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파도가 인기라면서, 그 주인공들의 젊은 시절 사진을 올린 것을 보았다. 김형자, 김수미, 김을동, 여운계. 누구나 젊을 땐 다 이쁘기 때문에 어떻게 곱게 늙을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라는 교훈을 준다.

영국 텔레비젼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정말 다양한 연령층을 다 포섭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청자로서가 아니라 출연자로서 말이다. 이렇게 중년, 장년, 노년층이 많이 나오다니 처음에는 그게 무척 낯설었다.

뉴스 진행자나 토크쇼 진행자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니 왜 드라마에 이쁜 여자가 안나오는 거야. 예를 들어 몇십년을 하고 있다는 Eastender의 경우 1/4 할머니, 할아버지, 1/4 아저씨, 아줌마, 1/4 별로 안이쁜 젊은이, 1/4 어린이. 상황이 이렇다. 내용도 어찌 이리 꿀꿀한지. 

근데, 자꾸 보다보니깐 이게 적응이 되면서, 친근감마저 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그룹을 다 다룬다는 것에서 일종의 문화적 성숙도를 느꼈다. 소외되는 계층이 없는 것이다. 실제 사회에서 없다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에서 말이다. 

노인들이 느끼는 외로움 등은 영국도 마찬가지인데, 그것을 한국의 이쁜 드라마들에서처럼 싹뚝 아예 없는 양 하는 것이 아니라 꿀꿀하더라도 그 소외 계층의 애환을 드라마로 그려내고 있다. 일일 드라마에서 매일 매일.

여기도 젊고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갈망이야 남이야기가 아니다. 10년을 젊게 해준다는 프로그램에서는 응모자에게 성형, 화장, 머리손질, 의상 등 네분야에 걸쳐서 전체적인 개혁을 시켜주는 것이 공공연히 나온다. 이뻐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아존중감 회복 차원에서 당연한 것이란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특히 여자 연기자들의 경우 나이가 들어도 한국보다는 활약할 공간이 다양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도 마파도의 예처럼 더욱 다양한 무대가 생산되기를 기원해본다. 내공 쌓인 한국 여자 배우님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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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밤 12시가 가까워가는데 창문을 열어보니 안개가 내려와 있다. 입김도 훌훌 날리는 것이 밖의 기온이 상당히 낮은가보다.

요새들어 양이 이 밤에 울어댄다. 낮에 보면 저 철길 뒤로 푸른 언덕에 햐얀 양들이 띄엄 띄엄 풀을 뜯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어찌나 평화스러워 보이는지. 내가 천국에 와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근데, 원래 양들이 밤에 우나? 봄이 되어서 그런가?

오늘 들리는 소리는 엄마양 아기양의 것이 아닌가 싶다. 양의 목소리로 그들의 연령이 구분되다니. 놀라운 일이다. 나는 전생에 양치기가 아니었을까?

아기양의 소리라고 내가 짐작하는 것은 소리가 얇고 좀 높으면서 진짜 어린내가 화악 난다. 엄마아아아~ 엄마아아아~~ 하는 것 같다. 달리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다. 엄마양의 소리는 보다 굵고 삶의 연륜이 느껴진다. 와그랴랴랴랴~ 와그랴랴랴~~~하는 것 같다.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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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친구가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 주었다.

시기적절한 글귀에 너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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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 자여, 자려, 자래 네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가 과연 무(無)를 머리로 여기고 삶을 등뼈로 여기며, 죽음을 뒤꽁무니로 여길 수 있을까? 또 누가 죽음과 삶, 있음과 없음이 하나임을 알 수 있을까? 내 그와 더불어 벗하리라."


네사람은 서로 돌아보고 웃었다. 그들은 서로 마음이 부합되어 벗이 되었다.

얼마 뒤 자여가 앓아 누웠다. 자사가 문병을 가니 자여가 말했다.

