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스페셜 에디션) - 너에게 보내는 편지, 완글
하태완 지음, 성자연 그림 / 넥서스BOOKS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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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커서였을 것이다. 서점에서 잠깐 서서읽은 것도 아니고 애초에 트집잡기위해 읽은 책도 아니다. 책에 실린 몇몇 글이 좋아 아예 작정하고 읽은 글인데 뭐랄까, 친구가 주문한 음식을 한 입 먹어보고 맛있어서 다음 날 다시 와서 주문했는데 어제 맛본 음식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랄까.

 

남자들에게 '꽃집'이라는 장소는

몇 번을 가도 쑥스럽고 어색한 곳이라는 것을.

더구나 선물할 꽃을 '직접' 고른다면 더더욱.

 

59쪽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매번 당신을 만나러 가는 남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놓치지 말아요.

 

63쪽

 

 

꽃집에 가는 게 익숙하지 않은 것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뿐만아니라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한 것 역시 성별과 무관하다. 피곤한데 당신을 찾아오는 남자를 절대 놓치지 말라는 말에 당황스러웠다. ~하는 남자라고 했을까. 피곤한데 당신을 찾아오는 연인이라고 해도 되었을 것을 굳이...

 

무엇보다 거슬렸던 것은 이런 사람을 만나세요라는 내용의 글들이었다. 사랑에 빠지기 전에 그 사람이 사랑하는 여인만 바라보는 줄 어찌알것이며, 민낯으로 마주해도 나를 사랑해줄 수 있을지 그것을 어찌아나. 계산적인 사랑이란 게 이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잘해줄 것인지, 얼마나 내마음을 헤아려주고 이해해줄 것이며 나에게 맞춰줄 것인지를 따지는 것도 계산적인 것 아닐까. 상대방을 자신보다 지나치게 과분한사람인 것처럼 하는 태도도 그다지 바람직한 것 같지 않다. 독자에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더니 자신은 연인을 두고 말도 안되는 연애를 하니 말도 안되게 잘해줘야 한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말이 안되는 말 아닌가.

    

우리의 마음속은 생각만큼

그렇게 넓지 않아요.

 

소중한 가족, 친구, 애인 생각으로도 가득차

비좁을지 모르는 공간인데

미운 사람들까지 억지로 끼워 넣어

아파할 필요는 없잖아요.  179쪽

 

 

물론 공감할 수 있는 부분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글들도 적지 않다. 이미 지나간 관계에 너무 연연해 하지도 지나치게 미화시키려고도 하지 말라는 조언이라던가, 부모님과의 관계를 자꾸 나중으로 미뤄두려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들은 나역시 다른 이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하는 부분이자 스스로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체적인 '맛'이 좋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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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 내리다
김선경 외 지음 / 책나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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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이해로 살아가자

한 치 앞도 모르는 삶 사랑으로

치유하여

향기로운 세상에서 살고지고


- 김순석 , 사랑이어라 中



회사 화장실에 지난 8월 내내 붙여있던 작품 중 유독 마음에 남아 결국 시집<꽃비, 내리다>를 찾아 야근 내내 붙들고 앉아 읽어버렸다. 읽었다가 아니라 읽어버렸다라고 표현한 까닭은 한 여름에도 펼쳐보던 시집인데 가을인데 오죽 잘 읽힐까. 마흔을 앞두고 분야는 같지만 업종은 전혀 다른 곳에서 근무를 하려니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견딜 수 없었던 날들이었다. 그런 때에 저 문장 ‘산다는 건 이해로 살아가자’를 화장실 갈 적마다 만나게 되니 화장실이 그야말로 ‘해우소(解憂所)’역할을 해준 셈이다. 김순석 시인을 포함 총 10인의 시들이 실려있는 <꽃비, 내리다>를 읽다보니 현재 내 마음이 어디에 머물고 있고, 어디쯤에서 방황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마 앞으로 소개 할 몇편의 시들을 읽다보면 이 리뷰를 읽는 이들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너에게 가는 길은 단순해야 한다는 것

곁가지를 쳐 내야 한다는 것

올레길, 둘레길 에돌지 말고

지름길로 가야 한다는 것

- 김해미 겨울애상 中







사랑 말고 연애를 할 때 상대방에게 요구하던 것이었다. 단순하게 곁눈질 말고 직선도 아닌 지름길로 나를 사랑해달라고 요구했다. 요구를 넘어 협박이었는지도 모른다. 견뎌주던 이들도 있었고, 견뎌준다는 것이 고마운게 아니라 질리게 만들어 떠나온 적도 있었다. 내가 저렇게 사랑해야 하는 줄은 알지도 못하고 그렇게 어리석게 살아왔다. 다시 사랑한다면, 아니 다시 연애를 한다면 그때는 지름길로 가야지 하면서도 삶이란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느끼며 무수히 많은 시인의 작품을 눈으로만 읽고 마음에는 찰나도 남겨두지 못하고 이유진시인의 작품들을 만나고서야 멈춰졌다. 이 시는 한 편을 그대로 옮긴다.


