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귀환
로렌스 커트너 · 셰릴 올슨 지음, 박미경 옮김 / 비즈앤비즈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범죄를 선동하고 부도덕하고 외설적이며 신성을 모독하는 온갖 상품을 아무런 규제 없이 대중에게 제시할 수 있다는 사람들의 태도 때문에 우리의 시민권 기준이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해졌습니다. 제작자들의 일을 규제하고 감독하지 못하면 사회 전체에, 특히 청소년들 사이에 범죄가 증가하고, 모든 계층 사람들의 도덕성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저명한 사회 지도자가 걱정했던 이것은 다름아닌 영화였습니다. 당시에는 정치가, 종교 지도자, 사회 활동가, 심지어 건강 관련 전문가들조차도 그런 작품이 도덕적 가치와 문화, 법질서, 심지어는 문명 자체를 파괴시킬 거라고 호들갑스럽게 비판했습니다. 아이들이 모험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타락한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주장했고, 갱 영화를 보면 도덕적 가치를 저버리고 상점을 약탈하고 기차를 폭파할 거라고 우려했습니다. 이런 부류의 영화 중에 대표적인 작품으로『대부The Godfather』가 있습니다.

이런 평가를 받았던 작품들은 과거에도 존재했습니다. 수백 년 전에는 소설이 그런 취급을 받았고, 그 이후엔 영화, 그 다음엔 만화가 그 자리를 차지했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과거의 싸구려 소설과 갱 영화와 만화책을 상상력이 풍부하고 때 묻지 않은 시절의 향수 어린 작품으로 생각합니다. 만화는 아직 오명을 다 벗지 못했지만, 현재 가장 주목받는 사회악은 다름아닌 게임입니다. 오늘날 게임산업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음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엄청난 우려를 받고 있습니다. 게임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게임이 아이들의 순수함과 미덕을 위협하고, 폭력적으로 만들며, 음란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폭력적인 게임은 뇌를 변화시키고 조종하며, 순수했던 우리의 아이들을 범죄자로 만든다고 말합니다.

부모들은 무의식중에 행동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기도 한다. 아이가 야구나 피아노를 매일 네 시간씩 연습하면, 부모는 아이가 헌신적인 운동선수나 음악가라고 생각한다. 프로야구팀의 모든 게임 통계와 시시콜콜한 사항까지 꿰고 있고, 그 팀의 모든 기념품을 사 모으는 십대는 열렬한 팬이라고 여겨진다. 이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취미이며 실제로 권장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아이가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똑같은 접근 방식을 취하고, 매일 여러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며, 게임의 세부 사항과 전략을 떠벌리면, 우리는 중독이라고 걱정한다. - p.236 

하버드의 로랜스 커트너와 셰릴 올슨은 그런 주장들이 과장된 두려움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현재 게임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두려움은 낯선 기술과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며, 과거의 소설, 영화, 만화처럼 사회에 받아들여질 문화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소설, 영화, 만화도 처음 등장했을 당시엔 엄청난 사회적 우려를 낳았고,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만화《배트맨》의 경우 배트맨과 로빈의 관계가 동성애적 분위기를 보여준다며 비판하던 종교 활동가들도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돌이켜볼만한 사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은 비판가들이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등과 같이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현대사회에선 어떤 논쟁도, 심지어 종교논쟁마저도 과학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게임에 대한 논쟁에서도 과학은 어디서나 등장합니다. 게임뇌 가설, 짐승뇌 이론, 폭력성 실험 등 다양한 주장들이 과학의 이름하에 실시되고 발표됩니다. 문제는 과학의 탈을 쓴 이런 주장들이 앨런 소칼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적 사기'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경험과 관점이 다른 문제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연구기준도 충족시키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과거에 담배회사들이 과학의 이름하에 담배와 건강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연구결과를 낸 역사를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편향된 데이터와 거짓 추론 그리고 논리적인 잔재주가 뒤범벅된 그 무엇이다. 숨겨진 데이터, 특정 결과를 염두에 둔 추론, 공격적인 독단주의, 그러므로 다시 말해 완전한 사기인 것이다. -《청부과학》p.103 

