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파의 은밀한 거래 - The Secret World Of FIFA
앤드류 제닝스 지음, 조건호.최보윤 옮김 / 파프리카(교문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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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조직 중 하나, 회원국 명단이 UN보다 많은 단체. 이러한 초국가 단체의 힘은 FIFA의 수뇌부가 세계 어디서든 귀빈 대접을 받게 해주고 큰 이권을 가져다주게 됩니다. 하지만 예전에 읽었던 IMF, 세계은행, WTO는 세계를 어떻게 망쳐왔나, 불경한 삼위일체나 피파처럼 세계를 좌지우지 할수 있는 단체들이 비민주적인 시스템과 환경을 가진다면 그 영향력이 어떠한 방향으로 갈 것인지, 이 책의 폭로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포츠와 돈이 관련된 1974년부터 회장선거는 4년마다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회장은 두명 뿐이라는 것은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FIFA의 변화는 아디다스의 경영자 다슬러로 시작됩니다. 축구의 상품화가 막 시작되었고 다슬러의 입장에서 FIFA 차기 회장감이던 아벨란제와 손을 잡는 것은 스포츠 용품을 파는 것보다 훨씬 큰 비즈니스를 의미했습니다. 다슬러는 코카콜라를 끌어들였고, 아디다스의 로비 하에 아벨란제는 새로운 FIFA 회장으로 선정됩니다. 다슬러는 FIFA뿐만 아니라 IOC 및 각종 육상종목의 회장선거를 지원했고, 엄청나게 고령의 나이이거나 죽지 않는 이상 권력을 떼어놓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다슬러는 그 대가로 아디다스 브랜드를 크게 확장시켰고, ISL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월드컵 마케팅권리를 얻게 됩니다.

아벨란제는 웃으며 말했다. "전 세계가 아르헨티나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그것은 아르헨티나의 야만적인 정부가 전 세계에 보여 주고 싶었던 얼굴이었다. 월드컵은 1936년 아돌프 히틀러가 올림픽에서 보여줬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또 다른 살인 통치가 스포츠와 스포츠맨을 이용해 선전되었고, 스포츠와 스포츠맨의 영광에 빌붙었다. 아르헨티나의 진짜 얼굴은 아마도 실종자 어머니들의 용감하고 겁에 질린 얼굴일 것이며, 동족을 대상으로 한 군사정권의 더러운 전쟁의 희생자들과 잃어버린 사람들의 사진을 들고, 월드컵 기간 동안 매일 수도의 마요 광장에서 퍼레이드를 벌이거나 투옥된 사람들의 얼굴일 것이다. - p.53

아벨란제는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라고 말하며 전 세계의 군사정권과 친밀하게 지냈고, 이러한 행동은 전 세계의 비난을 사게 됩니다. FIFA는 갈수록 정의감이 부족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었으며 수뇌부는 월드컵 유치 경쟁 과정에서 많은 이익을 얻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리더십이 흔들리고 고령이 된 아벨란제는 차기 회장감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벨란제는 은퇴를 선언했고, 요한손과 블래터가 회장감으로 지목됩니다. 요한손은 FIFA 내부의 민주주의와 단결, 투명성을 약속하며 미스터 클린 캠페인을 시작했고, 이러한 행동은 아벨란제를 자극합니다. 블래터 또한 과거 아벨란제를 밀어내려 한 전적이 있었던 터라 아벨란제에게 있어서 호의를 가질 순 없었지만, 적어도 블래터는 아벨란제의 비밀을 지켜줄 것이였고, 아벨란제는 블래터를 지지합니다. 블래터는 아프리카의 축구협회 및 투표권을 지닌 의원들에게 많은 지원금을 선사했습니다. 이러한 블래터 뒤엔 완벽한 독재 군주이자 세계적인 부자인 에미르 하마드가 지원하는 빈 함만이 있었습니다.

한국인들이 개를 먹는다는 사실은 블래터에게 충격과 동시에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잠재적인 라이벌을 망신시킬 수 있는 좋은 건수였던 것이다. 블래터는 푸들을 국수와 함께 먹는 것이 한국의 이미지를 악화시킬 것이라 경고했다. 그는 세계인의 여론을 수렴하여, 동물학대 행위를 근절시키라며 정몽준을 압박했다. 잔학한 독재자와 결탁하고, 유혈을 서슴지 않는 독재자에게 월드컵을 안겨주는 일을 일삼던 FIFA가, 개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을 도덕성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p.236

또한 블래터는 부정선거를 자행했는데, 투표권이 있던 아이티의 장 마리 키스 박사가 아이티정부의 부정부패를 공격한 대가로 출국금지를 받았고, FIFA 회장 선거날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키스 박사는 FIFA총회에서 텅 빈 아이티의 의자는 스포츠 억압을 상징하며 전 세계에 메시지를 전달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블래터 파인 잭 워너는 친구 네빌 퍼거슨을 키스의 자리에 앉혔고, 대리투표를 금지한 FIFA의 룰을 어기고 부정투표를 시킵니다. 결국 차기 FIFA회장으로 블래터가 당선됩니다.

