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에서 식탁까지 100마일 다이어트 - 도시 남녀의 365일 자급자족 로컬푸드 도전기
앨리사 스미스.제임스 매키넌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마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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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지 반경 100마일 이내에서 생산된 음식만 먹고 사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서울을 기준으로 하면 부산까지는 무리고 전주 정도가 약 160km, 즉 100마일이다. 그렇게 따져보니 소금은 물론 거의 대부분 수입해서 먹는 설탕과 소금은 없어도 되지만 결코 없어서는 안될 '후추'까지 포기해야만 한다. 제임스가 처음 제안할 때 앨리사가 왜 곧바로 동의하지 못했는지 이해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제임스의 제안에 말려버린 착한 앨리사지만 나였다면 절대 반대, 무조건 안된다고 소리높였을것이다. 세상에 밀가루 없이 어떻게 6개월을 버텼을까? 그러다가도 감자로 샌드위치를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손을 가진 남자가 함께 한다면, 그것도 요리는 무조건 남자의 몫이라면 또 생각이 달라진다. 리뷰를 적는데 왜이렇게 중심을 못잡냐고 묻는다면 이 책 자체가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어느 부분에서는 나도 해볼란다 로컬푸드! 했다가 또 페이지 몇장 넘겨 그들의 고난을 읽노라면 결코 할 수 없다 로컬푸드!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역자의 추천글을 유심히 읽어본 독자라면 이 책이 출간된지 10년이나 지났으면서도 한국에 번역되어 나왔는지 알 수 있을것이다. 이 책은 로컬푸드를 위한 책이 아니라 우리의 먹거리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이자 앨리사와 제임스라는 두 남녀를 통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특별한 책이었다.

 

현대도시에 살면서 이런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날까? 내가 미소 짓는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토요일 아침, 나는 독수리 한 마리를 보았고, 자전거에 신선한 채소 한 보따리를 실은 채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106쪽

 

로컬푸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정말 간단했다. 외딴 곳에서 손님을 맞아야 하는데 양배추 한덩어리 밖에 없었다. 주변 강가로 나가 물고기를 잡고 밭에 나가 채소를 거둬들이고 과수원에가서 과일을 가져와 샐러드와 디저트를 만들어 먹은 한끼의 식사가 제임스에게 '로컬푸드'로 풍성한 식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소금이나 설탕 등의 재료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터라 막상 로컬푸드를 선언하고 난 뒤 고생이 시작된다. 그리고 먹거리에 대한 관심과 연구도 함께 시작되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연구발표에 의하면 우리가 식탁에 올리는 먹기리는 평균 250마일 떨어진 곳에서 옮겨지는 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주변에서 나는 식재료로 먹는 것이 운송비도 들지 않고 싱싱하게 먹을 수 있는데 왜 그 먼곳에서부터 식재료를 공급받는 것일까? 그것은 값싼 노동력을 포함 운송비를 감안하더라도 훨씬 저렴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국내 시장만 가봐도 중국산과 국산의 가격차를 봐도 알 수 있다. 또 한가지 책을 통해 알게된 사실은 '유기농'이라 할지라도 100마일 넘어에서 들여온 식재료가 많다는 것이었다. 로컬푸드로 1년 살아보기를 선언하기 이전에도 제임스와 앨리사는 유기농 식재료를 선호하는 편이었고 유기농이란 단어가 로컬푸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재배방식의 차이일 뿐 결국 멀리서 넘어오기는 마찬가지다.

