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발견 - 행복한 삶을 위한 도시인문학
정석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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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혁신의 성패는 결국 시민에게 달렸다. 211쪽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를 읽고서 깨달은 바가 있다. '한국이 싫은 이유'를 깨달았다기 보다는 정말 싫다면 나가살려는 시도와 그에 걸맞는 노력이라는 것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이 좋든 싫든 남기로 했다면 남아 있는 이상 또 노력이 필요하다. 적어도 마지못해 산다는 것은 스스로에게나 국가에게나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도시의 발견]의 저자 정석교수는 나처럼 직설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결국 내가 위의 소설을 읽고 느낀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선 도시의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한다. 도시를 움직이는 힘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도시를 움직일까? 市長일까, 市場일까, 자본과 권력일까, 아니면 우리들 시민일까? 우리가 원하는 도시에서 살기 위해서는 도시를 잘 알아야 한다. 시민들이 도시를 공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6쪽


우리는 누군가의 잘못은 잘도 지적하고 흉을 보면서 정작 왜 상황이 그렇게까지 진행되었는지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모든 문제를 개인탓으로 돌리려는 것이 아니라 뭘 알아야 사회 혹은 국가에 요구하고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부분도 그럴테지만 특히 도시환경부분에 있어서 주민의 노력은 상당히 크다. 실제 생계와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단합해서 시정요구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미화와 관련되어 있거나 생계문제와 관련성이 적을 때 우리는 그저 볼멘 소리를 내는 것에서 그친다. 무엇보다 우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상당히 무심하다. 가령 누군가 유럽의 어느 나라나 지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하면 한 두 번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높인다. 잘난체를 한다기 보다는 그만큼 자신의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는 별거 없다는 말로 일축한다. 하지만 의외로 제3자의 눈에는 보이는 '보물'들이 상당하다. 얼마전 TV프로 비정상회담에서 한국인이 모르는 외국인들이 반드시 가고 싶은 장소로 '전쟁기념관'이 1위로 뽑혔을 때 여기저기서 기사화 되었다. 이렇듯 가장 최우선 되어야 할 단계가 '관심과 공부'다. 그다음은 자본의 흐름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결국 돈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저자도 피해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본이 어디서 어디로 흐르는지, 어떻게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세워야할지 '역사책'을 들여다보듯 재개발지역의 현재를 보면 된다. 저자가 소개해준 해외지역 뿐 아니라 서울, 전주, 수원, 성남의 보고 알 수 있다.


우리의 도시에는 길에게 자상한 건물, 길을 길답게 해주는 건물, 길을 섬기는 건물의 '늘어서기'가 필요하다. 당장 내가 사는 도시의 길부터 한번 걸어보자. 어떤가. 우리 도시에

좋은 길인가? 70쪽


사실 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왜냐면 도심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20~30대 거주민들은 자기동네라는 개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최소 10여년 이상 거주함녀서 내 동네라는 개념이 잡혀여 관심을 갖고 공부도 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을텐데 길어야 3년 미만인 그들의 관심은 그저 대중교통 이용이 수월할 수 있다면, 편의시설이 잘 되어있기만 하다면 도시를 큰그림이 아닌 '소모품'의 하나로만 보게 된다. 더군다나 건축물과 관련된 부분이 개정되고 반영되기까지의 시일이 결코 짧지만은 아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또한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내 동네와 같은 시민의식이 진짜 '내동네', '내나라'를 발전시키는 시작이 아닌가 싶다. 그런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시민의 관심유도를 촉구하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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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인생의 판을 뒤집는 아들러의 가르침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살림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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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거에 경험한 사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 50쪽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가 이번에는 아들러의 [인생의 이미의 심리학]을 바탕으로 새 책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를 펴냈다. 저자의 아들러와 관련된 책은 위의 두 책 외에도 여러 권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중복된 내용을 반복 설명하는데 그때마다 느껴지는 부분, 내가 고쳐야겠다고 판단되는 부분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시미 이치로가 말하는 '아들러 심리학'이야기는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지속적으로 신간을 읽어보거나 혹은 이전에 읽었던 책을 반복해서 읽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신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편의 주된 내용은 '의미론'과 '목적론'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일, 혹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에 인간은 의미를 부여한다. 어떻게 부여할 지는 전적으로 개인에 달려있지만 '선'과 관련된 부분은 결코 혼자서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다. 반대로 개인의 과거나 사건사고는 당연히 스스로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책에서 사례로 든 예처럼 누군가 내 앞에서 커피를 쏟았다는 가정하에 화를 낼 수도 있고 웃으며 괜찮다고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수도 있다. 화를 낸 이상 그 상황을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한 키를 상대방에게 넘겨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상대방이 한 번 더 사과하거나 좀 더 적극적인 방식의 보상등을 제시한다면 그럭저럭 상황이 크게 나빠지지 않을 수 있지만 화를 낸 나와 마찬가지로 노골적으로 기분이 상했다는 반응을 보이면 잘잘못을 떠나 양쪽 모두에게 그것은 그야말로 '사건'이 된다. 이때 저자는 만약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할 수 있기만 해도 화낼 일이 없어진다고 말한다. 정리하면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화를 내지 않는 것도 방법이지만 한때 크게 유행했던 '웃으며 화내는 것'도 방법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내용이 의미론과 관련되어 있다면 목적록은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닥친 시련을 긍정적으로 혹은 내게 유리한 쪽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서 아들러가 말하는 "인생의 문제와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우월성 추구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런데 문제와 맞딱뜨려 "진실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만 우월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을 풍요롭게 하려는' 즉 행복하게 하려는 사람이며,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나아가는'사람입니다. 130쪽


