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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디 퍼 지음, 조은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평점 :
1987년의 한국이라면 아직 전두환이 대통령인 해였다. 그 해 겨울, 노태우가 한국의 제13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87년의 한국은 정치적으로 암울한 시기를 벗어나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싶었던 상황이었, 그건 타이완도 마찬가지였다. 1949년 5월 20일에 타이완에서 시작된 계엄령은 1987년 7월 15일까지 무려 38년동안 이어진다. 1987년은 한국과 타이완 두 나라에서 변화가 시작되려고 했던 시기 같다.
1987년. 한국도 그러했겠지만, 퀴어는 차별의 정점에 선 것이었고 숨겨야 하는 것이었다. 아니 타이완과 한국은 물론 이 시대 전세계에서 퀴어란 범죄였다. 아한과 버디는 여름의 시작에 처음 서로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첫 사랑이었을게다. 퀴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사회적으로도 차별받았겠지만 남고의 기숙학교라는 시스템에서는 학교 내 괴롭힘까지 견뎌야했다. 아한은 버디를 향해 직접적으로 돌진했지만, 버디는 계속 아한을 피할 수 밖에 없다. 아한은 사랑이라는 열망을 참을 수 없었고, 버디는 아한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숨겨야했다.
버디와 아한이 서로에게 깊숙히 빠져들었던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도 있겠지만, 억압된 사회에서 둘의 관계는 우정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분출구가 되었고 안정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는 가족관계의 욕구를 서로가 채워주어서라고 생각이 되었다. 아한의 아버지는 중국에 있는 가족이 더 우선시 되는 사람이었고, 학업이라는 능력이 없는 아한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았다. 아한의 어머니는 모성애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아한에게는 언제 가족을 버릴지 모르는 아버지와의 관계도 중요하였을 것이다. 아한의 외로움과 인정욕구를 채워준 사람이 버디였다. 둘은 언제나 함께 다녔고 즐거웠다.
아한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실하게 정립한 뒤, 찾아간 올리버 신부의 태도는 아쉬웠다. 올리버 신부 자신도 퀴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부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인데 아한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자신과 아한 모두에게 상처가 되었다. 물론 올리버 신부는 사회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변한 것은 사회이고 퀴어라는 정체성을 그대로 있다. 언어와 관계는 사람의 심장에 상처를 입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있다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고, 변화된 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이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게 작은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