 

도시에서는 수백 개의 브랜드가 강렬한 광고를 동원해 경쟁하고, 새로 등장한 체인점들은 손해를 보더라도 싸게 파는 전략을 구사해 소비자들이 기존 업체와 관계를 끊도록 유도했다. 사람들이 농촌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83쪽

 

이렇게만 보면 로컬푸드로만 식단을 구성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이 들 것 같고 실제 초반에는 꽤 많은 돈을 들여 한끼 식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정도 안정기에 접어들고 100마일 이내에서 생산되는 밀을 찾아내면서 보통때와 비슷한 비용으로 식탁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현명한 이 커플은 예외사항을 미리 마련해 두었다. 친화를 목적으로 한 모임에 참가하는 경우라던가, 여행을 떠났을 때는 여행지를 기준으로 100마일 로컬푸드를 먹으면 되고 앞서 언급한 모임이 중식당에서 개최되면 해당 요리를 먹어도 무관하다는 것이다. 본문 뒤에 Q&A를 통해 궁금했던 사항이 상세하게 나와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중간중간 로컬푸드로 만들 수 있는 레시피도 일러스트와 함께 실려있어 그림이나 레시피를 다 읽은 뒤 혹은 읽기전 훑어보거나 표시해두고 나중에 레시피북으로 활용해도 된다. 로컬푸드를 제철에 다량으로 구입하는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저장방식등도 나오는데 실패담은 꼭 참고해야 한다. 무턱대고 많이 사들였다간 앨리사의 옷장처럼 옷대신 식재료가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심지어 상해서 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먹거리에 관한 이야기만 잔뜩 늘어놨지만 솔직히 앨리사와 제임스의 지인들이 벌이는 헤프닝도 만만치 않게 재미있고 앨리사네 가정과 제임스네 이야기만 읽어도 부족함이 없다. 요리를 좋아한다고 믿었던 할머니가 알고보니 그다지 요리에 관심이 없었다던가 유년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과일을 따러다니는 추억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저 평범했다는 이야기를 보면 이런 책을 쓰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영화나 소설속에 등장하는 유년기를 경험하거나 제임스처럼 요리에 재능이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요리를 잘하는 남자는 언제나 매력적이지만 난관에 매달려 구애를 펼치거나 정말 좋아하는 구두랍시고 낡은 줄도 모르는 엉뚱한 남자를 사랑해주는 여자도 충분히 멋져보였다. 지인들과 연구논문과 로컬푸드 도전기와 가족이야기가 끊임없이 제임스와 앨리사를 오가며 등장하기 때문에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가볍게 펼쳤다가 중간즘에는 메모하고 다시 펼쳐보는 재미를 주는 100마일 다이어트! 동참할지 말지는 나중문제니 로컬푸드를 실천할 생각이 없다며 읽지도 않는다면, 진정한의미의 '식사'를 놓치는 셈이다.

 

유리잔에 천국을 담을 수 있는 곳, 그것이 바로 미네소타였다. 그렇다면 벤쿠버는? 반쯤 열린 껍데기에 담긴 생굴과 화이트와인 한잔. 이런 사치가 없다면 삶은 음울할 것이며, 그것들을 제 땅에서 제철에 발견하는 일이야말로 세상을 보물창고처럼 경험하는 방법일 것이다. 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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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없는 풍족한 섬
사키야마 가즈히코 지음, 이윤희.다카하시 유키 옮김 / 콤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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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읽으려던 책이 아니었고, 반드시 보려고 했던 영화가 아니었는데 우연하게 만나 깊은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마치 당시의 내 상황과 고민을 다 알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질 때 소위말하는 '연'이 아니었는가 싶다. 책, [아무 것도 없는 풍족한 섬]의 저자는 대학 졸업 후 입사한 출판사가 연이었다고 말하고, 유학을 다녀 온뒤 일본 내에 출간하는 책을 해외로 알리는 중요한 작업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도, 하지만 한계를 느끼고 평생 나이들어 할 수 있는 일을 원할 때 섬, 카오하간을 만난 것도 모두 '연'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연'이라고 말할 때는 단순히 그 행동이나 결과가 만족스러울 때를 뜻하지 않는다. 부족함이 없는 상태, 그야말로 더 뺄것도 더할 것도 없이 '풍족한'상태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목도 아마 '아무 것도 없는 풍족한 섬'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활을 위해 돈을 버는 일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얻은 경험으로 이것 만큼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겼던 일. 영리 사업이 아닌 일. 모두가 즐겁게 하는 일. 미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 25쪽