우리가 의미를 어디에 두고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행복이 개인에서 머물지 않고 타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우쭐해본 적은 있지만 그것은 내가 화를 내지 않고 잘 다스렸다는 개인의 만족차원에서였지, 상대방의 감정까지 영향력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타인에 의해 콤플렉스에 빠지거나 없던 콤플렉스가 생기는 현실에서 그와 상반되는 이 우월성 추구의 의미가 이전에는 전혀 느껴본적 없이 크게 다가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타이틀만 보면 개인의 행복과 목적달성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노멀한 자기개발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기시미 이치로의 아들러 심리학은 반드시 직접 한 자 한 자 읽어봐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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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아시아 제42호 2016.가을 - 도시와 작가들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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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도시는 시 쓰는 것을 가르쳐주는 선생이었다

계간아시아 42호 2016 가을


계간 아시아 42호, 가을호편에서는 친숙한 작가들과 작품을 다른 때 보다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한국이 싫어서]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장강명 작가의 '나는 어떻게 쓰는가'편을 가장 먼저 읽었다. 오랜기간 언론사에서 기자생활을 했지만 어쨌든 그는 문학도가 아닌 공학도였다. 공학도 답게 그가 작업하는 방식도 마치 건축설계를 하듯 똑 부러졌다. 어떤면에서는 무작정 써봐야한다거나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다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보다 차라리 이렇게 공식화된 답변이 조금 위로가 되기도 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유력한 수상자로 거론되었던 하루키도 매일 아침 빠짐없이 조깅을 하고 정해놓은 시간만큼은 반드시 집필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는데 장강명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있건 없건, 몸 사태가 어떻건 간에 매일 꾸준하게, 직업인처럼 쓰려고 한다. 소설을 쓰는 시간과 청소를 하는 시간등을 합쳐서 '근무시간'을 정해놨는데, 그 시간을 매일 스톱워치로 재서 엑셀 파일에 기록한다. 157쪽


저런 방식으로 그가 정해놓은 집필 시간은 1년에 2,200시간 이라고 한다. 이렇게만 보면 엄청난 시간같아 보이고 실제로 인터뷰에서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답변을 읽고보니 평균 3000시간 이상 근무를 하는 평사원들과 비교하자면 작가의 말처럼 그다지 무리하는 시간은 아니다. 물론 근무시간 내내 잡담이나 딴짓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조율하고 정말 하기 싫을 때에는 그만둬도 된다는 점에서는 저자 말처럼 회사원보다는 여유롭다. 이렇게 정해진 시간만큼 글을 쓰고 공학도 다운 집필 방식을 보여주는 그도 글을 쓸 때 '그 분'이 오셔야 한다는 식의 결론을 피해가지는 않는다.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글을 쓰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쓰는게 아니라 글이 저 스스로 쓴다고 결론냈기 때문이다. 많이 쓰는 것, 그리고 자연스럽게 글안에 인물들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체험을 해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평부분에서는 콜린 마셜이 쓴 김애란 작가의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서평을 읽었는데 사실 해당 작품을 읽기 전이라 서평부분은 빼놓고 읽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타이틀이 던지는 그 질문에서 왠지 자유로워지지 못해 결국 다른 작품들을 뒤로 하고 서평을 읽었는데 역시나 영화평으로 치자면 '스포'가 가득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싶은 마음이 이 구절을 읽고 들었다.


