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왜 부조리한가 - 경제학.철학.통계학.정치학으로 풀어낸 법의 모순
레오 카츠 지음, 이주만 옮김, 금태섭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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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죄수가 자발적으로 고문을 선택한다면, 그 보상으로 형기를 줄여준다고 하면 어떨까요? 교도소 비용도 절감되고, 죄수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형기를 줄일 수도 있고, 고문이 무섭다면 원래대로 형기를 받을수도 있습니다. 이 윈-윈 전략으로 보이는 아이디어는 실행가능할까요? 법은 안된다고 말합니다. 섹스를 파는 것도, 자기 장기를 파는 것도 안됩니다. 또한 법은 많은 허점이 있으며, 이 허점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정하지는 않습니다. 법은 유죄와 무죄 두가지 판결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악행을 모두 처벌하지도 않습니다. 저자는 이런 법의 부조리에 대한 까다로운 질문에 대해서 독특하게도 투표의 역설,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 아마르티아 센의 역설과 같은 사회선택이론이라는 학문을 통해 답변하고 있습니다.

사회선택이론과 법을 관련 짓는 방법 중 하나는 법 제정의 집단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애로의 정리는 단지 투표 이론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성이 집단적이든 개인적이든 상관없이 모든 의사결정에 확대 적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의사결정 이론가들이 다기준 의사결정이라 부르는 방법에 속합니다. 여러 가지 기준에 따른 판단을 종합해서 최종적인 의사결정에 이르는 일은 유권자들의 다양한 선호를 종합해 최종 후보를 선정하는 일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렇다면 다기준 의사결정 관점에서 법의 원칙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법의 원칙들은 다기준 성격을 지녔기에 사회선택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사회선택이론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법의 모순된 특성을 다루고 있으며, 이런 특징은 사회선택이론에서 발견한 성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법은 뚜렷한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도 우리가 어떤 일에 동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강제로 합의한것도 아니고, 속임수가 개입된 것도 아님에도 그렇습니다. 자발적인 노예, 성이나 장기 판매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런 모든 사례에서 승낙이 무시되는 이유는 단지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강렬하게 욕구한다고 해서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다른것보다 강력하게 권리주장을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특징은 공공선택이론 중에서 센의 역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센이 발견한 역설은 사회선택이론을 선거 이외의 영역으로 확대 적용할 때 나타나는데, 사회구성원으로서 집단 속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모든 과정을 사람들은 일종의 선거처럼 생각한다고 센은 말합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할 수 있는 행위 가운데 하나를 음란물 읽기라고 가정해 보면, 우리 사회는 두 개의 집단인 얌전한 사람들과 음란한 사람들로 나뉘어 있습니다. 최소한의 관용이 있는 사회라면, 음란한 사람들이 음란물을 읽고 싶어할 때 얌전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하고, 동시에 얌전한 사람들이 음란물을 보기 싫어할 때 음란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것을 보지 않을 권리가 있어야 합니다. 결국 각 집단에 읽을 권리와 읽지 않을 권리를 부여하면 상생 원칙을 어기는 상황이 빚어집니다. 사람들에게 권리를 부여하면 상생 원칙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역설이 생기는 것입니다. 즉,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사회는 동시에 상생 원칙을 존중할 수 없습니다.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세계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의 일이다. 피겨 스케이팅은 심사위원단의 판정 결과에 따라 선수들이 여러 항목별로 얻은 점수를 복잡한 방식으로 합산해 최종 순위가 매겨진다. 한 선수만 남겨 놓고 모든 선수가 경기를 마쳤다. 미국의 니콜 보벡 선수가 2위로, 거의 은메달이 확정된 분위기였다. 프랑스의 수리야 보날리 선수는 3위를 기록 중이였다. 마지막으로 경기를 펼칠 선수는 미국의 미셸 콴이었다. 콴의 연기는 예상 외로 훌륭했고, 그 결과 4위를 차지했다. 여기까지는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콴의 성적이 다른 선수들의 순위에 영향을 미쳤다. 이 대회에서 채택한 점수 계산 방식에 따라 보벡과 보날리의 순위가 갑자기 뒤바뀐 것이다. 보날리가 2위로 올라서고 보벡이 3위로 내려간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바꾼 것이 아니다. 보벡과 보날리의 우열이 뒤집힌 것과 콴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가? 두 선수 모두 콴보다 앞서 경기를 치렀고, 두 선수가 콴보다 앞선다는 최종 순위는 전광판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는가? - p.144

