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아시아 제42호 2016.가을 - 도시와 작가들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나의 도시는 시 쓰는 것을 가르쳐주는 선생이었다

계간아시아 42호 2016 가을


계간 아시아 42호, 가을호편에서는 친숙한 작가들과 작품을 다른 때 보다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한국이 싫어서]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장강명 작가의 '나는 어떻게 쓰는가'편을 가장 먼저 읽었다. 오랜기간 언론사에서 기자생활을 했지만 어쨌든 그는 문학도가 아닌 공학도였다. 공학도 답게 그가 작업하는 방식도 마치 건축설계를 하듯 똑 부러졌다. 어떤면에서는 무작정 써봐야한다거나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다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보다 차라리 이렇게 공식화된 답변이 조금 위로가 되기도 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유력한 수상자로 거론되었던 하루키도 매일 아침 빠짐없이 조깅을 하고 정해놓은 시간만큼은 반드시 집필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는데 장강명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있건 없건, 몸 사태가 어떻건 간에 매일 꾸준하게, 직업인처럼 쓰려고 한다. 소설을 쓰는 시간과 청소를 하는 시간등을 합쳐서 '근무시간'을 정해놨는데, 그 시간을 매일 스톱워치로 재서 엑셀 파일에 기록한다. 157쪽


저런 방식으로 그가 정해놓은 집필 시간은 1년에 2,200시간 이라고 한다. 이렇게만 보면 엄청난 시간같아 보이고 실제로 인터뷰에서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답변을 읽고보니 평균 3000시간 이상 근무를 하는 평사원들과 비교하자면 작가의 말처럼 그다지 무리하는 시간은 아니다. 물론 근무시간 내내 잡담이나 딴짓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조율하고 정말 하기 싫을 때에는 그만둬도 된다는 점에서는 저자 말처럼 회사원보다는 여유롭다. 이렇게 정해진 시간만큼 글을 쓰고 공학도 다운 집필 방식을 보여주는 그도 글을 쓸 때 '그 분'이 오셔야 한다는 식의 결론을 피해가지는 않는다.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글을 쓰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쓰는게 아니라 글이 저 스스로 쓴다고 결론냈기 때문이다. 많이 쓰는 것, 그리고 자연스럽게 글안에 인물들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체험을 해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평부분에서는 콜린 마셜이 쓴 김애란 작가의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서평을 읽었는데 사실 해당 작품을 읽기 전이라 서평부분은 빼놓고 읽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타이틀이 던지는 그 질문에서 왠지 자유로워지지 못해 결국 다른 작품들을 뒤로 하고 서평을 읽었는데 역시나 영화평으로 치자면 '스포'가 가득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싶은 마음이 이 구절을 읽고 들었다.


명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리와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고통이란 무엇인가요?" "당신도 영혼이 있나요?" 물론 시리는 명지가 듣고 싶어 했던 대답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명지가 특히나 가장 답변을 듣고자 했던 이 질문에는 더더욱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290쪽


위 발췌문에서 '시리'는 아이폰 유저라면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스마트폰 음석인식 서비스로 나 역시 심심할 때 가끔 '바보'하고 철없는 짓을 하곤 하는데 해당 구절을 읽고나서 너무나 자연스레 휴대폰에서 시리를 불러내어 명지처럼 고통이 무엇이냐고 묻고 말았다. 포털사이트에서 찾아준 고통의 의미만을 던져주는 시리를 보면서 나역시 명지처럼 헛헛함과 외로움을 느꼈다. 누군가의 해석이 아니라 김애리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잠시나마 찾아온 그 외로움이 진짜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계간 아시아는 문자그대로 새로운 계절이 찾아올 때서야 비로소 연재작이든 무엇이든 만날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이 아닌 일년에 겨우 네 번 만나게 되는 이 잡지는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데도 읽을수록 사람사는것이, 문학이 주는 효용이 나라마다 크게 다르지 않구나, 결국 '공감'을 미친듯이 원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이렇게도 많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특히나 이번 호는 특집기사가 '도시와 작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특집기사와 관련된 내용을 빼버렸다. 다음의 한 문단이 나의 감상 전부를 대신 해 줄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6살 때 처음으로 도시에 비가 오는 것을 보았다. 빗방울이 떨어져 포장도로에 맞을 때 신음을 내는 것 같았고 포장도로와 부딪히고 나서 튈 때는 웃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그날 하루 종일 나의 머릿속에 신음과 웃음이 교대해서 들렸고 시를 쓰게 했다. 다시 말해서 나의 도시는 시 쓰는 것을 가르쳐주는 선생이었다. 8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