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신은 위대하지 않다 +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전2권 - 크리스토퍼 히친스 대표작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신론자에게 암이 생겼습니다. 인생의 전성기에 느닷없이 찾아온 이 불청객은 식도암 4기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유명인이 병에 걸렸다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에게 화젯거리였지만, 우리나라와는 달리 단순한 감탄사에도 신을 언급하는 문화권에서 활동하는 유명인이 무신론자였기 때문에 관심은 한층 높아졌습니다. 종교는 생명을 죽인다고 말하고, 콜카타의 복녀 테레사 수녀를 교황청의 장사꾼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악마의 대변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사람은 위급하면 신을 찾는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히친스는 이 종교적인 주장이 틀렸음을 직접 보여줍니다. 악명높은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로 인한 육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히친스는 신을 찾거나 기도하지 않습니다. 장례식에서 어김없이 종교관계자가 등장하는 문화권이다보니 히친스에게도 죽기 전에 종교에 귀의할 것을 종용하는 종교인들이 많았습니다. 인터넷에선 히친스가 죽기전에 종교인이 될 것인지를 놓고 도박판이 벌어졌고, 미국의 유명 종교계 인사들도 크리스토퍼 히친스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심지어는 2010년 9월 20일을 '모두 히친스를 위해 기도하는 날'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반응들을 바라보며 히친스는 말합니다. 무엇을 위한 기도입니까?

이런 상황에서 기도의 공허함은 거의 가장 하찮은 문제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런 사소한 허망함 외에도, 신도들을 속여먹기 좋은 장난감쯤으로 취급하는 종교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광경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두려움과 불안감에 휩싸인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을 믿으라며 이용하는 광경. - p.48​ 

엄청난 고통과 불안감 속에서도 히친스가 지닌 종교에 대한 비판의 칼날은 녹슬지 않았습니다. 무신론자 히친스가 죽은뒤 영원히 타오르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으리라고 외치는 종교인 앞에서 히친스는 고뇌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습니다. 죽음 이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히친스는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삶을 불태웁니다. 자신이 죽어가는것을 슬퍼할 줄 알고, 새롭게 등장하는 암 치료법에 열광하고, 끊임없이 글을 씁니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환상에 기대지 않고 신의 도움 없이 살수 있는 그날까지 살다가 죽은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모습은 인간 그 자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입원했을 때 히친스는 편집자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이 늦어져서 미안하네. 곧 집으로 도착할거야." 그는 마지막까지 열정과 에너지가 솟을 때 글을 썼고, 최신 학문에 호기심을 느꼈고, 새로운 미술 전시회에 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히친스는 없습니다. 천국에서 천사들과 유토피아적 생활을 즐기고 있을 히친스도 없고,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히친스도 없습니다. 그러나 히친스는 있습니다. 평생을 목소리와 글로 살아간 히친스가 남기고 간 뛰어난 저작들은 내 등에,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계속 살아가고 있습니다. 책의 말미엔 구상시회권같은 구도라서 쓸쓸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이제 없는 히친스의 자유로움과 뛰어남을 느낄 수 있는 최후의 저작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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