법에는 허점이 많습니다. 법에는 애초의 취지보다 과잉 규제하거나 과소 규제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 법률과 그 목적 간에 존재하는 간극은 서 영리한 변호사들과 의뢰인들에게 빈번히 법망을 빠져나갈 여지를 제공합니다. 간극이 존재함을 알고 있음에도 법은 그 간극을 조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앞서 말했던 것처럼 법을 투표로 바꿔봅니다. 만약 법에 허점이 있다면, 곧 투표에도 허점이 있는 것이며 투표의 허점을 보완하면 법의 허점도 보완될 것입니다. 투표에도 역설이 존재하는데, 다수가 원하는 법안을 다수결투표로 표결에 부친다고 해도 그 법안이 꼭 통과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킬러 수정안이라는 기술을 사용해 다수가 지지하던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투표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애로는 이행적 성격을 띠고, 만장일치하는 의견을 존중하고, 집단의 의사를 반영하면서, 무관한 요소에 휘둘리지 않는 투표 방식을 찾으면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애로는 불가능성의 정리를 통해 이 목적은 달성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애로는 겉보기에 무관해 보이는 다른 대안이 다른 안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이는 집단 선택으로는 우리가 부여하고 싶은 공정성과 합리성이라는 기본 요건을 충족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으며, 모든 투표제는 조작에 취약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애로는 완벽한 투표는 존재할 수 없음을 증명했고, 이는 완벽한 법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법 조항의 속성이 다기준이고, 사실상 모든 법 조항이 그렇다는 점에서 이런 허점들은 모든 법이 안고 있는 문제점입니다. 특정한 허점을 없애고자 법 조항을 바꾸면 다른 허점들이 생겨날 것이며 이는 다기준 의사결정이 무관한 대안들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이 외에도 법의 결론이 이분법적인 이유에 대해 더미의 역설 분석과 부분적 변론을 들어 설명하고 있고, 우리는 왜 모든 악행을 법으로 처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과소범죄화 문제와 상충하는 직관 등을 통해 대답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법의 부조리라는 난해한 측면을 법적 논리와 언어보다는 사회선택이론을 비롯해 경제학, 철학, 통계학, 정치학으로 풀어내는 부분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가끔 법에 대해 의심과 불신이 생긴다면, 이 책을 통해 그런 생각을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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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맨얼굴 - 8인의 학자, 박정희 경제 신화 화장을 지우다
유종일 엮음 / 시사IN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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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흔히들 빛과 그림자가 뚜렷하다고 말합니다. 친일이력, 남로당 가입과 남로당 동료들의 명단을 제공하고 배신한 사건, 유신독재 등의 어두운 면과 경제개발이라는 빛이라는 두가지 면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두가지는 따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 책은 이러한 상황에서 박정희의 유산이라는 경제개발이 남기고 간 폐해들을 짚어보고, 박정희가 남긴 잘못된 경제체제가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재벌체제와 비대한 토건 부문을 특징으로 하는 산업구조와 정부의 통제 아래 이들 부문에 자금을 지원하는 관치금융이라는 왜곡된 경제구조를 만들어냅니다. 특권성장동맹은 성장지상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한국 사회에 대한 그들의 지배력을 유지하고 확대해왔는데, 박정희 향수는 바로 이 성장 이데올로기의 한 구체적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 전략은 일본의 메이지 근대화를 의식적으로 모방합니다. 당시 박정희는 국유기업 중심의 경제개발을 원했지만,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작은 국가에서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정권이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채택한다면 미국과의 관계를 더 악화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박정희는 국유기업 중심의 성장을 제한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국유기업이 아니면서도 국가의 대리인으로서 국유기업과 비슷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박정희에게 이것은 반공산주의적 입장을 유지하는 동시에 재벌기업을 확실히 통제하여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박정희는 집권 직후 재벌 총수들을 기소하고 부정축재 처리요강을 발표, 당시 이승만 정권 아래에서 취한 부당이득을 모두 환수하겠다는 위협을 가함으로서 재벌들을 군사정권의 통제에 두는 것을 성공하게 됩니다.

국제적으로 발전 당시 한국의 소득분배가 비교적 괜찮은 것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본격적인 경제개발이 시작되기 전의 역사적 특수상황에 기인합니다. 토지개혁이 단행되었고, 한국전쟁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실물자산과 금융자산이 파괴됨으로써 자산의 하향평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게다가 극도로 낮은 소득수준에도 불구하고 건국 초기부터 의무교육을 실시해 인적자본의 분배 또한 비교적 고른 편이었으며, 교육시스템이 계층 상승의 주요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유리한 초기 조건 하에서 1960년대의 고도성장은 실제로 동반성장의 양상을 띠었습니다. 분배와 관련한 박정희 정부의 정책은 전무하다시피 했고, 오히려 급속한 자본축적을 위해 노동자와 농민을 쥐어짜는 저임금, 저곡가 정책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동반성장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경제의 구조적 특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반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적 장점도 197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화 정책에 의해 변하게 되며, 박정희정권 중후반에 가서는 극심한 양극화 현상을 보여줍니다.

진정한 발전은 '자유로서의 발전'인 것이며, 진정한 진보는 경제성장만이 아니라 자유와 신장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 아마르티아 센, Development as Freedom 

박정희시절에 생긴 경제의 불평등에서 많은 부분은 지가와 물가에 기인합니다. 소비자물가는 이승만, 박정희 치하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올랐는데, 이승만 정권 때 물가는 3.8배 올랐고, 박정희 정권 때는 11.8배가 오릅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정권은 모두 1.5배 미만으로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박정희 집권기인 1963년부터 1979년까지의 땅값은 무려 180배 이상 상승했는데, 이 시기에 자산가치가 180배로 늘어난 자산은 토지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국의 땅값은 천문학적 비율로 상승해왔고 거기서 발생한 불로소득은 기존의 소득 통계를 압도하는 규모입니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개발발표와 같은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많은 경우 재벌들의 공장 건설 결정은 생산의 최적화보다는 지가 상승 전망에 더 큰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건설교통부의 지가 동향과 한국은행의 경제통계연보에서 불로소득/생산소득 비율을 보면, 이승만정권은 43.2%, 박정희정권은 248.8%, 전두환정권은 67.9%, 노태우정권은 96.3%, 김영삼정권은 -5.2%, 김대중정권은 -0.6%, 노무현정권은 8.4%에 달합니다. 이승만에서 노태우에 이르는 독재정권 아래서 생산소득 대비 불로소득이 창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박정희 정부동안 국내총생산은 경상가격으로 131조원이 발생했는데, 같은 기간에 지가 상승으로 인한 불로소득은 그 2배 반인 326조나 발생했습니다. 박정희시대에는 정부가 앞장서서 강남개발 등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정책을 많이 썼고, 그것을 통해서 고도성장을 달성한 면이 부각된다. 이러한 천문학적인 불로소득은 최상류층에 집중되었고 경제불평등에 큰 역할을 합니다. 토지가격의 상승이 경제개발처럼 보이는 이런 현상은 마치 일본에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거품경제를 연상케 합니다.