故최진실씨의 죽음으로 인한 사이버모욕죄 개정, 초등생 성폭행 사건으로 인한 아청법 개정 등 특정 사건이 사건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게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닌데, 미국에서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자 정치인들과 종교 활동가, 미디어는 조승희의 행동이 게임 때문이라고 떠들어댔습니다. 경찰이 게임이나 콘솔, 혹은 여타의 게임기기를 조승희의 방에서 전혀 발견하지 못한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조승희의 대학 룸메이트들 중 한 명이 조승희가 비디오게임을 플레이하거나 그에 관심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기자들에게 말했지만, 조승희의 살인 만행과 폭력적인 비디오게임 간의 가정된 연계는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조승희의 룸메이트는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기 때문에 조승희의 그런 점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십대 소년이 게임을 전혀 플레이하지 않는 것이 굉장히 별나다는 연구 결과와도 일맥상통합니다. 보통 아이들은 게임을 통해서 또래와 사회적 관계를 맺고 강화하며, 조승희가 게임에 관여하지 않은 점은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징표이자, 사회적 외톨이라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어느 순간부터 게임과 관련된 문제는 정치적 이슈가 되어버렸다. 게임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사실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 단지 폭력적인 게임이 아이들의 심리에 해롭다고 비난하는 언론 보도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든다. 현실을 백안시한 채 자신의 잇속만 챙기려는 정치가다운 처세다. 연방법원 아홉 곳이 삼 년간 거의 똑같은 법령을 연속해서 기각했다. 이 법안을 밀어붙인 사람들도 그 결과를 뻔히 알고 있다. 모두가 그것이 절대로 법령이 되지 못할 것임을 잘 안다. 그들은 애초부터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잘 아는 법령을 옹호하기 위해 세금을 쓸데없이 낭비한다. 이는 현실을 무시하는 냉소적인 처세다. 전혀 부모를 돕는 일이 아니다. 정치적 입지를 견고히 다지기 위한 사사로운 눈속임일 뿐이다. - p.297 

로렌스 커트너와 셰릴 올스는 게임을 하는 이유로 경쟁과 승리, 과정을 파악하는 과정을 즐기고, 다른 사람들과의 사교성을 유지하며, 화를 발산하고, 골치 아픈 문제를 잊고, 덜 외롭게 느끼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이는 게임이 다른 사회활동을 하는 어른이나 게임을 하는 아이나 별 차이가 없는 활동임을 말해줍니다. 콘텐츠는 폭력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지만 그 폭력과 공격성의 의미는 개개인 안에 있는 것이지, 게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다만 같은 놀이라도 어떤 아이가 가정에서 학대를 받고 있거나 가정 내 폭력을 목격하는 등 환경에 따라서는 그 의미는 다르게 다가올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합니다. 게임을 하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면, 문제는 게임이 아니라 현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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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신론자에게 암이 생겼습니다. 인생의 전성기에 느닷없이 찾아온 이 불청객은 식도암 4기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유명인이 병에 걸렸다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에게 화젯거리였지만, 우리나라와는 달리 단순한 감탄사에도 신을 언급하는 문화권에서 활동하는 유명인이 무신론자였기 때문에 관심은 한층 높아졌습니다. 종교는 생명을 죽인다고 말하고, 콜카타의 복녀 테레사 수녀를 교황청의 장사꾼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악마의 대변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사람은 위급하면 신을 찾는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히친스는 이 종교적인 주장이 틀렸음을 직접 보여줍니다. 악명높은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로 인한 육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히친스는 신을 찾거나 기도하지 않습니다. 장례식에서 어김없이 종교관계자가 등장하는 문화권이다보니 히친스에게도 죽기 전에 종교에 귀의할 것을 종용하는 종교인들이 많았습니다. 인터넷에선 히친스가 죽기전에 종교인이 될 것인지를 놓고 도박판이 벌어졌고, 미국의 유명 종교계 인사들도 크리스토퍼 히친스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심지어는 2010년 9월 20일을 '모두 히친스를 위해 기도하는 날'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반응들을 바라보며 히친스는 말합니다. 무엇을 위한 기도입니까?

