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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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내 현재 위치가 어딘지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더라도 훨씬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다. 186쪽



브릿마리 여기있다.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여기'일까? '있다'일까 아니면 '브릿마리'그녀 이름일까. 아직 마흔이 되진 않았지만 곧 마흔인 내게 가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섯손가락안에 꼽을 만한 소설을 묻는다면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를 반드시 넣을 것이다. <브릿마리 여기있다>는 작가의 최신 작품이다. 중간에 할.미.전 이라고 불리는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는 출간당시 소재가 유사한 작품이 있어 크게 각인되지 못했기 때문에 <브릿마리 여기있다>가 어쩌면 프레드릭 배크만의 영향력을 결정할 만한 작품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결과를 서두에서 밝히자면 오베만큼은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끌고가는 방식, 여전히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잔잔한 위트에 과하지 않은 훈훈한 결말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이제부터 6시에 저녁을 먹을 거야. 교양인답게."

그녀는 어느 정도 뜸을 들여서 생각한 뒤에 이렇게 덧붙인다.

"아니면 교양 있는 쥐답게." 106쪽


브릿마리 특유의 버릇으로 표현하자면 뺨을 쏙 집어넣었을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작품 속 인물이 하는 버릇 혹은 즐겨먹는 음식이나 음료, 행동등을 따라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역자도 고백한 것처럼 '과탄산수소'를 수십통 사다가 집안 전체에 뿌리고 쓸고 닦는 등 청소가 너무 하고 싶었따. 뺨을 쏙 집어넣고 싶었고, '하.'하고 긍정이나 부정의 대답대신 소리를 내고도 싶었다. 커트러리를 일렬로 정리해보고도 싶고 교양인답게 저녁을 6시에 반드시 먹고 싶기도 했고 심지어 '쥐'에게 스니커즈를 먹여보고 싶기도 했다. 그만큼 브릿마리라는 예순세살 되신 여사님께 푹 빠져서 지냈다. 페이지를 빨리 넘기지도 않았다. 교양인답게 무리해서 읽지 않고 딱 에스프레소 한 잔, 라떼 한 잔을 마실동안만 책을 읽었다. 읽지 않는 시간에는 청소를 했다. 왜냐면 책에만 몰두해있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리뷰가 거슬린다면 당신은 아마도 이 책을 읽기 전이라고 확신한다. 반대로 이 리뷰가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면 당신도 느끼지 못하는사이에 브릿마리에게 점령당한 상태일 것이다. 교양인답게 친절하게 책의 줄거리를 살짝 들려줄까 한다. 브릿마리는 앞서 밝힌 것처럼 예순을 넘긴 할머니다. 결혼 전 잠시 웨이트리스로 일한 경험은 있지만 그외에 사회경험은 전혀 없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줄곧 일해왔다. 집안일을 해왔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해왔다. 만약 집안일은 누구나 하는거 아니냐고 과소평가한다면 브릿마리가, 그리고 이 세상의 완벽한 살림꾼들을 모욕하는 처사다.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자신이 가정주부였음을 밝힐 수 있을만큼 똑부러지게 살림을 해오던 어느날 남편이 바람을 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모르는 척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브릿마리가 선택한 것은 이혼이었다. 사실 이혼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그녀는 법적으로 남편 켄트의 정식 배우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이들을 잘 키웠고, 켄트의 말을 빌리자면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기는 했다. 청소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는 브릿마리에게도 사연은 있다. 까칠해 보이는 오베라는 그 어르신에게도 사연이 있었던 것처럼 브릿마리에게도 가슴아픈 사연이 있다. 어떤 사건은 한 사람의 인격은 물론 삶 전반을 뒤흔들고도 남을만큼의 힘을 가진다. 그 사건을 두고 원망을 하며 살 수도 있고, 극복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지만 오베와 브릿마리의 공통점을 찾고자 한다면 자발적 극복을 선택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베가 아내의 도움으로 사람처럼 살 수 있었던 것처럼 브릿마리 역시 켄트의 그늘안에서 '평범'하게 살 수 있었다. 그 그늘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가 바로 켄트의 외도였던 셈이다. 이혼 후 혼자살다가 고약한 악취로 자신의 죽음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던 브릿마리는 '취업'하기로 결심한다. 예순 셋에 사회경험도 거의 없고 그나마 결혼 전 이력이 도움이 될리가 없었다. 다 쓰러져가는 보르그 레크리에이션 센터에 '운'좋게 취업 후 브릿마리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주위를 둘러본다. 벽은 밖에서 두드려 맞고 있고, 바닥의 먼지 위에는 쥐 발자국이 찍혀 있다.