"위대하도다! 저 조물주는 장차 나를 곱사등이로 만들려나보다. 등덜미는 꼬부라지고, 오장은 머리위에 있고, 턱은 배꼽에 감추어지고, 어깨는 정수리보다 높고, 목뼈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구나. 이는 음양의 두 기운이 어지러진 까닭이다!"

그러나 자여의 마음은 평온하여 아무 일도 없는 듯했다. 자여는 비틀걸음으로 우물에 나아가 얼굴을 비춰 보고 말했다.

"아! 저 조물주는 장차 나를 곱사등이로 만들려고 하는구나."

자사가 물었다.

"자네는 그 병을 혐오하지 않는가?"

"내가 왜 병을 혐오하겠는가? 만일 병이 점점 깊어져 내 왼팔을 닭처럼 만든다면, 나는 왼팔이 내게 새벽을 알리기를 바라겠네. 만일 오른팔이 탄알 모양으로 변한다면 나는 그것으로 올빼미를 잡아서 구이를 하겠네. 또 만일 내 척추 꼬리뼈가 수레바퀴처럼 되고 내 정신이 말처럼 변한다면, 나는 이 마차에 오를 뿐 따로 탈 것을 구하지 않겠네. 무릇 이 세상에 나오는 것은 다 때를 따라 오는 것이요. 세상을 떠나는 것도 제각기 갈 차레를 따르는 것이라네. 그러므로 그 때를 따라 편안하고 그 변화에 순응한다면 슬픔도 끼어들 수 없지. 이것이 이른바 모든 구속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라네. 스스로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사물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야. 사물이 원래 하늘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거늘 내가 어찌 이 병을 혐오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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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늘은 법칙이고 원리구나.

모든 일에 다 때가 있고 원리가 있다. 왜 이리 거스르느라고 괴로워하는지 말이다. 사실은 거스르지도 못하면서. 힘들어도 그냥 받아들이고 따르면 차라리 쉬울 것을. 따라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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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오늘도 TV maniac.

재밋는 이야기가 있었다. 영국의 범죄율에 대한 것이었는데, 한 지방에 대한 것인지 전체 영국에 대한 것인지는 중간에 잠깐 본거라 모르겠고.

어쨌거나 범죄율이 내려갔다는데. 그것이 경찰이 특별히 보호를 잘 했다거나 해서 그런 것은 아니란다. 그렇다면 왜 내려갔는가를 따져보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는데. 실제 범죄인들을 인터뷰하면서 진행을 하더라.

예를 들어, 자동차 도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동차 전문 도둑을 데리고 실험을 한다. 한 차를 놓고 얼마나 빨리 문을 열고 시동을 걸어 도망갈 수가 있는가. 긴 꼬챙이로 뚝딱 문을 따더니, 안에서 꼼지락, 시동이 걸린다. 약 2분 30초 안에 해결! 우와.

그런데, 다른 도전을 주겠다면서 이 전문가를 다른 차로 데리고 갔다. 이 차는 보통 열쇠로 여는 차가 아니고, 칩으로 여는 차였다. 버튼을 누르면 띨롱하면서 열리고 잠기는 그거 있자나. 그랬더니 아예 시도를 안한다. 그런 차는 도둑의 입장에서는 열 수가 없단다. 그래도 해보면 얼마나 걸리겠냐고 했더니, Why bother? (당최 왜 되지도 않을 일에 정력을 낭비하냐고요.)가 대답이었다.

즉, 새로운 기술이 차량절도율을 낮추었다는 말이다.

집을 터는 것도 경찰 등, 공공 서비스가 아니라 집에 설치되는 사적인 범죄예방시스템 때문에 훨씬 줄은 것이란다.

또 하나는 거리에 자유로이 다니는 범죄인의 수가 절대적으로 줄었다는데에 범죄율이 현저히 낮아진 이유가 있단다. 뭔소린가 하면 다 감옥에 들어가 있다는 소리다. 지금 거의 최고의 수감율을 보이고 있단다. 그 이유는 경찰이 많이 잡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구형의 기간이 훨씬 쎄졌기 때문이란다. 즉 예를 들어 옛날에는 1년 살 범죄도 이제는 5년 살게 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감옥에 있는 한 도둑을 인터뷰 했는데, 요새 그 세계 경기가 어떠냐고 했더니, 전보다 훨씬 못하다고. 즉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디비디 플레이어를 훔쳐서 팔아도 옛날에 10만원 벌었다면 지금은 만원 받는다는 것. 한마디로 수지가 맞지 않는 비지니스가 된 것이다.