비민주주의적인 통제경제정책은 상명하달식 권위주의, 특정 경제집단에 편중된 지원, 성장만능주의, 전투적인 성장 속도라는 네 가지 핵심적인 특성을 지닙니다. 독재와 억압으로 경제개발을 추진하면 결국 공정한 룰이 정착되지 못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량을 키우지 못하기 때문에, 갈수록 적대적 노사관계나 각종 개발을 둘러싼 갈등 및 님비현상 등 갈등비용이 증폭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민주적이고 비합법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차지한 박정희는 빠른 시간 안에 경제성장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정치적으로 계속 불안한 입장에 서 있거나 권력에서 쫓겨날 수 있다고 판단했고,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한 방안으로 몇 개의 선택된 기업에 집중하는 강압적인 방식을 선택합니다. 결과적으로 일반 시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소수가 이익을 독점하는 시스템이 유지되어 왔습니다. 대표적인 희생이 농민들인데, 농민의 아들을 표방한 박정희의 리더십은 초기에는 농어촌 고리대사업을 실시, 농업구조개선심의 등의 중농주의적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1960년대 농업구조 개선방안 마련 실패와 외향적 경제성장의 선택은 농업의 성장을 통한 국민경제의 균형성장을 포기하는 계기가 되었고, 가격지지와 동원이 사라진 1980년대 이후의 농촌은 도시에 비해 생명력을 상실한 지역으로 전락합니다. 한국 농업은 아이러니하게도 농자천하지대본을 천명했던 박정희 정권에서 압축쇠퇴를 경험했고, 국가의 저곡가정책으로 인한 농촌에서 도시로의 대량이주는 무제한적 노동공급이라는 노동시장 상황을 만들어 한국경제 발전의 원천인 저임금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박정희 체제를 붕괴시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 체제의 최대 수혜자인 재벌의 성장이 큰 역할을 차지합니다. 독점자본으로 성장한 재벌은 정부의 개입을 거부했으며, 이것은 박정희 체제의 성공 조건을 해체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는 재벌 육성정책이 중소기업의 동반성장과 고용의 확대를 수반하는 효과가 강하게 나타났으나, 재벌이 스스로의 힘으로 독점적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국민경제의 재생산 과정을 통제하면서부터는 이러한 순선환 효과 또는 적하효과가 크게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재벌의 독점적 지배력은 국민경제의 균형발전을 저해하는 힘으로 작용해 재벌의 이익과 국민경제의 이익이 괴리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재벌의 선도적 성장을 통해 국민경제 전체의 순선환적 동반성장을 이끌어낸다는 이른바 적하효과 논리는 1980년대를 거치면서 현실적 유효성을 상실한 이데올로기적 구호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대기업의 고용회피 경향으로 가속화된 제조업 고용의 감소와 서비스경제로의 이행 및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의 강화와 중소기업의 피폐화라는 두 가지 구조적 변화는 양극화 추세를 가속화했고 이는 급속한 사회불만을 일으켜 체제의 종말을 가져오게 됩니다.

독재적 방식은 일시적으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많은 부작용을 낳으며, 민주주의는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 Lindert, Peter H. Voice and Growth: Was Churchill Right? 