블래터 회장이 얼마나 버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는 황금거위를 얻었습니다. 이 거위는 블래터에게 옷과 보석, 시계와 차를 선물해줬을 뿐만 아니라 호텔에 묵는 비용, 비행기 비용까지 모든 것을 주게 됩니다. FIFA는 각료들의 세금을 대신 내 줄 뿐만 아니라, 예상할 수 있는 모든 비용을 다 대신 내 줍니다. 블래터 뿐만 아니라 그의 측근들은 FIFA를 통해 월드컵 티켓을 공짜나 다름없이 대량으로 얻을 수 있었고, 이러한 모든 메리트는 측근들의 사업에 이용되 또다른 부를 획득합니다. FIFA가 주관하는 수억에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프로젝트는 블래터의 친구들이 주관하게 됩니다.

세계 스포츠에서 거두는 성공은 작은 나라를 단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거리는 열기로 가득찼다. 월드컵 출전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던 것이다. 1989년 11월 19일 국립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미국전을 승리하면 이탈리아 월드컵에 갈 수 있었다. FIFA 또한 이에 대한 준비를 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약한 팀이 이기기를 기대하지만, 항상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서니 힐(FIFA본거지)의 입장에서 보면, 트리니다드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출전하는 것은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월드컵 이후의 소득과 손실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1994년 미국 월드컵은 완벽한 성공이어야만 했다. FIFA 내부에서는 미국이 반드시 이탈리아 월드컵에 진출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미국이 이탈리아에서 활약해야만 앞으로 4년동안의 스폰서와 티켓 판매, 그리고 미국 언론이 필요한 소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국은 트리니다드를 꺾어야 했다. 미국 팀이 실력으로 트리니다드를 꺾지 못한다면, 도움을 줘서라도 미국에게 승리를 가져다 줘야 했다. FIFA는 심판과 부심을 그론도나가 아르헨티나에서 데려온 인물들로 교체했다. 주심은 너무나 분명한 두번의 페널티킥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트리니다드에 페널티킥을 허용하지 않았고, 미국은 1-0으로 월드컵 참가를 확정지었다. - p.174

이러한 FIFA의 방만한 경영이 계속되자 투명성 문제와 재정문제가 제기됩니다. FIFA는 2000~2001년도의 회계 장부에 2006년의 수입을 미리 포함시켰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블래터의 재선 시기에 불거졌지만, 블래터의 자금지원을 받은 국가들의 투표의 힘으로 블래터는 재선에 성공하게 됩니다. 여전히 FIFA 수뇌부들이 얻게 된 월드컵 티켓은 더 비싼 값에 암표로 축구팬들에게 팔리게 되었고 축구팬들은 월드컵 티켓을 얻기 위해 최대 7배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블래터의 친구이자 FIFA 수뇌부중 한명인 그린의 투명성 문제가 제기되며 안티구아에서 잭 워너를 공격하자 FIFA는 안티구아의 대표팀을 친선경기와 국제 토너먼트에서 참여할 수 없도록 보복조치를 가합니다. 올림픽 지역 예선을 앞두고 있던 U-23선수들의 꿈은 깨져버렸고, 결국 안티구아는 FIFA에 굴복합니다.

전세계 수많은 축구팬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스포츠 문화. 그것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FIFA는 거대한 돈놀이의 장이 되었고, 회장인 아벨란제, 블래터, 그리고 그들의 충실한 부하인 잭 워너, 척 블레이저, 쳇 그린 등은 그런 돈을 노리고 몰려든 세계 축구계의 악당이 되었습니다. 범국가적 기구의 비민주성은 다수의 세계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FIFA의 비리는 세계 축구팬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비싸진 월드컵 티켓들, 구멍이 숭숭 뚫린 축구지원금 등은 모두 축구팬들이 감당해야 하는 무거운 부채가 되었습니다. 저자 제닝스는 블래터 회장에게 직접 묻습니다. "블래터 회장님, 당신은 세계 축구를 지배하기 위해 딱 맞고, 적합한 사람입니까?" 그 뒤엔 적막만이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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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혁명 5년
프란츠 파농 지음, 홍지화 옮김 / 인간사랑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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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많은 역사는 흔히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 혁명가 등을 중심으로 서술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1954년부터 1962년까지 발생한 알제리 독립 전쟁에서의 변화를 피식민지배자들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혁명과정에 있어서 혁명지도자의 일화나 혁명진행과정을 다루는 일반적인 책과는 달리 아래로부터의 혁명, 혁명이 민중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자 프란츠 파농은 정신의학자이며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에 지원해 각지에서 파시즘 세력과의 전투에 참여했고, 알제리 독립 전쟁 당시 민족 해방 전선(FLN)의 투사로 활약합니다. FLN는 프랑스 제4공화국의 기반에 타격을 주어 프랑스 식민정권이 무너지는 원인이 되었고, 민족해방전선의 기관지 알 무자히둔에 기고하는 등 민족해방전선의 대변인 역할도 수행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독립하기 1년 전에 병으로 사망해 알제리 독립을 눈으로 볼 수는 없었습니다.