마음이 춥다

사막을 혼자 걷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서 있는 그 자리만 바라보며

이제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야 하나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을 대

누군가가 내 어깨를 가볍게 감싼다


나를 향해 미소 짓는 그분께

나도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거 같았다

아직도 내 어깨엔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다

그 온기가 어느새 내 심장을 파고들었고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부드러운 모래 위일 뿐

딱딱하고 모난 바위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며

길고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본다


바람도 모래도 온기가 되어 나를 곱게 스친다



- 이유진 <혼자라고 느낄 때>



아, 가을이다.

그 분이 뉘셨는지 알 순 없지만 적어도 오늘 내게는 이 시집인 것 같다. 시집 속 시인들의 시어들이 온기 가득한 손길로 느껴졌다. 애틋하고 서러운 마음 표현했다라는 것은 적어도 이런 마음이 나만 느껴지는 서글픔은 아니었단 의미일테니 이보다 좋은 위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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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무엇이 될까
강산 지음 / 좋은씨앗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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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 네가 당한 그 몇 번의 배신으로 속이 상하냐? 그렇다면 내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지금까지 당한 배신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겠느냐? 63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92

베드로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95

 

강산의 <결국 나는 무엇이 될까>의 내용을 위의 세 질문을 통해 정리하면 좋을 것 같다. 첫 번째 질문.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배신을 당한다. 저자 강산처럼 선의로 시작한 일이 상대방의 악의로 결말지어질 때를 포함 해 크고 작은 배신이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있고 미래에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를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를 떠나 저자가 들었던 주님의 질문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곤 한다. 마치 영화 <해바라기>에서 김래원이 악당에게 던진 그 질문.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했냐?”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꼭 그렇게 나를 떠나야했는지, 꼭 그렇게 나를 떨어뜨려야했는지, 그 점수를 줘야했는지 등. 만약 상대에게 해야 할 저 질문 대신 저자에게 주님께서 던진 질문을 한다면 어떨까? 물론 당장은 저런 질문에 더 화날 수도 있지만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후 답하려 하면 눈물부터 나온다. 저 질문 나도 들었던 질문이었고, 거의 매일 매순간 들리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비신앙인들에게 돌려서 말하자면 우리는 드라마를 보면서 늘 고난에 빠져사는 고구마캐릭터를 짜증내면서도 시선을 떼지 않고 같이 아파하고 빨리 사이다를 마시게 해달라며 작가에게 항의 댓글까지 남긴다. 예수님의 생애가 딱 그러했다. 치유해주고, 마귀를 쫓아내준 사람을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소리치는 군중들과 자신을 사랑한다고 소리치던 제자들이 형장에 끌려가는 자신을 외면하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할 때, 예수님이 아닌 드라마속 주인공이었다면, 지금 읽고 있는 소설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나는 이것보다는 덜하구나.’싶지 않을까.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면 저자가 장학금까지 받으며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신학대로, 목회자의 길로 걷게 된 계기가 바로 저 질문이었다. 누가봐도 열심히 살아가던 저자에게 주님은 왜 저런 질문을 하셨을까. 열심히 살면서 믿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에 온 것은 자의로 온 것이 아니듯 목적역시 우리 맘대로 정할 순 없다. 그길을 갈지 말지를 자유의지로 정할 순 있어도 목적자체를 바꿀 순 없다. 그 부분을 주님께서는 저자에게 위의 질문으로 깨우쳐주신다.

 

인생에게는 쉬운 길과 어려운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종의 길과 불순종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순종의 길은 사명의 길이고 좁은 길인데 이 길을 걷고자 한다면 인생의 전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을 체감하고 또 체감했습니다. 93

 

사실 난 아직 내 소명을 모른다. 자랑이 아니라 그만큼 열심히 기도하지 않음을, 주님의 뜻이 아닌 내 뜻대로 살아가고 있음을 리뷰를 통해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저 결단이, 순종의 길을 택한 용기가 부럽고 부러웠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의지를 엉뚱한 곳에 쏟아내고 있는 셈이다. 이때 나를 한 번 더 울린 세 번째 질문. “베드로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부인하고서도 주님께서 용서해주실 분이심을 굳게 믿은 베드로는 다시금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사도로서 교회를 이끄는 리더가 된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세 번보다 더 많이 부인만 하고 제대로 된 고백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결국 책을 다 읽고서도 세 번째 질문에는 마땅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만약 나처럼 두 번째 질문에서부터 헤매고 있는 독자라면, 혹은 첫 번째 질문부터 부당하다 여겨지는 독자라면 이 책을 꼭 한 번은 읽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신앙과는 별개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이 책의 제목처럼 결국 내가 무엇이 될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혹시 지금 그 무엇 때문에, 그 누구 때문에, 그 어떤 사건 때문에 방해받고 있다면 감사하기 바랍니다.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는 우리에게 주님이 찾아오신 것이니까요! 더 이상 피하지 말고, 이제 그 방해를 만나십시오!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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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손님 (반양장)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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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손님.