알고 지낸 변호사를 통해 필리핀의 사유지를 구매하려고 나섰을 때 확인해보니 이전 소유자는 제대로 된 채무와 법적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자는 차분하게 일을 처리해나갔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1988년 드이어 완전하게 섬 카오하간에 주인이 된다. 그곳에 이미 살고 있던 섬주민 300여명의 문제도 그가 오로지 영리목적이나 휴양의 목적이었다면 지인들의 조언대로 내보냈겠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 누군가를 해치거나 상처주는 일이 아니었기에 주민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고려했다. 자신도 즐겁고, 주민도 삶의 영토를 잃지 않으면서 지인들도 와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섬을 만드려고 노력하는 과정은 2장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도 사유지로 등록된 섬이 있는 데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었다. 어느쪽이 좋은 행정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떠올려지는 것은 문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제주에 유명한 세가지 중 한가지가 바람이듯, 카오하간도 바람이 늘 머무는 섬이다. 그래서인지 바람을 이용해 움직이는 작은 돛단배 사카양이 교통수단이다. 바람을 이용하는 이동수단은 섬에 가본적도 없는 데 여유가 느껴지게 하는 부분이다. 바람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 자연을 거스리거나 기술이라는 명목으로 망치지 않고 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섬주민들을 내쫓았다면 저자가 과연 섬에서 지금처럼 평안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심신이 더울 때 한 자락의 바람이 위로와 위안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섬인 만큼 태풍의 위협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태풍의 무서움을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섬 주민들은 쓸데없이 태풍에 맞서려고 하지 않는다. 태풍에 날아가지 않는 집을 건축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제 뜻대로 할 수 없는 이기지 못할 적에게는 헛된 저항을 하지 않고, 부서져 버리면 다시 고쳐 짓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33쪽

바람과 태풍의 이치를 거스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 처럼 식수와 관련된 부분도 섬주민들은 지혜를 발휘한다. 비가 내릴 때 허둥지둥 하지 않고 빗물을 모아 마시기도 하고 요리에 사용하기도 한다. 벌레가 이따금 떠 있을 때도 신경쓰지 않는다. 물론 저자는 요리용으로는 그대로 사용하지만 식수는 끓여마신다고 하고 외부에서 온 손님들은 세부에서 사온 생수를 마신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섬의 빗물과 외부인들이 사온 생수의 오염도를 측정했을 때 빗물이 훨씬 깨끗했다는 사실이다. 섬을 산 이후에도 지인에게 기존에 하던 업무와 유사한 일을 부탁받았을 만큼 저자는 아에 일을 놓고 섬에만 거주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생할 수 있는 일과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저자의 일복이 참 탐나기도 했다. 일본에 돌아왔을 때 서점에 들려 섬에 가져갈 책을 고르는 행복은 활자로만 읽는데도 행복한 기운이 전해졌다. 섬에 돌아가면 이내 저자는 섬주민들의 일상을 옅보고 좋은 점과 일본사회에 다른 점을 독자에게 알려준다. 자연을 거스리지 않는 삶은 끝도 없고 흥미롭기만 했다. 심지어 섬의 사는 개는 도시의 고양이처럼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기 보다는 자기만의 삶을 사는 동등한 입장이라는 부분은 웃음이 났다. 도시의 유약하고 주인만 바라보는 주인바라기 개들이 카오하간으로 간다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인도에는 이런 철학이 있다. "인생에는 배울 시기, 사회 속에서 살아갈 시기, 사회에서 배운 것을 사회로 돌려주는 시기가 있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통과한 다음에는 자신만의 세상에 다다르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다." 219쪽