히잡. 아랍 여성들이 쓰는 이 전통의복은 단순한 옷에 불과하지만, 식민정부가 히잡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것은 더이상 단순한 의복으로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프랑스 식민 정부는 히잡을 알제리 남성에 의해 무기력하고 가치가 실추되며 더 나아가 인간성을 상실한 대상으로 불행하게 변형된 여성의 대명사로 묘사하며 알제리 남성의 행동은 중세적이고 야만적인 삶과 동일시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현대사회의 사회정의엔 부합할 지 몰라도, 그것은 알제리 국민이 스스로 변화해가야 하는 성질의 것입니다. 히잡을 둘러싼 식민주의자의 공격적인 말은 알제리의 문화자산으로서 색이나 형태변화 없이 안정되어 죽은 것 같았던 이 요소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합니다. 이것은 식민지 개발단계에서의 심리적 법칙중 하나인데, 초기에 지배자의 행동과 계획에 의해 민족의 영속성 의지를 자극하는 저항의 핵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히잡을 벗기고 여성을 문화 파괴의 동조자로 만들려는 침략자의 집요함은 오히려 전통적인 행동양식을 강화했다. - p.51

히잡은 더이상 옷이 아닌 경배의 대상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알제리 여성들은 스스로 히잡을 벗습니다. 그것은, 진정으로 프랑스 식민정부의 주장처럼 여성권리 신장등을 위함이 아닙니다. 남성들만 참여했던 독립전쟁에 여성들도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히잡을 벗음으로서, 식민정부의 눈을 속이고 전투의 보급을 책임집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자 식민정부는 히잡 착용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알제리 여성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반응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알제리 국민으로 하여금 일체감과 국가적 사명감을 경험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러한 투쟁의 요청에 따라 알제리 사회는 새로운 태도, 행동, 출연방식이 생겨납니다.

식민화된 알제리에서 라디오는 정복자의 도구로, 식민지배라는 틀에서 원주민의 어떤 중대 요구에도 부응하지 못한다. - p.84

알제리에 라디오가 들어올 당시, 그것은 오로지 알제리에 살던 유럽인의 것이였습니다. 알제리에 자리잡은 프랑스 라디오 방송국 '라디오 알제'는 파리에 있는 국영 프랑스 라디오로, 그 메아리를 통해 식민사회와 그 가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알제리에 살던 식민주의자들에겐 고향의 향수와 유대감을 주는 반면, 알제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전혀 라디오 구매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였습니다. 알제리 사회에 있어서 프랑스인이 프랑스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정의로서의 라디오는 어느 순간부터 그 사회정의는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1955년 카이로 방송에서 매일 아침 알제리인들의 독립전쟁 종합평가가 방송되자 라디오 구매의 필요성은 절대적인 것이 됩니다. 자유 알제리 방송이 시작되자 20일도 안되 전국의 라디오 재고가 바닥납니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은 당시 라디오보다 더 기술적으로 진보된 배터리 라디오가 팔리게 됩니다. 거의 마법과도 같은 이러한 변화는 라디오를 압제자의 문화적 억압도구에서 압제자의 압박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변화시킵니다. 또한 '투쟁하는 알제리의 목소리'가 프랑스어를 사용함으로서 사회에서 프랑스어에 대한 정의도 변화합니다. 더이상 알제리인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것은 초라한 동일화나 배신자가 되는것이 아닌, 혁명의 메시지를 의미심장하게 듣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식민시대, 독립전쟁을 거치는 동안 알제리의 가정은 큰 변화를 얻게 됩니다. 아버지가 가르치고 아들이 받는 전통적인 입장은 큰 사회변화의 흐름 속에서 그 관계 또한 변하게 됩니다. 숙명론적이며 가정에 매진할것을 요구하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신중함을 비난하고 거부하는 아들. 아들의 설득속에 아버지의 낡은 확신은 붕괴되며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닳는 관계가 됩니다. 사춘기가 되면 빨리 결혼을 가야 했고 결혼상대를 부모가 정해주던 딸은, 젊은 처녀가 투사로, 여성 동지로 대체되며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히잡을 벗고 화장을 한 처녀는 아무때나 외출을 하고,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가도 부모는 저항할 수 없게 됩니다. 불명예에 대한 오랜 두려움은 민족이 겪은 비극 앞에 굴복합니다. 여성은 결혼상대를 자신이 정하고, 모든 행동을 자신이 결정하게 됩니다. 말 그대로 여성은 혼자 힘으로 자기 위상을 얻어냅니다. 형제관계, 부부관계 또한 전통적 관계를 벗어버리게 됩니다. 식민주의는 알제리 사람들을 뒤섞으면서 점령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들을 같은 기호 아래 재집결시키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알제리에서 의료행위의 진실은 식민형태 아래 프랑스의 현존의 진실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민중이 자기 땅에서 자기 나라를 갖고 싶어하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의사, 교사, 엔지니어, 공수부대 요원 등 모두를 한꺼번에 거부한다. - p.154

일반적으로 의료기관에 대한 환자의 행동은 신뢰의 행동입니다. 환자는 의사를 신임하고 자신의 몸을 맡깁니다. 이러한 본질적으로 선한 가치로 취급받는 의학은 알제리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부합니다. 설령 의사가 알제리인일 지라도, 서양의학 전부를 거부합니다. 이러한 거부반응은 프랑스 당국이 약 판매를 금지함으로서 더욱 가중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서양의학에 대한 피식민지배자들의 거부감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그 변화의 시작은 바로 프랑스 당국의 약 판매 금지 덕분입니다. 유통을 막아버림으로서 그 물건은 새로운 가치를 띠게 됩니다. 약을 몰래 구하고, 민족해방전선이 의사들을 파견해 서양의학을 사용함으로서, 침략의 외교관쯤으로 여겨졌던 의사는 알제리라는 몸의 일부가 됩니다.