명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리와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고통이란 무엇인가요?" "당신도 영혼이 있나요?" 물론 시리는 명지가 듣고 싶어 했던 대답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명지가 특히나 가장 답변을 듣고자 했던 이 질문에는 더더욱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290쪽


위 발췌문에서 '시리'는 아이폰 유저라면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스마트폰 음석인식 서비스로 나 역시 심심할 때 가끔 '바보'하고 철없는 짓을 하곤 하는데 해당 구절을 읽고나서 너무나 자연스레 휴대폰에서 시리를 불러내어 명지처럼 고통이 무엇이냐고 묻고 말았다. 포털사이트에서 찾아준 고통의 의미만을 던져주는 시리를 보면서 나역시 명지처럼 헛헛함과 외로움을 느꼈다. 누군가의 해석이 아니라 김애리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잠시나마 찾아온 그 외로움이 진짜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계간 아시아는 문자그대로 새로운 계절이 찾아올 때서야 비로소 연재작이든 무엇이든 만날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이 아닌 일년에 겨우 네 번 만나게 되는 이 잡지는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데도 읽을수록 사람사는것이, 문학이 주는 효용이 나라마다 크게 다르지 않구나, 결국 '공감'을 미친듯이 원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이렇게도 많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특히나 이번 호는 특집기사가 '도시와 작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특집기사와 관련된 내용을 빼버렸다. 다음의 한 문단이 나의 감상 전부를 대신 해 줄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6살 때 처음으로 도시에 비가 오는 것을 보았다. 빗방울이 떨어져 포장도로에 맞을 때 신음을 내는 것 같았고 포장도로와 부딪히고 나서 튈 때는 웃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그날 하루 종일 나의 머릿속에 신음과 웃음이 교대해서 들렸고 시를 쓰게 했다. 다시 말해서 나의 도시는 시 쓰는 것을 가르쳐주는 선생이었다.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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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의 미술관 (책 + 명화향수 체험 키트)
노인호 지음 / 라고디자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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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으로 만나는 그림이야기 [향기의 미술관]

[향기의 미술관] 저자 노인호는 향수 브랜드 '그레이 더 센트'의 조향사이자 운영자다. 여기까지만 보면 조향사의 그림이야기 정도로 느껴지겠지만 여기서가 끝이 아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뉴욕MOMA 이름만 들어도 아찔해지는 두곳의 도슨트로 활동이력까지 있다는 사실이다. 도슨트 활동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많지만 얼마전 읽었던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이란 책에서도 알 수 있듯 누군가에게 설명해주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본 사람의 이야기는 훨씬 친절하고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까지 들려준다는 의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더군다나 향을 만드는 사람이 주는 그 특별함이 더해져 [향기의 미술관]은 소개되어 있는 작품을 이미 잘 알더라도 한 번 더 읽어보고 싶고, 향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이다. 실제 책과 함께 작품의 이름을 딴 향수들도 포함되어 있어 동봉된 테스트지에 향을 뿌린다음 책을 읽어보는 기쁨을 꼭 즐겨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렇게 낭만과 향기가 충만한 상태에서 읽었던 책을 시간이 흐른뒤에 리뷰를 적는것이 좀 그렇지만 느낌은 여전하다. 그리고 향은 생각보다 코에서는 멀어지더라도 마음에서는 오래 남는 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목차대로 하자면 세 번째 향이지만 가장 맘에 드는 향이라서 제일먼저 모네의 '수련'과 동명의 향수를 소개한다. 우선 향을 설명하기에는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서 제대로 소개할 순 없지만 엘리자베스 아덴의 '그린티'와 마크 제이콥스의 '데이지'를 섞은 듯 한 향인데 개인적으로는 두 향보다 훨씬 더 차분하고 여운이 오래간다고 느껴졌다. 만약 구매를 한다면 뒤에 소개할 다른 향들도 다 좋았지만 단연 난 '수련'향을 구매할 것 같다.  작품 이야기를 잠시 더 하자면 수련시리즈가 탄생한 곳은 파리의 작은 시골 마을 지베르니라고 하는데 40여년이 안되는 시간동안 무려 수련그림만 300점을 그렸다고 한다. 그동안 내가 만나본 수련그림이 다 합쳐봐야 10점이 안되니 아직 볼 수 있는 그림이 200여점이나 남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모네처럼 수련의 아름다음을 어느 순간 깨닫는다고 해서 그릴 수는 없겠지만 '수련'향과 함께 보고 있는 동안은 참 행복했었다고 기억된다.