그래서 브릿마리는 살면서 위기 상황과 맞딱뜨릴 때마다 늘 하던 일을 한다.

청소를 한다. 68쪽

우체국과 정비소와 마트와 피자가게가 한 자리에서 이뤄지는 작은 마을 보르그는 어떤면에서 보자면 존재감 없이 켄트의 그늘속에 살던 브릿마리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참 적절한 장소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망해가는 작은 마을, 나이든 여성이 임시직으로 머물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역시나 문을 닫는 다른 가게들처럼 그다지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존재로 낙인될 수 있다. 브릿마리는 보르그에서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드러낼 수 있었던 가장 쉽고 정확한 방법은 '청소'였다.  그녀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다름아닌 청소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전체 분위기는 '축구'이야기로 귀결되지만 내 시각에서 볼 때는 '청소'였다고 생각된다. 더이상 마을에 희망이 없을 거라는 고정관념을 청소했고, 제대로된 부모와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가정에는 평화가 가당치 않다는 편견을 청소했고, 무엇보다 예순이 넘은 여자가 집과 남편을 버리고 나와봤자 좋게 될리 없다는 '현실'을 청소했다. 그리고 과연 오베라는 남자, 할미전을 능가할 만한 작품이 나올 것인가 하고 의심했던 흔들리던 독자들의 마음도 깨끗하게 청소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브릿마리는 리스트를 핸드백에 넣고, 무언가가 시작되길 평생 기다려온 사람들이 그러듯 손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핸드백을 세게 움켜진다.

그런 다음 조그많게 몇 걸음 걸어가서 있는 힘껏 공을 찬다.

이제는 공을 차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244쪽

공이 굴러오면 찰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더러운 것은 치워야한다. 내 앞으로 굴러온 공을 피하거나 더러워진 신변을 그냥 놔두는 것은 내 인생이 그렇게 다른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도 상관없다는 것과 같다. 공이 왔으면 차고, 더러운 신변은 치우자. 어떻게? 브릿마리 처럼, 그래서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자. 우리는 다름아닌 지금 이곳에 있다.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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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언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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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언 / 안드레이 마킨


내게 있어 프랑스는 이제 단순히 골동품을 넣어 두는 방이 아니었다. 이제 그것은 감각적이고 견고한 하나의 실체가 되었고, 그 중의 한 작은 부분은 어느 날 내 가슴속에 이식되었다. 136쪽

