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시간으로부터 - 발아래에 새겨진 수백만 년에 대하여
헬렌 고든 지음, 김정은 옮김 / 까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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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고든의 저서, 깊은 시간으로부터의 도서 분류는 ‘과학‘이다. 우리가 밝고 서있는 땅 아래, 암석과 지층은 물론 연대를 증명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인 얼음층과 지형을 표기하는 지도, 다시 그 지도 위에서 태어나고 다시 쇠퇴한 생명체에 관한 역사와 다시 땅위로 올라와 인류가 미치는 영향에 따라 변화된 기후에 이르기까지 이 한 권의 책에서 등장하는 전문가와 그들의 직업군, 관련 전공은 실로 다양하고 흥미로우며 무엇보다 정말 재미있다. 글을 쓰는 소설가였던 저자가 땅 아래, 지층에 관심을 보이게 된 계기는 마치 재난관련 영화에서 마주하는 도입부, ‘그러던 어느 날‘처럼 우연처럼 다가온다.

런던을 돌아다니면서 조금 관심을 가지면, 우리의 발아래에 수많은 암석층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암석층 대부분은 하 번도 인간의 눈에 띈 적이 없다. 암석들이 처음 형성되었을 때 인간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 암석들의 오랜 이야기가 파묻히고 감춰져서 잊혔기 때문일 수도 있다. 14쪽

본문만 3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단숨에 읽었을 만큼 흥미로운 ‘소설‘처럼 다가왔지만 서두에 밝힌 것처럼 엄연히 과학분야에 속해있다. 그렇다보니 수백만 년 전 플라이스토세를 지나 홀로세를 살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질학의 변천사 혹은 관련 이론이 어떻게 정립되고 수정되었는지를 요약해야 하는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이 느껴져 서평을 적는 것이 쉽지 않았다. 헌데 이런 이론이야 일단 이 책을 읽기만 하면 저절로 알게되는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가 인기를 얻으면서 상대성 이론이 화제가 되었던 것처럼) 부분이니 읽으면서 아! 하거나 오! 했던 부분 위주로 적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제일 처음 오! 했던 부분은 빙하학 교수이자 얼음코어 기록 보관소의 학예사 스테펜션과의 만남이이었다. 도서관 사서 자격증과 학예사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나름 어떤 기관의 사서 혹은 학예사가 될 수 있을지 상상해보던 때가 있었다. 헌데 ‘얼음코어 기록 보관소‘라는 장소는 뜻밖이었다. 그야말로 영화 속 재난전문가를 찾아나설 때 엄청난 이력이 소유자이자 미모의 소유자이면서 돌싱(그것도 배우자와 심각한 성격차이로 인한 결별)의 인물이 절로 연상이 되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스테펜션 부부는 같은 직무에 종사할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사적인 배경도 이 책이 흥미롭게 읽혔던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지질학자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관심도 생겼는데 지질학자가 마치 시인처럼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밝혀내는 사람들이라는 표현도 좋았다. 두 번째로 오! 했던 부분은 운석 경매에 관한 부분이었다. 운석을 수집한다는 게 엄청난 부자이거나 연구기관 혹은 학자들에게 한정된 것인 줄 알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았다.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듯 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의외로 소장 경로가 엄청나게 까다롭진 않았다. 아! 했던 부분은 백악에 관한 부분이었다. 백악기 하면 공룡을 포함 해 지금은 볼 수 없는 멸종된 동물들의 이야기 속에서만 등장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백악을 만날 수 있다.

