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안해도 되는 직업
최혁준 지음 / 라임위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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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가장 개성적으로 표현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이름입니다. 그러나 이름 못지않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직업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생의 삼분의 일, 혹은 절반을 직업인으로서 살아가기에, 직업은 사람에게 있어서 제2의 아이덴티티가 됩니다. 때문에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만큼 중대한 일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노동자를 두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하나는 아니말 라보란스라 불리는 것으로, 굴레를 짊어진 짐승처럼 매일 고된 일을 되풀이해야 하는 인간을 말합니다. 아렌트는 아니말 라보란스의 대표적인 존재로 아이히만을 지적했는데, 아이히만은 자신의 일이 되게 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 그 자체가 목적이었습니다. 아이히만은 사악한 동기에서 행동하지 않았고, 누구를 죽일 어떤 의도도 없었으며, 유대인을 증오하지도 않았지만, 결국 그가 한 행동은 수많은 유대인을 가스실에 넣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아렌트는 다른 부류의 노동자로 호모 파베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호모 파베르는 베르그송에 의해 창출된 말로,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노동을 함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만들어야 하는 존재로 보는 인식입니다. 아렌트는 호모 파베르에서 공동의 삶을 만드는 인간의 이미지를 보았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호모 파베르 노동자는 물질적인 노동과 행위를 판단하는 존재로, 아니말 라보란스보다 상위의 존재입니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 역시 호모 파베르를 구체적 실천을 통해 생명을 만드는 존재로 인식하며, 현대 노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지적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말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호모 파베르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을 하라고 외쳐도,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말해도, 우리는 대부분 아니말 라보란스가 됩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연봉, 사회적 인지도 등에 높은 가치를 두고 직업을 선택합니다. 물론 연봉, 사회적 인지도는 객관적으로 정형화될 수 있는 기준이라는 면에서 무시할 만한 가치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밖에 모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초, 중, 고등학교 때부터 동일한 교육을 받고, 대학교는 성적순으로 학과에 배정됩니다. 수능 1등을 한 학생이 의과대학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당연하게도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 선행되어야 하는 물음, 나 자신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생각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쉽게, 아무 생각 없이도 판단할 수 있는 기준, 연봉과 사회적 인지도에 따라 직업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대부분 실패합니다.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일단 취업하고 보자는 청년들이 증가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취업되는 곳의 일을 하게 됩니다. 신입직원을 뽑을 때 경력직을 선호하는 경향도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일단 취업해서 어떤 일이던 1년, 혹은 3년만 일하면 경력직으로 다른 일을 알아보겠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입직원 4명 중에 한 명은 1년 내에 퇴사를 합니다. 다급히 선택한 직장의 연봉이나 환경 때문에 퇴사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연봉과 인지도가 괜찮은, 흔히 말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간 직원들도 많이 퇴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현상은 아니말 라보란스가 됐음을 직장인들이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만을 충족시켜준다면 좋은 직장이 되지 못합니다. 정서적인 부분, 일이 정말 좋아서 하는 그런 직업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서적인 부분만을 충족시켜 주는 직장도 좋은 직장은 아닙니다. 오늘날 열정노동이라 불리는 부작용이 등장했습니다. 비공식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에서만 머물던 열정은 산업의 내부로, 노동으로 유입 되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열정노동이라는 새로운 노동윤리를 가져 왔습니다. 이 새로운 윤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열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니며, 그러므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열정노동의 명분을 통해 자본주의는 청춘들에게 꿈을 꾸라고 강요하고, 열정이라는 미명 하에 그 꿈을 실현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동을 거의 공짜로 착취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열정노동은 일은 더 열심히 시키면서도 돈은 더 적게 줄 수 있는 최적화된 착취를 가능케 합니다. 때문에 정서적인 부분과 물질적인 부분을 모두 충족시켜줄 수 있는 직장을 만드는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민주화운동과 복지사회로의 전환은 직장의 물질적인 부분을 상당수 개선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물질적인 부분의 개선도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현재 더 시급한 과제는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일, 즉 천직을 찾는 일입니다. 천직을 찾는 일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관련된 기술을 익히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서도 자유로워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그런 수고로움을 감수하느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그냥 일하고 살겠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값어치 있는, 천금보다 비싼 것을 희생해야 합니다. 바로 자신의 진짜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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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지라
모하메드 엘나와위 & 아델 이스칸다르 지음, 김용현 옮김 / 홍익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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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11 테러는 전 세계에 큰 충격을 가져왔고,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변화 가운데서 두각을 나타낸 것 중 하나는 카타르의 방송국 '알자지라' 였습니다. 알자지라는 9.11 테러를 자신이 저질렀다고 주장한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비디오 테이프를 독점 공개함으로서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방송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알자지라는 단순히 오사마 빈 라덴의 한 순간의 선택으로 유명해진 방송사는 아닙니다. 알자지라는 이미 그당시에 아랍과 다른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가장 효과적인 언론사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랍의 언론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알자지라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방송국이 되었습니다.