안드레이 마킨의 자전적 소설 [프랑스 유언]을 읽기 전 내게 있어 프랑스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프랑스라고는 해도 파리를 여행해본 경험이 전부라서 어쩌면 장님코끼리 만지는 수준일테지만 그래도 대략적으로 적어보자면 우선 언어로 먼저 다가온 나라였다고 말하고 싶다. 에펠이라던가 영화라던가, 패션의 화려함보다 영어가 아닌 독특한 언어라는 느낌이 가장 먼저 자리잡았다고 생각한다. 이후 성인이 되어 방문한 파리는 기대만큼의 화려함도 추억거리나 볼거리가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면 이 무렵 프랑스영화에 빠져있었는데 영화에서 받은 그 충격을 현실에서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파리여행 전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읽으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 속의 파리는 대도시가 갖는 허무와 우울을 가진 상징적인 도시다. 얼추 마음속에 산발적으로 떠오르던 키워드들이 오히려 이 책 덕분에 하나로 모아진듯했다. 낭만보다 우울, 화려함보다 공허함이 감도는 도시 파리로 두 번째 여행을 갔을 때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지켜야 한다'라는 사명감밖에 없었다. 몇 해사이에 파리에는 폰을 노리는 범죄가 급증한 상태였고, 중심가가 아닌 곳에서도 노골적으로 돈을 원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들의 패션은 눈에 띄게 완벽했고, 일본과는 다른 친절함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파리가 친절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있어 파리는 친절한 도시였다. 그리고 저녁때면 센강 주변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소박함과 웃음소리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런 내 마음에 굳히기를 한 작품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로랑스 코세의 <오 봉 로망>이었다. 좋은 소설을 파는 서점이라니, 아이디어도 내용도 완벽했다. 좀 멀리 돌아왔는데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프랑스는 호불호로 나뉘자면 당연 호에 해당되는 나라였다. 안드레이 마킨에게는 프랑스가 어떤 나라였을까? 맨 위 발췌문정도로는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들의 유년을 살펴보면 외부에서 기인했든 내부적인 문제가 되었든 책에 한참 빠져드는 시기가 존재한다. 소설 속 '나' 역시 할머니로 부터 들었던 프랑스 덕분에 쉼없이 도서관에서 관련 도서를 찾아읽게 된다. 러시아 아이들의 무시는 오히려 그를 더더욱 프랑스에 집착하게 만들었고 그 보다 더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다. 그것은 이야기를 읽기만 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의 입장으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이 순간을 사춘기의 가장 행복했던 날이라고도 말한다. 그렇게 자신을 위해, 또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화자로서의 역할을 맛본 나는 사란짜로 할머니 샤를로트를 만나러 가면서 이전과는 달리 그녀의 이야기가 이전처럼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할머니와 포옹하는 동시에 그런 착각이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원치 않아도 하게 되는데 대부분은 부모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거나 심지어 끝까지 무시하고 우쭐대기까지 할 때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면 저자의 심경변화가 당시 열네살이라는 나이를 감안했을 때 제법 성숙했다고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내가 성숙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이 징후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커녕 오히려 내가 예전에 갖고 있던 순진한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애석해했다. 182쪽

무언가에 열의를 다하면 다할수록 그것이 또렷해지지 않고 흐릿해질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미칠듯한 열정은 이내 곧 식어버리기 마련이고 프랑스에 대한 주인공의 마음도 그런 단계를 밟게된다. 심지어 그것이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되어 할머니 샤를로트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 참 안타깝고 서글프지만 어쩌면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 샤를로트에게 프랑스와 관련된 일화를 들으면서 '나'는 묘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고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듯한 기쁨을 맞이하게 되고 어느순간 그것을 할머니로 부터 소유권을 넘겨받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럴수록 결국 '나'라는 존재가 프랑스인도 러시아인도 아닌, 혹은 그 둘 모두를 거부하고 싶어지는 저자 심리를 자전소설이 갖는 장점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우리에게 전달되면서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사건과 그로인한 처절한 아픔과 상처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작품이 왜 비평가들에게까지 극찬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되었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결말에 이를수록 이 책이 던져주는 감동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부족함을 깨달았다. 그저 이제 프랑스를 떠올리면 한동안은 이 책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사진을 챙겨 넣고 계속 걸었다. 그리고 샤를로트를 생각하자 그녀의 존재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듯한 그 거리 속에서 내밀하지만 자연스럽고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제 내게 부족한 것은 그 사실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뿐이었다. 3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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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열두 달은 어떤가요
규영 글.그림 / 사물을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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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나의 열두 달을 생각할 시간.

새로운 열두 달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요?

 294쪽



책의 맨 뒷페이지에 적힌 문장으로 리뷰를 시작하는 까닭은 단순하다. 책을 이미 다 읽었으니 이제 리뷰를 쓰면서 나의 열두 달을 녹여내면서 읽었던 내용들을 조금씩 꺼내볼 생각이다. 근래들어 그림과 짤막한 코멘트가 함께 실린 책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혹시나 해서 바로 답하자면 반갑고 또 반갑다. 많은 말들, 엄청나게 공감하는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묘사하고 풀이해놓은 듯한 문장들도 멋지지만 때로는 뭉클해지는 그림과 그 보다 더 마음을 흔드는 한 문장이 결코 호흡이 긴 다른 방식과 비교해 조금의 부족함이 없다. 책<당신의 열두 달은 어떤가요>도 그렇게 만났다. 둥글둥글 선과 마치 김이 모락모락 나는듯한 느낌의 색감을 더한 따뜻한 그림이 눈에 들어오고, 한 줄의 코멘트는 아니지만 그다지 길지 않은 그들의 열두 달 이야기가 참 일상적이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어머, 이건 내 이야기야,'했던 책 속 문장들을 먼저 꺼내본다.