이런 상황에서 기도의 공허함은 거의 가장 하찮은 문제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런 사소한 허망함 외에도, 신도들을 속여먹기 좋은 장난감쯤으로 취급하는 종교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광경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두려움과 불안감에 휩싸인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을 믿으라며 이용하는 광경. - p.48​ 

엄청난 고통과 불안감 속에서도 히친스가 지닌 종교에 대한 비판의 칼날은 녹슬지 않았습니다. 무신론자 히친스가 죽은뒤 영원히 타오르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으리라고 외치는 종교인 앞에서 히친스는 고뇌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습니다. 죽음 이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히친스는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삶을 불태웁니다. 자신이 죽어가는것을 슬퍼할 줄 알고, 새롭게 등장하는 암 치료법에 열광하고, 끊임없이 글을 씁니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환상에 기대지 않고 신의 도움 없이 살수 있는 그날까지 살다가 죽은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모습은 인간 그 자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입원했을 때 히친스는 편집자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이 늦어져서 미안하네. 곧 집으로 도착할거야." 그는 마지막까지 열정과 에너지가 솟을 때 글을 썼고, 최신 학문에 호기심을 느꼈고, 새로운 미술 전시회에 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히친스는 없습니다. 천국에서 천사들과 유토피아적 생활을 즐기고 있을 히친스도 없고,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히친스도 없습니다. 그러나 히친스는 있습니다. 평생을 목소리와 글로 살아간 히친스가 남기고 간 뛰어난 저작들은 내 등에,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계속 살아가고 있습니다. 책의 말미엔 구상시회권같은 구도라서 쓸쓸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이제 없는 히친스의 자유로움과 뛰어남을 느낄 수 있는 최후의 저작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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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신은 위대하지 않다 +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전2권 - 크리스토퍼 히친스 대표작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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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신론자에게 암이 생겼습니다. 인생의 전성기에 느닷없이 찾아온 이 불청객은 식도암 4기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유명인이 병에 걸렸다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에게 화젯거리였지만, 우리나라와는 달리 단순한 감탄사에도 신을 언급하는 문화권에서 활동하는 유명인이 무신론자였기 때문에 관심은 한층 높아졌습니다. 종교는 생명을 죽인다고 말하고, 콜카타의 복녀 테레사 수녀를 교황청의 장사꾼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악마의 대변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사람은 위급하면 신을 찾는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히친스는 이 종교적인 주장이 틀렸음을 직접 보여줍니다. 악명높은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로 인한 육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히친스는 신을 찾거나 기도하지 않습니다. 장례식에서 어김없이 종교관계자가 등장하는 문화권이다보니 히친스에게도 죽기 전에 종교에 귀의할 것을 종용하는 종교인들이 많았습니다. 인터넷에선 히친스가 죽기전에 종교인이 될 것인지를 놓고 도박판이 벌어졌고, 미국의 유명 종교계 인사들도 크리스토퍼 히친스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심지어는 2010년 9월 20일을 '모두 히친스를 위해 기도하는 날'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반응들을 바라보며 히친스는 말합니다. 무엇을 위한 기도입니까?

이런 상황에서 기도의 공허함은 거의 가장 하찮은 문제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런 사소한 허망함 외에도, 신도들을 속여먹기 좋은 장난감쯤으로 취급하는 종교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광경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두려움과 불안감에 휩싸인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을 믿으라며 이용하는 광경. - p.48​ 