알자지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소유의 오빗 라디오 텔레비전과 BBC의 아랍지부 사이의 계약파기로 인해 생겨났습니다. BBC의 아랍지부가 하루아침에 망하게 되자 소속 전문가들이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는데, 이들을 카타르의 셰이크 하마드 왕자가 고용하게 됩니다. 영국에서 교육받은 하마드 왕자는 알자지라가 정부의 조사와 통제, 또는 조작에서 완전하게 독립하여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하는 방송사로 발전하기를 원했고, BBC의 자유로운 방송 스타일을 그대로 계승하게 됩니다. 비록 알자지라가 카타르의 지원금을 많이 받는 구조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들은 하마드 왕자의 바램을 상상이상으로 잘 실현시키게 됩니다.

소국 카타르의 영세한 방송국 알자지라가 순식간에 대중들의 인기를 얻고 아랍 최고의 방송국이 된 비결은 단순했습니다. 그들은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들을 보여줬습니다. 가감없이, 오직 사실만을 중도적 입장에서 가장 빠르게 보도했습니다. 다른 아랍의 언론들은 대부분 왕가의 소유, 정부의 소유다 보니, 땡전뉴스와 같은 보도만을 하거나 종교적,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방송만을 고집했습니다. 그러나 알자지라는 정부의 부패, 정치적 의지의 부재, 이슬람의 보수주의, 민주주의의 결여, 종교적 해석 등을 과감히 방송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아랍 국가들은 알자지라와 카타르 정부에 적대적인 반응을 표명했지만, 알자지라를 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위성방송으로 만들게 됩니다.

나는 그동안 아랍의 발전을 방해했던 것이 언론 자유의 부재라고 확신한다. 우리 사회의 더러운 것들이 그동안 양탄자 밑에서 너무도 오랫동안 만연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것이 그리 오래 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확신한다. 아랍 세계는 서서히 자신들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알자지라가 거기에 한줄기 희망의 빛을 비추고 있다. - p.187

알자지라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인 토크쇼 '상반된 견해'나 '하나 이상의 의견'등은 여러 논쟁적인 이슈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지닌 게스트들을 초청해 토론하게 합니다. 이 토크쇼엔 아랍의 유명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미국의 고위관리, 종교적 이유로 추방된 이슬람 민주주의자, 심지어는 이스라엘의 관료까지 출연합니다. 이들의 논쟁은 매우 격렬하고 때론 게스트가 방송도중 나가버리는 사고도 일어나지만 알자지라는 그런 격렬한 논쟁을 환영합니다. 그들은 논쟁이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자지라의 방송은 아랍인들을 위성티비 앞으로 모여들게 만들고 있으며, 위성티비를 가지지 못한 아랍인들은 녹화된 비디오를 구입해 시청하기도 합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기사가 나온다. 하물며 사건을 다루는 스트레이트 취재가 아니라 현상을 다루는 문화나 특집류 기사에서는 똑같은 보도자료를 배포받거나 같은 인물을 인터뷰하고도 기자의 관점과 역량에 따라 천차만별의 생산물이 나온다. 그것이 신문의 차이를 만든다.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p.462

