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노바디
자코 반 도마엘 감독, 자레드 레토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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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 반 도마엘 감독이 [제8요일] 이후 13년만에 세상에 내놓은 [미스터 노바디]는 그 사유와 연출에 있어 거창하고도 집요한 작가적 야심이 엿보이는 영화다. 망각의 천사가 인중 마크를 찍는 걸 잊어 자신의 탄생 전 과거부터 미래까지 볼 수 있는 아홉 살 소년 니모 노바디의 선택에 따라 연령대 별 평행우주 - 아홉 가지 시공간 - 이 펼쳐지는 복잡한 서사에 비둘기 심리 실험 및 상대성, 카오스, 엔트로피, 기생충 가설(숙주 공진화), 빅뱅과 빅크런치 등 무수히 많은 과학 이론 및 철학 담론을 아우르며 아트하우스풍 멜로부터 SF까지 각종 장르를 종횡무진 누빈다. (첨언하겠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미스터 노바디]의 사유를 온전히 음미하기 위해서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대표작 [토토의 천국]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토토의 천국]에서 노년의 토토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어린 토토를 화자로 삼는다. 혹은 역으로, 어린 토토가 노년의 자신을 상상하며 그 관점을 차용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었다. 즉, 감독은 자기가 누렸어야 할 인생의 정수를 타인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강박증 주인공을 상정하고 다중 화자의 관점과 시점을 공명시키면서 폐쇄적인 '존재' 개념을 해체한다. 그는 [토토의 천국]에서 이미 평행우주 개념을 작품에 접목시켜 강압적인 '존재'와 '선택' 개념의 해방, 자유를 통해 누려지는 삶의 환희를 노래하며 한 편의 우화 내지 동시와도 같은 인생 찬가를 영상에 옮긴 셈이다.

 

[미스터 노바디]는 내게 있어 [토토의 천국]의 확장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이 난해하게 와닿는 이유는 아홉 살 니모 노바디가 상상하는 혹은 미리 내다보는 노년의 니모 노바디가, (즉 [토토의 천국]과 마찬가지로) 다른 평행우주로 분열된 동일한 주인공이 작중 화자이기 때문이다. 영화 내용을 회술하는 니모 노바디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기차역에서 헤어지는 어머니와 아버지 중 누굴 따라가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 아홉 살 니모에게서 파생된 118세 노인이다. 그러므로 노년의 니모가 존재하는 세계에선 그 누구도 그의 국적이나 과거 행적을 알지 못한다. 모두가 세포 재생술을 받고 자신에게 줄기세포를 제공할 돼지 한 마리 씩 갖고 있는 근미래, 그곳에서 니모 노바디는 자연 노화로 사망할 마지막 인간으로 매스컴에 소개되고 그의 기억을 떠올리려는 박사와 기자의 인터뷰에 의해서 영화 내용이 전개된다. 앞서 설명한 영화 설정을 파악한다면, 그의 기억이라는 것이 이미 벌어진 과거의 일이 아니고 아홉 살 니모의 관점에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다양한 삶의 선택지임을 알 수 있다.

 

어린 니모가 어머니를 따르느냐 아버지를 따르느냐에 이어 어머니를 따를 경우 만나게 될 안나라는 여성 그리고 아버지를 따를 경우 만나게 될 앨리스와 진이라는 여성들과의 사랑과 삶을 통해서, 그 각각의 경우 속에도 여러 갈래로 나뉠 우연과 선택에 따라 그의 다채로운 팔색조 인생이 만화경처럼 펼쳐진다. 그 모든 가지 않을 길까지 탐색한 후 니모 노바디는 깨닫는다. 모든 길이 올바른 길이며 각자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나'란 존재는 내가 있기 전에 나를 있게 한 것들과 내가 있던 동안 선택하고 관계한 모든 것들은 물론 선택하지 않은 길들, 그리고 내가 없는 훗날 나로 인해 일어날 일들과 일어나지 않게 될 일들까지도 포함한 총체임을. 인생은 선택의 문제일 수 있으나 그로 인한 우열의 기준은 없음을. 어떤 선택이든 그 자체로 삶임을. 순간, 니모가 어머니 아닌 아버지를 따랐을 경우 앨리스의 뼛가루를 뿌리기 위해 화성으로 가던 우주선에서 만나게 됐을 과학자 안나의 예측대로 우주의 팽창이 멈추고 수축으로 돌아서는 빅크런치 현상이 일어나면서 시간은 되돌려진다. 노년의 니모가 존재하던 평행우주는 해체되고 아홉 살의 니모는 기차 레일에서 발을 옮겨 숲을 향해 달린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비껴 선 것이다. 그건 부정이 아닌 긍정이다. 피치 못할 선택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의 불확정성, 비결정성으로부터의 해방, 그걸 넘어선 벗삼음, 무한한 선택 가능성으로의 도약이다.