결국 독재정권 아래에서 실시한 토건경제와 재벌체제, 관치경제는 그 한계가 있으며, 지속가능한 경제가 아닌 일종의 도핑효과라는 것입니다. 군사정권 아래에서 사회복지정책은 경제정책에 종속되어 복지 없는 성장을 가져와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소득의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국민 개인의 인간다운 삶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귀속됩니다. 한 개인이 노동시장을 떠나서는 자신의 복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상품화된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노동운동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고, 이 또한 체제붕괴의 큰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런 사실들은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교훈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재벌의 독주는 여전히 유효한 현상이며, 양극화 또한 해결되지 않고 있고, 박정희 스타일의 경제정책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토목건축 위주의 경제부양책과 국가가 관리하는 물가지수 등의 관치경제라는 경제정책은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박정희식 경제 패러다임은 그 시효를 다했으며, 그런 식의 성장은 결국 억지 성장이 될 뿐이며, 고용창출이나 양극화 극복을 위해서는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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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비만 - 늘어진 뱃살에 대해 당신은 아무 책임이 없다
프란시스 들프슈 외 지음, 부희령 옮김 / 거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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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은 약한 성격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해석되며, 비만인 사람은 탐욕스럽고 의지가 약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여섯 살짜리 아이들이 다른 체형을 묘사할 때보다 뚱뚱한 체형의 아이를 묘사할 때 게으른, 더러운, 멍청한, 못생긴, 거짓말쟁이, 사기꾼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비만에 대한 혐오감이 매우 어린 나이에서부터 뇌에 각인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여성의 날씬한 몸은 뚱뚱한 몸이 나타내는 게으름이나 방종과 대조되는 능력, 즉 성공, 자기통제, 성적 매력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며, 영국과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는 과체중 여성은 만성병을 앓고 있는 여성보다 더 적은 급여를 받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러한 비만에 대한 인식은 잘못되었으며, 비만은 개인의 특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환경이 비만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가장 비만인 나라를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미국을 꼽을 것입니다. 하지만, 체코, 핀란드, 독일, 그리스 등에서 과체중 성인의 비율이 미국의 수치보다 높으며 중국은 오래전에 '지구에서 가장 비만인 나라'라는 남부럽지 않은 타이틀을 미국에서 빼앗아왔습니다. 개발도상국과 신흥 산업국가의 비만인구 또한 선진국의 비만 인구를 앞질렀습니다. 개발도상국의 도시화와 비만에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식습관을 바꾸고, 같은 이유로 그들은 처음으로 과체중이 되거나 비만이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교육받은 사람들이고 날씬한 체형을 이상적으로 보는 서구의 시각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소식과 균형 잡힌 식단의 중요성에 빨리 동화된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돈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중산층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가고,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계층이 그 뒤를 따르게 됩니다.

소박한 수준의 임금을 받는 사람들은 싸고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고열량 음식을 찾아내고, 가능한 한 빨리 최대한 많이 먹는데 불행하게도 이것은 채소나 과일처럼 영양 많은 음식을 희생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식사 준비를 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설탕과 지방이 많은 가공식품이 어쩔 수 없이 가장 적합한 음식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일과 채소는 비싸기 때문에, 과체중이 되는 것은 경제적인 합리성 때문입니다. 그 결과 몸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가난하다는 규칙은 거의 전 세계에서 사실이 되었습니다. 가장 가난한 나라의 가장 가난한 주민만이 이 규칙에서 제외되며, 이들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자원마저 부족해 대부분 심각한 영양 결핍에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농업혁명은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습니다. 프랑스에서 1961년과 2002년 사이의 밀 수확량을 비교해 보면 헥타르당 2.5톤에서 7.5톤의 차이를 보였습니다. 유럽의 공동농업정책에서 나온 보조금 시스템은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생산량은 가격하락을 가져왔고, 가격하락 때문에 더욱 과도하게 생산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문제는 곡물, 육류, 유제품과 달리 채소나 과일은 매우 적은 보조금만을 지원받았기 때문에 생산량이 크게 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음식의 종류는 곡물, 육류, 유제품으로 쏠리는 현상이 심화되었습니다. 이렇게 값싸게 생산된 음식들을 줄이려면 답은 하나밖에 없었는데, 소비자들이 더 많은 음식을 먹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엄청난 농산물을 생산하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생산성이 더욱 증가하면서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설탕, 곡물, 기름과 동물성 지방을 처분할 길이 없어졌기 때문에 수출로 그 해답을 찾게 됩니다. 다농, 카길, 네슬레 등의 거대한 다국적기업들은 농업과 식품 부문에서 수확, 가공, 유통 등 모든 고리에서 생기는 이익을 가져가게 되었는데, 가공하지 않은 곡물을 그대로 파는것보다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즉석식품 같은 가공식품들을 열성적으로 팔고 싶어했습니다. 결국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임금 수준이 낮거나 중간 정도인 나라에 가공식품을 대량으로 팔기 시작했고 개발도상국과 신흥 산업국가의 비만인구 증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식품산업은 소비자가 더 많이 사게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주면 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소비자가 특대 사이즈를 사도록 유도하기 위해, 더 싼값에 산다고 느끼도록 만들었습니다. 약간의 가격상승으로 가격의 비례분 이상의 많은 양의 음식을 제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품 가격에서 실제 음식 가격의 비율은 매우 낮은 편이기 때문에 생산자가 손해를 보지는 않았습니다. 감자튀김의 양을 두배로 늘려도 비용이 두배가 들지는 않았고, 양을 두배로 했을 때 수익이 두배로 늘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여전히 전과 같은 양으로 했을 때보다 많은 이익을 얻게 됩니다. 가격 인상은 언제나 늘어난 음식에 들어가는 순비용보다 조금 높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제공하는 음식의 양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음식의 양은 20년 전에 팔던 양보다 2~5배나 더 많아졌는데, 미국에서 음료의 표준 양이 1950년대에는 190밀리리터였지만, 2000년에는 표준 사이즈가 590밀리리터에 이르렀습니다. 여러 연구들은 유아기 이후에 우리의 식욕은 접시 위의 음식 양에 적응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모든 실험들은 한가지 사실을 확인했는데, 더 많은 음식이 제공될수록 더 많이 먹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비만의 증가에 영향을 미칩니다.