저자는 아직 자신이 현세를 떠나 숲으로 갈 시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배운 것을 사회에 돌려주는 시기, 어쩌면 현세를 떠나는 마지막 시기직전이 가장 어려운 시기인지도 모른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나눔'과 '공유'다. SNS가 자기과시와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 정보의 홍수의 대표라고 말하지만 순기능적인 면을 보면 그것은 단연 공유였다. 카문기 섬의 주인처럼 오로지 평화를 위해 섬을 꾸려나가진 않지만 섬에서 전해져 오는 방식 그대로를 수용하는 저자의 카오하간 운영방식이 내 입장에서는 훨씬 '공유'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카오하간의 특징이자 진정한 의미에서 '풍족할 수 있는'방법인 것이다. 섬을 통해 교류가 늘어나고 동반자를 만날 수도 있었던 만큼 카오하간은 저자에게서나 그 섬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연'이다. 그 연은 두 역자에게도 이어진 듯 했다. 늘 불어오던 바람과 더불어 살아숨쉬는 '젊은 바람'이 불어주길 기대한다고 저자는 말했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섬을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싶다가도 내가 젊은 바람인지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았다. 혹 책을 읽고 마음이 동하거나 '연'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저자가 그토록 기다리는 젊은 바람이 되어 카오하간으로 날아가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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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산티아고로 떠나라, 그녀처럼
이수아 지음 / 자연과인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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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여행을 앞두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행선지가 산티아고였다. 보통 한달 여정으로 떠나지만 짧게는 15일 전후로 일정을 조절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행 비행기 티켓을 결제해놓고도 미련이 남았었다. 올 초부터 하루 10km걷기와 주말마다 20km전후로 걷기를 병행했던 것도 오로지 건강만을 위해서라기 보다 혹시나 떠나고 싶을 때 체력이 염려되어 가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마지막 아웃 일정을 스페인이 아닌 런던으로 했던 것은 비움을 위한 산티아고 행 이전에 학부시절 부터 꿈꿨던 '더블린'을 직접 보고와야겠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헌데 저자가 순례여정을 마치고 런던으로 돌아가는 길에 더블린을 경유했다고 하니 좀 더 유연하게 생각했어도 좋았겠구나 싶었다. 물론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그 선택의 후회도 없고 오히려 준비없이 산티아고로 떠났다면 그것은 고행이 아니라 무지였겠구나 싶었다. 무작정 걷는 것보다 최소한의 준비와 목적을 가졌을 때 비로소 산티아고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책, [사랑하면 산티아고로 떠나라, 그녀처럼]을 다 읽고서 든 결론이었다. 저자 이수아, 그녀는 왜 산티아고로 갔을까.

 

평생 독신으로 살거라 다짐했던 저자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남편 고든을 만나게 된다. 첫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진 것은 부럽고 축하할만한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사랑을 키워가는 그 시점, 고든이 피부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고한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면서도 고든은 순례길을 떠난다. 어떤 기적을 바라고 떠난 것이 아니라 암환자를 위한 모금활동을 위해 떠난 그 여행을 고든이 하늘로 간 뒤 사랑을 이루기 위해 그녀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흔히 순례기나 여행기를 보면 길위에 적어놓은 메모 혹은 일지를 바탕으로 회상하며 쓰기마련인데 이 책은 달랐다. 바로 그 길위에서 쓴 그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길을 떠난 지 3일 째 되던 날이 첫 일지고, 그 다음날, 어떤 날은 걷고 난 뒤 숙소에서 바로 쓴 내용도 있다. 마치 책을 펼쳐 읽는 게 아니라 현재 여행중인 블로거의 포스팅을 접하는 생생함이 느껴졌다. 산티아고 순례길 하면 다들 큰 시련과 상처를 껴안고 좀 더 단단해지기 위해 떠나기 마련인데 '사랑'을 위해 떠난 그녀 덕분에 회환이나 우울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발에 상처가 생기고 아킬레스건이 당긴다고 고통을 호소하지만 오히려 그녀가 고통을 호소하는 그 순간마저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겸손함이 느껴졌다. 동행과 함께하는 저녁식사, 처음으로 마셔봤다는 보카디요는 과연 어떤 맛일까? 싶으면서 꼭 산티아고 여정에 발을 딛는다면 마셔봐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길위에서는 누구나 오랜 벗처럼 느껴진다. 오로지 걷는 것 밖에 할일이 없고, 견디는 것이 전부인 그 여정은 타인의 이야기를 사심없이 들을 수 있는 좋은 대화의 장이 되기도 하고 동행이 없을 때는 내면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철저하게 혼자만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가 속한 곳은 스코티시 챔버 오케스트라이다. 동양인 최초 첼리스트로 조금 거만할 것도 같은데 책에 실린 사진을 보면 늘 웃고 곁에 있는 누구던지 그녀에게서 '사랑'이 느껴졌다. 흥미로운 것은 떠나는 목적자체가 희망을 품어서인지 길위에서 만나는 멋진 풍경과 동행자들과의 추억이 왠만한 고급 여행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이 여유로웠다.