 

복잡한 설정과 내용을 서정적인 영상에 담아낸 자코 반 도마엘 특유의 연출이 돋보였으나 영화는 프리젠테이션이 아니거늘, 중간중간 각종 가설 및 담론에 대해 설명조로 일관하는 장면들이 심히 걸린다. 플래쉬백과 슬로우모션 등 온갖 영화 기법들이 너무 자주 남용된 점도 작품적으로 시정이랄까, 그 고유의 풍미를 깎아내렸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그 외적 양식과 스토리텔링은 물론 대사까지 미니멀하게 단순화하면서 작품 자체를 열어 확장한 데 비해서 [미스터 노바디]는 너무 복잡하게 꼬아서 되려 작품이 닫혀버린 감이 있다. 허나 작법과 표현상 아쉬웠던 한계에도 불구하고 [미스터 노바디]는 감히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비견할 만한 인간과 우주에의 비전을 품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오랜 세월을 거쳐 수많은 영화팬들에게 거듭 재발견되면서 명작으로 자리매김하리라 믿는다. 

 

P.S. 중간중간 삽입곡으로 쓰인 유리스믹스의 Sweet Dreams, 네나의 99 Red Luftballons 같은 80년대 팝 명곡들 덕에 한층 더 즐거운 감상이 됐다. 영화 후반부에선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전작 [제8요일]에서 주연을 맡았던 파스칼 뒤켄이 카메오로 깜짝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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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리스 그리폰 북스 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강수백 옮김 / 시공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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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영화 시나리오는 내게 불쾌한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긴 프롤로그에서, 영화는 크리스의 가족을 소개하고 그의 노모에게 과도한 비중을 둔다. 노모는 가족의 유대를 상징할 뿐 아니라 조국, 대지를 상징하고, 이것은 러시아의 민속 문화에서 강력한 함의를 지닌다. 나로 말하자면, 크리스의 가족 관계는 관심사가 아니었으며, 영화에서도 문제시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랜 논의 끝에 나는 어렵사리 크리스의 가족 이야기를 대부분 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때쯤에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와 내 소설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고향, 달콤한 지구'와 '차가운 우주'의 이미지가 대비되는 '인식의 드라마'가 형상화되길 기대하고 있었다. 우주 정거장의 인간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 솔라리스의 바다에서 만들어져, 행성의 광활하고 열린 공간과 작고 폐쇄된 우주 정거장 간의 적대감을 상징하는 드라마 말이다. 안타깝게도 타르코프스키는 한쪽 편을 들어 '차가운 우주'에 대비해 '따뜻한 고향 지구'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국 지구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인간의 마인드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난해한 문제와 씨름하는 인식의 드라마 대신 타르코프스키는 인식의 문제와 그 한계와는 무관한, '대단히 탁월한' 도덕극을 만들어 냈다. - 나리만 스카코브,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3장 솔라리스의 환상, 125쪽, 1979년 'The Profession of Science Fiction'지 스타니스와프 렘 인터뷰 인용 -

 

 

솔라리스 행성에 파견된 심리학자 크리스와 솔라리스의 생각하는 바다에 의해 그의 과거 기억에서 복제된 죽은 아내 하리의 모사체. 솔라리스 행성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스스로 사고하며 대기권의 생물체 뇌파로부터 잠재의식을 받아들여 그 기억 속 존재를 물질화하는 하나의 유기체라 할 수 있다. 하리는 점차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토로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뇌하는 실체로 묘사된다.