미디어의 역할 또한 비만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1992년 영국에서는 초콜릿 과자를 홍보하기 위해 1억 3000만 달러를 쓴 반면, 신선한 과일, 채소, 견과류에는 고작 600만달러를 썼고 이러한 차이는 음식에 대한 인식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연구에 따르면 어린이들이 음식 광고를 자주 보면 부모에게 특정 제품을 사달라고 조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대체로 그 제품들은 지방, 설탕, 소금이 많이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과체중 어린이의 비율은 광고 횟수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미디어가 내포하고 있는 과도한 날씬함에 대한 잘못된 미적 인식과 화이트칼라를 숭상하고 블루칼라를 천대하는 태도 또한 비만인구 증가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식품산업은 비만이 사회적 중요 문제가 되자 공급 열량을 줄일 수는 없었으므로, 비만이 너무 많은 음식 양 탓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즉, 비만은 모두 운동부족 탓이며, 운동을 충분히 한다면 먹고 싶은 만큼 먹어도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널리 퍼져 있는 가설과는 반대로, 의사와 과학자들은 비만이 반드시 폭식과 게으름의 산물은 아니라는 의견을 공유하고 있는데, 에너지 섭취와 소모 사이에 존재하는 근소한 차이라도 수년간 누적되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점진적인 체중 증가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영양학자들이 계산한 바에 의하면, 체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몸이 소모하는 에너지보다 0.17퍼센트 이상을 섭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인류라는 종은 전반적으로 과도함을 극복하기보다는 결핍에 대항하여 싸울 준비가 더 잘 되어있습니다. 우리 몸은 수확이 적은 시기에 에너지를 저장하는 기능은 뛰어나지만, 풍족한 기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기능은 좋지 않습니다. 일단 몸에 지방이 들어오면, 그것을 저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게 됩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운동도 비만문제 해결에 효과적이지만, 더 효과적인 것은 음식 양을 줄이는데 있음을 말해줍니다.

전문가들 대부분이 비만의 확산이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수많은 연구들은 그 사실을 간과했다. 개인의 생활방식에 대한 간섭과 비만 약물의 효과에 대해 이제 현실적인 태도를 보일 때이며, 비만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개인의 치료보다는 공중보건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다. - 영국의학저널 

2차대전 이후 굶주림과의 싸움은 전세계적인 과제가 되었고, 가장 낮은 비용으로 식량을 가능한 많이 생산해내 모든 사람들에게 배를 채울 권리를 주는 것이 목표가 되었습니다. 훌륭한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많은 나라에서 빈곤과 기근은 사라졌고, 2003년에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오늘날의 농업 생산량은 60억 인류를 충분히 먹여 살리고 남을 정도라고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8억 5000만명의 인구가 여전히 굶주리고, 더 많은 사람들은 과잉 열량으로 괴로워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전세계적인 비만 현상은 결국 개인의 의지와 노력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경제적인 조건과 구조적인 환경의 산물입니다. 이러한 큰 구조적 문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울것이란 인상이 있지만, 2007년 영국에서 실시한 변화가 주는 교훈은 인상적입니다. 전국적으로 공공장소에서 흡연 금지를 실시한 뒤, 흡연율이 큰 폭으로 하락했고 결과적으로 4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담배를 끊었습니다. 이것은 환경의 변화가 얼마나 인상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보여주며 건강에 좋지 않은 행동을 사회적으로 배척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취할 여지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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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부위별로 팝니다
애니 체니 지음, 임유진 옮김 / 알마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시체는 매우 유용합니다. 매우 유용하기 때문에 비쌉니다. 합법적으로 시체를 사려면 부위별로 머리 126만원, 뇌 84만원, 팔뚝 120만원, 무릎 91만원이 필요하고, 사람 한명분의 몸을 전부 사려면 3000만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시체를 이용해 많은 것을 이뤄냈습니다. 미국만 해도 한 해에 대략 1만 구의 시신이 의대생들에게 해부의 신비를 알려주기 위한 용도로 쓰이고 있고, 외과의들의 세미나에 쓰이고, 의료 기구 제작회사들이 여는 상업적 목적의 세미나에서도 사용됩니다. 뼈를 갈아 반죽을 해 치근 수술에 쓰거나, 심장에서 판막을 떼어낸 뒤 심장 수술에 쓰기도 합니다. 시체시장은 10억달러 규모의 매우 거대한 시장이 되었고, 시체가 유용하다보니, 시체 공급업을 하고 있는 몇몇 브로커는 시체를 얻기 위해 사기나 절도와 같이 점점 더 사악한 수단을 쓰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간 브로커가 성형수술용으로 피부와 경골 등을 판매한 것이 SBS의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보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좀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시체를 몸에 붙이는 성형수술은 시체시장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체 매매라는 사업은 1700년대 후반, 외과의사들이 해부학을 배우기 위해 시체를 절단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합법적인 시체 공급책이 없었기 때문에 의사들은 시체 도굴꾼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당시 시체 도굴꾼이 얼마나 기승을 부렸는지는 도굴꾼 네이플스가 자기가 한 일을 날마다 일기장에 적은 책,《한 시체 도굴꾼의 일기, 1811~1812》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의사들은 시체가 필요했고, 의학발전에도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범죄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회적으로 쉬쉬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세인트 토머스 병원의 외과의인 쿠퍼 박사는 시체 도굴꾼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시신을 가져오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결코 그에 대해 묻는 법이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박사는 그 시대를 살았던 최고의 혁신가 가운데 하나로 기억되는데, 동맥류 비대 완화를 위해 경동맥을 묶은 것도, 둔부의 다리를 절제한 것도 모두 그가 최초였습니다.