호오. 이런 식으로 범죄의 주체로 부터 이야기를 들으니 참 재미있었다. 전혀 다른 시각.

첫째로 내게 인상깊었던 것은, 범죄인들이 그저 (반사회적인) 직업을 가진,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라는 것에 대한 새삼스런 인식이었다. 완전 싸이코나 괴물이 아니고. 물론 인터뷰한 사람들이 연쇄 살인범이나 싸이코 강간범들이 아니라 단순 절도범들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직업은 절도범인데, 한편, 부인이 있고, 아기가 있는 남편이자 아버지인 것이다. 

또 범죄율이란 것의 높고 낮음이 양질의 경찰력에 달린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나의 단순한 시야를 넓혀주었다. 그래. 범죄도 사람이 하는 일.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얼마나 많은 개인적, 사회적 요인, 동기가 작용을 하는가 말이다.

그러고보니 전에 범죄예방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강간 사건 내지 폭력 사건 등을 줄이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가 후미진 골목에 가로등을 다는 것이었다.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혹은 저지르기 쉬운 환경을 제거함으로써 누군가가 범죄인이 되는 것을 막는다는 것이지. 얼마나 인도적인 방법인가라고 생각을 했었다.

견물생심이라는데, 애시당최 물건이 눈에 띄지 않게 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다. 그 자동차 도둑처럼. 칩으로 여는 차를 보더니 아예 전혀 일말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차를 장만할 여유가 생긴다면 돈을 좀 더 모아서 칩으로 열고 닫는 차를 구입하여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예방하자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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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인간관계. 힘이 들지.

이번 경우는 타인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속도의 개인차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는 이 속도가 상당히 느린 편에 속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것이 빨랐다. 

같은 과이나 별로 접촉이 없던 이 사람. 이번에 내가 이사를 해서 같은 기숙사 이웃이 되었다. 연락도 없이 문을 두드리거나 화난 일 있다고 당장 와서 토로를 한다. 무슨 당장에 단짝 친구라도 된 듯이 행동한다.

속도 느린 나는 어이가 없을 다름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 약한 성격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가 언제 방문을 두드릴 지 불안에 떨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니, 내 방에서 이웃 때문에 맘편히 다리 뻗지 못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나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타인에게 친근감을 느끼고는 그렇게 무작정 영역을 부수는가 말이다. 정말 나로서는 무례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나의 상냥함을 친밀함의 표시로 해석했나보다. 이런 오해가. 나의 친절함은 낯선 이에 대한, 혹은 인간 전반에 대한 예의에서 비롯된 행위인데. 나는 친밀해져야 비로소 궁시렁도 대고 속내도 드러내고 그러는 데. 어떻게 이런 보편적 상냥함에 그렇게 오해를 한단 말인가. 이것은 그의 외로움으로 인한 자의적 왜곡이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수가 없다.

외로움. 이 나이에 혼자 공부하면서 안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그러나 그 정도 나이면 스스로 해결할 때도 되지 않았나?

휴.. 어렵다.

하여 어쩔까나.

얼굴에 인상을 확 긋고 다녀야할까? 이럴 땐 진짜 인간에게 상냥하도록 길러진, 혹은 스스로 마음 먹은 내가 원망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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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더 2007-01-31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새로 이웃이 된 아파트 옆집 아줌마가 느닷없이 찾아와 커피를 달라고 하고는 1시간동안 자기 시댁 욕을 하고 돌아간 후로 한동안 벨소리가 나면 깜짝깜짝 놀라곤 했지요

야옹이형 2007-02-06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새삼스런 확인.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란 확인. 큰 위로가 된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