백악의 세계는 약 1억-8,000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 (...)지질학자들은 이 시기를 라틴어로 ˝백악˝을 뜻하는 Creta르 따라 배각기라고 부른다. (...) 백악기가 끝난 후로 지금까지 6,500만 년이 흘렀ㅇ니, 얼마나 기 시간인지 알 수 있다. 138쪽
백악은 영국 남부 해안에서 영국 해협 아래로 내려갔다가 또다른 하얀 절벽으로 다시 나타난다.(...)
백악은 프랑스 북부의 상당지역과 스칸디나비아의 일부 지역, 네덜란드 림뷔르흐 지방, 독일 일부 지역에도 있다. 142쪽

백악이 처음 연구되기 시작하던 시기에는 약 3개층으로 이루어졌다고 짐작했지만 판구조론자들의 연구가 더해져 100년이 지난 이후, 무려 9개의 층으로 세분되기 시작되었다. 백악만 오차가 컸던 것이 아니다. 지구의 나이 자체가 만 년도 안되었다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렇게 몰랐던 것을 하나씩 밝혀가는 과정도 재밌었지만 안타까운 내용도 분명 있었다. 영국의 유용한 지도를 개발한 스미스의 경우는 같은 학자들 끼리도 무상으로 베끼거나 제대로된 보상없이 차용 당하는 등 지도제작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기도 했다. 특히 아! 했던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특정 시기, 시대를 한 단어 혹은 ‘~시대‘라는 말로 함축시키기도 하고, 마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이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는 데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홀로세‘로 저자 뿐 아니라 이 책을 읽거나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시기를 살고 있다. 지질학자들의 삶은 1~2년 혹은 수십년 동안 일어난 사실들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짧아도 수 천년 수 만년에 이른다. 맨 처음 오! 했던 얼음코어 기록소에 있는 얼음은 그렇게 오래 전 내렸던 쌓인 눈을 통해 지구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홀로세 이후의 누군가에 의해 지금 지상에서 내리는 눈을 통해 같은 방식으로 지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화석 역시 마찬가지의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베리는 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수집가용 수납장을 열더니, 만찬 접시만한 크기의 나작하고 둥근 클라도그실론류의 화석을 꺼냈다. 그는 ˝이 화석을 처음 봤을 때 완전히 넋이 나갔다˝고 말했다. 208쪽

저자는 같은 화석을 보고 어떤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 내가 봤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표본이 이전에도 발견된 것인지 어떤지의 여부를 알 수 없을 뿐더러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위의 언급한 표본은 나무의 생장방식이 이전과 다를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 거였고, 새로 발견한 만큼 이름을 붙일 수도 있었다. 그저 땅 아래를 파헤치는 굴삭기를 보았고, 층이 나뉘어진 구덩이를 보았을 뿐인데 저자의 관심과 행동은 이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데까지 미쳤다. 마지막 아! 했던 부분이 이 지점이었다. 조개 껍질에도 층은 보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룡에 대한 책을 함께 읽는 그 많은 순간, 내게도 이런 기회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인류세란 말을 처음 들으며 기후의 심각성을 깨닫는 순간에도 그런 기회는 곁에 와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던 순간만큼 지질학에 대해, 기후에 대해 무엇보다 지구와 시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이 책은 그 어떤 재난영화도, 기후관련 정책에서도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무조건 추천 또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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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인생공부 - 인간의 마음을 해부한, 67가지 철학수업 인생공부 시리즈
김태현 지음, 블레즈 파스칼 원작 / PASCAL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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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미워하는지를 결코 말하지 못했다. 109쪽

파스칼 인생 공부는 그의 저서 팡세의 내용 중 일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사례와 함께 4개의 주제로 선별하여 엮은 책으로 삶의 지혜는 물론 개인적으로는 감정과 이성과의 적절한 조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이 크게 와닿았다. 특히 서두에서 언급한 ‘감정 표현의 부재’와 관련된 부분을 다른 내용들과 연결지어 이야기하자면, 감정을 어루만지는 것,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특히 아직 어린 영유아 아이들은 감정부터 살펴주는 것이 맞지만 정작 어른이 되어,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게 된다. 부모님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았어도 어려워지는 것은 이성적 사고를 성장하는 동안 내내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MZ세대라고 특정 세대를 구분지어 사고하는 편은 아니지만 회사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았을 때 상사나 동료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 하는 그 세대들만의 특징일까. 진정을 담아 위로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을 버거워하면서도 혼자있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어쩌면 파스칼의 말처럼 끊임없이 불행하기 위해, 견뎌내기 위해 고통을 찾아다니는 모습처럼 보였던 것 같다.