 

 

공상과학소설 [솔라리스(1961)]의 원작자 스타니스와프 렘이 자기 작품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 각색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솔라리스(1972)]에 진저리를 쳤다는 사건은 영화광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일화다. 원작에 대한 타르코프스키의 관점은 왜곡과 일탈, 예술적 변형, 창조적 파괴라 할 만큼 소설의 의미론적 방향성을 완전히 틀어 버렸다. 원작소설의 정신은 세간에 회자되는 '이해할 수도 친해질 수도 없는 것은 어디에나 존재하니, 다만 인간이 보이는 모든 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 뿐.'이라는 '솔라리스 잠언'에 드러나 있다. 스타니스와프 렘 자신도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작품 취지로 들었다. 소설 속에서 솔라리스의 우주정류장에 유배된 학자들은 전혀 지구를 고향으로 여기지 않는다. 거대하고 복잡한 도시에서 자신을 잃어 버린 채 헤매고 다니는 개인에게 지구는 우주와 마찬가지로 낯설고 황량한 곳이며 솔라리스라는 행성, 그 미지의 적대적인 공간이 되려 지향, 도약으로까지 비춰진다. 허나 행성을 관찰하며 환원하고 과학적 의미를 부여하려던 솔라리스트들의 시도는 헛된 노력이 되며 냉철하고 이지적인 인간의 정신은 끝내 외계 행성 솔라리스의 생각하는 바다와의 접촉에 성공하지 못한다.

 

반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이 명대사로 집약된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은 부질없다. 우리에게 우주 정복의 야망 따윈 없다. 지구의 영역을 우주로 확대할 뿐이다. 더 이상의 세계는 필요 없다. 자신을 비춰볼 거울이 필요할 뿐이다. 인간에겐 인간이 필요할 뿐이다.' 소설이 지구와 행성 솔라리스를 분리한 선형적인 세계라면 영화는 지구와 솔라리스 사이에 상호 침투, 합성이 반복되는 비선형의 세계다. 타르코프스키는 우주와 외계행성이 주요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반에 지구의 중력, 인간 존재의 무게를 싣는다. 지구는 인간에게 아늑한 고향이며 미지의 행성 솔라리스의 생각하는 바다 위에서 표류하고 있음에도 인간의 정신은 끊임없이 지구를 향한다. 솔라리스의 바다는 솔라리스트들의 괴로운 기억을 복제하길 멈추고 마침내 지구를 복제하기 시작한다. 크리스는 솔라리스의 바다가 보내온, 아니 실은 스스로의 기억과 자의식의 투영이자 죄책감과 양심의 일부인, 자신 때문에 자살했던 아내 하리 앞에 참회하고 화해에 이르며 솔라리스가 복제한 지구의 고향집에서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그 품에 안긴다.

 

결코 인간은 인간으로부터, 자신이 인간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 사실을 수긍하면서 오히려 솔라리스의 생각하는 바다는 기억과 환상을 매개로 주인공 크리스 내면의 영역으로 옮겨진다. 영화 속 솔라리스의 바다가 지구의 대륙과 섬을 복제하기 시작하는 장면은 외형적인 접촉 불가능성이 내면적인 접촉의 실현 가능성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환원적인 이성에 국한될 때 타자와의 접촉 및 이해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던 인간의 인간중심적인 입장과 사고가 사랑의 가치를 긍정하고 휴머니티의 한계를 자성하면서 타자를 끌어 안을 수 있는 일말의 여지를 남긴다. 그 가부, 시시비비와 별도로 타르코프스키는 영화 [솔라리스]를 통해서 실제와 환상의 경계를 허물고 공상과학영화라는 장르마저 인간화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솔라리스]가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대한 사회주의의 대답 내지 대응이라고 회자되던 시절이 있었고 실제 작품을 본 식자들은 보란 듯이 그 평을 폐기 처분했었다. 허나 돌이켜 보건대 그게 사실 전혀 근거없는 평가만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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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그의 아내 - 아웃 케이스 없음
박희순 외, 신동일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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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인물의 욕망과 관계를 살피면서 우리 사회를 유비한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도식적인 만큼 통렬한 영화다. 임신 중인 아내를 둔 신혼 친구에게 아들을 낳으면 민혁(민중혁명 약자)으로, 딸을 낳으면 예니(맑스의 아내)로 이름을 지으라는 사내가 있다. 군대에서 동갑내기 고참과 후임으로 철학 에세이 책을 주고 받던 예준(장현성 扮)과 재문(박희순 扮)은 사회에 나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고졸 출신 요리사 재문은 예준을 동경하며 그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도 한다. 운동권 출신으로 고도자본의 첨병 역할을 자처, 남들 보기에 버젓한 외환딜러로 살아가는 예준에겐 노동 계급의 재문과 친구라는 사실이 삼팔육 세대 지식인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동시에 속된 우월감과 허영심을 채워주기도 한다.