1999년 후세인의 국군의날 연설의 특종, 2000년 2차 팔레스타인 해방운동 보도 등으로 신뢰를 쌓은 알자지라는 아랍에서 가장 개방된 방송사, 가장 언론다운 언론이라는 평가를 받은 덕에 오사마 빈 라덴이 자신의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달할 방송사로 선택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아랍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아랍 정부의 입장에서, 혹은 서구의 미디어를 통해 바라봐야 했습니다. 그러나 알자지라는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여과없이 보여줌으로서 언론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알자지라의 이러한 행동들이 거의 모든 아랍국가들을 포함해 미국, 이스라엘 등의 분노를 가져오게 되지만 동시에 그들이 가장 알자지라를 주목하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알자리라의 행보는, 미국 언론의 발전사와도 맥락을 같이합니다.

테드 터너가 걸러지지 않은 뉴스를 24시간 방송하는 채널을 들고 나타난 타이밍은 절묘했다. 1980년대 CNN의 출범과 사세 확장은 우리를 감시하는 자들이 강요하는 서사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듯 보였다. 터너 자신이 그랬듯, CNN은 기존 뉴스 방송의 변절자이며 네트워크 혹은 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고 표현의 구속을 받지 않았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CNN은 초기에 전통적인 뉴스 매체와 학계 그리고 정치권으로부터 전방위 공격을 받아야 했다. -《현재의 충격》pp.72~73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꼭 등장하는 것이 정부에 반대의견을 낼 수 있는 언론의 등장입니다. 서구는 물론이요, 우리나라에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젊은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한 뒤, 동아일보가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이 저지른 민주화운동 탄압과 인권 유린을 보도하자 그에 대한 보복으로 정보기관의 감시와 미행, 취업 방해, 구속과 연행과 고문, 공민권 제한 등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동아투위는 조선투위와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와 함께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해 6월항쟁에 도움을 주었고, 동아투위의 주요 인원이 기반이 되어 한겨레신문을 창간하는 등 격변의 한국민주화 운동사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철옹성같은 30년 독재를 자랑하던 이집트 독재자, 무바라크가 실각한 사건 역시 언론이 가지고 있는 위력을 짐작케 합니다. 아랍의 집권자들과 미국의 패권주의자들이 두려워하는 민주주의라는 변화의 바람이 아랍에도 불어오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카타르의 용기있는 방송사, 알자지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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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 - 국가자본주의론의 분석
토니 클리프 지음, 정성진 옮김 / 책갈피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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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에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했던 강대국 소련의 붕괴는 평면적으로 자본주의의 승리이자 자유경쟁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해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렸을 때 봤던 이원복 교수의 책에서도 공산주의 국가는 정부가 일자리와 봉급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태해진다고 말하는가 하면, 어떤 네티즌들은 공산주의의 비합리성을 대학교 조별과제에 비유해서 비꼬기도 합니다. 그러나 토니 클리프의 주장대로라면 이런 비유들은 잘못된 것입니다. 대학교 조별과제가 일부의 노동이 맺은 결실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불합리하다면, 소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소련은 서구 세계 못지않게 자본주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유경쟁적이었고, 안타깝게도 전체주의적이었고 제국주의적이었습니다.

