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내리다
김선경 외 지음 / 책나무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산다는 건 이해로 살아가자

한 치 앞도 모르는 삶 사랑으로

치유하여

향기로운 세상에서 살고지고


- 김순석 , 사랑이어라 中



회사 화장실에 지난 8월 내내 붙여있던 작품 중 유독 마음에 남아 결국 시집<꽃비, 내리다>를 찾아 야근 내내 붙들고 앉아 읽어버렸다. 읽었다가 아니라 읽어버렸다라고 표현한 까닭은 한 여름에도 펼쳐보던 시집인데 가을인데 오죽 잘 읽힐까. 마흔을 앞두고 분야는 같지만 업종은 전혀 다른 곳에서 근무를 하려니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견딜 수 없었던 날들이었다. 그런 때에 저 문장 ‘산다는 건 이해로 살아가자’를 화장실 갈 적마다 만나게 되니 화장실이 그야말로 ‘해우소(解憂所)’역할을 해준 셈이다. 김순석 시인을 포함 총 10인의 시들이 실려있는 <꽃비, 내리다>를 읽다보니 현재 내 마음이 어디에 머물고 있고, 어디쯤에서 방황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마 앞으로 소개 할 몇편의 시들을 읽다보면 이 리뷰를 읽는 이들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너에게 가는 길은 단순해야 한다는 것

곁가지를 쳐 내야 한다는 것

올레길, 둘레길 에돌지 말고

지름길로 가야 한다는 것

- 김해미 겨울애상 中







사랑 말고 연애를 할 때 상대방에게 요구하던 것이었다. 단순하게 곁눈질 말고 직선도 아닌 지름길로 나를 사랑해달라고 요구했다. 요구를 넘어 협박이었는지도 모른다. 견뎌주던 이들도 있었고, 견뎌준다는 것이 고마운게 아니라 질리게 만들어 떠나온 적도 있었다. 내가 저렇게 사랑해야 하는 줄은 알지도 못하고 그렇게 어리석게 살아왔다. 다시 사랑한다면, 아니 다시 연애를 한다면 그때는 지름길로 가야지 하면서도 삶이란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느끼며 무수히 많은 시인의 작품을 눈으로만 읽고 마음에는 찰나도 남겨두지 못하고 이유진시인의 작품들을 만나고서야 멈춰졌다. 이 시는 한 편을 그대로 옮긴다.


마음이 춥다

사막을 혼자 걷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서 있는 그 자리만 바라보며

이제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야 하나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을 대

누군가가 내 어깨를 가볍게 감싼다


나를 향해 미소 짓는 그분께

나도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거 같았다

아직도 내 어깨엔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다

그 온기가 어느새 내 심장을 파고들었고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부드러운 모래 위일 뿐

딱딱하고 모난 바위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며

길고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본다


바람도 모래도 온기가 되어 나를 곱게 스친다



- 이유진 <혼자라고 느낄 때>



아, 가을이다.

그 분이 뉘셨는지 알 순 없지만 적어도 오늘 내게는 이 시집인 것 같다. 시집 속 시인들의 시어들이 온기 가득한 손길로 느껴졌다. 애틋하고 서러운 마음 표현했다라는 것은 적어도 이런 마음이 나만 느껴지는 서글픔은 아니었단 의미일테니 이보다 좋은 위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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