물론 두 친구 간에 인간적으로 순수한 감정 교류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구조 속에서 계급 차이는 늘 정신적 유대를 압박하고 구축한다. 예컨대, 자신을 쉐프(chef)라고 하는 재문에게 예준이 분명히 못박는 장면이 있다. 넌 쿡(cook)이라고. 영화 내내 유물론적인 시선을 견지하는 카메라는 극중 인물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무의식 중 관계 깊숙히 도사리고 있는 계급적 균열에서 결코 눈을 떼지 않는다.


두 친구 사이에 재문의 아내 지숙(홍소희 扮)이 있다.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이었으나 말 그대로 '결혼'은 '생활'이었고, 남편 친구 예준의 경제적 도움이 싫진 않지만 늘 그에게 맹목적일 만큼 예속적인 남편이 마뜩잖다. 남편은 쉐프가 되기 위해 미국 이민을 알아보던 중 사기를 당하고, 미용실 운영에 출산과 육아까지 전담하다시피 하면서 그녀는 점점 지쳐 간다. 자기계발 겸 기분 전환 삼아 파리 미용박람회에 다녀오기 위해 지숙이 집을 비운 사이, 재문과 예준이 간만에 만나 회포를 풀던 중 너무도 끔찍한 비운의 사고가 터진다. 그 우발적인 사건은 이미 세 사람 관계 속에 내재해 있던 위선과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면서 그들 모두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파국으로 내몬다.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역학으로 우리 일상 속에 스민 자본과 계급, 부조리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불안과 죄의식까지 파고드는 영화의 통찰이 무겁고도 예리하다. 순식간에 허물어질 수 있는 사상누각처럼 보이는 사람들 관계망이지만 자본으로 엉켜 그 밑바닥을 이루는 구조의 지반은 강성하고 견고하여 좀체로 깨지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영화 마지막, 지옥 같은 몇 년을 뒤로 하고 다시 가정을 이뤄 외진 곳에서 새출발한 재문과 지숙에게 편지 한 통이 날아든다. '수신인: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자본은, 구조는, 그렇게 망각 속에서도 끊임없이 개인을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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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코프스키의 영화 - 시간과 공간의 미로
나리만 스카코브 지음, 이시은 옮김 / B612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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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작품 세계를 연구한 책들은 역사상 지명도 높은 사상가들의 이론과 타르코프스키 영화 간의 연결고리 찾기에 급급했다. 즉, 기존의 타르코프스키 해설서들이 플라톤주의와 러시아 정교,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 개념,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하이데거의 양심과 프루스트의 회상, 라캉과 데리다의 사유를 끌어다 놓고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바로 이것이다,라고 단정적인 끼워 맞추기 진술을 일삼았다면, 나리만 스카코브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시간과 공간의 미로]는 어디까지나 그러한 사상들을 인식의 프레임, 필터 내지 매개 이상으로 삼지 않고 투명하게 작품 자체에 천착한 이해가능성과 직접적인 체험성 측면의 논의를 펼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영화' 관련 서적으로서 당연히 갖췄어야 할, 허나 지금껏 보기 드물었던 미덕이고 강점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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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자이너 문화사 - 교양과 문화로 읽는 여성 성기의 모든 것
옐토 드렌스 지음, 김명남 옮김 / 동아시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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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두 번 술잔 기울이는 정도지만 대학 때부터 그나마 마음 터놓고 지내는 절친 넷이 있다. 그들과의 신년 술자리 모임에서 오간 얘기다. 학생 때부터 수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가졌고 저마다 다른 교감이 오갔다는 회계사 A는 여기서 자기만큼 여자에 대해 잘 아는 남자는 없을 거라고 했다. 게다가 와이프가 산부인과 의사라서 본인도 거의 준의사 급으로 생리학적 측면에도 훤하다며. 졸업하고 취업하자마자 고교 때부터의 여친과 결혼, 누구보다 빨리 가정을 이룬 B는 늘상 A를 비웃는다. 니 방위 나왔재. 현역과 방위의 차이가 기간 차가 아닌기라. 내무반 생활을 해봤느냐 안 해봤느냐 그기라. 여자도 마찬가진기라. 떡 많이 쳐봤다고 여잘 알아? 실제 생활 속에서 오래 부대끼며 알아 가는기라...