토니 클리프의 이 책은 소련의 스탈린 체제가 절정에 달했던 1948년에 출간되었고, 계속 보완되었습니다. 토니 클리프는 소련이 미국과 함께 세계 초강대국의 위치에 올라서고, 우주경쟁시대를 자랑스럽게 보도하고, 그것이 사회주의 진영의 승리라고 말하는 것을 지켜봤지만,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것을, 또 사회주의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논란이 있었지만, 소련이 붕괴한 오늘날에 와서 클리프의 이론은 소련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인지되고 있습니다. 그의 지적처럼 소련은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분해됬으며, 소련은 자신이 사회주의 국가라고 외쳤지만, 북한의 공식 명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만 민주주의국가가 아닌 것처럼 소련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혁명 초기, 소련이 왕정제를 극복할 무렵에는 사회주의적 요소가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방어할 권리, 즉 노동조합의 결성의 자유가 있었고, 노동자들이 과도한 노동을 하지 않게 해주는 법적 보호장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회주의적 요소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1922년만 하더라도 노동자들은 일하고 싶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노동법으로 보장받았습니다. 그러나 1931년에 이르러서는 어떤 노동자도 정부의 특별 허가 없이는 자신의 거주지를 바꾸지도, 직장을 바꾸지도 못했습니다. 소련 노동자들의 임금은 성과급으로 지급됬는데, 노동자들간의 경쟁을 고취시키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누진성과급을 지급했습니다. 노동자의 지각 또는 태만시간이 20분을 초과할 경우, 그 노동자는 즉각 해고될 수 있었는데, 해고는 곧 죽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과중하고 비위생적인 노동에 있어서 남녀는 평등하게 배치되었습니다. 광부, 부두하역, 철도 노동자처럼 힘이 필요한 직업에도 남녀의 차별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1944년에 이르러서는 90퍼센트에 달하는 소련 노동자들이 자유경쟁 체제에서 일했습니다.

소련 노동자들의 노동은 자본주의적 노동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형태였습니다. 노동생산성은 계속 증가했지만 실질임금은 계속 하락했습니다. 정치적 자유도 없었고, 노동자들을 지켜줄 최소한의 장치도 없었습니다. 소련의 노동은 노예노동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관료의 부실 경영과 낭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민의 노력과 자기희생 덕분에 초기 소련은 공업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이런 소련의 자본의 시초 축적기는 마르크스가《자본》에서 비판한 영국의 실상을 닮았습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식민지에서 약탈된 부가 유럽을 살찌웠고, 어린아이의 하루 16시간 노동이 초기 영국 산업을 이끌었듯이, 후진국이었던 소련이 빠른 시간에 강대국으로 부상하는데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련이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라는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빠른 자본 축적을 하게 된 명분에는 노동자들의 국가를 만들겠다는, 사회주의 국가를 이룩하겠다는 모순적 상황이 있었습니다.

마르크스, 레닌은 물론이고 트로츠키도 사회주의 혁명은 한 나라에서는 완수할 수 없다는 국제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계체제는 서로 경쟁하는 국가들로 이루어진 체제이며, 소련이 완전히 고립되지 않는 이상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일국 단위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혁명을 수행한다면, 머지않아 자본주의적 조치들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의견은 옳았습니다. 나라의 후진성과 세계 자본주의의 압력은 급속한 자본의 축적을 요구했고, 노동자의 계급화를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 관료의 지배계급화 현상을 불러왔습니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생산성을 따라잡기 위해 관료가 모든것을 명령하고 주도하는, 사회주의와는 정반대의 길을 간 것입니다.

실제로 국가를 '소유'한 채 축적 과정을 통제하는 소련 관료는 자본의 인격화의 가장 순수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련 관료는 전통적 자본가 계급의 부분부정인 동시에 이 계급의 역사적 사명의 가장 참된 인격화이기도 한 것이다. 관료 계급이 소련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는 데서 그친다면, 가장 중요한 문제, 즉 소련에서 지배적인 자본주의 생산관계라는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련 사회의 가장 정확한 명칭은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다. - pp.186~187

