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죽은 날 - 엑손 밸디즈 호 기름 유출 사건의 진실과 거짓
리키 오트 지음, 강윤재.조아라 옮김 / 소나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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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알래스카의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에서 대재앙이 시작됩니다. 엑손 사의 밸디즈 호가 블라이 암초에 걸려 좌초되었습니다. 사고 이전에 밸디즈의 석유행동위원회에서 유조선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대형 참사가 미리 예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유출된 석유의 양은 1100만갤런(4만KL, 엑손 사의 조사)에서 3800만갤런(14만KL, 공익 과학자 조사)일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사고 지역에서 1200마일까지 석유가 퍼져나갔고, 바다 생태계와 사람들의 건강, 지역 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 책은 기름유출 사고로 인한 사람들의 피해, 환경적인 부분, 사고가 남긴 유산을 모두 다룬 방대한 보고서입니다. 이 책이 나온 시점 또한 유의미한 부분인데 첫째는 1989년의 사건이 아직도 진행과정이라는 점에서 기름유출 사고의 특성이 장기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둘째는 기업의 과학자들이 발표하는 내용은 언제든지 발표할 수 있는 반면, 공익적 단체에서 후원하는 과학자들의 보고는 법에 따라 뒤늦게 발표된다는 점입니다. 이 시간적 차이는 매우 중요한데, 대중들이 사건이 발생한지 삼사년이 지나면 사건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기업의 과학자들이 배포하는 홍보용 과학을 진실로 믿는다는 점입니다.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의 발췌문에 따르면, 석유와 세 가지 대표적인 용매제(분산제, 생물정화제, 다용도 탈지제)를 비롯해 1989년의 청소작업에 노출되었던 화학물질은 단기적(급성) 및 장기적(만성) 증후군을 일으키는 물질로 분류된다. 노출에 따른 급성 증후군은 피부염, 두통, 현기증, 메스꺼움, 중추신경계문제 등이며, 만성증후군은 빈혈, 백혈병, 혈액장애, 태아결함, 간 및 신장 손상, 전신 독성 등이다. - p.32 

당시 기름유출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 있어서 큰 문제중 하나는 청소작업자들이 무방비로 독성 물질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청소작업자 중 하나였던 알래스카 주 솔도트나에 사는 데일 헤릭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기름과의 접촉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엑손 사는 작업자들을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했지만 독성 증기를 들이마시는 일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기름이 풍화되면서 그런 증기가 온화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육 요원이 우리에게 팬케이크 위에 묻은 석유는 먹어도 괜찮다고 말했다."(Phillips, 1999) 당시 엑손사 뿐만 아니라 청소과정을 위임받은 베코 사는 작업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와 안전 장비를 전혀 주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우비와 마스크 정도만을 사용했는데, 우비는 화학적으로 물 외엔 아무것도 막을 수 없는 장비이고, 마스크 또한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청소작업자들에게 있어서 호흡기 전염병이 출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기도 감염의 발병률이 높게 나타납니다. 작업자의 절반을 넘어서는 6,722명의 사례가 보고됬습니다.(Exxon, 1989) 회사측에서 집계한 것만으로도 청소당시 50%가 넘는 발병률은 더 큰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장기적으로 청소작업자에게 영향을 끼친 것중 가장 흔한 질병은 화학물질 과민증이였습니다. 이 과민증은 정맥두엽, 풀립, 이명(귀울림), 이염, 우울증, 편두통, 발작, 집중결핍행동과다장애, 부정맥, 고혈압, 레이노현상, 천식, 습진, 두드러기, 과민성 장증후군, 섬유근통, 손저림증후군, 관절염, 결핵성 피부염 등을 야기시킵니다. 석유를 포함한 모든 화학물질에 과민반응하고 호흡곤란도 야기할 수 있는 이 질병은, 청소작업자로 하여금 정상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이들은 엑손사와 법정투쟁을 했고, 의미 있는 승소를 거두기도 합니다.