언젠간 하루에 한 번도 네 생각을 하지 않는 날이 오겠지.

어서 그날이 오면 좋겠다. 25쪽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내게 투자된 교육비 정도는 회수하는 어른이고 싶다. 131쪽


왜 소개팅은 내 맘이 네 맘 같지 않고 네 맘이 내 맘 같지 않냐. 159쪽



위의 공감했던 문장들만 봐도 나의 열두 달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치만 내 마음을 가장 훈훈하게 해준 열두 달은 아기의 열두 달이었다.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멈추질 않았다. 개와 아이가 함께 세상을 만나는 과정을 담았는 데 꼬리를 흔들며 자신과 같은 사이즈의 아기를 발견한 개의 표정이 정말 귀여웠다. 함께 식사를 하며 음식물을 흘리는 그림도 귀여웠고, 무엇보다 아기가 병원에서 몇 날을 보낸 뒤 돌아왔을 때 이제는 아이가 개보다 더 커진 것을 깨닫게 되는 장면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이어지는 개의 열두 달을 보면 뭉클했던 마음에 직격탄을 쏘듯 눈물이 핑그르르 맺혔다. 아, 우리 뭉치는 잘 지내고 있겠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두 번째 문장, 새로운 열두 달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상상해본다. 책속에 만났던 일들이 내게 벌어질 수도 있고, 내가 왜 이런 문장에 공감했었을까 오히려 내 자신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열두 달을 여러 해 마주한다고 해도 변하지 않을 내용들도 분명 있었다. 2016년 12월도 이제 거의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이거 사고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절반이나 남았네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열두 달은 어쩌면 사람때문에 울고 울었던, 그러면서도 단 한 분 덕분에 위로를 받았던 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의 열두 달은 어땠나요? 저자가 내게 물었듯 나도 이 리뷰를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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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사려면 우선 버려라
지비키 이쿠코 지음, 권효정 옮김 / 유나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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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사려면 우선 버려라 / 지비키 이쿠코 지음


요요가 와주긴 했지만 지난 여름 앞자리가 바뀔 정도로 체중이 감소했다. 내 노력에 비해 살이 많이 빠져서 가지고 있던 여름옷을 거의 대부분 버리고 새옷으로 옷장을 채웠다. (강조하지만 요요가 왔다. 쉽게 빠진 것은 쉽게 찐다는 진리는 불변이다.) 문제는 여름옷을 정리하면서 동절기 옷까지 함께 버린데에 있었다. 내게는 요요가 오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겁없이 해버린 것이다. 막상 가을이 되고 요요가 본격화되면서 내가 그옷을 왜 버렸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겨울이 왔을 때는 외투로 가릴 수 있지만 코트안에 있는 옷을 또 구매하자니 살이 빠져 옷을 구매할 때와는 기분부터가 달랐다. 버리지 않았으면 될 일을 왜 버렸을까 하는 후회, 살이 다시 쪘다는 비애가 동시에 다가온 것이다. 책 <옷을 사려면 우선 버려라>를 만약 여름에 만났더라면 당연한 소릴 한다며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 이 책만큼 필요한 책이 또 있을까.


버려야 할 옷과 버리지 말아야 할 옷이 무엇일까.

우선 이 책은 시작부터 내 마음을 잡아놓기 시작했는 데 초등학교 시절, 나는 단 하루라도 같은 옷을 입어야 한다면 차라리 그날 결석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아이다. 그래서 친구들은 우리집이 부자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옷은 잘 사주는 집일거라고 생각했고, 막상 그리 넉넉하지 않은 형편을 본 친구들이 곧잘 의외라는 표현을 서슴치 않고 내 앞에서 했었다. 그것이 상처가 되지 않고 다행히 그냥 내가 옷을 매일같이 다르게 입긴했구나 하는 위안으로 착각한 덕에 지금껏 사는 데 큰 불편은 없지만 책에서는 이렇게 매일 다른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이 '저주'라고 말한다.