그 어떤 시체도 도굴꾼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했다. 1878년, 존 스콧 해리슨 의원이 오하이오에서 갑자기 죽었다. 그는 아주 부자였고 미국 전 대통령의 아들이었다. 정치판에서도 유명인사였던 그의 죽음은 많은 관심을 끌었다. 외과의들은 앞 다투어 그의 뇌를 연구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그의 심장과 심실은 물론이고 뼈와 혈관까지도 노리고 있었다. 아들은 도굴꾼들이 아버지의 시신을 훔쳐갈까 무척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특별히 시멘트 관을 주문했고 일주일 동안 한시간도 빼놓지 않고 경비를 세워 시신을 지키게 했다. 일주일 뒤 해리슨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오하이오 강가에 있는 그의 무덤에 모였다. 참석자 가운데 한 명이 옆에 있는 어린아이의 무덤에서 도굴의 흔적을 발견했다. 어린아이의 시체까지 훔쳐가는 만행에 사람들은 분노했고 해리슨의 아들과 일행은 경찰의 수색영장과 함께 오하이오 의과대학에 들어갔다. 학교에서 어린아이의 시체를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몸집이 큰 시체를 하나 찾아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해리슨이었다. pp. 138-139 

시체팔이는 보통 노동자의 10배 이상의 수입을 보증했기 때문에, 많은 범죄가 이루어졌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해어와 버크의 사건인데, 빈민가에서 세를 주던 영국의 윌리엄 해어와 버크는 사악한 돈벌이를 시작했습니다. 해어의 세입자 가운데 홀로 사는 노인 데스몬드가 죽자 그 시체를 유명한 외과의이자 해부학 교수에게 팔고 7파운드의 돈을 벌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그들은 살아 있을 때보다 죽어서 더 가치가 있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1년동안 16명을 질식사시켜 팔았고, 이 사건은 에든버러를 발칵 뒤집어놓게 됩니다. 기소에 대한 증언을 하는 대가로 해어는 면책을 얻었고 그의 증언으로 버크만이 유일하게 유죄 판결을 받게 됩니다. 25,000명의 구경꾼 속에서 버크는 교수형을 당했고, 그의 시체는 학생들의 해부 실습으로 쓰이고 말았습니다. 그 후 영국 정부는 시체 매매를 종식시키기 위한 해부 법안을 통과시키게 됩니다.

이후 미국에서 1830년에 메사추세츠 주 특별위원회는 해부학자와 도굴꾼들의 시스템을 합법화할 것을 제안했고, 1831년 해부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이 법안을 계기로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나 죄수들, 정신병동의 환자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일 경우 죽으면 법적으로 시신 해부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수요는 공급을 초과했고, 결국 1950년대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시신 기증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얼마동안은 공급이 괜찮아졌지만, 현대에 들어 시체를 이용하는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다시 수요가 폭등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음성적인 시체시장이 강화되어 많은 시체가 불법적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체들은 당당하게도 보통사람들이 쓰는 운송체계와 동일한 것을 사용합니다. 불법 시체를 스테이크용 고기를 싸듯이 간단히 싸서 우편으로 보내는데, 간혹 들켜서 뉴스에 나오기도 합니다.

"가난한 자여, 당신의 지친 몸을 나에게 주세요, 세파에 지쳐 갈 곳 없는 몸을 나에게 주세요. 심장을 사고 싶습니까?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사이즈도 얼마든지 있고요. 원하는 혈액형대로 다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생각해보세요. 이건 농장 같은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을 경작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죠." - 브로커 오기 페르나 

시체를 얻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화장터에서 화장하기 전에 시체를 빼돌리거나, 연구 및 교육용으로 기증된 시체가 불법시장으로 흘러들어갑니다. 때론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몸을 받기도 합니다. 장례 지낼 만큼의 돈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짜로 화장해준다는 홍보를 하고, 죽으면 시체를 가져갑니다. 때론 가난한 집의 가족들과 거래를 하기도 합니다. 회사는 시체 한 구당 2만 달러 정도면 살 수 있고, 가난한 가족은 뜻하지도 않은 수입에 기뻐할 것입니다. 회사는 또 회사 나름대로 이익을 챙길 수 있는데, 2만 달러짜리 시체를 잘라 조각으로 내어 부위별로 팔면 20만 달러에 팔 수 있습니다. 시장은 때론 서로의 욕망으로 존재합니다. 이런 시장의 형성엔 구입자측의 책임도 크지만, 구입자가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한 예로 펜실베이니아 대학, 미시간 대학, 텍사스 의대가 시체 매매에 연루된 사건이 있었는데, 혐의가 분명해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내부 문서와 경찰 수사에 따르면 대학에서 일하는 조수들이 지하 시체 시장에 물건을 공급해온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범죄 수사가 진행되었는데, 놀랍게도 직원 한 사람만 기소되어 형을 살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기증한 시신을 연구나 교육 후에 매장하거나 장미 정원에 뿌려주겠다고 약속해놓고서 자신들이 사랑했던 가족을 의료 폐기물 더미에 넣어 태워버린 학교측에 분노했지만 방도를 찾지 못했습니다.

