 불과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부터 지나칠 정도로 의존성을 길러나가도록 강요됩니다. 남성의 자립심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훈련을 통해서 얻어집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남성들이 자립심을 배우는 것과는 정반대로, 언젠가는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체계적으로 주입받습니다. 여아는 남아보다 성장도 빠르고 더 튼튼함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여아를 그저 약하게만 보려고 합니다. 1976년의 연구조사 결과를 보면 부모들은 여아와 남아의 울음 소리마저 그 의미를 달리 해석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부모들은 여아의 울음소리는 두려움으로 해석하는 반면, 남아의 울음소리는 화남으로 해석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어린이들이 자립심을 키워나갈 수 있는지의 여부는 만 6세 이전에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학자들은 여자 아이들이 정서발달상의 극히 중요한 고비를 극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은 이들에게 매사를 너무 안일하게 해주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여자 어린이들은 과잉보호와 지나친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계속 도움을 요구하는 것이 잘하는 일이라고 가르침을 받습니다.
여성은 이러해야 한다 저러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와 부모들의 과잉보호 속에서 여자들은 그러한 믿음을 갖도록 가르침을 받으면서 키워집니다. 교육 또한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는데,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 캐롤 재클린은 교사들이 남자 어린이들에게는 공부를 잘한다는 칭찬과 함께 분필을 던지고 시끄럽게 하는 나쁜 행실을 야단치지만, 여자 어린이에게는 공부와는 관련이 없는 것들, 가령 외양이 깨끗하고 단정하다든가, 오늘은 예쁘게 보인다던가 하는 행실에 대해서만 칭찬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미시건 대학의 심리학자 두반 교수는 소녀들이 자립에의 욕구를 나타내지 않고, 권위에 맞서 저항하는 데도 관심을 갖지 않으며, 또한 독자적인 믿음이나 자율적인 규율을 확립하고 지켜나가겠다는 그들의 권리를 내세우지 않고 있음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수동성과 어른들에 대한 의존적 경향이 성년이 될때까지 계속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즉 여자들은 성장해가면서 자유를 누릴만한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인 타인에의 종속감에만 길들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학생들은 머리가 우수한 경우에도 비슷한 수준의 남학생에 비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취득한 박사학위의 활용에 비교적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편이 그들을 부양할 수 있기 때문에 취업이냐, 가정에 안주하느냐 라는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종의 스트레스로부터의 도피에 해당합니다. 여성들은 두려움에 부딪치면서 이를 극복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며 가정에 안주하는 것을, 일명 '취집'을 꿈꾸기도 합니다. 가정에 안주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임신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연애관계에 있어서도 여성들은 소극적이며 남자에게 의존하고자 하는 심리를 여실히 보여 줍니다. 데이트를 할 때 여성을 차도에서 보호하며 걷거나, 데이트비용을 남성에게 모두 내게 하는 행위 등을 매너라고 인식하기도 합니다. 이는 엄연히 심리적 의존증이며, 어렸을 때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교육받아온 결과입니다.
그녀가 동일시하려는 대상은 아버지였다. 그렇다고 그녀 자신이 아버지처럼 강하고 활동적이며 모든 것을 베풀어주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남자'가 그러한 모습으로 등장해야 할 일이었다. 애인이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자 그녀는 과절과 분노를 느꼈다. - p.96
흔히 남성이 사회생활을 하고 여성은 집안일을 하는 구도의 원인 중 하나로, 남성이 더 높은 급여를 받는다는 것이 있습니다. 실제로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형편없는 급료를 받는 직종에 근무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반숙련 직종에 근무하는 여성들이 전체 여성근로자의 80퍼센트에 달한다고 말하며, 이는 여성근로자들이 소득분포의 최하위 단계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음을 시사합니다. 때문에 남성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직장에서 남녀차별이 이루어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쥬디드 바드위크는 경제영역에서 남녀차별이 자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런 이유보다는 전문직종에 장기간 종사하려 하지 않는 여성들의 태도 때문에 여성은 남성보다 생산성이 낮다고 말합니다. 또한 사회에 진출한 많은 여성들이 자신감을 다져 나가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데,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과소평가하며 남성들이 추진하는 일들을 하기 꺼려합니다. 아마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발전적인 삶을 봉쇄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가정주부라는 매력적인 대안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성들의 이러한 의존성은 일종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입니다. 신데렐라 컴플렉스를 가진 여성은 삶의 도피처로 선택한 결혼생활에서도 자유로운 여성들에 비해 만족한 생활이 이루어지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쉽게 남성의 권위에 대해 복종하며, 남성들은 이러한 행동을 싫어합니다. 때문에 남성들은 점차 결혼생활에서 아내를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이며, 심한 경우엔 이혼에 다다르기도 합니다. 의존적인 여성들은 자녀에게도 악영향을 미치는데, 이들은 자녀들의 자립적인 성장과 개체성을 방해하는 경향이 높으며 또 다른 신데렐라 컴플렉스를 지닌 여자아이를 키우는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여성들은 남편과 이혼하거나 사별하면 그날부터 허탈함과 상실감에 빠지게 되는데, 이 상실감은 단순히 남편을 잃었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느닷없이 냉엄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버려진 주부'라는 새로운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생계를 꾸려나갈 뚜렷한 기술이나 재능이 없는 미망인이나 이혼당한 여성들입니다. 지금껏 신데렐라의 환상 속에서 자신을 부양하고 보호해줄 남자들이 언제나 주변에 있는 것이라 믿으며 인생을 살아왔지만, 이들의 종착지는 여성 구호센터였습니다.
저자는 자유와 독립은 남자들로부터 억지로 쟁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여성들이 받아들여야 하며, 자신의 내부로부터 고통스럽게 개발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지금까지 안전의 도구로 사용해온 의존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더 고통스러운 길을 걷는 것은 아니며,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길이 그저 남성과 동등해졌을 뿐입니다. 자신을 믿고 있는 여성은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헛된 망상을 갖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으며, 자신의 능력이 미치는 일을 앞에 두고 포기하거나 망설이지 않습니다. 자유로운 여성은 현실적이며 자기 자신을 깊이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데에도 자유로운, 그야말로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의존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남으로서, 자유로의 도약을 성취한 여성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