엄청난 고통과 불안감 속에서도 히친스가 지닌 종교에 대한 비판의 칼날은 녹슬지 않았습니다. 무신론자 히친스가 죽은뒤 영원히 타오르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으리라고 외치는 종교인 앞에서 히친스는 고뇌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습니다. 죽음 이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히친스는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삶을 불태웁니다. 자신이 죽어가는것을 슬퍼할 줄 알고, 새롭게 등장하는 암 치료법에 열광하고, 끊임없이 글을 씁니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환상에 기대지 않고 신의 도움 없이 살수 있는 그날까지 살다가 죽은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모습은 인간 그 자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입원했을 때 히친스는 편집자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이 늦어져서 미안하네. 곧 집으로 도착할거야." 그는 마지막까지 열정과 에너지가 솟을 때 글을 썼고, 최신 학문에 호기심을 느꼈고, 새로운 미술 전시회에 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히친스는 없습니다. 천국에서 천사들과 유토피아적 생활을 즐기고 있을 히친스도 없고,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히친스도 없습니다. 그러나 히친스는 있습니다. 평생을 목소리와 글로 살아간 히친스가 남기고 간 뛰어난 저작들은 내 등에,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계속 살아가고 있습니다. 책의 말미엔 구상시회권같은 구도라서 쓸쓸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이제 없는 히친스의 자유로움과 뛰어남을 느낄 수 있는 최후의 저작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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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정의
오에 겐자부로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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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를 대표하는 단어를 하나 고른다면, '창조경제'가 아닐까 합니다. 국정 핵심 키워드로 '창조경제'를 제창한 이래, 미디어나 사회 곳곳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창조경제'란 무엇입니까?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창조創造에 경제가 붙었으니 경제를 발명해야 한다는 뜻일까요? 이 단어가 등장한 이래 창조경제를 둘러싸고 각양각색의 해석과 적용 사례가 나오고 있어 과연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과학고를 설립할때도 창조경제, 스크린골프를 만들때도 창조경제, 층간소음 해결을 위해서도 창조경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세계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한국인 가수 싸이나 그가 지원군으로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넛잡'이 디즈니의 '겨울왕국'과 대결을 하는것도 창조경제라고 합니다. 창조경제의 정의定義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화하는 언어는 사회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에리히 프롬은《소유냐 삶이냐》에서 사회의 변화를 언어의 변화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연의 지배, 물질적 풍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개인적 자유의 보장이라는 위대한 약속으로 시작한 산업시대가 낳은 무한소비의 시대는 '존재양식' 과 '소유양식' 중 사람들에게 소유양식에 집중하게 했습니다. 이런 변화에 대해 언어 역시 변화함으로써 대응하고 있는데, 산업시대에 진입한 이래 사람들의 언어에서 명사의 사용은 증가하는 반면, 동사의 사용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다'는 단어를 과거엔 동사로 표현했지만, 현재는 명사로 표현합니다. 언어는 변화하고, 정의定義도 변화합니다.

오에 겐자부로가 주목하고자 하는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언어를 어떻게 정의定義할 것인가? 한 사람의 언어를 정의定義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정의定義하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아사히신문에 연재했던 이 에세이는 오에 겐자부로에 대한 정의定義인 것입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다양한 언어를 보여주고, 그것의 정의定義를 고민하게 합니다. 정치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도의적이란 표현을 영어moral로 대체하고 윤리적 상상력moral imagination으로 해석한다면 어떨까, 교육에 있어서 배운 것을 되돌리다unlearn과 다시 가르치다unteach란 무엇일까?

그의 정의定義에 관한 문답이 인상적인 것은 그것이 그의 정의正義에도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1970년에《오키나와 노트》를 썼는데, 이 책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에서 정부가 섬 주민들에게 강요한 집단 자결에 대한 논평이 들어 있습니다. 이 비극에 대해 일본사교과서는 집단자결이 '내몰리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문장에서 주어를 감추고 수동태 문장을 만들어 앞뒤를 맞춤으로써 문장의 의미, 그 사건의 책임에 대한 부분을 모호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교과서의 정의定義에 대해 오에 겐자부로는 반대의견을 피력했고, 결국 새역모 등의 단체들에게 고소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져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정신, 사상으로 끝까지 살아가는 거다. 봉건적인 것, 광신적인 것, 배외주의는 모두 패배한다. 자연의, 인류의 법리는 반드시 이긴다. Vive l'humanite.' 저의 번역이라면, 마지막 말은 '인간다움 만세' - p.314 

핵무기의 '억지력'이 상대를 위협하여 물러가게 한다는 동사에서 나온 말에서 그 폭력적인 어감이 어떻게 이성적이고 안정성이 느껴지는 언어로 치환하게 되었는가, 나라에 목숨을 바치라는 명령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어떻게 깨끗한 죽음일 수 있는가,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언어의 정체는 무엇인가. 오에 겐자부로는 오키나와 문제 뿐만 아니라 반전활동, 탈핵운동 등 여러 사회활동을 하면서 사회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정의定義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의 문제의식은 일본사회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 말한 '우리나라'라는 언어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우리나라'의 '우리'는 누구인가?

