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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 권력의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
데이비드 프리스틀랜드 지음, 이유영 옮김 / 원더박스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심각하게 균형을 잃은 오늘날의 '사인형 자본주의 체제'가 세계를 위기로 몰아넣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우리 사회의 안녕을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11쪽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란 책 제목만 보면 경제, 경영서에 속할 것 같지만 저자의 약력과 함께 원제, 그리고 저자의 말까지만 읽어도 '역사'책임을 알 수 있다. 상인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권력을 잡았는지, 흥망성쇠를 다룬 것처럼 보일 법하지만 사실 '상인'에만 집중했다기 보다는 인도의 카스트제도에 빗대어 자본주의의 잘못된 점을 알아보고, 과거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고 권유하는 내용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쉬운 접근법이라고 생각한다. 기원전으로 올라가보면 상인은 그다지 계급상 높은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기원전 시대는 농경사회와 유목민들의 사회였다. 농경사회의 전사와 지주 세력은 지배하는 위치에 놓여있었고, 사제들과의 협력으로 지배당하는 이들에게 의무를 내세우며 그들을 손쉽게 관리하려던 사람들이었다. 본격적으로 중국의 관료제와 같은 체제가 유럽에도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이었다. 상인들의 세력은 안타깝게도 우리가 자본주의 시대라고 부르기 훨씬 이전인 고대시대부터 였다.
중세에 이르러 기원후 1000년 이후 신성로마 제국의 독일과 이탈리아 지역 대부분의 도시들은 자치권을 누렸다. 이는 전사 지배자 집단과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뭉친 현인 집단 간의 분열을 상인 집단이 적극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83쪽
얼핏 보면 수천년 전 시대의 모습이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오히려 더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면 과거의 정치인들은 농민들의 반란으로 인해 그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했고, 전사들의 힘을 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사회는 오로지 돈, 상인들의 힘으로 시장경제가 결정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눈치를 보는 것이 시민들보다 자본을 움직이는 상인들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우려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는 3중 위기에 처해 있다. 경기 침체, 부채, 그리고 국제무역 및 금융 불균형이 맞물려 초래한 위기 국면에서 자유로운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러한 3중 위기는 바로 상인 집단의 지배가 초래한 예견 가능했던 결과다. 405쪽
저자는 이 책이 학술적 저작이기 보다는 일반 독자를 위한 현 위기의 뿌리는 살펴보는 역사서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읽다보면 경제학 이론과 관련된 메이저 이론과 학자들의 의견은 물론 참고서적까지 방대한 자료를 인용, 분석했음을 알 수 있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이 책에서 상인이 어떻게 발전해왔고, 그들이 가져온 경제위기가 무엇인지만을 알고자 했다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부담스러운 내용인 것은 맞다. 하지만 차근 차근 카스트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한 저자의 의도를 쫓다보면 기대했던 것 이상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