오늘 밤에는 또 다른 아홉 사람을 위한 친교의 만찬이 있었다. 요리는 제이드와 죠지의 몫이었다. 와인은 넘쳐났고 우리의 만찬은 늦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77쪽

하지만 걷고 또 걷는 여정이 늘 파티로만 가득찰 수는 없다.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기전 여유롭게 걷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전까지 그녀는 뒤에서 다른 이들을 쫓아야 했고 때로는 숙소를 구하지 못해 식당에 찾아가 하룻밤을 부탁해야 할 때도 있었다. 순례길의 날씨는 예측은 할 수 있지만 변화무쌍해서 비가 오기도 하고 갑자기 바람이 불거나 추워질 때도 있고 뙤약볕에 노출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고통스러운 부분을 적어가는 날에도 그녀는 긍정적이었다. 비를 많이 맞았지만 숙소를 잘 만나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거나 하는 부분을 감추지 않았다. 구토로 인해 아에 일정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는 친구들이 그녀에게 위로가 되었고 그 순간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것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즐겨야 했다. 음악은 나를 즐겁게 했고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중략-그것은 나로 하여금 음악에 맞춰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226쪽-

고든과의 만남이 우연이었던 것처럼 그녀가 순례여행을 시작한 날도 우연처럼 고든과의 1주년 결혼 기념일이었다고 한다. 남편과의 추억과 그가 미처 마치지 못한 모금활동을 위해 길위에 올라섰지만 그녀 스스로 표현하기를 자신에게 '환골탈태'가 일어났다고 할 만큼 더 큰 행복과 기쁨을 얻고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순례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은 파울로 코엘로의 '순례'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산티아고에 다녀왔어도 참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은 남았지만 역시나 처음 든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준비없이, 목적없이 떠났다면 그녀처럼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무엇을 얻고 무엇을 비울 수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외국에서 나고 자란 까닭에 번역된 언어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과감없이 써내려간 그녀의 순례여정은 그동안 읽었던 산티아고 여행기 중 가장 직접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깨닫기 위해서가 아닌 사랑을 위해 떠날 수도 있는 순례길,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하는 그녀의 일지는 일말의 두려움으로 망설이고 있는 예비 순례자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되어줄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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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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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세. 아내를 잃고 자살을 결심한 오베라는 남자.

사교술 제로. 신기술 무시에 원리원칙이 중요하며 세상에 지켜져야 할 규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람.

