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 하지 못한 말
임경선 지음 / 토스트 / 2024년 3월
평점 :
#다하지못한말 #임경선
평소에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다른 사람들의 후기가 올라오기 전 서둘러 구입부터 해둔다. 그리고 바로 근처 카페로 가서 읽거나 택배 상자가 도착하자 마자 소파로 가져가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일주일 혹은 한 달도 더 지나서 ’가장 좋은 때‘에 읽을 것을 기대하며 견뎌본다. 임경선 작가의 <다 하지 못한 말>은 그 때가 참 더디게 왔다. 봄에 나온 소설을 가을에 읽어도 좋긴 하다. 사랑이야기가 그런 것 처럼.
소설 속, ’나‘는 피아노를 치는, 하지만 자신의 희망만큼 운이 따르지 않아 좌절감을 겪는 남자와 사랑했으나 이별을 앞두고 있다. 그 사랑이 솔직한 말들로 깨지기라도 할까 다 하지 못한 말들을 고백하듯 혹은 토해내듯 쏟아낸다.
내 바람대로 아침까지 내 곁에 있어주었음에도 나는 놀라울 정도로 황량한 기분이 들었어. 그래서 불편하게 자는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홀로 남겨진 기분을 느낀 나를 위해서 다시는 이런 무리한 부탁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지. 그런데 무리한 요구를 하지 못하는 관계는 그것대로 또 얼마나 쓸쓸할까. 114쪽
사랑하는 연인 관계는 어떤 요구라도 서로에게는 무리하지 않은 요구가 되는 사이가 아닐까 싶다. 어느 순간 둘 중 한 쪽이라도 ’무리한 요구‘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이별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연애였던 그 사람도 소설 속 남자처럼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고, 장거리 출장 전 잠시라도 만나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때의 나는 누구에게 묻거나 위로받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팠던 그 마음, 혹시 이대로 헤어지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알아차리지 못하고 어리석게 굴고 있는 건가 싶어 괴로워하며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날 아프게 하는 사람은, 아니 남자는 진정으로 날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소설에서,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넘치게 듣고 보았으니까. 다만 아직 내 마음이 끝난 게 아니니 굳이 확답을 받으려 하지 말고, 그냥 내 마음이 가는대로 가보자는 심산이었다. 다행인것은 그 남자가 아니었다면 나도 평생을 그렇게 모든 남자들을 오해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단순하다. 회사가 바빠서, 다른 힘든 일이 있어서 연락을 못 하는 게 아니다. 그냥 연락하기 싫어서다. 여자를 좋아하면 일이 바쁘고 힘들 때 오히려 더 만나서 위로받고 싶은 법이다.
”아무튼 남자들은.... 좀 그래.“ 164-165쪽
하지만 소설 속 남자는 좀 그런 남자였고, 다른 답을 기대했던 여자는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해 피를 쏟고 만다. 소설을 읽는 내내 영화 <3000년의 기다림> ost를 들어서 그런지 ’나‘와 함께 오매불망 기다리고 아파하며 읽게 되었다.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때 남편에게 말했다. 소설을 읽다보면 연애했던 시절이 정말 그리워지는데 결국 헤어짐을 마주하게 되면 더는 연애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좋은 것 같다고. 결혼이 이별 없는 연애인 것처럼 살아가는 부부들은 이해가 안될 수도 있다. 너무 많이 아파본 사람은 아픔이 없는 상태야 말로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안다고들 하던데 그게 진짜 이유인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어떤 괴로움도 공부가 돼요. 잃는 건 없어요.“ 173쪽
임경선 작가의 작품은 에세이든 소설이든 꼭 챙겨서 읽고 있지만 이상하게 서평을 적지 못했다.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써보려고 해도 자꾸 내 얘기만 잔뜩 늘어놓게 되거나 끝없이 방황하는 중얼거림이 되고 말았다. 이 작품도 출간된지 시간도 좀 지난데다, 이처럼 개인사만 적게 되어 지우고 싶지만 ’희망고문‘일지라도 저 말을 꼭 적고 싶어서 지울수가 없다. 모든 남자가 보고 싶다고 다 연락하고, 바빠도 무조건 연락하고 그러는 건 아니다. 6년을 살아보니 더더욱 그렇다. 연락을 했는데 받지 않거나, 성실하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전제해야겠지만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그 남자는 정말 시간을 필요 할 수도 있다. 나와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시간이 아닌 그야말로 숨을 고르기 위한 시간, 그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얼마 전 다른 책 리뷰에서 적었지만 연인, 혹은 부부가 만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리 부부가 이런저런 이유로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던 삶 가운데 쉴 수 있는 여유를 나누라고 만난 것처럼 말이다. 힘들고 아픈 사랑을 하기보다는 그냥 사랑없이 사는 시대에 이렇게라도 이어보려는 게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어떻게든 서평을 남겨보려고 분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