 

번역본의 경우 독자들이 원작과 당연하게 비교되는 부분이 번역을 얼마나 원작과 가깝게 옮겼느냐 일 테고 이때 제목은 그중에서도 단연 크게 자리 잡는다. <그해, 여름 손님>의 원제는 ‘Call me by your name’으로 책을 읽기 전에는 영화처럼 그대로 제목을 살리는 것도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후 든 생각은 적어도 국내에 번역되는 제목이라면 원제보다 지금의 제목이 훨씬 더 큰 여운을 남겨준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서로의 이름으로 불러준다는 설정은 한국영화 [클래식]을 떠올리게 하고 특정 기간과 계절을 연달아 언급하며 강조한 부분이 더욱 그런 기분을 들게 했다. 도대체 그해, 여름 손님은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걸까.

 

아버지를 도와 여름이면 별장 손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엘리오. 아직 열일곱으로 성년이 되지 않았다는 점과 엘리오의 마음을 흔든 그해 여름 손님의 성별이 같은 남자라는 점이 이 소설의 장르와 독자층의 을 긋는다. 막상 책을 읽다보면 엘리오와 손님의 성별이나 그들의 나이차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고 현재 혹은 과거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말하지 못했던 혹은 사랑이 막 시작되던 때의 추억을 가차 없이 끄집어놓게 만들었다. 가령 다음의 질문들이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때다.

이 사람도 나를 좋아할까?’ 혹은 분명 나를 좋아하는 게 맞아.’였다가 결국은 그냥 볼 수 만 있다면 좋겠다.’로 귀결되는 저 혼자서만 가슴앓이를 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적이 없었던 이들도 물론 있겠지만 만약 있었거나, 다른 작품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해봤던 이들이라면 초반부터 슈퍼소닉과 견줄만한 속도로 가슴앓이를 하는 엘리오와 혼연일체가 될 정도로 필력이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하물며 현재 진행형의 독자들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장점은 애초에 이 책을 내가 읽고 싶었던 이유가 되는 클래식 음악의 시도 때도 없는 출연이다. 사실 하루키의 소설처럼 BGM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오와 만인의 연인 올리버를 연결시켜주는 핵심 매개체이자 올리버에게 그랬듯 독자에게도 엘리오가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임을 각인시켜주는 주요소재가 된다. 이런 이유 외에도 ‘20th 람다 문학상 게이 소설 부문 수장작이긴 하지만 장르와 상관없이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독자들마다 다를 테지만 분명한 것은 여름에 읽어도 좋지만 여름을 보낸 지금 이 계절에 딱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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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소설 1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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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소설은 총 2권짜리 장편소설로 각 권을 따로 읽는 것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1권을 읽고서 바로 2권을 읽으려고 했는데 이미 한밤을 넘긴 새벽이라 잠시 쉬어가자던게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2권을 읽게되었는데 감흥이 반감되기는 커녕 새로운 작품을 읽는 듯한 설레임과 만족감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1권에서는 매들린을 중심으로 그의 연인 레너드와 그녀를 좋아하는 미첼의 대학졸업 전후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사실 책소개만 읽었을 때 부모님이 좋아하는 미첼을 만나지 않는 이유는 '나쁜남자'를 좋아하는 온실속 '공주'로 자란 매들린의 안타까운 사랑이겠거니 싶었는데 막상 책을 읽다보니 과거의 한 때는 매들린이었고, 또 다른 때는 미첼이기도 였다가 레너드가 되었던 때의 나를 떠올리게 만들어 당황스러웠다. 나쁜남자라서 끌린 것도 아니고 미첼이 모범생이어서 끌리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어린시절부터 차근차근 쌓아온 그녀의 성향이 어쩌면 미첼보다는 레너드에게 끌리는 것이 독자인 나조차 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레포트나 필독서에 허우적 거리는 세 사람을 보면서 학부시절 때가 떠올라 웃기도 했지만 졸업을 앞두고 두려움에 빠지거나 연애가 내 맘같지 않은 부분을 읽을 때는 역시나 감상에 빠져 아픈 마음을 토닥거리기도 했다. 1권을 그렇게 과거의 나를 반추하며 읽었다면 2권은 아직 결혼해본 적 없는 내게 그야말로 책의 가장 큰 이점인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었기에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재미라고 적긴했지만 재미있다기 보다는 매들린보다 나이는 많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더 불안정한 나였더라면 상황이 어떻게 변했을까 싶어 걱정스럽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서 바로 리뷰를 적지 못한 그 까닭이다. 얼마전 결혼과 관련된 테드 강연을 몇 편 보았는데 결혼이란 '안정'그것도 타인에게 의지해서 얻어지는 평안을 위해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공통된 이야기였다. 레너드는 조울증 환자잖아 라는 정도로 안심할 수 있지 않았다. 조울증환자는 결혼을 통해 맞게 되는 다양한 문제 중 하나일 뿐이라는건 해보지 않아도 알기 때문이다.

 

기대없이 읽었기에 좋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 과연 내가 결혼에 적합한 사람인가 하는 자문의 날들을 보내고 있기에 더 많이 와닿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트레이시 멕밀란의 말처럼 자신과 결혼 한 후에 역시나 그럴 수 있는 또다른 누군가와 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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