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눈, 손, 마음 - 그림이 만들어지는 신비로운 여정에 관하여
마틴 게이퍼드 지음, 조주연 옮김 / 에포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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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눈, 손, 마음

그림이 만들어지는 신비로운 여정에 관하여/ 서평 1


그림 한 점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날까. 화가가 어떤 의도와 질문을 품고 작업을 시작하는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화면에 옮기는지, 그리고 어떤 매체와 재료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작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완성된다. 같은 물감과 붓을 사용하더라도 화가의 손을 거쳐 나온 결과는 다르며, 작업을 시작할 때 품었던 생각이 끝까지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처음부터 정해진 답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기보다, 작업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에 가깝다. 그러니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여정은 언제나 흥미롭다. 완성이라는 판단 자체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거의 모든 화가에게 끝내기는-리히터가 내게 한 표현대로-“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의 경우 끝내기는 어느 한 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완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평가다.”81쪽


미술을 전공하고 도슨트로 활동하면서 작품을 바라보고 설명하는 일은 내게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전시장에서는 작품이 무엇을 표현하는지뿐 아니라 어떤 재료와 기법으로 만들어졌는지, 작가는 왜 이러한 방식을 선택했는지, 작품이 놓인 시대적·미술사적 맥락은 무엇인지 살펴보게 된다. 그러나 작품 앞에서 관람객에게 전달되는 설명은 대개 일정한 시간과 분량 안에 정리되어야 한다.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여러 층위 가운데 무엇을 먼저 이야기하고, 무엇을 더 깊이 들여다볼지는 언제나 선택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마틴 게이퍼드의 『화가의 눈, 손, 마음』은 내가 평소 작품을 바라보고 설명해 온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작가별 전시 도록과 평론, 자서전, 비평가들이 기획한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접해 왔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따라가거나 특정한 주제 아래 묶인 작품들을 비교하고, 때로는 작품 바깥에 존재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러한 책들은 내가 소화하기 어려울 만큼 풍부한 미적 경험을 안겨주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무엇이 달랐을까.




우선 작품을 마주하는 물리적인 경험부터 달랐다. 일반적인 책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로 보던 작품들을 비교적 큰 판형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물론 책에 실린 이미지가 전시장에서 실제 작품을 마주할 때의 감동을 온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작품의 실제 크기와 물성, 화면 앞에 서 있는 나의 위치, 조명과 주변 공간이 만들어내는 감각은 책의 지면만으로 전달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화면의 세부를 살펴보고 붓질과 색채의 관계를 비교하며 작품을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의 진가는 이미지의 크기에만 있지 않다. 무엇보다 작품을 어떤 순서로 배치하고, 누구의 이야기와 연결하며, 어떤 질문을 중심에 두느냐에 따라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도 마찬가지다. 큐레이션은 작품을 보기 좋게 배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작품과 작품 사이에 관계를 만들고, 개별 작품만 보았을 때는 발견하기 어려웠던 의미를 드러내며, 관람객이 작품을 새롭게 읽을 수 있도록 하나의 경로를 제안한다. 도슨트로서 전시를 이해하고 관람객에게 작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해 온 지점이기도 하다. 전시장에서는 정해진 시간내에서 작품의 매체와 재료, 제작 방식, 작가의 의도에 관한 설명을 모두 전달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화가와 비평가가 서로의 작업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한 작가가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어떤 자극을 받았는지, 그 대화가 실제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까지는 스크립트를 준비하는 내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작품을 완성된 결과물로만 바라보는 대신,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과정에 개입한 생각들을 함께 들여다보게 한다.



화가의 눈, 손, 마음

그림이 만들어지는 신비로운 여정에 관하여/ 서평 2


“우리는 붓질을 포함해 그림에 관한 온갖 문제에 관해 끝없이 이야기를 나눴어요. 바로 그게 문제의 핵심이니까요.” (121쪽)