이러한 알제리의 변화는 우리나라의 과거 식민지 시절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과연, 일제강점기 시절 한복을 입는것을 금지시켰다면 과연 어떠한 의미로 다가왔으며 어떤 변화가 찾아왔을 것인가? 일제강점기 시절의 조선의 가정에서는 어떤 대립과 변화가 생겼을까? 일본이 조선에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철도나 기타 시설이 조선인들에게 어떻게 비쳐졌을까? 아마도 그러한 저항과 변화의 코드는 알제리와 유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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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죽은 날 - 엑손 밸디즈 호 기름 유출 사건의 진실과 거짓
리키 오트 지음, 강윤재.조아라 옮김 / 소나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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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알래스카의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에서 대재앙이 시작됩니다. 엑손 사의 밸디즈 호가 블라이 암초에 걸려 좌초되었습니다. 사고 이전에 밸디즈의 석유행동위원회에서 유조선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대형 참사가 미리 예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유출된 석유의 양은 1100만갤런(4만KL, 엑손 사의 조사)에서 3800만갤런(14만KL, 공익 과학자 조사)일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사고 지역에서 1200마일까지 석유가 퍼져나갔고, 바다 생태계와 사람들의 건강, 지역 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 책은 기름유출 사고로 인한 사람들의 피해, 환경적인 부분, 사고가 남긴 유산을 모두 다룬 방대한 보고서입니다. 이 책이 나온 시점 또한 유의미한 부분인데 첫째는 1989년의 사건이 아직도 진행과정이라는 점에서 기름유출 사고의 특성이 장기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둘째는 기업의 과학자들이 발표하는 내용은 언제든지 발표할 수 있는 반면, 공익적 단체에서 후원하는 과학자들의 보고는 법에 따라 뒤늦게 발표된다는 점입니다. 이 시간적 차이는 매우 중요한데, 대중들이 사건이 발생한지 삼사년이 지나면 사건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기업의 과학자들이 배포하는 홍보용 과학을 진실로 믿는다는 점입니다.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의 발췌문에 따르면, 석유와 세 가지 대표적인 용매제(분산제, 생물정화제, 다용도 탈지제)를 비롯해 1989년의 청소작업에 노출되었던 화학물질은 단기적(급성) 및 장기적(만성) 증후군을 일으키는 물질로 분류된다. 노출에 따른 급성 증후군은 피부염, 두통, 현기증, 메스꺼움, 중추신경계문제 등이며, 만성증후군은 빈혈, 백혈병, 혈액장애, 태아결함, 간 및 신장 손상, 전신 독성 등이다. - p.32 

당시 기름유출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 있어서 큰 문제중 하나는 청소작업자들이 무방비로 독성 물질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청소작업자 중 하나였던 알래스카 주 솔도트나에 사는 데일 헤릭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기름과의 접촉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엑손 사는 작업자들을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했지만 독성 증기를 들이마시는 일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기름이 풍화되면서 그런 증기가 온화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육 요원이 우리에게 팬케이크 위에 묻은 석유는 먹어도 괜찮다고 말했다."(Phillips, 1999) 당시 엑손사 뿐만 아니라 청소과정을 위임받은 베코 사는 작업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와 안전 장비를 전혀 주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우비와 마스크 정도만을 사용했는데, 우비는 화학적으로 물 외엔 아무것도 막을 수 없는 장비이고, 마스크 또한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청소작업자들에게 있어서 호흡기 전염병이 출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기도 감염의 발병률이 높게 나타납니다. 작업자의 절반을 넘어서는 6,722명의 사례가 보고됬습니다.(Exxon, 1989) 회사측에서 집계한 것만으로도 청소당시 50%가 넘는 발병률은 더 큰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장기적으로 청소작업자에게 영향을 끼친 것중 가장 흔한 질병은 화학물질 과민증이였습니다. 이 과민증은 정맥두엽, 풀립, 이명(귀울림), 이염, 우울증, 편두통, 발작, 집중결핍행동과다장애, 부정맥, 고혈압, 레이노현상, 천식, 습진, 두드러기, 과민성 장증후군, 섬유근통, 손저림증후군, 관절염, 결핵성 피부염 등을 야기시킵니다. 석유를 포함한 모든 화학물질에 과민반응하고 호흡곤란도 야기할 수 있는 이 질병은, 청소작업자로 하여금 정상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이들은 엑손사와 법정투쟁을 했고, 의미 있는 승소를 거두기도 합니다.