 

봄 가을 남색 재킷, 겨울용 재킷 그렇게 같은 컬러의 재킷을 계절로 구비하며 사는 오베. 그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쓰레기라도 실수로 흘리면 호된 소릴 들을 것 같은 그다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미지라고 연상된다. 묘사가 장황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인물에 개입해 하나하나 변명해주지 않는 작가의 문체는 덤덤하면서도 피식 하고 웃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었다. 오베의 유년시절부터 스페인 버스 관광까지의 일들과 현재 오베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한 챕터 씩 교차되어 등장하는 구성으로 어렸을 때 아빠에게 자동차 사브에 대해, 엔진에 대해 그리고 '남자'에 대해 배워가는 어린 오베의 모습을 만나는 건 어느 말없는 그렇지만 정직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오베의 아버지가 그랬듯 오베도 그렇게 남자답게 성장했다. 사브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오베는 처음으로 신에게, 운명에게 그리고 자신앞에 놓여진 현실앞에 좌절한다. 하지만 그 좌절은 길지 않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선불임금 중 일하지 않는 날들을 계산 해 돌려주려고 갔던 그 날만큼 일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게 된다. 그의 성실함은 윗사람에게 만족을 주고 사브는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오베에게도 '운명의 장소'가 된다. 오베의 인생을 접하면서 시종일관 산다는 것은 결코 계획대로 되지 않고 어긋난 계획일지라도 나중에 보면 그것이 정말 신의 축복이라고 여겨질 만한 일로 보상받는 다고 느껴졌다. 동료에게 미움을 사 쫓겨나다시피 일자리를 옮겼을 때도 얼핏보면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이지만 덕분에 소냐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웃을 사랑하고 나눔과 공유가 무엇인줄 알았던 소냐에게 닥친 불행은 아무리 멀리 보고, 곱씹어 봐도 신이 하신 일 중 오베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보험회사로 부터 사기를 당하고 공무원들의 안일한 처리로 집이 불에 홀라당 타버리고 나서 오베는 이전보다 더 세상을 친절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친절하게 바라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부정적이고 등을 돌리며 제멋대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 원리원칙을 지키는 것 만큼 오베에게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를 좋아하고 책을 사랑하며 '감정'을 중요시 여기는 소냐는 오베에게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물론 소냐의 주변인물은 그녀와 어울리기에는 학벌도, 낭만도 부족한 오베가 여전히 맘에 들지 않았지만 적어도 세상과 등지고 살만큼 외골수였던 소냐의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낼 만큼 오베는 제법 괜찮은 남자였다. 하루하루 자살을 꿈꾸는 현실 속 오베는 새로 이사온 파르바냐와 사사건건 부딪히면서도 오베의 따뜻한 진심을 눈치챈 그녀 덕분에 주변사람들과 다시 융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파르바냐의 세살 짜리 딸은 모든 사람을 단색으로 표현하면서도 오베만큼은 화려하게 색칠하여 그려 줄 만큼 아이의 눈은 어쩌면 이런저런 안개로 가려진 어른 들의 시야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오베를 바라보고 있고, 작가는 아이를 통해 오베가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지를 알려주었다. 소냐의 사고 이후 지금처럼 차갑게 변한 오베지만 이 부부의 사연을 읽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위해 노력하고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소냐의 예쁜 마음을 전해져 슬프지만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책의 표지는 심술궂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등장하지만 오베만큼 진정한 의미에서 '친절하고, 남자다운'사람은 결코 흔하지 않다. 어쩌다 마주친다면 역시나 유쾌하지 않겠지만 이웃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주워진다면 분명 오베같은 사람을 택하게 될 것 이다. 물론 미래의 남편감으로도 충분히 멋진 사람이다.

 

*인상깊은 구절*

우린 사느라 바쁠 수도 있고 죽느라 바쁠 수도 있어요, 오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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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럼 분 PLUM BOON 2015 - Vol.1, 창간호
RHK타이완문화콘텐츠연구소 편집부 엮음 / RHK타이완문화콘텐츠연구소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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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할배를 통해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대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잡지 플럼분 창간호.

