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 찬가 - 정글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
조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동물은 무엇일까요? 이 동물의 사회는 수컷이 지배합니다. 수컷중심의 수직적 서열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컷은 서열을 놓고 격렬한 다툼을 벌이기도 합니다. 폭력을 수반하는 내부의 치열한 권력투쟁을 하며 다른 집단과의 전쟁도 일으킵니다. 암컷과 새끼는 심각한 침해가 발생할 경우 서로 신뢰할 때에만 지도자인 수컷에게 보호를 요청합니다. 교미는 종종 우월한 지위의 상징으로 이용되며 본래 번식 수단으로서의 교미는 집단과 떨어진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동물은 무한경쟁, 권력투쟁, 전쟁, 학살, 남성지배 등의 생물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설명이 의미하는 동물은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침팬지입니다. 하지만 침팬지와 인류는 유전형질에서 1퍼센트 남짓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침팬지의 이러한 특성은, 마치 사람의 생물학적 기원 또한 침팬지와 유사하다는 함의를 던지고 있습니다.

침팬지식 정글의 논리는 우리 사회에서 어느 분야를 가리지 않고 존재합니다. 정치에서는 권력투쟁과 당파적 이익을 우선하며, 많은 정치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자가 실력자 행세를 합니다. 경제에서는 수단 방법 가리던 가리지 않던, 무조건 돈을 벌어야 성공한 사람이 됩니다. 어렸을때부터 입시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친구를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국제중, 특목고는 물론이고 유치원마저 영어유치원이라는 미명 하에 서열화를 강요합니다. 초등학생 사이에도 선후배 문화가 군대식으로 이루어져 거부할 경우 왕따가 되기도 합니다. 2008년에 한국투명성기구가 발표한 청소년 반부패인식지수를 보면 이러한 정글의 논리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10억원을 주면 감옥에서 10년을 살아도 부패를 저지르겠다고 답한 청소년은 전체의 17.7퍼센트로, 2002년에 비해 더 상승했습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부패를 저지르겠다고 한 답변이 여중생과 여고생은 7.6퍼센트, 15.7퍼센트인 반면, 남고생은 24.4퍼센트, 남중생은 22.4퍼센트로 남자가 더 정글의 논리에 순응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콩고의 밀림지대에서 파니스쿠스라는 종명을 가진 영장류가 발견됩니다. 흔히 보노보라고 부르는 이 영장류는, 침팬지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학자들을 매료시켰습니다. 보노보의 경우 암컷끼리의 연대가 매우 강하고, 수컷이 암컷을 지배하지 못하며, 공동체 내에서 부자보다 모자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암컷 중심의 사회입니다. 보노보는 엄격한 수직적 서열을 만들지 않으며 상당히 평등한 문화를 유지합니다. 보노보는 무리 내 병자나 약자를 소외시키거나 구박하지 않고 그들을 보살피며 끌어안습니다. 보노보 무리 내부에서 성은 일방적 지배나 욕망해소의 수단이 아니라 상호적 기쁨과 유대를 위한 놀이입니다. 보노보 무리가 다른 보노보 무리와 만나도 이들은 서로 전쟁을 벌이는 대신 애정표현을 하면서 긴장을 풀고 평화를 유지합니다.

마치 보노보는 남녀평등과 여성연대를 강조하고 여성적인 것의 가치를 중시하는 페미니즘의 정신, 사회와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지향하는 자유주의를 제창한 존 롤스의 정의론, 관용을 제일의 덕목으로 삼는 상시적 소수자의 자유주의를 정립한 주디스 슈클라의 철학, 복지와 참여와 연대를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오랜 전통, 공존과 돌봄과 협력의 경제 패러다임을 제창한 칼 폴라니의 사상, 전쟁이 아니라 연애를 하자라는 1960년대 반전평화운동의 슬로건 등을 이미 실천하는 듯하지 않은가. - p.14 

일반 침팬지가 영장류 중에서도 가장 사납고 난폭하며 잔인한 데 반해, 보노보들은 온순하고 폭력을 꺼리며 공동체 내의 평화를 가장 중시합니다.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보노보 또한 인류와 유전형질에서 비슷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는 인류의 유전자에는 침팬지 뿐만 아니라 보노보의 속성도 들어있음을, 침팬지식 삶의 방식과 보노보의 삶의 방식을 둘 다 가질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기존의 인간 본성 연구에 침팬지가 많이 관찰되면서 인간의 폭력성과 이기심이 많이 부각되었었으나, 이러한 보노보들의 생태가 알려지면서 고전적인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에 기반한 인간 진화 모델에 대한 반론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인류는 두가지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의 세상은 여전히 침팬지가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저자는 우리 자신과 사회 속에 이미 침팬지가 너무 많다고 지적합니다. 우리 자신과 사회 속에 움츠려 있는 보노보를 찾고 키워야 하며, 침팬지의 속성과 세상의 원리를 정확히 직시하는 보노보, 침팬지에 대항해 정당방위로 받아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보노보, 법과 제도와 문화를 구상하고 모색하는 보노보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세계적으로도 침팬지식 자본주의 사회운영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해리 포터》의 저자 조앤 롤링이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마법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속에 우리가 필요한 모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더 나은 것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마법같은 힘의 도움 없이도 변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류의 친척, 침팬지처럼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인류의 또 다른 친척, 보노보처럼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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