이러한 희생을 치루며 해낸 해변 청소 작업은 유의미했을까요? 엑손 사의 후원을 받은 호튼 팀은 조간대의 지배종인 다년생 암석해초인 푸쿠스는 대부분이 심한 기름오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기름이 들러붙어 메마르게 된 식물은 오그라들면서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6월 들어 호튼 팀은 식물의 새로운 성장을 목격합니다. 기름이 해안을 덮쳤을 때 푸쿠스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대규모의 동물 피해가 발생했던 지역에서도 동물 모집단이 빠른 속도로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새로운 종의 이주 생물이나 생존한 생물이 빈 공간을 차지하려고 되돌아올 것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4월 들어 엑손 사가 해안 청소작업을 시작하며 두가지 방법을 사용했는데, 첫번째 방법인 고압온수 세척이 시작되자 90%에 가까운 암석해초가 화상으로 잘려나갔고 강한 압력으로 바위에서 떨어져 나가 파괴됐습니다. 섭씨 60도의 온수를 강력한 힘으로 계속해서 가했기 때문에 기름에 오염되었을 당시만 해도 살아있었던 조간대 동물의 95%이상이, 일부 종의 경우에는 100%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해변의 생물은 그야말로 삶아진 것입니다. 이것은 정화가 기름 유출에 따른 직접 피해보다 더한 피해를 입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고압온수법은 화학물질들을 증기로 만듬으로서 해변의 생물들 뿐만 아니라 청소작업자들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입힙니다.

정화 지역과 비정화 지역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 정화 지역과 비정화 지역의 감소율이 거의 차이 없는 조건에서 추천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는 화학 비료를 추가로 살포하지 않는 것이다. (Capuzzo, Farrington and Kellogg) 

또한 화학적인 청소법 또한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습니다. 기름을 닦기 위해 사용된 스트로클린과 심플그린 뿐만 아니라 해변청소제로 사용된 이니폴은 엑손사의 제품으로 과학적 조사도 마무리되지 않은 제품이였습니다. 이니폴의 성능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였기 때문에 현장에서 마구잡이로 사용됬습니다. 이니폴은 심지어 우비까지 녹이는 독성을 지녀 작업자의 피부와 화학물질을 직접 노출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이런 와중에 엑손사는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자사의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청소과정을 직접 맡음으로서 청소과정을 과장했고, 법적인 방법을 이용해 청소에 드는 비용의 절반을 국고로 지급받기도 했습니다. 엑손사가 후원하는 과학자들의 발표를 바탕으로 언론에 대대적 홍보를 하기도 했는데, 이는 사실을 많이 왜곡하는 것이였습니다. 엑손 사는 결국 징벌의 손해 배상액 50억 달러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며 아직까지 배상하지 않고 있습니다.

머거트는 베코 사와 엑손 사의 하급관리자 대부분은 매우 진지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피해의 규모에 비해 청소작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욱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러나 상층 관리자와 최고위층 책임자들은 출세주의자에 불과했다.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느 날 엑손 사의 관리자가 작은 몸집의 원주민 노파가 양손에 석유가 가득 찬 쓰레기봉지를 들고 경사진 해변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보고 봉지마다 석유 1배럴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머거트가 응수했다. "참 튼튼한 노파네요. 한손에 136kg나 들고 있다니!" - p.57

이런 대재앙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남긴 유산은 있었습니다. 사고 이전의 과학에 비해 당시 피해를 입은 해달, 연어, 청어, 바다오리 등 수많은 해양생물들에 대한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바다의 해류패턴 연구, 플랑크톤 연구와 같은 분야에서 진일보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전쟁이 과학을 진화시킨다는 말처럼, 엑손의 기름유출 사고는 해양생태학 분야에 많은 프로젝트를 가져왔고, 석유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변화시켰습니다. 기름유출 사고로 인해 석유 화학물질이 사람과 환경에 단기간 그리고 장기간 유독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산업사회가 계속 발전하면서 바다로 스며드는 석유의 양은 1년에 엑손 밸디즈 사건의 10%에 달합니다. 이는 10년에 한번꼴로 엑손 기름유출 사고와 같은 대재앙을 우리는 계속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석유기반사회에 대한 초장기적인 물음을 제시합니다.

이런 1989년에 있었던 엑손의 기름유출사건의 보고서를 읽으며 필연적으로 2007년에 한국에서 있었던 '삼성-허베이 스피리트호 원유유출사건'이 생각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고, 성금 모금에 나섰습니다. 구글에서 관련 이미지를 찾아보면 놀랍게도 맨얼굴로, 기껏해야 흰색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사람들의 사진이 뜹니다. 1989년 엑손 사고의 청소작업자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1989년의 사고는 10년,15년이 지난 지금도 독성을 내뿜으며 생태계에 영향을 끼쳤고, 당시 기름작업을 하며 얻은 병으로 고통많은 많은 사람들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아직 5년밖에 지나지 않은 삼성-허베이 스피리트호 원유유출 사고의 미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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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죄 없이 죽는다 - 승자가 패자에게 강요한 정치 재판의 역사
존 래프랜드 지음, 신견식 외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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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학살이나 반인륜 번죄를 저지른 국가원수를 법정에 세우고 처벌하는 행위는, 2차세계대전 이후 현대사회의 발전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재판은 과거부터 존재했으며, 그런 재판은 모두 법적인, 절차적인 면에서 불법적이라는 점을 말합니다. 찰스1세부터 사담 후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재판은 승자의 기록이기에, 패배한 주권자들은 매우 모호하고 부당한 근거로 사형을 당합니다. 뉘른베르크 판결 이후 윈스턴 처칠이 전시참모장이였던 헤이스팅스 이스메이에게 한 말은, 그러한 정치재판에 있어 승자의 역사를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재판들의 공통점은 아무도 자신이 관여된 사건의 재판을 맡을 수 없다는 법률 원칙, 불소급법의 원칙, 모든 사람이 공평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근본 원칙, 무죄 추정의 원칙, 신속히 재판받을 권리 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과 개인에 대해 사법 박탈권 등의 위법을 행한 것 등이 있습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유죄판결을 받았을 뿐더러, 재판을 하는 쪽도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 이런 정치재판의 특징입니다.

