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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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이라는 신화는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서점에 가도 수없이 많은 책들이 긍정의 힘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에게 긍정적인 일들이 찾아올 것이다. 원하는 것에 집중하기만 하면 당신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 무한한 재산이든, 성공이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레스토랑의 앉고 싶은 자리든, 말 그대로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 우주는 당신의 요청에 응하기 위해 존재한다. 당신은 욕구의 힘을 다루는 방법만 배우면 된다. 원하는 것을 눈앞에 그려 보라, 그러면 그것이 당신에게로 끌려온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유방암에 걸린 것을 계기로 긍정적 사고의 부정적인 면을 목격합니다. 암에 걸린 사람들은 너무나 긍정적 사고를 강요당한 나머지, 비과학적인 치료를 용인하거나, 다른 사람이 암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내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사고가 나쁠 것은 없고, 심한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형을 면제받을 것이라는 희망에 매달린, 죽어가는 사람의 낙관주의를 못마땅하게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실제로 암을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자기들 용어로 이점발견(Benefit finding)이라고 하는, 암에 긍정적인 감정을 키우는 방식으로 기울었기도 합니다. 하지만 긍정적 사고가 실패해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암이 퍼지게 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럴 때 환자가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긍정적이지 못했다고, 애초에 암이 생긴것도 부정적인 태도 탓이었다고 자책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 이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충고는 이미 피폐해진 환자에게 추가적인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면역 체계와 암, 그리고 감정 상태의 관계는 1970년대에 일종의 상상력을 토대로 꿰맞춰진 것이다. 극도의 스트레스가 면역 체계의 어떤 측면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저명한 스트레스 연구자 한스 셀리에(Hans Selye)가 1930년대에 실험했던 것처럼, 장기간 괴롭힘을 당한 실험실의 동물은 쇠약해져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진다. 그런데 이를 토대로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감정은 스트레스의 반대 작용을 할 것이라는 성급한 결론으로 도약해 버렸다. 건강을 위협하는 상대가 미생물이든 종양이든,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면 면역 체계가 활성화되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이다. - p.61

이런 긍정신화는 무뚝뚝한 칼뱅주의의 대안으로 시작되었으며, 현대에 들어와서 과학을 포섭하며 급성장합니다. 토크쇼 사회자 래리 킹은 이렇게 말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당신을 변화시킬 수 있고, 당신이 원하는 것을 끌어당깁니다. 억지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냐고요?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과학에 의해 지지되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동기유발과 과학의 조합은 독특한 주장을 하는데, 그중에 나폴레온 힐이 쓴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 에서 말하길 "생각은 자석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성에 맞는 힘과 생활환경을 끌어당긴다" 고 합니다. 이 말의 진위가 의심스럽다면, 주변에 있는 자석을 머리에 붙여보거나, 냉장고의 문에 머리를 가져다 대보면 될 것입니다. 긍정적 사고를 지닌 사람이 더 오래산다와 같은 연구도 그 연구에 허점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연구에 무위결과가 있지만, 미디어 언론에서 단편적이고 언론에 발표하기 좋은 부분만 쓰는 문제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긍정신화는 사회적으로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긍정적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훌륭한 사회원은 예외 없이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강조합니다. 긍정적인 사람이란, 늘 미소 띤 얼굴에 불평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나친 비판을 경계하며, 상사가 어떤 요구를 해도 우아하게 따르는 그런 사람을 뜻합니다. 이런 긍정신화는 사람들에게 설령 부당한 해고를 당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논쟁을 일으키기보단, 긍정적으로 대처하라고 말합니다. 다운사이징 선전의 고전인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1000만부가 팔렸는데 기업에서 뭉텅이로 사서 직원들에게 나눠 준 것이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책은 정리해고 희생자들에게 이러한 교훈을 남깁니다. 지나치게 분석하고 불평하는 인간의 속성을 극복하고 쥐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 직장에서 쫓겨나면 조용히 입 다물고 나와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 재빨리 돌아다니라고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뒤로 하고라도, 정리 해고는 기업을 강하게 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미국경영자협회에서 조사한 결과 해고가 생산성에 미친 긍정적 영향은 조금도 없었다고 합니다.(Jeffrey E.Lewin and Wesley J.Johnston, "Competitiveness", Jan. 1, 2000)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정리해고를 하면 분명히,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주가가 오르기 때문입니다.

하비 매케이(Harvey Mackay)가 2004년에 쓴 경제 자기계발서는 '우리는 해고당했다! 지금까지 겪은 일 중 최고로 멋진 일이다(We got fired! And It's the best thing that happened to us)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달려 있다. - p.250 

이런 긍정신화의 전파에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 교회인데, 새롭게 등장한 초대형 교회의 새로운 긍정신학은 고전적인 기독교의 고난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나 가차없는 심판을 접어두고 현생에서의, 그것도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가능한 부와 성공과 건강을 약속합니다. 교회는 말합니다. 당신은 새 차와 새 집, 탐내던 목걸이를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당신이 번창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초대형 교회의 목사들은 성공의 역할 모델로 자기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따르라'는 것이 목사들의 메시지입니다. 내게 돈을 보내고, 내 교회에 십일조를 내고, 내 책에 나와 있는 방법대로 하라, 그러면 당신도 나처럼 성공하게 될 것이다.