클리프는 소련의 국가자본주의는 서구 제국주의 나라들보다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기 전의 일본 제국주의에 더 가깝다고 말합니다. 4대 재벌이 모든 주식회사 자본의 60퍼센트를 차지할 만큼 자본이 집중된 일본과 국가와 관료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던 소련은 공통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두 나라 모두 타국을 약탈하고 착취하는 전쟁경제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과잉생산 공황과 마찬가지로 전쟁경제도 자본주의적 요소입니다. 소련은 위성국가들을 노동력적인 면에서, 자본적인 면에서 착취했고 새로운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계속 팽창해야 했습니다. 소련 관료들은 끊임없이 생산성 향상을 추구했습니다. 이를 위해 투자의 압도적인 부분을 임금이 아닌 생산수단에만 돌렸습니다. 그 결과 오랫동안은 생산성이 향상되었고, 소련은 강대국의 지위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산이 서방의 생산과 비교할 때 어떠한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한계에 달하면서 생산성이 세계 수준에서 떨어지게 되자 점점 더 많은 자본을 문제 투성이인 산업에 투자하게 됩니다. 취약한 소련은 서방과 경제적으로 경쟁할 능력이 떨어졌으므로 경쟁은 주로 군비경쟁의 형태를 취했고,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계속 떨어졌습니다.

오랜 역사가 증명해주듯이 대중을 끊임없이 착취하며 성장하는 제국은 폭발할 수밖에 없었고, 소련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착취당하던 위성국가들은 독립투쟁을 시작했고, 빈부격차, 정치적 억압, 언론의 부재 등 내부에서도 여러 문제가 터졌습니다. 클리프에 따르면 소련의 붕괴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승리도 아니요, 인류에게 자본주의 이외의 대안은 없을거라는 담론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소련의 체제가 자본주의의 변종인 국가자본주의 체제였다는 점에서, 서구 자본주의 체제와도 어느정도 공통점이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자본주의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오히려 소련의 붕괴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사회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아마르티아 센이 말한 것처럼 진정한 발전은 자유로서의 발전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교훈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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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사이드 MBA
마이클 매지오 & 폴 오이오 & 스콧 셰이퍼 지음, 노승영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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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한다면 크루그먼이나 맨큐 등 유명한 학자들의 책들이 먼저 생각나기 마련이지만, 원론적인 책들은 일반인에게 다가가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기도 합니다. 게르트 기거렌처의 지적처럼, 현대과학의 흐름은 인문학 논문에서마저도 수학적, 과학적 방법론이 도입되어 각종 수식과 그래프로 채워지는 실정입니다. 경제학 역시 마찬가지로 방대한 이론과 수학, 그리고 그래프는 경제학을 다가가기 어려운 학문으로서 바라보게 합니다. 일반인들은 전문가들의 지식이 필요하지만 전문가들은 점점 고도화되어가기 때문에, 전문가와 일반인의 간격을 이어줄 수 있는 학자의 책들이 어느 때보다도 가치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쉬우면서도, 재밌어야 합니다.《로드사이드 MBA》는 그런 요구를 잘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세 명의 경제학자, 마이클 매지오, 폴 오이어, 스콧 셰이퍼는 보스턴 경제학 학회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린 신발가게에서 뜻하지 않은 경험을 합니다. 아마도 경제학은 제대로 배우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신발가게 직원과의 대화에서 성과급, 제품 차별화, 경쟁력 등 다양한 경제, 경영적인 면을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대화가 경제학 학회보다 두 배는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말합니다. 소상공업의 전략 과제가 대기업들의 전략 문제 못지않게, 혹은 그보다 더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한 세 명의 경제학자는 자동차 여행을 겸한 경제학 탐방을 시작합니다.

