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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59세. 아내를 잃고 자살을 결심한 오베라는 남자.
사교술 제로. 신기술 무시에 원리원칙이 중요하며 세상에 지켜져야 할 규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람.
봄 가을 남색 재킷, 겨울용 재킷 그렇게 같은 컬러의 재킷을 계절로 구비하며 사는 오베. 그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쓰레기라도 실수로 흘리면 호된 소릴 들을 것 같은 그다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미지라고 연상된다. 묘사가 장황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인물에 개입해 하나하나 변명해주지 않는 작가의 문체는 덤덤하면서도 피식 하고 웃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었다. 오베의 유년시절부터 스페인 버스 관광까지의 일들과 현재 오베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한 챕터 씩 교차되어 등장하는 구성으로 어렸을 때 아빠에게 자동차 사브에 대해, 엔진에 대해 그리고 '남자'에 대해 배워가는 어린 오베의 모습을 만나는 건 어느 말없는 그렇지만 정직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오베의 아버지가 그랬듯 오베도 그렇게 남자답게 성장했다. 사브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오베는 처음으로 신에게, 운명에게 그리고 자신앞에 놓여진 현실앞에 좌절한다. 하지만 그 좌절은 길지 않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선불임금 중 일하지 않는 날들을 계산 해 돌려주려고 갔던 그 날만큼 일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게 된다. 그의 성실함은 윗사람에게 만족을 주고 사브는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오베에게도 '운명의 장소'가 된다. 오베의 인생을 접하면서 시종일관 산다는 것은 결코 계획대로 되지 않고 어긋난 계획일지라도 나중에 보면 그것이 정말 신의 축복이라고 여겨질 만한 일로 보상받는 다고 느껴졌다. 동료에게 미움을 사 쫓겨나다시피 일자리를 옮겼을 때도 얼핏보면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이지만 덕분에 소냐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웃을 사랑하고 나눔과 공유가 무엇인줄 알았던 소냐에게 닥친 불행은 아무리 멀리 보고, 곱씹어 봐도 신이 하신 일 중 오베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보험회사로 부터 사기를 당하고 공무원들의 안일한 처리로 집이 불에 홀라당 타버리고 나서 오베는 이전보다 더 세상을 친절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친절하게 바라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부정적이고 등을 돌리며 제멋대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 원리원칙을 지키는 것 만큼 오베에게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를 좋아하고 책을 사랑하며 '감정'을 중요시 여기는 소냐는 오베에게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물론 소냐의 주변인물은 그녀와 어울리기에는 학벌도, 낭만도 부족한 오베가 여전히 맘에 들지 않았지만 적어도 세상과 등지고 살만큼 외골수였던 소냐의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낼 만큼 오베는 제법 괜찮은 남자였다. 하루하루 자살을 꿈꾸는 현실 속 오베는 새로 이사온 파르바냐와 사사건건 부딪히면서도 오베의 따뜻한 진심을 눈치챈 그녀 덕분에 주변사람들과 다시 융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파르바냐의 세살 짜리 딸은 모든 사람을 단색으로 표현하면서도 오베만큼은 화려하게 색칠하여 그려 줄 만큼 아이의 눈은 어쩌면 이런저런 안개로 가려진 어른 들의 시야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오베를 바라보고 있고, 작가는 아이를 통해 오베가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지를 알려주었다. 소냐의 사고 이후 지금처럼 차갑게 변한 오베지만 이 부부의 사연을 읽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위해 노력하고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소냐의 예쁜 마음을 전해져 슬프지만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책의 표지는 심술궂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등장하지만 오베만큼 진정한 의미에서 '친절하고, 남자다운'사람은 결코 흔하지 않다. 어쩌다 마주친다면 역시나 유쾌하지 않겠지만 이웃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주워진다면 분명 오베같은 사람을 택하게 될 것 이다. 물론 미래의 남편감으로도 충분히 멋진 사람이다.
*인상깊은 구절*
우린 사느라 바쁠 수도 있고 죽느라 바쁠 수도 있어요, 오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2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