언어는 사회를 만들고, 사회는 언어를 만듭니다. 어떤 사회를 만드느냐는 곧 어떤 언어를 만드느냐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만듭니다. 그 의견중에 불의로운 것, 비인간적인 것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밀하게 우리 사회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장애인을 차별하고, 동성애자들을 괴롭히고, 외국인을 멸시하고,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다 여기지 않을까? 이 시대, 이 사회의 작가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오에 겐자부로는 정의定義로 시작해 언어로써 투쟁하라고 말합니다. 4년 전 우리사회에 열풍을 가져온 마이클 샌델의《정의正義란 무엇인가》에 이어 오에 겐자부로의《말의 정의定義》는 다시금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책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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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무비 - 조승희 프로파일
후안 고메스 후라도 지음, 송병선 옮김 / 꾸리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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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일어난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은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큰 충격을 가져온 사건입니다. 같이 수업을 받던 학생이 다른 학생들과 교수들을 공허하게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스컴은 대중들이 이 사건을 이해하는데 별로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범인이 우편으로 메시지를 보낸 NBC는 범인의 선언문을 자기 회사의 시청률을 올리는데 사용했고, 저자 후안 고메스 후라도는 사건 당시 공식사망자가 33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란 제목으로 방송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하던 앵커를 보며 매스컴은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조승희는 반 지하층에서 사는 가난한 집의 아이였습니다. 조승희는 어렸을 때부터 조용했고, 요구하지 않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조승희가 8살이 되던 해에 미국으로 건너간 조승희 가족은 대부분의 이민자 가족들처럼 빈곤하고 고된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부모가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는데 사용하다 보니, 조승희의 삶은 처음부터 외톨이 그 자체였습니다. 빈곤한 가정, 조용한 성격, 부족한 사교성은 다른 학생들의 좋은 표적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다른 학생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승희에게 고함치고 때리며 괴롭혔습니다. 조승희는 버지니아 공대에 진학했는데, 그의 어머니는 조승희가 버지니아 같은 곳이 아니라 프린스턴 같은곳에 갔으면 좋겠다고 이웃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솔직히 인정하건대, 우리는 그를 너무 못되게 대했습니다. 어떤 경우 잔인하고 비열하기까지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의 옛 동창은 지적한다. "우리는 그에게 물건들을 집어던졌고, 그에게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족스(고등학교의 운동선수들과 인기가 많은 학생들)'들은 그에게 욕을 퍼붓고 때리곤 했지요. 그는 너무나도 손쉬운 표적이었지요. 그는 분노를 삼키고 또 삼켰어요." - pp.146~147 

조승희는 대학 1학년 때 컴퓨터공학 과목을 선택했지만, 2학년이 되면서 영문학으로 전공을 변경합니다. 심리학자 리처드 베루저는 조승희의 선택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의사소통을 하려는 필사적인 시도라고 평가하면서, 그가 자신의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2005년에 어느 여학생은 조승희가 스토킹을 했다고 하면서 그를 캠퍼스 경찰에 고발합니다. 같은 해에 다른 여학생도 조승희가 불온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하면서 조승희가 결코 다시는 접촉하지 못하도록 경찰에 요청합니다. 조승희는 상식적인 판단과 사교성이 부족했고, 결국 그가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고자 애쓰거나 원했을때, 그의 노력은 스토킹이 되었습니다. 그는 남들이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느낀다고 인식했습니다. 조승희는 사회와 격리되면서 반환증상이라 불리는 편집증적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건 당일 조승희는 학교로 가기 전에 기숙사에서 두명을 살해합니다. 그중 의미있는 인물은 에밀리 힐스처인데, 조승희와 에밀리는 같은 사격장에서 사격 연습을 했었습니다. 그녀와 조승희가 어떤 관계였는지는 모르지만, 조승희는 그녀를 첫번째 희생자로 선택합니다. 그후 범행의 주요 무대인 노리스 홀에 가서 입구를 전부 쇠사슬로 봉쇄합니다. 조승희의 이런 계획적인 행동은 그가 우발적인 살인범이 아니라는것을 말해줍니다. 조승희는 204, 206, 207, 211호실에서 5명의 교수와 30명의 학생을 추가로 살해하는데, 그는 언제나 강의실에 들어가서 교수를 제일 먼저 살해했고, 그후 학생들을 살해합니다. 그러나 살인 그 자체에는 집착하지 않았는데, 학생들이 힘을 합쳐서 문을 막자 포기하고 다른 곳을 간다던지, 이미 죽은 학생들에게도 마구 총을 쏘는 등의 모습을 보입니다. 생존자들은 조승희가 증오도 분노도 아닌 텅 빈 공허한 눈빛을 하고 있었으며, 총을 쏠때 이렇게 말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안녕, 잘 지내?"