이런 긍정신화는 일반 시민들에게만 퍼져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지도층, 회사CEO들에게도 만연해 있습니다. 고전적인 회사구조는 붕괴되어 회사운영진도 시시각각 바뀌다보니, 장기적이고 합리적인 운영계획보단 단기적이고 즉흥적이고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긍정적 사고는 운영결정권자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이런 고위층들이 긍정신화를 지지하고, 사회적으로 긍정적 분위기만을 강조하다보면 비판적 의견, 설령 그것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여지기 힘든 단점이 나타납니다. 스티브 아이스먼은 그런 기업 경영자들을 헤지펀드 병이라 부르며, 과대망상, 자기도취, 유아론적이라고 꼬집어 말합니다. "당신이 5억달러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에 관해서건 어찌 틀릴 수 있겠습니까? 뭔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것을 실현하는 것과 동격입니다. 당신은 신이 됩니다." 이런 정신상태는 모든 긍정적 사고 주창자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행복도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한 혹은 긍정적인 사람들이 분명 직업적인 면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는 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직장을 구할 때는 대개 2차 면접까지 올라가고, 직장에서는 상사에게 더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잘 버티고, 출세의 사다리에서 먼저 위로 올라갑니다. 이런 현상은 긍정적 태도를 높게 평가하고 부정적인 사람들을 싫어하는 기업의 편견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 사고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한 예로 리먼브라더스의 고정자산 부문 글로벌 책임자였던 마이크 켈밴드는 현실주의를 내세우다 순교한 사람이었습니다. 2006년 말, 부동산 거품을 감지한 겔밴드는 점점 초조해졌고, 2006년 추가 보고에서 그는 CEO 리처드 풀드에게 "세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풀드는 그 부정적인 부적응자를 바로 해고했고, 그로부터 2년 뒤 리먼은 파산했습니다. 리먼의 사례에서 보듯 회사의 전체적인 긍정적 사고의 강요는, 불합리한 것에 대한 비판을 가로막고 이는 최악의 경우 파산의 길로 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이러니한점은 이렇게 긍정적 사고가 회사에 위기를 찾아오게 하고 불황에 빠질 때 긍정적 사고를 옹호하는 동기 유발 산업은 더욱 번창한다는 것입니다. 불황이 시작되자 이런 동기 유발 산업은 20%가량 성장합니다. 칼뱅주의는 가난이 태만을 비롯한 나쁜 습관의 결과라고 했고, 긍정적 사고는 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의식 탓이라고 합니다. 희생자를 비난하는 이런 시각은 최근 20년동안 우세했던 경제의 보수주의와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해고되었거나 해고를 눈앞에 둔 노동자들은 동기 유발 강연장으로 떠밀립니다. 긍정적 사고의 전파자들은 불황에 대해 이렇게 조언합니다. 플로리다 주의 어느 강연자의 말처럼 현재의 위기는 '기분이 쓰라릴 때 직장에서 쾌활한 척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이며 직장의 변화, 구조조정에 관해서는 '견뎌 내란 말입니다. 이 몸집만 커다란 애기 같은 양반들아!' 라고 몰아붙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볼때 인간의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일상적인 장애물은 빈곤입니다. 뉴욕 타임즈가 2009년 뉴욕 지역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가장 부유한 지역 사람들이 행복도가 가장 높았고, 가장 행복도가 낮은 지역으로 나온 브롱크스는 버려진 건물과 쓰레기 더미로 가득 찼으며, 뉴욕 시에서 가장 실업률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고용주들은 다운사이징의 희생자들을 다독이고 남은 사람들에게서 더 영웅적인 노력을 뽑아내기 위해 긍정적 사고에 의존합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긍정적 사고론자들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누구라도, 단지 자신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는 것만으로 언제든 부자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회와 상향 이동 가능성에 관한 강한 믿음은 미국인들이 불평등을 잘 감내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행복해지라는 긍정적 사고는 미국인들에게 행복감을 주었을까요? 심리학 전문 잡지 사이콜로지 투데이에서 지적하듯이 사회적으로 행복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동안 미국인들은 더 슬프고 불안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서 나오는 것들을 열심히 사들이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것은 그다지 놀라운 발견도 아닙니다. 긍정적 사고는 끊임없는 경계의 필요성을 폐기한 것이 아니라, 경계의 방향을 내부로 돌린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지옥과 파멸의 가능성이 아니라 성공의 기회에 몰입하는 것, 죄악이 아니라 힘을 찾아내기 위해 내면의 자아를 탐색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입니다. 문제는 왜 그렇게 내적인 부분에만 오로지 몰입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왜 사랑과 연대감을 품고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가? 깨달음의 빛을 찾아 자연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볼 수는 없는가?

긍정적 사고의 신봉자들처럼, 긍정적인 뉴스만을 듣고, 긍정적인 사람들만을 만나고, 내면적으로 긍정적이기만 하면 자기 주변의 모든 환경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은 그저 망상적 현실도피, 맹목적 낙관주의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긍정적 사고 서적들을 집대성한 시크릿에서 말하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뜨면 원하던 목걸이가 내 목에 걸려있고, 그저 긍정적으로 원하기만 하면 놀이동산의 긴 줄의 맨 앞에 서게 되는 그런 일들은 판타지에 불과합니다. 저자는 주의 깊은 현실주의는 행복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행복하길 원한다면, 사회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가난, 비만, 실업 등과 같은 현실 문제들을 향해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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