체육관 이름을 '여성을 위한 피트니스 타임'이라고 짓기만 하면 여자들이 알아서 등록할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핏타임이 여성에게 어필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특징으로는 청결, 금남, 다양한 피트니스 수업, 놀이방 등이 있다. 핏타임이 이런 특징을 갖추면 고객들에게는 이곳을 선택할 분명한 이유가 생긴다. - p.84

경제, 경영의 목적은 다양하고 효과적인 전략이 왜 성공했는지를 이해하고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전략을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경제학적 이론 토대로 체계화해 결국 더 나은 결정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다양한 사례나 데이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기업과 시장이 처한 상황에 따라 해결법이 다른 경제, 경영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때문에 세 명의 경제학자가 직접 발품을 팔고자 하는 행위는 효과적입니다. 재무 제표 그 이상의 것이 현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 명의 경제학자는 넓은 미국 대륙 곳곳에 있는 소상공업을 직접 탐방해 사업 규모에 대한 이야기, 진입장벽에 대한 이야기, 제품 차별화에 대한 이야기, 가격 책정에 대한 이야기, 브랜드를 관리하는 방법, 직원을 채용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법 등을 이야기합니다.

"1990년대에 이미 반스앤노블과 보더스 같은 대형 서점이 등장하기 시작했죠. 코스트코 같은 할인점이 생겼고요. 그 때문에 특정 분야의 책 판매에 타격을 입었어요. 그쪽에서는 주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를 30퍼센트나 대폭 할인해서 팔았거든요." 당연히 우리는 이렇게 물었다. 독자들이 선댄스에서 계속 책을 사도록 베스트셀러를 할인해보았느냐고 말이다. 크리스틴은 할인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오히려 효자 상품이던 베스트셀러를 매장에서 대거 철수했다. - p.278

책에서 나오는 다양한 사례들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일련의 해답을 말하고 있습니다. 동네에서 빵집을 하던 사람 앞에 모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 등장할 경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떤 시설에 투자할 것인가, 가격은 얼마나 올려야 하는가,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는가, 직원들에게 얼마를 주어야 하는가 등의 이야기들은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봉급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 명의 경제학자들은 자칫하면 딱딱해질 수 있는 이런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나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인간미와 유머까지 곁들임으로써 도로 위의 여행에 독자들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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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소수자의 인권 - 공익과 인권 04
한인섭 외 지음 / 사람생각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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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도 성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외치는 퀴어문화축제가 열렸습니다. 벌써 15회를 맞이하는 축제지만, 행사 도중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성적 소수자에게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공익인권법센터에서 열린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이 나온지 1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경청할 가치가 있습니다. 양현아, 한채윤, 이석태, 홍춘의, 장복희는 법적 차원에서 성적 소수자들은 어떤 쟁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입법이 필요한지,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성애와 같은 성적 소수자들을 비정상적 내지 병리적 성적 지향으로 바라봅니다. 이런 편견은 동성애가 비정상적인 것이거나 병리적인 성격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그렇게 바라보는 사회가 이성애중심주의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미셸 푸코도 이를 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 바라봤는데, 푸코의 역사관점에 따르면 섹슈얼리티는 근세의 에로스와 구분되는 근대의 특징입니다. 근대에서 섹슈얼리티란 정상과 이상을 정의하고 표준과 일탈을 해부하는 지식이며, 자연적인 것도 본능적인 것도 아닌 문화와 역사의 산물입니다. 섹슈얼리티의 사회에서 성은 정통성을 부여받은 이성애 커플인 부부의 성애만이 특권화되고, 동성애는 배척됩니다.

부부간 성애가 다른 종류의 성애보다 더 우월한 것이라던가, 이성 간 성기성교가 정상적인 성애이며 다른 것은 모두 일탈이라고 하는 등의 명제는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이성애중심주의는 성인남녀가 일정한 연령에 이르면 혼인하여 자녀를 낳고, 평생 한 사람과 혼인관계를 가진다는 이른바 정상적 결혼관 내지 가족관을 유일한 규범으로 제시하고 현대국가는 이런 규범을 시민들에게 제시, 강요합니다.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나뉘며,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성 결정 방식은 최근의 생물학적 연구에 의하여 오랫동안 사회에 의해 믿어져 온 양성가설이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됨에 따라 근거를 상실하게 되었고, 기존의 양성가설을 대체할 새로운 사회 기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염색체의 구조에 기초하여 한 개인의 성을 정의하는 판단의 불합리성은 스페인 허들 선수인 Maria Patino의 예에 의하여 잘 설명되고 있다. Ms. Patino는 1985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Ms. Patino는 남성호르몬 불감증 증후군(AIS) 간성자였다. 그녀가 외부생식기상의 성, 외모, 자기 동일시 등이 명백히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염색체 구조는 남성의 염색체였다. - pp.108~109

