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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 엣 더 팜
자비에 돌란 감독, 피에르 이브 카디날 외 출연 / 올라잇픽쳐스 / 2014년 10월
평점 :
한마디로 [탐엣더팜]은 애상적이고도 잔혹한 작품이다. 불친절하면서 탐미적인 괴작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주인공 탐이 하얀 휴지 위에 적는 글귀가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제시된다. '오늘 나의 일부와도 같은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눈물을 흘릴 수도 없습니다. 슬픔이라는 단어의 동의어가 뭐였는지조차 잊어 버렸습니다. 이제 우리가 너 없이 살려면 널 대신할 사람이 필요할 거야.' 잠시 후 관객 입장에선 탐이 친구이자 동성연인이었던 기욤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욤의 가족들이 있는 농장을 방문, 장례식 이후에도 계속 머물게 되며 오프닝 글귀는 탐이 써내려간 기욤의 장례식 추도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후론 마치 예언이었던 양 추도문 마지막 문장이 그대로 시연된다. '우리가 너 없이 살려면 널 대신할 사람이 필요할 거야...' 탐을 죽은 기욤의 분신마냥 계속 농장에 붙잡아 두는 기욤의 어머니와 폭력 성향이 다분한 기욤의 형 프랑시스, 그리고 불가항력의 덫에 걸려든 후 그들에게서 죽은 기욤을 느끼며 자신 스스로 기욤을 대체하려는 듯 보이는 탐의 갈등과 혼돈... 이 세 인물의 도착적인 관계에서 파생되는 이상 심리 드라마가 스산한 가을 외딴 마을 고립된 농장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왼쪽부터 죽은 기욤의 친형 프랑시스(피에르 이브 카디날),
어머니 아가테(리즈 로이) 그리고 주인공 탐(자비에 돌란)
미셀 마크 부샤르 원작의 회곡을 각색했다더니 과연 영화 전반에 부조리극의 기조와 특성들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인물들 모두가 자기기만으로 형성된 내면의 카오스에서 허우적댄다. 자신 역시 어릴 적 동생 기욤과 동성애 관계를 맺은 것으로 추정되는 형 프랑시스는 죽은 동생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겐 끝까지 숨기려 하고, 동생의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탐에게 때론 연적으로서의 질투를, 때론 기욤을 향했던 감정을 투사하고 대체하는 연정을 느끼며 갈팡질팡 광기어린 육체적·감정적 폭행을 가한다. 기욤의 어머니는 모든 진실의 전후 맥락을 파악하고 있음에도 주변 사람들은 물론 자신까지 기망하며 과거의 그림자에 매달린다. 탐은 그들에게서 기욤과 함께 했던 추억의 흔적을 찾고 스스로를 기욤과 동일시하면서까지 사랑과 기억의 암연에 침잠한다. 탐이 미처 몰랐던 기욤의 살아 생전 실체를 전해듣고 프랑시스의 극에 달한 악마성을 묵도하면서 뒤틀린 관계의 지옥에서 탈출을 감행하기 전까지는 세 사람의 욕망이 불안하게 삐걱대나마 맞물려 돌아간다. 이러한 캐릭터 각자의 내면과 그들간 관계에서 감지되는 파장, 그 낙폭이 워낙 이례적이고 파격적이어서 감정선에 집중하여 잘 쫓아가지 않으면 금세 극의 흐름에서 튕겨나게 된다.

'도망치려거든 콩밭을 택해. 시월의 옥수수밭은 잎이 칼날처럼 날카롭지.'
첫 번째 탈출이 좌절된 탐에게 상해까지 입힌 프랑시스의 섬뜩했던 대사
잔혹하리만치 섬세하고 치밀하게 사람들과 그들을 에워싼 풍광을 담아낸 자비에 놀란의 시선에 그만의 개성이 느껴지고 음악 선곡에서 전해지는 감수성은 더할 나위없이 탁월하다. 때론 모호하게, 때론 현란하게 이미지와 사운드의 향연을 펼치면서 단선적인 인과관계에 기대지 않고 감정의 흐름과 분위기 위주로 내러티브를 구축해가는 화술도 인상적이다. 다만 영화 종반부, 두 번째이자 마지막 농장 탈출을 감행하는 탐과 성조기 점퍼를 입고 필사적으로 탐을 쫓는 프랑시스, 차를 몰고 농장을 떠나 몬티리올 밤거리에 접어든 탐의 허망한 표정 위로 루퍼스 웨인라이트가 부른 'Going to a Town'을 겹쳐 가면서까지 길들여진 맹목적인 사랑에서 촉발된 지배-종속 관계 알레고리로 반미정서를 들이댄 시도는 글쎄. 일견 수긍 못할 바는 아니나 다소 생뚱맞았달까. 어찌 보면 자의식 과잉 내지 치기로까지 여겨져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