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무비 - 조승희 프로파일
후안 고메스 후라도 지음, 송병선 옮김 / 꾸리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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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일어난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은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큰 충격을 가져온 사건입니다. 같이 수업을 받던 학생이 다른 학생들과 교수들을 공허하게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스컴은 대중들이 이 사건을 이해하는데 별로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범인이 우편으로 메시지를 보낸 NBC는 범인의 선언문을 자기 회사의 시청률을 올리는데 사용했고, 저자 후안 고메스 후라도는 사건 당시 공식사망자가 33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란 제목으로 방송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하던 앵커를 보며 매스컴은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조승희는 반 지하층에서 사는 가난한 집의 아이였습니다. 조승희는 어렸을 때부터 조용했고, 요구하지 않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조승희가 8살이 되던 해에 미국으로 건너간 조승희 가족은 대부분의 이민자 가족들처럼 빈곤하고 고된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부모가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는데 사용하다 보니, 조승희의 삶은 처음부터 외톨이 그 자체였습니다. 빈곤한 가정, 조용한 성격, 부족한 사교성은 다른 학생들의 좋은 표적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다른 학생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승희에게 고함치고 때리며 괴롭혔습니다. 조승희는 버지니아 공대에 진학했는데, 그의 어머니는 조승희가 버지니아 같은 곳이 아니라 프린스턴 같은곳에 갔으면 좋겠다고 이웃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솔직히 인정하건대, 우리는 그를 너무 못되게 대했습니다. 어떤 경우 잔인하고 비열하기까지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의 옛 동창은 지적한다. "우리는 그에게 물건들을 집어던졌고, 그에게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족스(고등학교의 운동선수들과 인기가 많은 학생들)'들은 그에게 욕을 퍼붓고 때리곤 했지요. 그는 너무나도 손쉬운 표적이었지요. 그는 분노를 삼키고 또 삼켰어요." - pp.146~147 

조승희는 대학 1학년 때 컴퓨터공학 과목을 선택했지만, 2학년이 되면서 영문학으로 전공을 변경합니다. 심리학자 리처드 베루저는 조승희의 선택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의사소통을 하려는 필사적인 시도라고 평가하면서, 그가 자신의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2005년에 어느 여학생은 조승희가 스토킹을 했다고 하면서 그를 캠퍼스 경찰에 고발합니다. 같은 해에 다른 여학생도 조승희가 불온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하면서 조승희가 결코 다시는 접촉하지 못하도록 경찰에 요청합니다. 조승희는 상식적인 판단과 사교성이 부족했고, 결국 그가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고자 애쓰거나 원했을때, 그의 노력은 스토킹이 되었습니다. 그는 남들이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느낀다고 인식했습니다. 조승희는 사회와 격리되면서 반환증상이라 불리는 편집증적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건 당일 조승희는 학교로 가기 전에 기숙사에서 두명을 살해합니다. 그중 의미있는 인물은 에밀리 힐스처인데, 조승희와 에밀리는 같은 사격장에서 사격 연습을 했었습니다. 그녀와 조승희가 어떤 관계였는지는 모르지만, 조승희는 그녀를 첫번째 희생자로 선택합니다. 그후 범행의 주요 무대인 노리스 홀에 가서 입구를 전부 쇠사슬로 봉쇄합니다. 조승희의 이런 계획적인 행동은 그가 우발적인 살인범이 아니라는것을 말해줍니다. 조승희는 204, 206, 207, 211호실에서 5명의 교수와 30명의 학생을 추가로 살해하는데, 그는 언제나 강의실에 들어가서 교수를 제일 먼저 살해했고, 그후 학생들을 살해합니다. 그러나 살인 그 자체에는 집착하지 않았는데, 학생들이 힘을 합쳐서 문을 막자 포기하고 다른 곳을 간다던지, 이미 죽은 학생들에게도 마구 총을 쏘는 등의 모습을 보입니다. 생존자들은 조승희가 증오도 분노도 아닌 텅 빈 공허한 눈빛을 하고 있었으며, 총을 쏠때 이렇게 말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안녕, 잘 지내?"

"내가 조승희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순간은 일대일 강의를 하던 시간이었어요. 나는 그에게 다른 학생들과 의사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고 말했고, 그는 처음으로 내게 말했어요. "난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그럼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안녕, 잘 지내?'라고 말해봐." 조승희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내게 말했지요. "언젠가 그렇게 해보겠어요." - 루신다 로이, 조승희의 옛 교수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에서 또 한가지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피해자들의 심리상태였습니다. 피해자들은 옆방에서 총을 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사중이라고 생각하거나, 책상이 넘어진 소리라고 판단합니다. 우리의 뇌는 마음의 평정을 가져다줄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데 심리학자들은 이를 불일치 자극의 상황화라고 부릅니다. 이런 무의식적인 방어 매커니즘으로 인해 피해자들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살해되고 맙니다. 205호의 학생들은 운이 좋게도 복도에 있는 조승희를 보았고, 신속하게 바리케이드를 만듬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런 슬픈 사건을 만들어낸 문제점 중 하나로 미국의 총기소유 제도를 지목합니다. 조승희는 인터넷과 총포상에서 총기를 구입하는데 아무 제약이 없었습니다. 학교와 병원에서 정신불안정을 선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운전면허증, 영주권과 돈만으로 합법적으로 총기를 살 수 있었습니다. 무기 소지엔 심지어 연령 제한도 없는데, 일리노이 주의 한 아버지가 태어난지 열달 된 아이에게 총기 소지 허가증을 발부해달라고 신청한 일도 있었습니다. 세 장의 신청서와 60달러, 두 장의 사진만으로 열달 된 갓난아이가 합법적으로 12구경 베레타 엽총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 총기협회는 개인의 자유와 자기 보호를 위해서 총기소유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이런 사건은 그러한 주장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사회적 충격을 안겨준 흉악 살인사건은 성장과정이나 자질, 환경 등 다양한 원인이 중복되면서 비로소 일어나므로 포커게임의 카드 한두 장을 바꾸어 버리면 전혀 다른 카드패가 되듯이, 개인이 지닌 한두 개의 요인을 바꿀 수만 있다면 살인이라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자질이 어떠했든 어릴 때부터 당해온 폭력이 아이들의 심리적 발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마음의 상처로 남으며 결국 폭력행동의 이미지나 패턴으로 각인되어 버리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이를 죽이는 아이들》p.92 

취재와 증언, 조사보고서를 토대로 저자는 총기난사 사건이라는 끔찍한 비극을 입체적으로 재현해 내는데 성공합니다. 저자는 조승희가 일으킨 사건이 가져다주는 질문들이야말로 이 사건에서 얻어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조승희가 한국출신이었기 때문에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은 한국에서도 크게 이슈화되었는데, 저자는 그가 일으킨 사건이 한국인이라는 사실과는 무관하며, 한국 사회가 보여준 지나친 피해의식과 집단 참회 같은 반응은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의심의 여지없이, 조승희가 지닌 정신적인 문제가 야기한 폭력의 싹은 피할 수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사건은 희생자 가족의 비극이며, 미국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조승희가 터뜨린 폭탄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터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은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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