이 문장에서 특히 눈길이 머무는 것은 ‘붓질’이다. 작품 앞에서 붓질을 바라본다는 것은 단순히 화면에 남은 흔적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다. 붓이 어떤 속도로 움직였는지, 물감은 얼마나 묽거나 두꺼웠는지, 색은 어떤 방식으로 겹쳐졌는지, 작가가 화면을 통제하려 했는지 아니면 우연이 개입할 여지를 남겨두었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회화에서 재료와 기법은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부수적인 수단이 아니다. 때로는 재료의 물성이 작가의 생각을 이끌고,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우연이 애초의 의도를 바꾸기도 한다. 18세기 드니 디드로의 경고도 그 예가 될 수 있다. 회화의 재료와 매체가 시대에 따라 발전하고 확장되어 왔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화가들이 동시대의 새로운 기술과 재료에만 기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에서 영감을 얻고, 자신이 처한 시대의 언어로 그것을 다시 해석한다. 이런 점에서는 초반에 호크니의 “회화가 텍스트” 라고 하거나 울프의 “화가는 전기작가”라는 말이 바로 떠올랐다. 미술사는 과거의 작품이 박제된 채 보존되는 역사가 아니라, 작품들이 시대를 건너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렘브란트를 존경했던 샤임 수틴의 경우가 그렇다. 그리고 수틴에게서 영향을 받은 후대의 작가들 역시 존재한다. 그 연결고리를 따라가다 보면 작품의 영향력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거의 작품은 후대 작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출발점이 되며, 후대의 작가는 그 작품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터뷰에서 수틴을 “나에게 일종의 최면 효과를 일으킨 이미지를 창조했던” 화가 중 한 명으로 언급했다. 데이미언 허스트는 여기에 각주를 달아 자신의 의견을 보탰다.

“수틴이 없다면 베이컨도 없다.” (167쪽)



마지막으로 또 인상적인 부분은 16장 「미술의 지리학」 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장에서는 작가들이 활동한 장소와 환경을 작품을 이해하는 하나의 실마리로 제시한다. 특히 프랭크 볼링과 고흐를 ‘지독히 높은 기온 속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공통점으로 연결한 새빌의 비교가 흥미로웠다. 화가에게 장소란 단순히 작업실이 자리한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후와 빛, 주변의 풍경, 생활환경은 작업의 조건이 되며, 작가가 세계를 바라보고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더라도 어디에서 무엇을 경험했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작품이 탄생한다. 작가의 의도와 재료, 기법, 영향 관계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에 장소라는 요소까지 더해지면 한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는 훨씬 복잡하고 풍부해진다. 이 책이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를 넘기는 일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품을 하나의 정답으로 설명하기보다, 서로 다른 실마리를 따라가며 작품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도슨트의 역할은 작품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관람객이 작품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하고,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하며, 전시장 밖에서도 작품에 관한 질문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일 역시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에 관한 지식을 쌓는 것뿐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과 그 관점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독자의 입장에서도 『화가의 눈, 손, 마음』 을 통해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들을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전시관의 중심에 놓이는지를 명확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니 전공이나 해당 분야와 무관한 독자더라도 전시를 감상하고 그림을 보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추천한다.


#화가의눈손마음 #마틴게이퍼드 #회화 #아티스트 #작업실 @epoch.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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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기술
케빈 애슈턴 지음, 김하현 옮김 / 생각의힘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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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야기가 아닌 것이 존재하는가

#이야기에관한이야기 #케빈애슈턴 #사물인터넷 #스토리텔링 #우주서평단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의 표지에는 “우리는 모두 스토리텔러다. 우리는 언제나 스토리텔러였다.”라고 쓰여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저자가 다름아닌 ‘사물인터넷’이란 개념을 처음 사용한 케빈 애슈턴이었다. 그는 모닥불 곁에서 이야기를 하는 화자가 청자에게, 그렇게 구전되는 이야기가 동굴 벽화와 문자, 인쇄술, 대중매체를 거쳐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만들고 전하는 도구의 변화가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추적한다. 이야기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경험과 지식을 보존하고, 낯선 이들을 연결하며,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틀을 만드는 기술이었다. 문자 이전에는 지식을 기억하고 전하는 일이 제한적이었지만, 기록과 인쇄술은 이야기를 더 멀리,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했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이야기를 만들고 순식간에 공유할 수 있다. 저자가 살펴보는 스토리텔링의 여러 혁명은 도구가 발전할수록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늘어난다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이야기를 쉽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의 의사와 무관하게 퍼뜨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감추고 싶은 이야기는 왜곡되어 확산되고, 같은 사건도 듣는 이의 처지와 믿음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이야기의 힘이 클수록 그 위험 역시 커진다. 책에 등장하는 테런스의 사례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백신 접종을 둘러싼 판단을 흐리고, 실제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잘못된 이야기는 단순한 오해로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는 사실을 담는 그릇인 동시에 무엇을 중요하게 볼지 결정하는 렌즈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야기의 출처와 맥락을 살피는 태도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시민의 기본 역량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페이스북은 약 30억 명이 사용하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셜 네트워크이다. 이 말은 곧 가능한 친구 조합의 가짓수가 500경, 즉 1억의 500억 배에 달하며 페이스북 사용자는 30억 명의 친구를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의 스크린을 통해 이 모든 친구들과 연결될 수 있으니 이들은 근처에 있는 것과 다름없다. 364쪽