파스칼은 우리의 삶이 다른 사라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상기시켜 줍니다. 138쪽

적절한 감정표현은 나와 이웃의 관계를 좋아지게 만들고 불화를 낮추지만 ‘침묵’을 상황에 맞게 사용하는 것도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불의를 보았을 때 침묵하는 것은 회피를 넘어 동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만 상대가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곁에서 묵묵히 기달려주는 침묵은 그 어떤 위로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산다는 것은 모순 투성이며, 때로는 미치지 않은 것이 더 미친 것처럼 느껴진다는 파스칼의 말은 과격하고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럴 땐 제대로된 감정 표현과 적절한 침묵을 지키는 정도로도 충분히 나와 이웃의 삶을 평안하게 해줄 수 있다 내용이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크고 확실한 조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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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하지 못한 말
임경선 지음 / 토스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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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지못한말 #임경선

평소에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다른 사람들의 후기가 올라오기 전 서둘러 구입부터 해둔다. 그리고 바로 근처 카페로 가서 읽거나 택배 상자가 도착하자 마자 소파로 가져가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일주일 혹은 한 달도 더 지나서 ’가장 좋은 때‘에 읽을 것을 기대하며 견뎌본다. 임경선 작가의 <다 하지 못한 말>은 그 때가 참 더디게 왔다. 봄에 나온 소설을 가을에 읽어도 좋긴 하다. 사랑이야기가 그런 것 처럼.

소설 속, ’나‘는 피아노를 치는, 하지만 자신의 희망만큼 운이 따르지 않아 좌절감을 겪는 남자와 사랑했으나 이별을 앞두고 있다. 그 사랑이 솔직한 말들로 깨지기라도 할까 다 하지 못한 말들을 고백하듯 혹은 토해내듯 쏟아낸다.

내 바람대로 아침까지 내 곁에 있어주었음에도 나는 놀라울 정도로 황량한 기분이 들었어. 그래서 불편하게 자는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홀로 남겨진 기분을 느낀 나를 위해서 다시는 이런 무리한 부탁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지. 그런데 무리한 요구를 하지 못하는 관계는 그것대로 또 얼마나 쓸쓸할까. 114쪽

사랑하는 연인 관계는 어떤 요구라도 서로에게는 무리하지 않은 요구가 되는 사이가 아닐까 싶다. 어느 순간 둘 중 한 쪽이라도 ’무리한 요구‘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이별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연애였던 그 사람도 소설 속 남자처럼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고, 장거리 출장 전 잠시라도 만나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때의 나는 누구에게 묻거나 위로받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팠던 그 마음, 혹시 이대로 헤어지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알아차리지 못하고 어리석게 굴고 있는 건가 싶어 괴로워하며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날 아프게 하는 사람은, 아니 남자는 진정으로 날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소설에서,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넘치게 듣고 보았으니까. 다만 아직 내 마음이 끝난 게 아니니 굳이 확답을 받으려 하지 말고, 그냥 내 마음이 가는대로 가보자는 심산이었다. 다행인것은 그 남자가 아니었다면 나도 평생을 그렇게 모든 남자들을 오해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단순하다. 회사가 바빠서, 다른 힘든 일이 있어서 연락을 못 하는 게 아니다. 그냥 연락하기 싫어서다. 여자를 좋아하면 일이 바쁘고 힘들 때 오히려 더 만나서 위로받고 싶은 법이다.
”아무튼 남자들은.... 좀 그래.“ 164-165쪽