풀과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의 향기가 느껴지나요?

초록빛 가득한 풀 내음 뒤로 주렁주렁 열린 상큼한 열대 과일의 향기가 한 편의 교향악이 되어 다가옵니다. 35쪽 앙리 루소의 '꿈'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맡은 향은 앙리 루소의 '꿈'에서 모티브를 따온 The Dream 이란 향이었다. 왜 마지막이었냐면 개인적으로 먹는 과일은 좋아하는데 '과일향'을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었다. 마지막에 맡은 향인데 두 번째로 소개하는 이유는 짐작하는대로 '너무 좋아서'가 맞다. 물론 여전히 구매를 한 다면 '수련'을 제일 먼저지만 만약 한 여름밤이거나 그런 밤이 그리워지는 사람들이라면 'The dream'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 같다. 앙리 루소의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마흔아홉의 정식으로 붓을 들었다고 한다. 그로인해 사람들에게 놀림도 많이 받았고 그의 본래직업이 세금징수원, 성경에서도 무시당하고 조롱받는 직업이었다. 놀라운 것은 제대로된 미술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고 그가 영감을 받은 곳도 실제 숲이 아니라 '파리 자연사 박물관 내의 식물원'이었다는 사실이다. 돈없어서 여행을 가지 못해서 멋진 이국풍경은 결코 그릴 수 없다며 그리지 못했다는 핑계를 감히 앙리 루소앞에서는, 그리고 그의 작품을 본 이후에는 못할 것 같다. 앞으로는 그런 핑계를 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소개 할 다른 향수와 작품은 표지에 실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우선 향은 흔히 말하는 '여자 화장품냄새'라 할 수 있는 머스크 향이다. 저자의 말처럼 특별하다기 보다는 자꾸 끌리는 향이자 성별상관없이 뿌릴 수 있는 그런 향이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작품과 딱 맞는 향이다. 동명의 영화도 봤는데 영화속에서 '소녀'역할을 스칼렛 요한슨이 했고 화가의 역할을 '콜린 퍼스'가 열연했다. 이 향과, 작품과, 영화의 두 배우가 정말이지 너무 완벽하게 어우러져 친근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향수가 개별적으로 기억되던 그림, 영화, 작품을 엮어주었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의 영화때문인지 저자의 말처럼 이 작품이 내게도 '오묘함과 에로틱함'이 공존하게 느껴지는데 의외로 외설스러운 스토리가 숨겨져 있다고 해서 향에 취해 책을 읽다가 조금 당황하기도 했었다. 내용은 책을 직접 보시면 될 것 같다.


미처 언급하지 못한 2개의 향수와 관련된 작품 그리고 향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지만 책에 수록된 다른 작품들의 이야기도 다 적지 못해 아쉽다. 저자의 설명과 함께 실제 향을 맡아가면서 전시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관람객이 정말 부럽게 느껴졌고, 만약 저자가 실제 이런 미술관과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꼭 도슨트로서 참여해보고 싶다. 작품해설능력도 아직 배우는 단계이고 무엇보다 '향'을 제대로 느낄 줄 모르는 무딘 코를 가졌지만 향과 함께 하는 미술작품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을 선사하는지는 제대로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덧붙임.

향수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 실린 페이지에 일부러 향수를 조금 떨어뜨렸다. 향이 섞여서 괴로울까봐 걱정했지만 의외로 섞이지 않고 해당 페이지에서만 그 향이 은은하게 피어올라 책을 펼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다른 책에도 시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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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목자 (완역판) - 참 목자상 세계기독교고전 19
리처드 백스터 지음, 고성대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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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마태 19,19

