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지라
모하메드 엘나와위 & 아델 이스칸다르 지음, 김용현 옮김 / 홍익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9.11 테러는 전 세계에 큰 충격을 가져왔고,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변화 가운데서 두각을 나타낸 것 중 하나는 카타르의 방송국 '알자지라' 였습니다. 알자지라는 9.11 테러를 자신이 저질렀다고 주장한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비디오 테이프를 독점 공개함으로서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방송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알자지라는 단순히 오사마 빈 라덴의 한 순간의 선택으로 유명해진 방송사는 아닙니다. 알자지라는 이미 그당시에 아랍과 다른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가장 효과적인 언론사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랍의 언론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알자지라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방송국이 되었습니다.

알자지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소유의 오빗 라디오 텔레비전과 BBC의 아랍지부 사이의 계약파기로 인해 생겨났습니다. BBC의 아랍지부가 하루아침에 망하게 되자 소속 전문가들이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는데, 이들을 카타르의 셰이크 하마드 왕자가 고용하게 됩니다. 영국에서 교육받은 하마드 왕자는 알자지라가 정부의 조사와 통제, 또는 조작에서 완전하게 독립하여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하는 방송사로 발전하기를 원했고, BBC의 자유로운 방송 스타일을 그대로 계승하게 됩니다. 비록 알자지라가 카타르의 지원금을 많이 받는 구조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들은 하마드 왕자의 바램을 상상이상으로 잘 실현시키게 됩니다.

소국 카타르의 영세한 방송국 알자지라가 순식간에 대중들의 인기를 얻고 아랍 최고의 방송국이 된 비결은 단순했습니다. 그들은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들을 보여줬습니다. 가감없이, 오직 사실만을 중도적 입장에서 가장 빠르게 보도했습니다. 다른 아랍의 언론들은 대부분 왕가의 소유, 정부의 소유다 보니, 땡전뉴스와 같은 보도만을 하거나 종교적,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방송만을 고집했습니다. 그러나 알자지라는 정부의 부패, 정치적 의지의 부재, 이슬람의 보수주의, 민주주의의 결여, 종교적 해석 등을 과감히 방송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아랍 국가들은 알자지라와 카타르 정부에 적대적인 반응을 표명했지만, 알자지라를 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위성방송으로 만들게 됩니다.

나는 그동안 아랍의 발전을 방해했던 것이 언론 자유의 부재라고 확신한다. 우리 사회의 더러운 것들이 그동안 양탄자 밑에서 너무도 오랫동안 만연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것이 그리 오래 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확신한다. 아랍 세계는 서서히 자신들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알자지라가 거기에 한줄기 희망의 빛을 비추고 있다. - p.187

알자지라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인 토크쇼 '상반된 견해'나 '하나 이상의 의견'등은 여러 논쟁적인 이슈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지닌 게스트들을 초청해 토론하게 합니다. 이 토크쇼엔 아랍의 유명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미국의 고위관리, 종교적 이유로 추방된 이슬람 민주주의자, 심지어는 이스라엘의 관료까지 출연합니다. 이들의 논쟁은 매우 격렬하고 때론 게스트가 방송도중 나가버리는 사고도 일어나지만 알자지라는 그런 격렬한 논쟁을 환영합니다. 그들은 논쟁이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자지라의 방송은 아랍인들을 위성티비 앞으로 모여들게 만들고 있으며, 위성티비를 가지지 못한 아랍인들은 녹화된 비디오를 구입해 시청하기도 합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기사가 나온다. 하물며 사건을 다루는 스트레이트 취재가 아니라 현상을 다루는 문화나 특집류 기사에서는 똑같은 보도자료를 배포받거나 같은 인물을 인터뷰하고도 기자의 관점과 역량에 따라 천차만별의 생산물이 나온다. 그것이 신문의 차이를 만든다.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p.462

1999년 후세인의 국군의날 연설의 특종, 2000년 2차 팔레스타인 해방운동 보도 등으로 신뢰를 쌓은 알자지라는 아랍에서 가장 개방된 방송사, 가장 언론다운 언론이라는 평가를 받은 덕에 오사마 빈 라덴이 자신의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달할 방송사로 선택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아랍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아랍 정부의 입장에서, 혹은 서구의 미디어를 통해 바라봐야 했습니다. 그러나 알자지라는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여과없이 보여줌으로서 언론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알자지라의 이러한 행동들이 거의 모든 아랍국가들을 포함해 미국, 이스라엘 등의 분노를 가져오게 되지만 동시에 그들이 가장 알자지라를 주목하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알자리라의 행보는, 미국 언론의 발전사와도 맥락을 같이합니다.

테드 터너가 걸러지지 않은 뉴스를 24시간 방송하는 채널을 들고 나타난 타이밍은 절묘했다. 1980년대 CNN의 출범과 사세 확장은 우리를 감시하는 자들이 강요하는 서사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듯 보였다. 터너 자신이 그랬듯, CNN은 기존 뉴스 방송의 변절자이며 네트워크 혹은 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고 표현의 구속을 받지 않았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CNN은 초기에 전통적인 뉴스 매체와 학계 그리고 정치권으로부터 전방위 공격을 받아야 했다. -《현재의 충격》pp.72~73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꼭 등장하는 것이 정부에 반대의견을 낼 수 있는 언론의 등장입니다. 서구는 물론이요, 우리나라에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젊은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한 뒤, 동아일보가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이 저지른 민주화운동 탄압과 인권 유린을 보도하자 그에 대한 보복으로 정보기관의 감시와 미행, 취업 방해, 구속과 연행과 고문, 공민권 제한 등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동아투위는 조선투위와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와 함께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해 6월항쟁에 도움을 주었고, 동아투위의 주요 인원이 기반이 되어 한겨레신문을 창간하는 등 격변의 한국민주화 운동사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철옹성같은 30년 독재를 자랑하던 이집트 독재자, 무바라크가 실각한 사건 역시 언론이 가지고 있는 위력을 짐작케 합니다. 아랍의 집권자들과 미국의 패권주의자들이 두려워하는 민주주의라는 변화의 바람이 아랍에도 불어오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카타르의 용기있는 방송사, 알자지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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