내게 더 염려스러운 것은 위험이 현실의 소셜미디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상공간과 메타버스에서도 이야기는 정체성과 관계를 만들고, 때로는 현실 못지않은 피해를 낳을 수 있다. 저자가 제시한 페이스북의 연결 규모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번질 수 있는지 실감하게 한다. 그래서 같은 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활용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타인을 조종하고 오해를 증폭하는 도구가 될 수도, 위험을 알리고 서로를 지키는 네트워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숲의 나무들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위험에 대응하듯, 인간의 스토리텔링도 서로를 해치는 소문이 아니라 위험을 나누고 이해를 넓히는 수단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세상에 이야기가 아닌 것이 없다면,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멈추는 일이 아니라 어떻게 만들고, 전하고, 판단할 것인가다. 그 힘이 더 많은 사람을 연결하고 지키는 방향으로 쓰이기를 바란다.
@woojoos_story @tp.book
“우주 @woojoos_story 진행으로 단체 디엠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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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딸의 백팔배 - 어느 종교학자의 자기 배려하기 ㅣ 파도문고
이정은 지음 / 온다프레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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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딸의 백팔배


독실한 개신교 가정에서 성장한 저자가 부모에 의해 강제된 신앙의 삶이 어떠한지, 그런 삶이 어떻게 ‘자기파괴’로 치닫지 않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고백과 학제적인 보고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자녀의 입장에서 비단 종교 문제가 아니더라도 수용적이지 않은 부모와의 관계로 부터 느꼈던 고통과 상실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동시에 양육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 자신의 양육방식이나 훈육이 자신의 의도와 다른 결과를 자녀에게 줄 수 있음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무엇보다 푸코와 라캉 그리고 지젝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의 이론과 연결지어 학제적으로 자신의 문제와 방법을 고찰해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물론 개신교인 입장에서 아니면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자기치유 과정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고백하자면 책을 읽는 동안 지금 열거한 여러 시점이 계속 바뀌게 되었다. 초반에는 딸을 두고 아버지는 강압적으로, 어머니는 교묘하게 ‘네가 원한 것’이라 말하는 부모의 모습에 불편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기로 결정한’ 저자의 선택이 의아하게 느껴졌다가 중반부를 지날수록 왜 저자가 동생과 달리 떠나거나 반항하기 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추위를 느끼려고’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살면서 ‘착한 딸’ 콤플렉스에 빠졌던 이들이라면 납득이 쉬울 것이다. 특히나 서울대를 나온 부모님, 오갈데 없는 이들을 가족처럼 보살펴주며 낳은 자식이 아닌 이들에게 자발적으로 엄마가 되어주는 헌신 그리고 처절할 정도의 자기부정과 비움에서 숭고함마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백팔배인가.


나는 오랜 시간 부모님의 ‘금욕주의적 엄격성’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를 ‘나’로 살지 못하도록 억압했다고 말이다. (…)

하지만 ‘전복’이 필요한 대상은 금욕적 삶 자체가 아니었다. 이것이, 푸코가 말한 ‘자기를 배려하고 돌보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 포기를 강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문제였던 것이다. 203쪽