한때 '매일 다른 코디'로 찬사를 받았던 나조차도 한 달에 이틀 정도는 마음에 들지 않는 옷차림을 하는 날이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23쪽

'오늘도 이 옷을 입으면 사람들이 또 입고 왔다고 생각할 거야.' 이런 스트레스에서 제발 벗어나자. 43쪽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은 경우에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모 여자 연예인은 편하기도 하고 예쁘기도 해서 일주일에 같은 샌들을 두 번 신고나갔더니 자신의 기사에 구두가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는 댓글이 달린 것을 보고 다시는 그 샌들을 신지 않게되었다고 한다. 보여주는 것이 직업인 그녀에게는 매일 같이 다른 옷을 입는 것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그러니 저자말처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같은 옷을 입고 출근했다고 우릴 미워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미움받을 용기'까지 낼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사야할 옷, 서두에 장황하게 늘어놓은 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저자의 조언은 무엇일까. 우선 유행에 민감해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가령 트렌치코트가 유행이라고 해도 막상 잡지를 보면 다양한 디자인과 브랜드의 트렌치코트가 수십 번 등장하는 데 그중 한 벌을 사입는다고 패피가 되지 않는다. 무리해서 옷에 투자하면 이제는 신발과 가방이 신경쓰인다. 패피들을 따라가고자 하면 끝도 없다. 밥이야 매일 매끼 먹어야하니 SNS 경쟁에 동참할 수 있다지만 옷은 그렇지 않다. 결코 전문적으로 직업적으로 옷을 다양하게 갖춰야 하는 그들과 대적할 수 없다. 그러니 내 몸에 맞는 옷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내 몸에 맞는 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가격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자주 입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가성비의 좋고 나쁨은 그 옷을 면 번이나 입을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 '몇 년'이 아니라 '몇 번'인 것이다. 몇 년에 한 번 입었거나, 거의 입지 않고 20년 동안 보관 중인 옷은 본전을 뽑았다고 말 할 수 없다. 110쪽

궁극의 평생 아이템이라고 하면, 에르메스의 버킨백, 샤넬의 퀼팅백 같은 것이 있다. 이것들은 수십년 동안 같은 디자인으로 꾸준히 팔리고 있기 때문에, 색이나 모양이 크게 바뀔 일은 거의 없다. 142쪽

정리하자면 평생 입어도 좋은 옷이 우리에게는 필요없다고 말한다. 왜냐면 우리의 몸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기 때문이다. 반면 위의 발췌문에 언급된 백들의 경우는 브랜드가 직접 해당 라인을 꾸준히 약간의 변화만 시도할 뿐 기본적인 형태를 유지하려 하고 있는데다 실제 중고시세를 보더라도 다른 제품들에 비해 가격이 새것과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비싸다. 애초에 비싸고 좋은 백 하나를 구매하는 것이 낫다는 사람들이 정말 많지만 그 비싸고 좋은 것을 구매하기 위해 10년 이상 걸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동안 백을 안들고 다닐 수 없고, 옷을 안입을 수 없기 때문에 저렴한 옷을 사입을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을 비워야한다.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싸다고 무작정 많이 사들이거나 진짜 원하는 것과 가격을 절충한다고 착각하여 어정쩡한 상품을 구매하는 실수를 줄이는 것이다.


자, 지금부터 정리를 해보자.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깨닫는다면, 그때는 정리할 체력도 기력도 없을지 모른다. 할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가벼워지기 가장 좋은 때이다. 76쪽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이 바로 이거다. 밤새 책을 읽고 싶어도 이제는 체력이 안따라줘서 흥미진진한 스릴러를 읽다가, SF소설 속 환상의 섬에 빠져있다가도 허리가 쑤셔서 자세를 고치거나 눈이 침침해서 책장을 덮어야 했다. 옷도 마찬가지다. 정리할 수 있는 체력과 기력이 있을 때 정리하자. 어떻게? 이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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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선배
히라노 타로 지음, 방현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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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선배 / 히라노 타로


사진가 히라노 타로가 일본잡지 <포파이>에 동일한 제목으로 연재한 '나와선배'는 인생선배, 그러니까 취재를 했던 저자조차 한번 만나본 적 없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이따금 들었던 라디오 진행자를 만나러 가기도 하는 데 아쉽게도 그 방송은 현재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취재당시에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 심지어 아흔이 넘으신 분들도 계셨기 때문에 이미 고인이 되신 '선배'분들도 계시다. 그래서 이 책은 인터뷰 본문도 읽어야 하지만 '더하는 말'도 꼬박꼬박 챙겨서 읽어줘야 한다. 그럼 본격적으로 저자가 소개해주는 인생선배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해본다.