처칠은 이스메이에게 말했다. "전쟁에선 이기는 것이 최고로 중요하네. 만약 졌다면 자네와 내가 무슨 봉변을 당했을지 훤하네. 이번 판결이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 p.157 

뉘른베르크 재판의 경우를 예로 들면, 어떻게 하면 독일의 노르웨이 공습은 범죄로 규정하면서, 양국이 공식적으로 동맹을 맺은 상황에서 발생한 1940년 7월 메르스엘 케비르 항구에서 프랑스 함대를 공격한 영국의 행위는 범죄로 규정하지 않아야 할 것인가? 연합국인 소련이 핀란드와 발트3국, 베사라비아를 공격한 것과 게 카틴에서 폴란드인을 학살한것을 어떻게 무죄로 만들 것인가? 르완다 학살에서 투치족에 대한 인종 학살의 증거는 넘쳐나지만 후투족에 대한 인종 학살의 증거는 없다고 주장하는 모순된 모습들은 정치재판은 재판으로 불리울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미국은 악명높은 731부대는 고발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부대는 일본 육군 소속으로 생물학전 연구를 수행했는데 전쟁 포로들을 인간 모르모트로 생체 실험한, 최악의 새디스틱 판타지와 연관된 부대였다. 포로들은 산 채로 해부되고 기둥에 묶여 화학무기와 생물학 무기 세례를 받았으며, 의학 연구라는 명목으로 무시무시한 고문을 받다가 죽어갔다. 희생자의 총 숫자는 3000에서 1만여 명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이 부대의 잔악 행위는 재판에서 거론되지 않았는데, 맥아더 장군이 부대장 이시이 시로를 사면하는 대가로 그 부대의 실험결과물을 미국에 넘기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이시이는 결코 고발되지 않았고 자유롭게 살다가 1959년에 죽었다. - p.264 

또한 정치재판을 함에 있어서 많은 부분이 시작부터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데, 국제재판소가 현직 국가원수에게 기소를 내린 사건인 밀로셰비치 재판에서 그 예를 들수 있습니다. 나토의 공습도 불법적이였을 뿐 아니라, 밀로셰비치가 엄청난 인종학살을 가하고 있다는 나토의 선전과는 달리 나토의 포격으로 사망한 수백명의 세르비아와 알바니아계 주민을 제외하고 사망자는 모두 500여명이었고, 나토의 선전이 사실이 아니라 과장되었음을 밝힌 저널리스트들도 있습니다. (John Laughland, Daniel Pearl and Robert Block).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또한 재판에서 그의 범죄가 기소될때 이란-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논의에서 제외되었는데, 8년간 100만명의 인명을 희생한 이 전쟁이 사담 후세인의 죄가 아닌 이유는 다름아닌 이 기간에 미국이 이라크를 원조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1983년부터 1990년까지 화학 및 생물학무기를 이라크에 제공하기도 했고, 이런 불편한 진실은 법정에서 다뤄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이 전쟁은 사담 후세인의 죄로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사담 후세인에게 유죄와 사형을 선고한 죄는 두자일 사건(1982년에 사담 후세인에 대한 암살 기도가 있은 후 마을 주민에 대한 보복이 자행된 사건)이였는데, 후세인이 두자일 사건을 알고 있었거나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내려진 판결이였습니다. 재판부는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고 결론짓고 사형을 선고합니다.