하지만 소설 속 남자는 좀 그런 남자였고, 다른 답을 기대했던 여자는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해 피를 쏟고 만다. 소설을 읽는 내내 영화 <3000년의 기다림> ost를 들어서 그런지 ’나‘와 함께 오매불망 기다리고 아파하며 읽게 되었다.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때 남편에게 말했다. 소설을 읽다보면 연애했던 시절이 정말 그리워지는데 결국 헤어짐을 마주하게 되면 더는 연애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좋은 것 같다고. 결혼이 이별 없는 연애인 것처럼 살아가는 부부들은 이해가 안될 수도 있다. 너무 많이 아파본 사람은 아픔이 없는 상태야 말로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안다고들 하던데 그게 진짜 이유인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어떤 괴로움도 공부가 돼요. 잃는 건 없어요.“ 173쪽

임경선 작가의 작품은 에세이든 소설이든 꼭 챙겨서 읽고 있지만 이상하게 서평을 적지 못했다.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써보려고 해도 자꾸 내 얘기만 잔뜩 늘어놓게 되거나 끝없이 방황하는 중얼거림이 되고 말았다. 이 작품도 출간된지 시간도 좀 지난데다, 이처럼 개인사만 적게 되어 지우고 싶지만 ’희망고문‘일지라도 저 말을 꼭 적고 싶어서 지울수가 없다. 모든 남자가 보고 싶다고 다 연락하고, 바빠도 무조건 연락하고 그러는 건 아니다. 6년을 살아보니 더더욱 그렇다. 연락을 했는데 받지 않거나, 성실하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전제해야겠지만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그 남자는 정말 시간을 필요 할 수도 있다. 나와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시간이 아닌 그야말로 숨을 고르기 위한 시간, 그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얼마 전 다른 책 리뷰에서 적었지만 연인, 혹은 부부가 만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리 부부가 이런저런 이유로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던 삶 가운데 쉴 수 있는 여유를 나누라고 만난 것처럼 말이다. 힘들고 아픈 사랑을 하기보다는 그냥 사랑없이 사는 시대에 이렇게라도 이어보려는 게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어떻게든 서평을 남겨보려고 분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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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 - 이 세계를 움직이는 힘
브라이언 클라스 지음, 김문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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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변화가 그토록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우주는 언제나 우리에게 불확실하고 심지어는 임의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제아무리 기술적으로 도약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결코 라플라스의 악마가 될 수 없다. 53쪽

이따금 지난 날을 후회하거나 아쉬움이 남거나 영화처럼 누군가를 잃게 되는 아픔이 찾아오면 ‘만약 그랬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초반에 등장하는 원자폭탄의 경우만 봐도 결정권자의 교토 여행이 추억이 아닌 악몽과 같은 여행이었다면 폭탄은 교토에 떨어졌을 것이고 구름의 흐름이 더디었더라면 나가사키는 화를 면했을 수도 있다. 저자의 힘들게 고백한 가정사만 보더라도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그야말로 ‘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라고 밖에는 설명할수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그냥은 무의미하다거나 무기력과는 조금 다른 의미다.

현대 인간 사회는 월등히 통합적이고 엄격히 관리되며 구조적으로 조작된 구역이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불규칙하고 임의적인 충격을 받기 쉬운 곳이기도 하다. 메뚜기 떼의 양상은 무시무시하게 질서정연해 보이지만 갑작스레 모든 것이 변해버리는 사회적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물리학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혼돈의 가장자리에 불안정하게 선 무리에서 살아간다.133쪽