이러한 희생을 치루며 해낸 해변 청소 작업은 유의미했을까요? 엑손 사의 후원을 받은 호튼 팀은 조간대의 지배종인 다년생 암석해초인 푸쿠스는 대부분이 심한 기름오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기름이 들러붙어 메마르게 된 식물은 오그라들면서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6월 들어 호튼 팀은 식물의 새로운 성장을 목격합니다. 기름이 해안을 덮쳤을 때 푸쿠스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대규모의 동물 피해가 발생했던 지역에서도 동물 모집단이 빠른 속도로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새로운 종의 이주 생물이나 생존한 생물이 빈 공간을 차지하려고 되돌아올 것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4월 들어 엑손 사가 해안 청소작업을 시작하며 두가지 방법을 사용했는데, 첫번째 방법인 고압온수 세척이 시작되자 90%에 가까운 암석해초가 화상으로 잘려나갔고 강한 압력으로 바위에서 떨어져 나가 파괴됐습니다. 섭씨 60도의 온수를 강력한 힘으로 계속해서 가했기 때문에 기름에 오염되었을 당시만 해도 살아있었던 조간대 동물의 95%이상이, 일부 종의 경우에는 100%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해변의 생물은 그야말로 삶아진 것입니다. 이것은 정화가 기름 유출에 따른 직접 피해보다 더한 피해를 입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고압온수법은 화학물질들을 증기로 만듬으로서 해변의 생물들 뿐만 아니라 청소작업자들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입힙니다.

정화 지역과 비정화 지역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 정화 지역과 비정화 지역의 감소율이 거의 차이 없는 조건에서 추천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는 화학 비료를 추가로 살포하지 않는 것이다. (Capuzzo, Farrington and Kellogg) 

또한 화학적인 청소법 또한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습니다. 기름을 닦기 위해 사용된 스트로클린과 심플그린 뿐만 아니라 해변청소제로 사용된 이니폴은 엑손사의 제품으로 과학적 조사도 마무리되지 않은 제품이였습니다. 이니폴의 성능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였기 때문에 현장에서 마구잡이로 사용됬습니다. 이니폴은 심지어 우비까지 녹이는 독성을 지녀 작업자의 피부와 화학물질을 직접 노출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이런 와중에 엑손사는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자사의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청소과정을 직접 맡음으로서 청소과정을 과장했고, 법적인 방법을 이용해 청소에 드는 비용의 절반을 국고로 지급받기도 했습니다. 엑손사가 후원하는 과학자들의 발표를 바탕으로 언론에 대대적 홍보를 하기도 했는데, 이는 사실을 많이 왜곡하는 것이였습니다. 엑손 사는 결국 징벌의 손해 배상액 50억 달러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며 아직까지 배상하지 않고 있습니다.

머거트는 베코 사와 엑손 사의 하급관리자 대부분은 매우 진지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피해의 규모에 비해 청소작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욱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러나 상층 관리자와 최고위층 책임자들은 출세주의자에 불과했다.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느 날 엑손 사의 관리자가 작은 몸집의 원주민 노파가 양손에 석유가 가득 찬 쓰레기봉지를 들고 경사진 해변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보고 봉지마다 석유 1배럴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머거트가 응수했다. "참 튼튼한 노파네요. 한손에 136kg나 들고 있다니!" - p.57

이런 대재앙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남긴 유산은 있었습니다. 사고 이전의 과학에 비해 당시 피해를 입은 해달, 연어, 청어, 바다오리 등 수많은 해양생물들에 대한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바다의 해류패턴 연구, 플랑크톤 연구와 같은 분야에서 진일보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전쟁이 과학을 진화시킨다는 말처럼, 엑손의 기름유출 사고는 해양생태학 분야에 많은 프로젝트를 가져왔고, 석유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변화시켰습니다. 기름유출 사고로 인해 석유 화학물질이 사람과 환경에 단기간 그리고 장기간 유독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산업사회가 계속 발전하면서 바다로 스며드는 석유의 양은 1년에 엑손 밸디즈 사건의 10%에 달합니다. 이는 10년에 한번꼴로 엑손 기름유출 사고와 같은 대재앙을 우리는 계속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석유기반사회에 대한 초장기적인 물음을 제시합니다.

이런 1989년에 있었던 엑손의 기름유출사건의 보고서를 읽으며 필연적으로 2007년에 한국에서 있었던 '삼성-허베이 스피리트호 원유유출사건'이 생각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고, 성금 모금에 나섰습니다. 구글에서 관련 이미지를 찾아보면 놀랍게도 맨얼굴로, 기껏해야 흰색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사람들의 사진이 뜹니다. 1989년 엑손 사고의 청소작업자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1989년의 사고는 10년,15년이 지난 지금도 독성을 내뿜으며 생태계에 영향을 끼쳤고, 당시 기름작업을 하며 얻은 병으로 고통많은 많은 사람들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아직 5년밖에 지나지 않은 삼성-허베이 스피리트호 원유유출 사고의 미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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