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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의 미술관 (책 + 명화향수 체험 키트)
노인호 지음 / 라고디자인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향으로 만나는 그림이야기 [향기의 미술관]
[향기의 미술관] 저자 노인호는 향수 브랜드 '그레이 더 센트'의 조향사이자 운영자다. 여기까지만 보면 조향사의 그림이야기 정도로 느껴지겠지만 여기서가 끝이 아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뉴욕MOMA 이름만 들어도 아찔해지는 두곳의 도슨트로 활동이력까지 있다는 사실이다. 도슨트 활동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많지만 얼마전 읽었던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이란 책에서도 알 수 있듯 누군가에게 설명해주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본 사람의 이야기는 훨씬 친절하고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까지 들려준다는 의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더군다나 향을 만드는 사람이 주는 그 특별함이 더해져 [향기의 미술관]은 소개되어 있는 작품을 이미 잘 알더라도 한 번 더 읽어보고 싶고, 향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이다. 실제 책과 함께 작품의 이름을 딴 향수들도 포함되어 있어 동봉된 테스트지에 향을 뿌린다음 책을 읽어보는 기쁨을 꼭 즐겨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렇게 낭만과 향기가 충만한 상태에서 읽었던 책을 시간이 흐른뒤에 리뷰를 적는것이 좀 그렇지만 느낌은 여전하다. 그리고 향은 생각보다 코에서는 멀어지더라도 마음에서는 오래 남는 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목차대로 하자면 세 번째 향이지만 가장 맘에 드는 향이라서 제일먼저 모네의 '수련'과 동명의 향수를 소개한다. 우선 향을 설명하기에는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서 제대로 소개할 순 없지만 엘리자베스 아덴의 '그린티'와 마크 제이콥스의 '데이지'를 섞은 듯 한 향인데 개인적으로는 두 향보다 훨씬 더 차분하고 여운이 오래간다고 느껴졌다. 만약 구매를 한다면 뒤에 소개할 다른 향들도 다 좋았지만 단연 난 '수련'향을 구매할 것 같다. 작품 이야기를 잠시 더 하자면 수련시리즈가 탄생한 곳은 파리의 작은 시골 마을 지베르니라고 하는데 40여년이 안되는 시간동안 무려 수련그림만 300점을 그렸다고 한다. 그동안 내가 만나본 수련그림이 다 합쳐봐야 10점이 안되니 아직 볼 수 있는 그림이 200여점이나 남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모네처럼 수련의 아름다음을 어느 순간 깨닫는다고 해서 그릴 수는 없겠지만 '수련'향과 함께 보고 있는 동안은 참 행복했었다고 기억된다.
풀과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의 향기가 느껴지나요?
초록빛 가득한 풀 내음 뒤로 주렁주렁 열린 상큼한 열대 과일의 향기가 한 편의 교향악이 되어 다가옵니다. 35쪽 앙리 루소의 '꿈'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맡은 향은 앙리 루소의 '꿈'에서 모티브를 따온 The Dream 이란 향이었다. 왜 마지막이었냐면 개인적으로 먹는 과일은 좋아하는데 '과일향'을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었다. 마지막에 맡은 향인데 두 번째로 소개하는 이유는 짐작하는대로 '너무 좋아서'가 맞다. 물론 여전히 구매를 한 다면 '수련'을 제일 먼저지만 만약 한 여름밤이거나 그런 밤이 그리워지는 사람들이라면 'The dream'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 같다. 앙리 루소의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마흔아홉의 정식으로 붓을 들었다고 한다. 그로인해 사람들에게 놀림도 많이 받았고 그의 본래직업이 세금징수원, 성경에서도 무시당하고 조롱받는 직업이었다. 놀라운 것은 제대로된 미술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고 그가 영감을 받은 곳도 실제 숲이 아니라 '파리 자연사 박물관 내의 식물원'이었다는 사실이다. 돈없어서 여행을 가지 못해서 멋진 이국풍경은 결코 그릴 수 없다며 그리지 못했다는 핑계를 감히 앙리 루소앞에서는, 그리고 그의 작품을 본 이후에는 못할 것 같다. 앞으로는 그런 핑계를 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소개 할 다른 향수와 작품은 표지에 실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우선 향은 흔히 말하는 '여자 화장품냄새'라 할 수 있는 머스크 향이다. 저자의 말처럼 특별하다기 보다는 자꾸 끌리는 향이자 성별상관없이 뿌릴 수 있는 그런 향이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작품과 딱 맞는 향이다. 동명의 영화도 봤는데 영화속에서 '소녀'역할을 스칼렛 요한슨이 했고 화가의 역할을 '콜린 퍼스'가 열연했다. 이 향과, 작품과, 영화의 두 배우가 정말이지 너무 완벽하게 어우러져 친근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향수가 개별적으로 기억되던 그림, 영화, 작품을 엮어주었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의 영화때문인지 저자의 말처럼 이 작품이 내게도 '오묘함과 에로틱함'이 공존하게 느껴지는데 의외로 외설스러운 스토리가 숨겨져 있다고 해서 향에 취해 책을 읽다가 조금 당황하기도 했었다. 내용은 책을 직접 보시면 될 것 같다.
미처 언급하지 못한 2개의 향수와 관련된 작품 그리고 향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지만 책에 수록된 다른 작품들의 이야기도 다 적지 못해 아쉽다. 저자의 설명과 함께 실제 향을 맡아가면서 전시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관람객이 정말 부럽게 느껴졌고, 만약 저자가 실제 이런 미술관과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꼭 도슨트로서 참여해보고 싶다. 작품해설능력도 아직 배우는 단계이고 무엇보다 '향'을 제대로 느낄 줄 모르는 무딘 코를 가졌지만 향과 함께 하는 미술작품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을 선사하는지는 제대로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덧붙임.
향수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 실린 페이지에 일부러 향수를 조금 떨어뜨렸다. 향이 섞여서 괴로울까봐 걱정했지만 의외로 섞이지 않고 해당 페이지에서만 그 향이 은은하게 피어올라 책을 펼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다른 책에도 시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