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그의 아내 - 아웃 케이스 없음
박희순 외, 신동일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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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인물의 욕망과 관계를 살피면서 우리 사회를 유비한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도식적인 만큼 통렬한 영화다. 임신 중인 아내를 둔 신혼 친구에게 아들을 낳으면 민혁(민중혁명 약자)으로, 딸을 낳으면 예니(맑스의 아내)로 이름을 지으라는 사내가 있다. 군대에서 동갑내기 고참과 후임으로 철학 에세이 책을 주고 받던 예준(장현성 扮)과 재문(박희순 扮)은 사회에 나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고졸 출신 요리사 재문은 예준을 동경하며 그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도 한다. 운동권 출신으로 고도자본의 첨병 역할을 자처, 남들 보기에 버젓한 외환딜러로 살아가는 예준에겐 노동 계급의 재문과 친구라는 사실이 삼팔육 세대 지식인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동시에 속된 우월감과 허영심을 채워주기도 한다.


물론 두 친구 간에 인간적으로 순수한 감정 교류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구조 속에서 계급 차이는 늘 정신적 유대를 압박하고 구축한다. 예컨대, 자신을 쉐프(chef)라고 하는 재문에게 예준이 분명히 못박는 장면이 있다. 넌 쿡(cook)이라고. 영화 내내 유물론적인 시선을 견지하는 카메라는 극중 인물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무의식 중 관계 깊숙히 도사리고 있는 계급적 균열에서 결코 눈을 떼지 않는다.


두 친구 사이에 재문의 아내 지숙(홍소희 扮)이 있다.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이었으나 말 그대로 '결혼'은 '생활'이었고, 남편 친구 예준의 경제적 도움이 싫진 않지만 늘 그에게 맹목적일 만큼 예속적인 남편이 마뜩잖다. 남편은 쉐프가 되기 위해 미국 이민을 알아보던 중 사기를 당하고, 미용실 운영에 출산과 육아까지 전담하다시피 하면서 그녀는 점점 지쳐 간다. 자기계발 겸 기분 전환 삼아 파리 미용박람회에 다녀오기 위해 지숙이 집을 비운 사이, 재문과 예준이 간만에 만나 회포를 풀던 중 너무도 끔찍한 비운의 사고가 터진다. 그 우발적인 사건은 이미 세 사람 관계 속에 내재해 있던 위선과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면서 그들 모두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파국으로 내몬다.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역학으로 우리 일상 속에 스민 자본과 계급, 부조리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불안과 죄의식까지 파고드는 영화의 통찰이 무겁고도 예리하다. 순식간에 허물어질 수 있는 사상누각처럼 보이는 사람들 관계망이지만 자본으로 엉켜 그 밑바닥을 이루는 구조의 지반은 강성하고 견고하여 좀체로 깨지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영화 마지막, 지옥 같은 몇 년을 뒤로 하고 다시 가정을 이뤄 외진 곳에서 새출발한 재문과 지숙에게 편지 한 통이 날아든다. '수신인: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자본은, 구조는, 그렇게 망각 속에서도 끊임없이 개인을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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