[세계기독교고전 19] 참된 목자 / 리처드 백스터 / 크리스천다이제스트


세계기독교고전 시리즈 19번째 도서는 리처드 백스터의 [참된 목자]로 개인적으로는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이어 세번 째로 만나게 된 기독교고전이기도 하다. 이 전 두 작품을 여러날에 걸쳐 읽었기 때문에 이 책도 그렇게 오랜시간을 염두하고 책을 펼쳤는데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나눠 읽을 수가 없었다.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다. 한 번 읽어서 모르는데 그 사이 시간이 또 많이 지체되거나 흐르면 처음부터 계속 반복하지 않으면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어설프게라도 이해할 수 있을 때 쉼없이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용이 어렵다기 보다는 이전에 읽었던 두 작품이 방황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탕아'같은 신자들의 마음을 붙들어주고 이끌어주는 내용이라 공감도 되고, 길잡이를 만난 것 같은 안도감에 마음이 편했지만 [참된 목자]는 결코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은 이 책은 처음부터 신앙으로서의 기독교가 아니라 학문이나 종교학으로서 접하는 사람, 이미 목자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나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읽어야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신앙이 결코 내 마음 편하자고 들르는 '휴식처'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주님 사랑을 깨닫게 되고 용서를 구하는 과정에서 평온한 마음이 찾아올 수 있지만 거기에서 멈추는게 아니라 이웃사랑,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신앙인들의 가장 큰 의무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을 알아들었다면 스스로 '목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은 종교를 공부하는 사람이든 이제 막 그리스도를 알게 된 누구라도 읽어야 할 책인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절대 못합니다. 오, 그들이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영생을 꼭 붙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영생의 복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며칠이나 몇 시간밖에 남지 않은 것을 우리가 알게 되었다면, 멍청이나 믿음이 없는 자가 아니고서는 누구나 그들과 온전히 함께 하면서, 그 남은 짧은 시간에 그들이 구원을 받도록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134쪽


기독교 서적을 읽을 때 비신자들이 가장 불편해 하는 것이 '신'의 존재 혹은 전능하신 일을 받아들이는 것 보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로 인한 거리감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교회를 다닐 때에도 '우리는 종입니다.', '제물입니다.'하는 식의 신앙고백이 늘 불편했었다. 주님의 자녀라고 하면 마음이 편안해졌던 것이 주종의 관계로 변화하면 TV드라마나 영화속에서 매질을 당해도 말없이 일을 해야 하고 자유를 박탈당한 노예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분명 모세는 이집트의 지배를 받던 민족을 이끌고 자유를 향해 이끌었고 예수님도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형까지 견디시고 부활하셨는데 어째서 우리는 계속 '노예'라고 고백해야 하고 '제물'로 바쳐져야 하는 것인가 오만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님과 나의 관계를 올바르게 맞춰가려는 노력끝에 이제는 앞서 언급한 단어들이 이질적이거나 불쾌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나서서 '종'이라서 하지는 않는다. 위의 발체문의 경우도 내용 자체는 정말 와닿고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가족이든 이웃이든 그가 주님께서 가야할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서든 평안한 곳으로, 주님품으로 갈 수 있도록 협조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영생'이란 단어가 왠지 불편하다. 이런 단어에 하나하나 넘어가기 보다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말그대로 영생은 영원이 사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속박되고 힘겨웠던 끈들을 놓고 그 무엇도 바랄 것이 없는 평온한 상태로 주님과 함께 머무는 그 삶이 곧 영생인데 역시나 내게도 '영생'이란 단어보다는 죽어서 주님을 뵙는 것 이라던가 그냥 풀어서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하는 편이 좋다.


오, 목회자들이 전적으로 선행에 마음을 쏟고, 자신의 능력과 소유를 그 목적을 위해 헌신한다면, 목회자들은 선한 일을 굉장히 많이 행하였을 것입니다! 209쪽


목자가 아닌 신자들은 물론 비신앙인들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제 3편, 1장 겸손의 의무에 관한 내용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천해야 할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인데 우선 우리는 '겸손'한 사람을 보며 칭찬을 해야 할 만큼 스스로 겸손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뿐만아니라 자신은 겸손하지 않으면서 자신보다 더 가지거나 더 나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겸손'해야한다고 강요한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떨어진게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누구라도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겸손하다는 것은 나보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족한 이들과 함께 내가 더 가진 것 처럼 느껴지는 것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의 발췌문의 '목회자'를 '나'로 바꿔보면 그 까닭이 바로 보인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나 혼자 즐거운게 아니라 함께 즐겁게 사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된 상태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선행을 하는 것, 그것은 목회자만 할 일이 아니고 우리도 할 수 있다. 주님을 믿고 안믿고에 따라 신자, 비신자가 나뉠 뿐 우리는 모두 주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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