이러한 정치재판의 역사 속에서 보여지는 결과는 단 한건의 무죄 판결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새 정권이 적법성을 얻기 위해 이전 주권자에 대한 유죄선고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재판의 속성은 일반 법정에서 일반법에 의해 입증된 명박핸 위법 행위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처벌받거나 신체나 재화에 고통을 받지 않는다는 법치 개념을 따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재판은 사법행위가 아니며, 전쟁의 연속입니다. 이러한 정치재판의 문제점들은, 국제법정의 개념이 대두되는 현재에 어떤 대안이 필요함을 말해 줍니다. 진정으로 사법정의가 보편적이고 공정하며 평등하다면, 이런 정치적 사법행위는 독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정의가 편의가 된다면, 그 정의는 우리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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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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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이라는 신화는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서점에 가도 수없이 많은 책들이 긍정의 힘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에게 긍정적인 일들이 찾아올 것이다. 원하는 것에 집중하기만 하면 당신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 무한한 재산이든, 성공이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레스토랑의 앉고 싶은 자리든, 말 그대로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 우주는 당신의 요청에 응하기 위해 존재한다. 당신은 욕구의 힘을 다루는 방법만 배우면 된다. 원하는 것을 눈앞에 그려 보라, 그러면 그것이 당신에게로 끌려온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유방암에 걸린 것을 계기로 긍정적 사고의 부정적인 면을 목격합니다. 암에 걸린 사람들은 너무나 긍정적 사고를 강요당한 나머지, 비과학적인 치료를 용인하거나, 다른 사람이 암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내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사고가 나쁠 것은 없고, 심한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형을 면제받을 것이라는 희망에 매달린, 죽어가는 사람의 낙관주의를 못마땅하게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실제로 암을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자기들 용어로 이점발견(Benefit finding)이라고 하는, 암에 긍정적인 감정을 키우는 방식으로 기울었기도 합니다. 하지만 긍정적 사고가 실패해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암이 퍼지게 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럴 때 환자가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긍정적이지 못했다고, 애초에 암이 생긴것도 부정적인 태도 탓이었다고 자책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 이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충고는 이미 피폐해진 환자에게 추가적인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면역 체계와 암, 그리고 감정 상태의 관계는 1970년대에 일종의 상상력을 토대로 꿰맞춰진 것이다. 극도의 스트레스가 면역 체계의 어떤 측면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저명한 스트레스 연구자 한스 셀리에(Hans Selye)가 1930년대에 실험했던 것처럼, 장기간 괴롭힘을 당한 실험실의 동물은 쇠약해져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진다. 그런데 이를 토대로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감정은 스트레스의 반대 작용을 할 것이라는 성급한 결론으로 도약해 버렸다. 건강을 위협하는 상대가 미생물이든 종양이든,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면 면역 체계가 활성화되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이다. - p.61

이런 긍정신화는 무뚝뚝한 칼뱅주의의 대안으로 시작되었으며, 현대에 들어와서 과학을 포섭하며 급성장합니다. 토크쇼 사회자 래리 킹은 이렇게 말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당신을 변화시킬 수 있고, 당신이 원하는 것을 끌어당깁니다. 억지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냐고요?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과학에 의해 지지되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동기유발과 과학의 조합은 독특한 주장을 하는데, 그중에 나폴레온 힐이 쓴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 에서 말하길 "생각은 자석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성에 맞는 힘과 생활환경을 끌어당긴다" 고 합니다. 이 말의 진위가 의심스럽다면, 주변에 있는 자석을 머리에 붙여보거나, 냉장고의 문에 머리를 가져다 대보면 될 것입니다. 긍정적 사고를 지닌 사람이 더 오래산다와 같은 연구도 그 연구에 허점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연구에 무위결과가 있지만, 미디어 언론에서 단편적이고 언론에 발표하기 좋은 부분만 쓰는 문제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긍정신화는 사회적으로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긍정적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훌륭한 사회원은 예외 없이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강조합니다. 긍정적인 사람이란, 늘 미소 띤 얼굴에 불평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나친 비판을 경계하며, 상사가 어떤 요구를 해도 우아하게 따르는 그런 사람을 뜻합니다. 이런 긍정신화는 사람들에게 설령 부당한 해고를 당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논쟁을 일으키기보단, 긍정적으로 대처하라고 말합니다. 다운사이징 선전의 고전인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1000만부가 팔렸는데 기업에서 뭉텅이로 사서 직원들에게 나눠 준 것이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책은 정리해고 희생자들에게 이러한 교훈을 남깁니다. 지나치게 분석하고 불평하는 인간의 속성을 극복하고 쥐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 직장에서 쫓겨나면 조용히 입 다물고 나와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 재빨리 돌아다니라고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뒤로 하고라도, 정리 해고는 기업을 강하게 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미국경영자협회에서 조사한 결과 해고가 생산성에 미친 긍정적 영향은 조금도 없었다고 합니다.(Jeffrey E.Lewin and Wesley J.Johnston, "Competitiveness", Jan. 1, 2000)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정리해고를 하면 분명히,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주가가 오르기 때문입니다.

하비 매케이(Harvey Mackay)가 2004년에 쓴 경제 자기계발서는 '우리는 해고당했다! 지금까지 겪은 일 중 최고로 멋진 일이다(We got fired! And It's the best thing that happened to us)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달려 있다. - p.250 

이런 긍정신화의 전파에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 교회인데, 새롭게 등장한 초대형 교회의 새로운 긍정신학은 고전적인 기독교의 고난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나 가차없는 심판을 접어두고 현생에서의, 그것도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가능한 부와 성공과 건강을 약속합니다. 교회는 말합니다. 당신은 새 차와 새 집, 탐내던 목걸이를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당신이 번창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초대형 교회의 목사들은 성공의 역할 모델로 자기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따르라'는 것이 목사들의 메시지입니다. 내게 돈을 보내고, 내 교회에 십일조를 내고, 내 책에 나와 있는 방법대로 하라, 그러면 당신도 나처럼 성공하게 될 것이다.