저자는 그저 느끼고자 한다. 이전에 할 수 없었던 ‘세상의 기쁨’ 혹은 세상 그 자체를 그저 느끼기로 마음 먹는다. 백팔배도 이런 선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부모님이 개신교인 이라서 반항을 위해 타종교에 빠지는 것은 이미 해봤고, 그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무의미한 일인줄도 이미 알았다. 그러니 그저 할 뿐이다.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 온전히 ‘나’로 살아가기 위해 백팔배를 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오랜 세월 온전한 확신이 없어, 교회를 다녔던 지난 날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아이가 커가면서 점점 더 신앙과 관련된 활동을 마치 저자의 어머니처럼 부드러운 말투로 그러나 일순간 공격적으로 아이를 대하는 내 모습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라캉의 ‘속지 않는 자가 길을 잃는다’를 주해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속는 자’는 본인이 자진한 것이니 계속 속아도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기꺼이 속는 자가 그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되면, 그 또한 이를 정당항화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진정으로’ 기거이 속는 자는 자리한 곳에 계속해서 머물면 안 된다. 147쪽


책 제목은 목사인 아버지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불자가 된 듯한 뉘앙스지만 책을 읽으면서 종교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책인 것은 분명했다. 무엇보다 저자의 심리변화나 성장과정을 보면서 무언가를 부정하려고 할 때, 그 상대가 부모일 때 자신의 자리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이드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서평의 시작과 끝이 어쩌면 애매하게 두리뭉실 해졌는지도 모른다. 그저 처음부터 꼭 직접 한 자 한 자 읽어보고 스스로의 삶과 시도했던 방식과 비교하고 방법을 찾아가면 좋겠다. 저자가 언급했던 법륜스님의 말처럼 ‘내 문제’라면 상대가 아닌 내게서 답을 찾아야한다.


#목사딸의백팔배 #이정은 #종교학 #자기배려 @onda_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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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과 정원 - 나만의 신화를 세우는 추상의 힘
최진석 지음 / 퍼블리온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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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과 정원, 삶을 설계한다는 것

“주체적으로 삶을 운전하려면 자신만의 가치를 어디선가 발견하거나 주워 오려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빛나는 통찰과 용기를 가지고 스스로 정해야 한다.”(73쪽)

최진석의 『텃밭과 정원』은 삶을 텃밭과 정원에 비유하며, 우리가 삶을 어떤 태도로 가꾸어야 하는지를 다루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저자가 말하는 텃밭과 정원의 차이는 단순한 삶의 태도에 관한 비유를 넘어,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사고방식과 수준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주어진 환경과 경험을 기록하고 축적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름다움을 정의하고 삶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생각이란 낯선 것을 마주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나아가는 지적 모험이다.(111쪽)

저자는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가치를 외부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행복이나 자유를 삶의 목적으로 제시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구체적인 목적지가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호기심을 바탕으로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인간의 본성적인 앎에 대한 욕구를 이야기한 것처럼, 삶은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나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

˝그리스인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오직 머릿속으로만 사유할 수 있는 완벽한 기하학적 원과 삼각형을 먼저 상정했다. 그리고 현실의 불완전한 사물들은 그 완벽한 수학적 법칙을 모방한 하위의 세계일 뿐이라고 보았다. 눈앞의 구체적인 흙과 돌을 관찰하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학적 원리를 깨닫는 것을 세계의 본질을 파악하는 궁극의 틀로 여긴것이다. (150쪽)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가 설명하는 생각의 의미도 인상적이었다. 생각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되풀이하거나 정해진 틀 안에서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낯선 것을 마주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따라서 실천과 변화를 회피한 채 기존의 관념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사고는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기 어렵다.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경험 너머의 가능성을 추상하고 설계하는 능력이 필요한 이유다.
저자는 전문성 역시 생계를 위한 기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본다. 구체적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의 원리를 이해하고, 나아가 자신만의 관점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삶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지식과 경험의 양만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다. 시선이 높은 사람은 고독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비극 속에서도 질서를 읽어 낸다.
이러한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축의 시대와 그리스 철학을 언급하며 추상적 사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그리스 철학이 현실의 구체적인 사물에 머무르지 않고 수와 기하학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원리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경험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과 그 경험을 넘어서는 원리를 사유하는 것은 서로 다른 차원의 사고다. 저자는 이러한 추상 능력이 개인의 삶에서는 자신만의 신화를 설계하는 힘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영화 『수상한 그녀』를 사례로 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보여준 황당함은 단순한 허무맹랑함이나 유치한 망상이 아니다. ‘황당함’이란 눈앞의 찌그러진 현실과 인과관계라는 대지의 중력을 단숨에 끊어내고 가상의 세계를 머릿속에 창조해 내는 가장 극단적인 초월 추상 능력이다. (179쪽)