 

여행은 서로 다른 문화를 접하거나 함께 여행하는 집단과 유대관계를 맺음으로써 고전적인 '통과의례'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19쪽

 

먹거리가 많고 볼거리가 많은 대만은 우리에게 친숙한 나라는 아니다. 물론 수교를 맺었던 과거가 있고 대만 현지 대학에서 한국어과가 개설되어 있으며 역사적인 특성을 볼 때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아픈 역사가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하지만 작은 중국 정도로만 여겨져 있으며 대만 현지에서는 한류열풍이 불기는 해도 여전히 반한감정도 깊다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한다. (타이완의 정식 국호 또한 대만 혹은 타이완이 아닌 '중화민국'이나 통상적으로 대만 혹은 타이완으로 알려져 있다.)단순히 대만여행지의 가이드북의 역할을 넘어서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와 문화를 전달해주는 플럼분은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다. 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대만에 거주하게 된 배경이라던가,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당시 건너가 살았던 한인들의 직업 분포도 등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고서는 접할 수 없었던 중요한 내용들이 잡지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단편소설까지 실려 있는데 창간호에 실린 작품은 조우펀링의 '화동부호' 전편이었다. 소설의 내용은 그야말로 대만의 근현대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2.28 사건(디아오위다오 보호운동 관련)을 배경으로 문자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뿌리찾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소설내용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역자가 피력한 것처럼 한국의 한일협정 반대운동과 유사점을 비교하며 읽는 학술적인 재미도 충분했다. 소설을 다 읽고나면 특별대담 코너, 저자 조우펀링과 천팡밍의 대담이 실려있는데 앞서 읽었던 소설과 관련하여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는 페이지도 준비되어 있어 좋았다.

 

 타이완 여행기도 잡지에서 빠질 수 없는 데 이번호에서 다룬 내용은 '101빌딩 불꽃 축제'다. 내용을 떠나 해당 부분은 너무 아쉬웠던게 불꽃 축제지만 실린 사진들이 모두 흑백이라 전혀 여행의 감흥을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페이지는 컬러화보가 불필요하다고 해도 여행지의 생생함을 흑백으로만 접하는 것은 정말 아쉬운 부분이었다. 아쉬운 점이 이외에도 한 가지 더 있었는데 교통카드 관련 부분으로 유효기간이 이미 잡지가 발행된 시점을 전, 후 마감되었거나 한달 이내 마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잡지를 보고 여행정보를 얻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타이완의 한국어 교육을 다룬 기사는 개인적으로 흥미로웠고 유익했던 부분이다. 현지에서 한국어 교수로 재직중인 박병선교수의 컬럼은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이거나,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단비같은 내용이었다. 교수는 대만에 한국어 교사가 많지 않은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한국학 전공자들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강조했다. 이어진 내용은 24시간 운영하는 매장을 가지고 있는 천핑서점의 이야기였다. 모든 매장이 24시간이 아니라는 점은 미리 알아두고 가야하는데 대다수 매장이 모두 밤 12시 전후로 운영한다는 점에서는 밤에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인 것은 분명하다. 진열된 책 대부분 샘플 도서가 있어 그자리에서 책을 읽기 좋고 4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마련되어 있어 누구라도 편하게 책을 대할 수 있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 이런좋은 점들은 나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기에 여러가지 굵직한 상들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운영자 마인드 자체가 책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할 만큼 열려있으며 무엇보다 매출이 매해 증가한다는 사실도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책 자체의 매출은 40%정도고 그외에 문구류나 기프트류에서 이윤을 남긴다고는 해도 작은 서점을 비롯 오프라인 매장이 점점 문을 다는 현실을 따져보면 본받을만한 점이다.

 

이 외에도 대만하면 떠오르는 야시장, 야시장에서 즐길 수 있는 먹거리, 대만 영화와 연극 등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져 있다. 반드시 여행을 가고자 하는 사람 뿐 아니라 대만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그리고 폭넓게 알고 싶은 사람, 어려운 논문이나 학술서보다 편안하게 접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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