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시노하라 테츠오 감독, 무라카미 준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내가 정말 빠지고 싶은 건 따뜻하게 살아있는 너의 살 속이야,라니 세상에. 감성 멜로를 가장한 그저 그런 일본 세미 포르노그래피구나, 그만 끌까, 하다가 바닷가 자살씬에서 저 대사가 '다시' 허나 '다르게' 변주되어 나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 치밀었다. 불구인 마사미(무라카미 준 扮)와 그를 갈망하는 루이코(이타야 유카 扮)의 고통, 절망, 상실감이 사무치게 와닿았달까. 섹스를 관념으로밖에 접할 수 없는 불완전 관능의 정점, 욕망은 곧 결핍의 또다른 이름임을 이토록 직설로 절절히 보여주나.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세계에 심취해 이미 고인이 된 대작가의 저택을 그대로 재현해서 집을 지은 초로의 심리학자, 자길 구원해줬다며 그와 결혼한 자유분방한 여자, 그 여인을 사랑하는 건장하지만 성불구인 청년, 그리고 그를 사모하면서도 다른 유부남과의 육체적 탐닉에 빠져 있는 여고 도서관 사서... 각자 정신과 육체의 괴리로 인해 결코 채워질 수 없는 희구의 대상을 향하여 끝없이 물고 무는 인물구도. 너무도 통속적인, 결코 수작이랄 수 없는 영화인데(시노하라 테츠오 감독의 시네마틱 센스는 정말이지 꽝이다), 끝까지 보고 나서 기분이 주체할 수 없을 지경으로 짓눌려 가라앉는다. 일본 본토에서 유명하다는 코이케 마리코의 원작보다도 극중 루이코가 낭독하다 추억이 깃든 단풍잎을 발견하고서 끝내 눈물을 떨구고 마는, 미시마 유키오의 유작 [풍요의 바다]를 읽고 싶어진다.

 

부드러운 담요 안에서 두 사람은 내리는 눈에 덮여갔다.
그들이 입을 열었다면 눈은 뱃속에도 쌓였을 것이다. 

- [풍요의 바다] 1편 '봄의 눈' 중에서 -


마지막 페이지를 펴 주시겠습니까.
마지막이 최고이지요. 가장 좋아요...


그곳은 화장한 날의 평범한, 그저 정원의 모습이었다.
매미의 목청 좋은 울음은 마치 묵주의 소리처럼 들렸다.
다른 소리는 아무 것도 없었다.

정원에는 공허함만이 있었다.
오토바이는 그로 하여금 기억에도 없는 곳을 떠오르게 해주었다.
여름 태양이 정원에 영원한 침묵으로 남았다.

- 영화 [욕망] 엔딩에 인용된 [풍요의 바다] 4편 '천사의 몰락' 마지막 문단 -


[작가의 변]

 

영화가 원작자의 의도를 반이나마 구현해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미시마 유키오는 문자 그대로 자기극화(自己劇化)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연출하고 연기하고 스스로 막을 내린다. 그런 철저한 삶이야말로 그의 문학적 관념과 우아한 미의식, 돋보이는 천재적인 명석함을 낳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욕망]에서 나는 그와 유사한, 냉철한 정신을 가진 남자, 그런 종류의 정신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남자에 대해 묘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본 작품의 여주인공은 그런 남자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자신 안에 있는 어둠을 응시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검증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지하게. 그리고 다른 의미에서는 대담무쌍하게. 정신이 개재하는 성과 그렇지 않은 성. 양자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없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 입장에서 문제는 항상 정신 자체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도 써보고 싶었다. 본서를 두고 일본에서는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오마주로 읽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만은 아니다. 미시마의 미의식과 관념성 등과는 관계없이 오로지 남자가 여자를 찾고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전통적인 연애극으로서 읽고 있는 젊은 독자도 많을 것이다. 물론 어떤 식으로 읽든 상관없다. 소설이란 본래 그런 게 아니던가.  - 코이케 마리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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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7-2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 이런 영화를 찾으시는지???

풀무 2015-07-21 16:24   좋아요 0 | URL
케이블 영화채널 심야시간대에서 우연히 만난 영화입니다. 한국에선 새벽마다 자주 해줘요. ^;

권준호 2015-07-21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긴 글은 핸드폰으로 작성하신 가에요??!

풀무 2015-07-21 16:24   좋아요 0 | URL
컴으로 작성했습니다. 핸드폰은 전화, 메시지 용도로만 쓰고 있는 원시인이에요. ^

권준호 2015-07-21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컴퓨터로 적성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북플 사이트에 들어가면 따로 글쓰는 페이지는 없던데요~ ㅜㅜ
알라딘 서재에서 작성하신 건가요???

풀무 2015-07-22 05:00   좋아요 0 | URL
예. 그냥 서재 블로그에서 포스팅한 거라서.. 제가 북플은 얘기만 듣고 한번도 들어가 본 일이 없는데(2G폰을 쓰고 있습니다), 북플에서도 일반 서재 포스트들이 보이나 봅니다.

권준호 2015-07-22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감사해요~ 포스팅어떻게 하는건가 궁금했는데 ㅎㅎ 이제 명쾌하게 알았네요~^^

풀무 2015-07-24 00:47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다음번에 준호님 포스트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