이런 긍정신화는 일반 시민들에게만 퍼져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지도층, 회사CEO들에게도 만연해 있습니다. 고전적인 회사구조는 붕괴되어 회사운영진도 시시각각 바뀌다보니, 장기적이고 합리적인 운영계획보단 단기적이고 즉흥적이고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긍정적 사고는 운영결정권자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이런 고위층들이 긍정신화를 지지하고, 사회적으로 긍정적 분위기만을 강조하다보면 비판적 의견, 설령 그것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여지기 힘든 단점이 나타납니다. 스티브 아이스먼은 그런 기업 경영자들을 헤지펀드 병이라 부르며, 과대망상, 자기도취, 유아론적이라고 꼬집어 말합니다. "당신이 5억달러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에 관해서건 어찌 틀릴 수 있겠습니까? 뭔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것을 실현하는 것과 동격입니다. 당신은 신이 됩니다." 이런 정신상태는 모든 긍정적 사고 주창자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행복도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한 혹은 긍정적인 사람들이 분명 직업적인 면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는 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직장을 구할 때는 대개 2차 면접까지 올라가고, 직장에서는 상사에게 더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잘 버티고, 출세의 사다리에서 먼저 위로 올라갑니다. 이런 현상은 긍정적 태도를 높게 평가하고 부정적인 사람들을 싫어하는 기업의 편견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 사고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한 예로 리먼브라더스의 고정자산 부문 글로벌 책임자였던 마이크 켈밴드는 현실주의를 내세우다 순교한 사람이었습니다. 2006년 말, 부동산 거품을 감지한 겔밴드는 점점 초조해졌고, 2006년 추가 보고에서 그는 CEO 리처드 풀드에게 "세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풀드는 그 부정적인 부적응자를 바로 해고했고, 그로부터 2년 뒤 리먼은 파산했습니다. 리먼의 사례에서 보듯 회사의 전체적인 긍정적 사고의 강요는, 불합리한 것에 대한 비판을 가로막고 이는 최악의 경우 파산의 길로 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이러니한점은 이렇게 긍정적 사고가 회사에 위기를 찾아오게 하고 불황에 빠질 때 긍정적 사고를 옹호하는 동기 유발 산업은 더욱 번창한다는 것입니다. 불황이 시작되자 이런 동기 유발 산업은 20%가량 성장합니다. 칼뱅주의는 가난이 태만을 비롯한 나쁜 습관의 결과라고 했고, 긍정적 사고는 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의식 탓이라고 합니다. 희생자를 비난하는 이런 시각은 최근 20년동안 우세했던 경제의 보수주의와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해고되었거나 해고를 눈앞에 둔 노동자들은 동기 유발 강연장으로 떠밀립니다. 긍정적 사고의 전파자들은 불황에 대해 이렇게 조언합니다. 플로리다 주의 어느 강연자의 말처럼 현재의 위기는 '기분이 쓰라릴 때 직장에서 쾌활한 척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이며 직장의 변화, 구조조정에 관해서는 '견뎌 내란 말입니다. 이 몸집만 커다란 애기 같은 양반들아!' 라고 몰아붙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볼때 인간의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일상적인 장애물은 빈곤입니다. 뉴욕 타임즈가 2009년 뉴욕 지역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가장 부유한 지역 사람들이 행복도가 가장 높았고, 가장 행복도가 낮은 지역으로 나온 브롱크스는 버려진 건물과 쓰레기 더미로 가득 찼으며, 뉴욕 시에서 가장 실업률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고용주들은 다운사이징의 희생자들을 다독이고 남은 사람들에게서 더 영웅적인 노력을 뽑아내기 위해 긍정적 사고에 의존합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긍정적 사고론자들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누구라도, 단지 자신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는 것만으로 언제든 부자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회와 상향 이동 가능성에 관한 강한 믿음은 미국인들이 불평등을 잘 감내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행복해지라는 긍정적 사고는 미국인들에게 행복감을 주었을까요? 심리학 전문 잡지 사이콜로지 투데이에서 지적하듯이 사회적으로 행복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동안 미국인들은 더 슬프고 불안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서 나오는 것들을 열심히 사들이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것은 그다지 놀라운 발견도 아닙니다. 긍정적 사고는 끊임없는 경계의 필요성을 폐기한 것이 아니라, 경계의 방향을 내부로 돌린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지옥과 파멸의 가능성이 아니라 성공의 기회에 몰입하는 것, 죄악이 아니라 힘을 찾아내기 위해 내면의 자아를 탐색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입니다. 문제는 왜 그렇게 내적인 부분에만 오로지 몰입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왜 사랑과 연대감을 품고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가? 깨달음의 빛을 찾아 자연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볼 수는 없는가?

긍정적 사고의 신봉자들처럼, 긍정적인 뉴스만을 듣고, 긍정적인 사람들만을 만나고, 내면적으로 긍정적이기만 하면 자기 주변의 모든 환경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은 그저 망상적 현실도피, 맹목적 낙관주의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긍정적 사고 서적들을 집대성한 시크릿에서 말하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뜨면 원하던 목걸이가 내 목에 걸려있고, 그저 긍정적으로 원하기만 하면 놀이동산의 긴 줄의 맨 앞에 서게 되는 그런 일들은 판타지에 불과합니다. 저자는 주의 깊은 현실주의는 행복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행복하길 원한다면, 사회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가난, 비만, 실업 등과 같은 현실 문제들을 향해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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