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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눈으로 산책 - 고양이 스토커의 사뿐사뿐 도쿄 산책
아사오 하루밍 지음, 이수미 옮김 / 북노마드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고양이 눈으로 산책 : 고양이 스토커의 사뿐사뿐 도쿄 산책.
도쿄를 마지막으로 다녀온지 1년이 지났다. 마지막 방문 때는 현지에서 살고 있는 지인의 집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여행이라기 보다는 '거주'에 가깝게 지내다 왔다. 그래서 시간에 쫓김없이 편안한게 도쿄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여행중이라면 갈 일 없을 것 같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동네, 공원이나 도서관과 끼니도 화려하거나 특색이 강한 음식보다 마트에서 찬거리를 사와 직접 해먹었다. 덕분에 그 이후로는 일본 관련 여행에세이나 가이드북 등의 내용보다 그냥 평범하고 소소한 책들이 더 와닿았다. 책 [고양이 눈으로 산책]은 저자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고양이의 시선으로 일상을 둘러본다.
비록 페스는 종이 안에 사는 고양이이지만, 나는 페스를 내 안으로 옮겨서 '내 안의 고양이'와 함께 외출해보기로 했다. 7쪽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이미 하늘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을 리트리버 종의 뭉치와 함께 살 때 나도 종종 내 마음속의 뭉치라면 이럴 때 어떤 생각을 할까 하며 언니랑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가령 '내가 멍멍이라고 생고기나 뼈를 좋아할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라든가, '공을 던져도 난 물어오지 않을거야. 지금 좀 덥고 힘들거든.'라든가. 저자도 마찬가지다. 맛있는 덮밥을 먹을 때 고양이를 떠올린다. 고양이에게 독이되는 식품인 걸 알면서도 왠지 맛난 음식은 혼자 먹기 미안하다. 그런가하면 귀여운 고양이를 만나면 먹을 것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방금 식사를 마치고 왔으면서도 여전히 타인의 접대를 거절하지 않는 고양이를 보면 조금 얄밉거나 호기심이 들때가 있는데 인간을 배려하기 위해 배불러도 먹어준다던가 하는 식의 상상은 고양이를 높게 평가하는 집사의 본능같기도 했다. 일러스트도 종종 등장하는데 화장실에 인간이 들어가면 고양이가 기웃거리는 것이 규정이라고 말한다. 문을 잠그지 않는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여러번 문을 밀고 들어가는 것이니 집사들은 고양이의 큰 뜻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화장실 문을 잠그지 않고 볼 일을 본다는 건 고양이에게 너도 들어와라는 신호인 것이다. 고양이와 같은 화장실을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이부분은 잘 모르겠다.
공원의 흙은 비가 막 그친 참이라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이렇게 선뜩하고 습한 공기 속으로는 고양이도 산책 나오기 싫을 것이다. 진달래 사진을 찍어준 대가로 "비가 그쳤으니 햇살이 비치면 고양이도 나오고 싶겠지요"라고 긍정적인 해설을 덧붙였다. 110쪽
마음 속의 고양이가 말을 걸지 않아도 하루밍의 산책은 참 정겨웠다. 마치 불쾌했던 일상을 긍정적인 면으로 바라보기 위한 시도로 고양이를 꺼내온 듯한 느낌이 들었고 무엇보다 고양이와 함께 할 때면 누군가가 말을 건네는 것도 참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 같다. 여전히 마음 속 고양이가 피곤한듯, 의심스러운 듯 불쑥 고개를 내밀기도 하지만 시작만 그럴 뿐 대부분 인간을 배려하듯 져주는 듯한 말투가 역시나 고양이 스토커 답다.
책이 산더미처럼? 책이라면 끔뻑 넘어가는 내가 아닌가? 응, 당연히 가져가야지. 나는 내 안의 고양이에게 "넌 복을 부르는 고양이야"라고 칭찬했다. 205쪽
책을 읽고나면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굳이 고양이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얼마전에 봤던 인사이드 아웃에 등장하는 감정들을 인격화 시키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 초반에 고백한 것처럼 강아지 친구를 마음속에 되살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길을 걷다가 혼자라서 울적해질 때 마음 속 친구를 불러보면 어떨까 싶다. 아사오 하루밍 작가의 책은 이번이 두번째 인데 읽을 때 마다 느끼는 것은 행복을 불러올 줄 아는 힘을 가진 작가라는 거였다. 무겁지 않은 문체로 제법 무거운 주제를 건드릴 줄 아는 작가, 다음 책도 역시나 기대되는 이유다.
"고양이는 죽을 때가 되면 어딘가로 몸을 감추잖아요. 그 아파트도 그런 데가 아닐까요? 죽을 때가 가까운 노인들이 고양이처럼 스스로 몸을 감추는 집이요. 저세상의 신이 자네는 아직 죽지 않아도 된다고 돌려보낸 사람은 계단을 내려오는 거죠." 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