안자이 미즈루. 이분의 에세이는 국내에도 번역본이 출간될 만큼 하루키의 에세이 속 일러스트를 통해서도 친숙한 분이시다. 약주를 좋아하는 평소 취향이 인터뷰속에서도 묻어나는 데 안타깝게 한 잔 하자는 그 약속을 지키시기 전에 작고하셨다고 하며 저자는 아쉬워했다. 저자에게 게자리 특성을 이야기 해주면 '자네 앞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카메라맨이 될 거지? 그런 느낌이 들어."(37쪽)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선배가 정말 나도 계셨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고1 담임선생님이 생일선물로 주셨던 클리어화일 맨 앞 메모지에 유사한 내용을 남겨주셨던게 기억이 났다. 내가 입학 할 무렵에는 평준화 이전이라 입시를 치뤄야 했는데 원하던 고등학교가 아니었기에 초반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다. 의욕없는 내 성적이 좋을리 없는 데 그런 내게 담임 선생님은 더 열심히 하라는 말 대신 잠재력이 많은 아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이런 멘트는 누구라도 해줄 수 있고, 누구에게라도 해주셨을 줄 알지만 그렇지 못한 선생님들도 많았다는 사실을 떠올렸을 때 안자이 미즈루가 저자에게 건넨 그 말처럼 내게 큰 용기가 되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저자가 인터뷰 하면서도 멋쩍어 했던 '매거진하우스'최고 고문인 기나메리 요시히사 인터뷰 기사도 실려있다. 이게 왜 멋쩍은가 하면 연재되고 있는 잡지의 모회사이기 때문이다. 자화자찬라 할 수 있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저자에게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인생선배라고 할 수 있다.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에 채용을 했을테지만 당시 저자가 사회에 첫발을 디딜 때 뚜렷한 목적도 없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러다니거나 혹은 그런 사진들만 찍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 저자를 채용해 준 사람이니 어찌 인생선배 코너에서 빼놓을 수 있었을까.


"스무 살이 넘으면 다 동갑이니까."라고 말하는 대선배에게 나도 모르게 반말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 이 사람이 바로 매거진하우스였구나, 나 같은 아웃사이더를 동료로 받아들여 준 것은 이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60-61쪽


<인생선배>를 읽고 이 분이야말로 내 인생선배라 할 만한 사람을 꼽자면 프로듀스 센터 대표이사 '하마다 데쓰오'선배다. 자신이 갈 만한 대학이 없다고 생각했던 스물두 살, 그는 스스로 있어야 할 곳을 만들었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의욕만 앞서지 행동이 뒤따르지 못하는 나란 사람에게 이런 분이 존재한다는 것은 큰 희망이 된다. 이따금 이런 유사한 사람들을 만나기는 했었다. 맘에 드는 회사가 없어서 직접 회사를 차리는 사람들, 최근에 보았던 영화 [라라랜드]의 경우 세바스찬과 미아 모두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뽐낼 수 있는 재즈클럽과 무대를 직접 만들어낸다. 세상이 나를 안받아준다고 화를 내고만 있을것이 아니라 세상을 내 안으로 초대하는 역발상, 진취적인 사고를 1968년 하다마 데쓰오는 '애플하우스'를 열면서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사실 인터뷰 내용이 그리 길지가 않다. 어떤면에서 보자면 선배들의 수(?)를 줄이고 내용을 좀 늘렸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지만 이렇게 짧은 내용을 통해서 내가 찾던 선배를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찾고 있던 선배를 만날 수 있도록 하려면 역시 이런 구성이 최적이라고 본다. 먼 이국까지 찾아가지 않더라도 분명 우리 주변에 닮고 싶은 선배들이 많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 부모님, 스승님, 학교와 직장 선배들. 중요한 것은 우리도 누군가에게 인생선배가 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즐겁고 열심히 사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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