"내가 조승희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순간은 일대일 강의를 하던 시간이었어요. 나는 그에게 다른 학생들과 의사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고 말했고, 그는 처음으로 내게 말했어요. "난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그럼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안녕, 잘 지내?'라고 말해봐." 조승희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내게 말했지요. "언젠가 그렇게 해보겠어요." - 루신다 로이, 조승희의 옛 교수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에서 또 한가지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피해자들의 심리상태였습니다. 피해자들은 옆방에서 총을 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사중이라고 생각하거나, 책상이 넘어진 소리라고 판단합니다. 우리의 뇌는 마음의 평정을 가져다줄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데 심리학자들은 이를 불일치 자극의 상황화라고 부릅니다. 이런 무의식적인 방어 매커니즘으로 인해 피해자들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살해되고 맙니다. 205호의 학생들은 운이 좋게도 복도에 있는 조승희를 보았고, 신속하게 바리케이드를 만듬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런 슬픈 사건을 만들어낸 문제점 중 하나로 미국의 총기소유 제도를 지목합니다. 조승희는 인터넷과 총포상에서 총기를 구입하는데 아무 제약이 없었습니다. 학교와 병원에서 정신불안정을 선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운전면허증, 영주권과 돈만으로 합법적으로 총기를 살 수 있었습니다. 무기 소지엔 심지어 연령 제한도 없는데, 일리노이 주의 한 아버지가 태어난지 열달 된 아이에게 총기 소지 허가증을 발부해달라고 신청한 일도 있었습니다. 세 장의 신청서와 60달러, 두 장의 사진만으로 열달 된 갓난아이가 합법적으로 12구경 베레타 엽총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 총기협회는 개인의 자유와 자기 보호를 위해서 총기소유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이런 사건은 그러한 주장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사회적 충격을 안겨준 흉악 살인사건은 성장과정이나 자질, 환경 등 다양한 원인이 중복되면서 비로소 일어나므로 포커게임의 카드 한두 장을 바꾸어 버리면 전혀 다른 카드패가 되듯이, 개인이 지닌 한두 개의 요인을 바꿀 수만 있다면 살인이라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자질이 어떠했든 어릴 때부터 당해온 폭력이 아이들의 심리적 발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마음의 상처로 남으며 결국 폭력행동의 이미지나 패턴으로 각인되어 버리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이를 죽이는 아이들》p.92 

취재와 증언, 조사보고서를 토대로 저자는 총기난사 사건이라는 끔찍한 비극을 입체적으로 재현해 내는데 성공합니다. 저자는 조승희가 일으킨 사건이 가져다주는 질문들이야말로 이 사건에서 얻어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조승희가 한국출신이었기 때문에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은 한국에서도 크게 이슈화되었는데, 저자는 그가 일으킨 사건이 한국인이라는 사실과는 무관하며, 한국 사회가 보여준 지나친 피해의식과 집단 참회 같은 반응은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의심의 여지없이, 조승희가 지닌 정신적인 문제가 야기한 폭력의 싹은 피할 수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사건은 희생자 가족의 비극이며, 미국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조승희가 터뜨린 폭탄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터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은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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