그동안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염색체, 성기의 외관, 기타 사회통념상 합리적이라고 판단될만한 근거 등에 의해서 결정되었습니다. 즉 성에 의한 구분인데, 여러 학자들은 젠더에 의한 구분을 사회가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젠더는 사회가 개인에게 부여하는 사람의 외모, 인격적 속성 및 사회성적 역할로, 젠더와 성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버틀러는 젠더 정체성의 핵심은 수행성에 있다고 말합니다. 젠더란 성염색체, 호르몬, 성기 등과 같은 자연적 성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젠더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지식이며, 이를 수행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즉, 남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남자답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적으로 남자다움을 수행하기 때문에 남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적 구분과 엄밀히 구분됩니다.

여기서 '같은 인간'으로 본다는 것은 그가 생물학적 인간인지의 여부가 아니라 '나의 동료'로 삼을 수 있느냐 여부이다. 나의 동료가 아니라고 했을 때, 여기서 '나'란 누구인가. 그 '나'란 성적 소수자는 물론 아니며, 오히려 모든 '인간종'을 심판하는 아무 결함 없는 (즉, 아무 '소수자성' 없는) 나이다. 그는 유색인도, 장애인도 아니고, 실업자도 아니고, 불임증과 선천적 질병이 있는 사람도 아닐 것이고, 물론 남자일 것이다. 그렇다면 묻는다. 왜 수많은 소수자들 혹은 '소수자성'을 가진 '내가' 완전무결한 '그'의 동료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소수자성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 p.40

오늘날 전통적인 가족관계와 성적 구분은 의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기든스는 현대사회의 섹슈얼리티 변화를 친밀성 개념으로 풀어 나가며 재생산 없는 섹슈얼리티 사회를 이야기하는데, 오늘날 임신과 출산의 의미를 과거와 다르게 받아들이는 현대인의 사고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동성애혐오자들이 동성애 관계가 아이를 출산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자연적으로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했었다면, 그러한 판단은 더 이상 현대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이 기준이 된다면, 불임 이성애 부부도 비정상이라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입양의 가치를 가치있다고 판단하며, 이런 관점에서 동성애부부는 오히려 이성애부부보다 더 바람직한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입양으로 인한 사회의 재생산이 의미있다고 판단되는 사회에서, 동성애부부들은 이성애부부만큼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기 전에 먼저 머리로 인식하고 그런 다음 마음속 깊이 감정적인 차원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타자'는 없다는 것, '타자'란 중요한 본질적 면에서 바로 '우리 자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나처럼 검은(Black like me) 사람이란, 바로 우리와 같은 인간(Human like us)을 의미한다. -《블랙 라이크 미》p.404

소수자의 정체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것이 바람직하다라는 도덕적 판단과는 거리가 멉니다. 동성애는 나와 관련만 안되면 상관없다는 방관주의나 낙관주의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소수자의 문제 해결은 자신의 문제로 동일시하는 것이며, 자기자신의 문제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누군가는 소수만이 주장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소수만 즐기는 서브컬처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소수만 좋아하는 자동차를 좋아합니다. 성적 소수자는 그것이 단지 성적 지향일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소수자이며,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을 배제하는 것은 이방인 안에 존재하는 인간공동체를 죽이는 것이고, 그로써 자기자신을 인간공동체로부터 배제하는 것입니다. 헌법의 가치는, 그리고 현대 사회의 정신은 우리는 저들, 소수자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돌려주고 정의로운 평등을 다짐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성적 지향일지라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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