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시간으로부터 - 발아래에 새겨진 수백만 년에 대하여
헬렌 고든 지음, 김정은 옮김 / 까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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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고든의 저서, 깊은 시간으로부터의 도서 분류는 ‘과학‘이다. 우리가 밝고 서있는 땅 아래, 암석과 지층은 물론 연대를 증명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인 얼음층과 지형을 표기하는 지도, 다시 그 지도 위에서 태어나고 다시 쇠퇴한 생명체에 관한 역사와 다시 땅위로 올라와 인류가 미치는 영향에 따라 변화된 기후에 이르기까지 이 한 권의 책에서 등장하는 전문가와 그들의 직업군, 관련 전공은 실로 다양하고 흥미로우며 무엇보다 정말 재미있다. 글을 쓰는 소설가였던 저자가 땅 아래, 지층에 관심을 보이게 된 계기는 마치 재난관련 영화에서 마주하는 도입부, ‘그러던 어느 날‘처럼 우연처럼 다가온다.

런던을 돌아다니면서 조금 관심을 가지면, 우리의 발아래에 수많은 암석층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암석층 대부분은 하 번도 인간의 눈에 띈 적이 없다. 암석들이 처음 형성되었을 때 인간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 암석들의 오랜 이야기가 파묻히고 감춰져서 잊혔기 때문일 수도 있다. 14쪽

본문만 3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단숨에 읽었을 만큼 흥미로운 ‘소설‘처럼 다가왔지만 서두에 밝힌 것처럼 엄연히 과학분야에 속해있다. 그렇다보니 수백만 년 전 플라이스토세를 지나 홀로세를 살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질학의 변천사 혹은 관련 이론이 어떻게 정립되고 수정되었는지를 요약해야 하는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이 느껴져 서평을 적는 것이 쉽지 않았다. 헌데 이런 이론이야 일단 이 책을 읽기만 하면 저절로 알게되는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가 인기를 얻으면서 상대성 이론이 화제가 되었던 것처럼) 부분이니 읽으면서 아! 하거나 오! 했던 부분 위주로 적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제일 처음 오! 했던 부분은 빙하학 교수이자 얼음코어 기록 보관소의 학예사 스테펜션과의 만남이이었다. 도서관 사서 자격증과 학예사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나름 어떤 기관의 사서 혹은 학예사가 될 수 있을지 상상해보던 때가 있었다. 헌데 ‘얼음코어 기록 보관소‘라는 장소는 뜻밖이었다. 그야말로 영화 속 재난전문가를 찾아나설 때 엄청난 이력이 소유자이자 미모의 소유자이면서 돌싱(그것도 배우자와 심각한 성격차이로 인한 결별)의 인물이 절로 연상이 되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스테펜션 부부는 같은 직무에 종사할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사적인 배경도 이 책이 흥미롭게 읽혔던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지질학자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관심도 생겼는데 지질학자가 마치 시인처럼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밝혀내는 사람들이라는 표현도 좋았다. 두 번째로 오! 했던 부분은 운석 경매에 관한 부분이었다. 운석을 수집한다는 게 엄청난 부자이거나 연구기관 혹은 학자들에게 한정된 것인 줄 알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았다.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듯 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의외로 소장 경로가 엄청나게 까다롭진 않았다. 아! 했던 부분은 백악에 관한 부분이었다. 백악기 하면 공룡을 포함 해 지금은 볼 수 없는 멸종된 동물들의 이야기 속에서만 등장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백악을 만날 수 있다.

백악의 세계는 약 1억-8,000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 (...)지질학자들은 이 시기를 라틴어로 ˝백악˝을 뜻하는 Creta르 따라 배각기라고 부른다. (...) 백악기가 끝난 후로 지금까지 6,500만 년이 흘렀ㅇ니, 얼마나 기 시간인지 알 수 있다. 138쪽
백악은 영국 남부 해안에서 영국 해협 아래로 내려갔다가 또다른 하얀 절벽으로 다시 나타난다.(...)
백악은 프랑스 북부의 상당지역과 스칸디나비아의 일부 지역, 네덜란드 림뷔르흐 지방, 독일 일부 지역에도 있다. 142쪽

백악이 처음 연구되기 시작하던 시기에는 약 3개층으로 이루어졌다고 짐작했지만 판구조론자들의 연구가 더해져 100년이 지난 이후, 무려 9개의 층으로 세분되기 시작되었다. 백악만 오차가 컸던 것이 아니다. 지구의 나이 자체가 만 년도 안되었다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렇게 몰랐던 것을 하나씩 밝혀가는 과정도 재밌었지만 안타까운 내용도 분명 있었다. 영국의 유용한 지도를 개발한 스미스의 경우는 같은 학자들 끼리도 무상으로 베끼거나 제대로된 보상없이 차용 당하는 등 지도제작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기도 했다. 특히 아! 했던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특정 시기, 시대를 한 단어 혹은 ‘~시대‘라는 말로 함축시키기도 하고, 마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이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는 데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홀로세‘로 저자 뿐 아니라 이 책을 읽거나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시기를 살고 있다. 지질학자들의 삶은 1~2년 혹은 수십년 동안 일어난 사실들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짧아도 수 천년 수 만년에 이른다. 맨 처음 오! 했던 얼음코어 기록소에 있는 얼음은 그렇게 오래 전 내렸던 쌓인 눈을 통해 지구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홀로세 이후의 누군가에 의해 지금 지상에서 내리는 눈을 통해 같은 방식으로 지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화석 역시 마찬가지의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베리는 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수집가용 수납장을 열더니, 만찬 접시만한 크기의 나작하고 둥근 클라도그실론류의 화석을 꺼냈다. 그는 ˝이 화석을 처음 봤을 때 완전히 넋이 나갔다˝고 말했다. 208쪽

저자는 같은 화석을 보고 어떤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 내가 봤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표본이 이전에도 발견된 것인지 어떤지의 여부를 알 수 없을 뿐더러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위의 언급한 표본은 나무의 생장방식이 이전과 다를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 거였고, 새로 발견한 만큼 이름을 붙일 수도 있었다. 그저 땅 아래를 파헤치는 굴삭기를 보았고, 층이 나뉘어진 구덩이를 보았을 뿐인데 저자의 관심과 행동은 이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데까지 미쳤다. 마지막 아! 했던 부분이 이 지점이었다. 조개 껍질에도 층은 보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룡에 대한 책을 함께 읽는 그 많은 순간, 내게도 이런 기회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인류세란 말을 처음 들으며 기후의 심각성을 깨닫는 순간에도 그런 기회는 곁에 와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던 순간만큼 지질학에 대해, 기후에 대해 무엇보다 지구와 시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이 책은 그 어떤 재난영화도, 기후관련 정책에서도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무조건 추천 또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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