시체를 사용한다는 것은 도덕적인 혐오감을 주지만, 우리는 시체를 이용해 많은 의학적 진보를 이루었고 전 사회 구성원이 그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시체를 사용하는 것을 용인했고, 많은 사람들이 기증을 통해 의학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치에 돈이 개입됨으로써 결국 가치가 부패되는 현상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시체를 공급하는 영역에서 정부의 규제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회사의 장부를 감사할 사람도 없고, 경로를 확인할 사람도 없습니다. 이러한 허점은 시체를 이용하는 것이 공공의 선을 위해서가 아닌, 텔레비전이나 자동차와 마찬가지인 상품으로 판매되게 만들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고발함으로서 시체의 관리감독체계를 재고하고, 과학의 발전이나 타인의 삶을 위해 기증을 택하는 사람들의 숭고한 뜻을 저버리는 사회가 되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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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위험한 천국 - 미국을 좀먹는 기독교 파시즘의 실체
크리스 헤지스 지음, 정연복 옮김 / 개마고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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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독교는 사랑과 구원을 이야기하지만, 기독교도들이 언제나 사랑과 구원을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동성애자를 박해하고, 낙태자는 사형에 처하고, 이슬람교도를 추방하라고 외칩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저자는 기독교 파시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미국인을 남들보다 위에 있는 사람으로 선택하지 않았고, 기독교적 믿음은 다른 모든 종교적 믿음들처럼 결함이 있고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최선의 미국적 민주주의와 최선의 기독교 둘 모두 자비, 관용, 정의와 평등에 대한 믿음 같은 중요한 가치들을 구현하지만, 이 민주적, 기독교적 가치들은 주권운동으로 알려진 급진적 기독교 운동으로 말미암아 슬며시 해체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급진적 칼뱅주의를 뿌리로 하는 신정론적 종파인 주권운동은 칼뱅이 주입했던 신정을 정치적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R.J.러시두니가 1973년에 쓴 『성경적 법의 원리들』은 주권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책인데, 러시두니는 책을 통해 가혹하고 용서없고 폭력적인 기독교적 사회를 요구합니다. 간통, 신성모독, 동성애, 점성술, 근친상간, 부모구타, 청소년범죄, 심지어는 혼전부정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러시두니는 나치의 대학살의 숫자가 과장된 것이라고 치부했는데, 기독교를 믿는 인종과 믿지 않는 인종으로 간단히 구분하는 그의 이론은 나치의 우생학 이론과 공명합니다. 마크 A 빌라일즈와 스티븐 K 맥도웰이 1989년에 출판한 『미국의 섭리적 역사』는 많은 기독교 학교에서 사용되는 미국사 표준 교과서이며 자택학습 운동의 요소인데, 이 책에서 자유라는 용어를 주님의 성령에 대한 충성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권운동은 기독교적 지향을 도입하기 위해 상이한 도덕규범들과 믿음 체계들을 제거하거나 박멸합니다.

최선의 선전은 말하자면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것, 즉 선전자의 주도권이 대중이 전혀 모르는 채로 삶 전체에 스며드는 것이다. - 요제프 괴벨스 

미국에는 20만 개 이상의 복음주의 교회에 출석하는 최소 7000만 명 이상의 복음주의자들이 있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25퍼센트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 중에서도 절반에 달하는, 즉 전체 인구의 13퍼센트 정도로 추정되는 기독교우파 집단은 민주적 다원주의에 적대적이고, 압도적으로 공화당원이며, 전체주의적 정책들을 옹호합니다. 나머지 기독교도들은 기독교우파의 행동에 직접적으로 호응하지는 않지만, 그 기본 원리를 받아들이고 조용히 침묵합니다. 주권운동가들의 영향력은 매우 강한데, 여섯 개의 전국 텔레비전 방송망을 통제하고, 2000개 이상의 라디오 종교 방송국을 가지고 있습니다. 타이슨 푸드, 퍼듀, 월마트 등의 거대기업들은 주권운동가들의 거대한 재정적 후원자이고, 21억 5000만 달러 이상을 연방정부로부터 지원받는데, 이것은 모든 정부 서비스 보조금의 11퍼센트에 달하는 액수입니다. 정치적 영향력도 매우 막강해, 오늘날 모든 공화당의 주 위원회에서 36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고, 18개 주에서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원의원의 45퍼센트와 186명의 하원의원이 기독교 우파 지지단체로부터 압도적인 지지율을 얻습니다. 군사 부문에서도 영향력이 큰데, 블랙워터의 창업자인 에릭 프린스처럼 현대적 용병 군대 창설에 깊이 개입되어 있고, 크리스천 엠버시가 배포하는 비디오에 따르면 미군 장군 40명 이상이 매주 성경공부 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우파의 성장은 절망의 문화에 기반합니다.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이고 경제적인 실패, 3000만명에 달하는 빈곤층, 점점 더 기능을 상실해가는 공적 및 사적 제도들, 현대 산업사회의 질병인 고립은 확대 가족과 공동체의 연결망을 찢어놓았습니다. 절망은 존재와 의미의 중심들이 제거된, 대형 쇼핑센터와 간선도로가 가득한 거대하고 영혼 없는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데서 오는 단절감과 방향 상실의 산물입니다. 또한 국가적 불안에 대한 반응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안정된 가정과 가족,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 고정된 도덕규범들, 불확실성과 의심의 제거라는 약속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 우파로 향하게 합니다. 사랑의 폭탄은 러시아나 중국 공산당의 잘 다듬어진 전술이었는데, 기독교 우파는 그 특성의 많은 것을 공유합니다. 사람들을 기독교로 향하게 만드는 매력, 복음 전도자 집단이 잠재적 회심자에게 갖는 강렬한 관심, 아첨과 거짓 애정이라는 애정 공세는 성공적인 성장을 보장해줍니다. 하지만 따뜻한 포옹은 곧 새로운 규칙들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 규칙들은 교회 교리에 대한 절대 복종 체계를 낳고 독립적 사고와 행동을 단념시킵니다. 기독교 공동체에 들어간 결과는 옛 공동체와 옛 우정의 파괴이며, 신자들은 곧 교회 공동체 안에 갇히게 됩니다.