✦

이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늘 있었던 명제는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 라고 말한 부분이었다. 특히 삶의 의미는 어딘가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과, 기록과 경험의 축적만으로는 삶의 수준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주어진 현실을 성실하게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너머를 추상하며 자신만의 정원을 설계하는 일이다.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나는 어떤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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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 바깥에서 - 노예와 여성, 노동자와 소수자가 바꾼 쓰기의 역사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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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바깥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표준어 바깥에서>를 읽고 나면 글쓰기란 절실한 곳에서 시작되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글을 쓸 자격이 있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문자권력 바깥에 있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을 기록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저자가 거듭 강조하는 ‘문자권력’이라는 말은 이 책을 관통하는 중요한 열쇠다. 과거에는 글을 읽고 쓰는 능력 자체가 권력이었다. 누구나 글을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여성과 노동자, 가난한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애초에 허락되지 않거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학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그런 경계 바깥에서 글을 썼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문학이란 처음부터 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자신의 삶을 외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절실함에서 비롯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는 전쟁에서 손을 다치고, 전쟁 노예로 붙잡히고, 가난 때문에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그는 감옥에서 집필한 대작 돈키호테로 인정받긴 했지만 가난과 고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위대한 작품과 그 작품을 쓴 사람의 비참한 현실 사이의 간극이 놀라웠다. 작품의 명성은 작가의 삶까지 보상해 주지 않는다. 우리가 위대한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의 이면에는 정작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한 인간의 삶이 놓여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톰 소여의 모험>으로 익숙한 마크 트웨인이 차별받고 억압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도 새롭게 다가왔다. 문학은 개인의 상상력과 재능을 증명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사회가 당연하게 여기는 부당함에 질문을 던지는 일이기도 하다. 어빈 웰시의 『트레인스포팅』에 대한 설명 역시 인상적이었다. 약물과 파격적인 소재 때문에 그저 자극적인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작품이, 사실은 대처 시대 이후 산업이 무너지고 노동의 미래가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청년들의 삶을 보여주는 사회풍자라는 점이 놀라웠다. 한 개인의 파괴적인 모습 뒤에는 그를 그렇게 만든 사회의 조건이 있다. 문학은 바로 그 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저자의 말에 가장 깊이 공감하게 된 인물은 마이아 에켈뢰브였다. 가난 속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바닥을 청소하며 살아가면서도 글쓰기를 놓지 않았던 사람.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그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이유들을 떠올렸다. 시간이 없어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 좀 더 잘 쓸 수 있을 때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럴듯한 이유를 늘어놓았지만, 어쩌면 나는 글을 쓰기 전에 먼저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보여줄 만한 결과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얼지 않도록 뜨개질과 코바느질을 했다.(...)
쓰레기통에서 건져 올린 종이에 몰래 글을 쓰고,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사무실을 청소했다. 233쪽

에켈뢰브의 삶은 그런 생각을 돌아보게 했다. 글쓰기는 무언가 대단한 영광을 얻기 위해 시작하는 일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내 안에 쌓인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든 밖으로 꺼내놓아야 해서 쓰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남의 문장을 흉내 내고 이미 인정받은 글의 형식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국 글은 자기 안에서 길어 올린 것이어야 한다. 서툴더라도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삶을 써야 한다. 그것이 글쓰기의 출발점일 것이다.

<표준어 바깥에서>는 문학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책인 동시에,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건네는 하나의 권유다. 언젠가 충분히 준비된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는 대신, 지금의 나를 통과한 생각들을 지금의 언어로 기록하는 것. 글쓰기의 자격을 바깥에서 구하지 않는 것. 문자권력의 바깥에서 시작된 수많은 글이 문학의 역사를 바꾸었듯, 나 역시 누군가의 인정을 기다리기 전에 내 안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한다. 이 책이 내게 남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바로 그것이다. 글은 특별한 사람에게 허락된 권리가 아니라, 쓰고자 하는 사람이 자신의 삶으로 시작하는 일이다. #박홍규 #틈새의시간 @timeofgap_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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