책을 읽으면서 최근에 개방한 <트위스터스>와 같은 재난과 재해를 다룬 영화들을 많이 떠올렸는데 실제 여름마다 예측을 빗나가는 태풍, 장마 등만 보더라도 인간의 예측이 전문적으로 설계된 시스템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불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에서도 등장하는 메뚜기떼의 공격 역시 재난재해 뿐 아니라 히어로가 등장하는 SF영화에서조차 정확한 예측은 늘 빗나가기 마련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책에서 제시한 사례만 보더라도 ‘우리 각자는 조금씩 다르게 날갯짓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45쪽) 나를 아는 것의 집착하기 보다는 나의 작은 행동과 판단이 타인과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중요하다.(388쪽)‘ 책을 읽고 혼자서만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면, 짧더라도 서평을 남겨야 하는 이유도 어쩌면 이런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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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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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나는 가난한 아이었고, 가난한 어른이 되었다. 분명 상대적으로 보았을 때 내 처지는 가난한 것이 맞지만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가난은 아니다. 과거에는 보편적 가난이 존재했다면 지금은 상대적인 부분이 커졌기 때문에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가 더심각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가난을 겪는 학생들의 삶에서 공부나 성장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어른들이나 학생들이나 자신의 생존과 안전의욕구를 위해서 공동체의 질서나 문화는 쉽게 무시되었고 공동체성이 사라진 곳에서는 ’정의‘나 ’교육‘의 논리보다는 ’힘‘의 논리가 횡행했다. (…) 가난은 삶의 곤란함을 넘어서 때로는 무기가 되고 도구로도 이용되고 있었다. -들어가며 중 일부-

이 책은 허구가 아닌 실재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진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쓰여졌기 때문에 책 제목에 부합하는 내용 그대로다. 학교의 교사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개입 혹은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저자와 같은 사람도 있지만 일시적인 안타까움만 품을 뿐 쉽게 잊고 마는 나같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쩌면 후자의 경우가 더 많아서 ’가난한 아이들‘이 여전한지도 모른다.

수정이 안정된 직장을 얻고도 가난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었던 건 디딤돌 없는 삶의 조건 때문이었다. 게다가 성인이 되고 나자 어머니와의 관계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이 관계 때문에 수정은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없게 되었다. 138쪽

서두에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태‘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수정이가 직면한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없게 된 상태‘일 것이다. 성실하게 안정적으로 급여를 받고, 조금 덜 쓰고, 덜 먹으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에서 가난은 ’죄‘까진 아니어도 ’부정적인 시선‘을 수긍해야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정이의 경우는 다르다. 부모의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근로가 불가능한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이런 경우에 사회 시스템이 이들을 보호해야 하고, 이웃의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또 가족원 중 한 명이라도 완치가 불가능한질병 혹은 약물을 비롯 중독으로 인해 온종일 보호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이럴 때 자신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사유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복지라고 생각한다.

저는 그나마 감사한 것 같아요. 제가 되게 막혀 있었던 사람인데 지금은 되게 많이 열리게 된 것 같아요.(…)제가겪지 않으면 이해를 못 하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지금은 나랑 달라도 다 이해가 되더라고요. 제가 겪은 일들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줘서, 지금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153쪽

수정이와 달리 아직 홀로서기 중인 혜주와 같은 사례도 있었다. 혜주는 외모에 집착한다기 보다는 과한 메이크업과 염색이 자신의 약한 부분을 보호해주는 가면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다면서도 ‘무기’없이는 외출이 어려운 혜주의 경우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려해도 중도에 포기한 학업과 아르바이트 등으로 가족에게 조차 제대로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수정과는 조금 다른 상황이지만 혜주에게도 여전한 희망은 존재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가난한 아이들의 미래가 반드시 ‘가난한 어른’인 것이 아니라는것은 분명하다.

이제 빈곤은 세대를 이어 빈곤이 되물림 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 그 자체이다. 게다가 빈곤은 더 이상 저소득만을의미하지 않는다. 시간 빈곤, 문화 빈곤, 주거 빈곤 등 불평등의 다양한 양상들은 저마다 현실속에 다른 모습으로드러난다. 257쪽

내가 느끼는 가난은 시간과 주거 빈곤에 속할 것이다. 아직 아이가 어려 자신의 부모가 ‘가난한 어른‘이라는 것을타인의 시선속에서 느끼지는 못하지만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결국 알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아이가 가난을 부끄러워하고 슬퍼하기 보다는 ‘희망의 부재’는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 책을 읽고이 서평을 쓰며 어제보다는 더 나은 어른이 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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