이렇게 강대해진 기독교 우파는 자신들의 교리를 사회, 정치의 공간에서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남성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동성애자들을 박해하고, 창조론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새로 다듬은 지적 설계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창조론의 위험은 추종자들을 확실성과 마법의 세계로 후퇴하게 하는것이 아니라, 모든 사실들을 예정된 이데올로기의 명령에 기반해서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게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제도들은 보통은 표면상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을 믿으라고 가르치는 선전 운동으로서 출발합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개인적 의견을 우선하는 이 주장은 모든 사실의 우선성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파괴한합니다. 이 허구에 기초한 주장은 우리의 마음속 깊이 간직된 가장 원시적 편견들, 계급적 편견,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등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기초한 왜곡들에 호소합니다. 이 위험하고 파괴적인 메시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믿어도, 즉 거짓들을 믿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 오직 믿음뿐일 때, 외부의 세속적 제도들이나 규제 기관들, 국가 재정이나 사회적 책임도 존재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 안에서 설교하는 메시지는 연방정부 프로그램을 제거,파괴하고 정부 규제와 세금에서 자유로워지고, 최대의 이윤을 방해하려고 하는 노동조합 같은 모든 조직의 기반을 깨뜨리고 싶어 하는 신보수주의자들의 메시지와 딱 들어맞습니다. 때문에 기독교 우파와 자본가의 결탁, 혹은 기독교 우파 스스로 자본주의의 돈벌이에 앞장섭니다. 자유시장의 방해받지 않는 이윤 추구와 세계화의 가장 탐욕스럽고 잔인한 행위들에 신의 이름으로 인가를 내려주는 일입니다. 기독교 우파는 미디어를 통해 가난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 부족이며, 십일조를 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강탈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합니다. 봉급의 10퍼센트를 바치면 하나님이 100배로 보상해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내세우면서 수백만 달러를 모으는데, 대부분 이런 목사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돈으로 부유한 생활을 합니다.

기독교 우파가 퍼뜨린 신화 중에 하나는 복음주의자들은 가족적 가치와 경건한 신앙심으로 자라난다는 것인데, 사회의 통계들은 그런 주장의 허구성을 폭로합니다. 공화당에 투표하며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있는 레드 스테이츠는 민주당에 투표하며 복음주의자들이 궁지에 몰려있는 블루 스테이츠보다 살인, 불법 및 십대 출산 비율이 더 높습니다. 또한 이혼율이 가장 낮은 주는 메사추세츠로, 동성 결혼 합법화를 빌미로 텔레비전 복음 설교자들이 손가락질하는 주입니다. 복음주의자들이 많은 주는 많은 백인 민족주의 단체가 있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은 기독교의 핵심, 즉 기독교 내부의 모든 선하고 인정 많은 것을 무자비하게 파해쳐서 다른 내부의 핵심들과 함께 쓰레기 더미 속으로 내던져버립니다. 남은 것은 오직 껍데기 뿐이며, 형식에는 공허한 잔해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의 이름으로 기독교를 죽입니다.

끝없는 관용은 관용의 실종으로 귀결될 것이 틀림없다. 만일 우리가 불관용의 사람들에게까지 끝없는 관용을 베풀고, 불관용의 사람들의 맹공에 맞서 관용적 사회를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때 관용적인 사람들은 파멸할 것이고 그들과 함께 관용도 파멸할 것이다. 이 공식화에서, 나는 우리가 언제나 불관용적 철학의 주장을 억눌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합리적 주장으로 그들에게 맞서고 여론으로 그들을 저지할 수 있는 한, 억압은 확실히 가장 현명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우리는 심지어 강제로라도 그들을 억누를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합리적 주장의 수준에서 우리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모든 합리적 주장을 비난함으로써 논쟁을 시작한다는 것이 쉽게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합리적 주장은 기만적이므로 그 주장에 귀 기울여서는 안 되고 주먹이나 권총으로 답하도록 그들은 자신들의 추종자들에게 가르칠지도 모른다. 따라서 관용의 이름으로 우리는 비관용의 사람들을 묵인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불관용을 설파하는 모든 운동은 자신을 법의 테두리 바깥에 가져다놓는다고 우리는 주장해야 한다. 그리고 살인이나 요괴, 혹은 노예무역 재개에 대한 선동을 범죄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불관용과 박해에 대한 선동을 범죄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 

저자는 하버드대학 신학대를 나온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에 대한 의심과 믿음은 양립할 수 있으며,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데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기독교도 일정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독교의 가치를 파괴하고 있는, 기독교가 지배하는 신정국가로 만드려는 환상을 가진 기독교 우파 지도자들은 결코 같이 살아갈 수 없는 잠재적 원수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들을 배척하고,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 대한 저급한 인식, 번영에 기초한 물신주의 숭배를 외치고 정치권력과 결탁한 종교 지도자들의 행동은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기독교 파시즘에 대한 지적은, 오늘날 한국의 주류 기독교 문화에도 적용되는 문제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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