졸업장에만 경제학 전공이라 적혀있지 거의 인문·사회 타과 수업을 전공 삼았던 C가 끼어든다. 이런 무식한 형이하학 종자들이. 니들이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인류 지적 유산들 탐독하며 시계열로 횡단면으로 여성성에 대해 누벼 봤어? 옆에서 잠자코 안주만 축내던 우리 학번 홍일점 D여사가 그간 오가던 대화를 일축한다. 이것들이 진짜. 개한민국 수컷 문화에 찌든 아색히들이 여성을 안다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리야? C가 살짝 뒤집기를 시도한다. 세상사는 되려 외부자에게 더 선명하게 보이는 부분들이 많지. 그에 D의 굳히기 한판. 학교 다닐 때 나보다 분개(分介)도 못했던 것들이. 다 찌그러졋! (재밌는 게, C와 D는 CC였고 지금은 부부다.)

글쎄. 어느 쪽이 진실일까. 아니, 누가 그나마 덜한 구라일까. 이 책을 읽어 보면 막연히나마 판이 짜일지도. 중반까지 생물학 내지 해부학 기조에 가까워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그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부터는 쓱쓱 잘 읽히니 궁금하실 분들껜 일독을 권할만 한 책이다.

 

P.S.1. 원제는 'The Origin of the World'인데 굳이 '교양과 문화로 읽는 여성 성기의 모든 것'이란 선정적인 부제까지 필요했을까. 부당하게 금시시되어 온 여성의 기관과 욕망에 대한 백과사전식·문화인류적 기록이고 논의라는 측면에서 전혀 없는 얘긴 아니다만 '이타적 유전자' 이후 가장 의뭉스런 작명. (여성의 질을 공공연히 입에 올리는 것에 대하여 여전히 꺼려하는 내 자신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생각일지도)

 

P.S.2. '어떤 남성들, 특히 동성애자들은 두 종류의 절정을 안다고 한다. 음경 자극을 통한 일반적인 것 외에 항문을 통해 전립선을 마사지해서 오르가슴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음경 자극과는 아주 다른 감각이라고 한다. ([버자이너 문화사], '또 다른 오르가슴', 87쪽)' 인간의 동성애,라는 것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측면이다.

 

P.S.3. 페미니스트들 경우 기존의 성과학은 오르가슴이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가정을 깔고 있다고 지적한다. 달리 말해 성 체험에 자연스런 하나의 방향성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미리 깔고 있다는 비판이다. 실제로는 엄청난 다양성·파상성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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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11-27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성 섹스 경우 전립선을 통한 오르가슴이 최고라고 합니다. 여기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다고 하네요.

풀무 2014-11-27 15:38   좋아요 0 | URL
악! 역시 곰발님은 이미 알고 계셨구나요!
참.. 그러니까 이게 성정체성과는 또 관련없이 오직 그 자극을 얻기 위해 동성애를 벌이는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네요.
그나저나 어떡하죠! 이 아주 다른 감각이란 거 너무 궁금해졌음요! (읭???????)

곰곰생각하는발 2014-12-28 18:38   좋아요 0 | URL
궁금하면 해결책은 하나입니다. 직접 경험을.. ㅋㅋㅋㅋㅋㅋㅋ

풀무 2014-12-28 23:48   좋아요 0 | URL
음. 그냥 손가락이나 기구를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당..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