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 - 오로지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낸 강수진의 인생 수업
강수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수진의 인생수업, 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


그러나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캄머탠저린의 혜택은 물론 슈투트가르트 종신단원으로서 평생 월급을 받으며 대우받을 수 있는 혜택까지 내려놓았다. 21쪽

 

발레리나 강수진이 끝까지 현역으로 남을 순 없었겠지만 어째서인지 그녀가 한국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 겸 발레단장자리에 취임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무언가 말할 수 없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고국으로 돌아와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던건가, 매일을 100%로 살던 그녀였기에 어찌보면 오히려 납득할 만한 이유인데도 결국 나이들면 '안정'을 찾게되는가 싶어서였다. 헌데 그런 내 오해가 너무 민망했다. 프롤로그에서 시원하게 나의 오해를 풀어준 덕분에 예감이좋았다. 강수진 단장의 첫 에세이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에서 채우지 못했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었다.

 

많은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경쟁자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저 최선을 다한다고 마음먹으면 그 짐을 조금 덜 수 있다. 그때의 나 역시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대회를 준비하는 일이 그저 즐거웠다. 내가 최고라는 자신감이 있었거나 강심장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승승장구하던 시절, 30대에 찾아온 부상까지의 이야기보다 더 맘이 끌렸던 것은 발레리나 이후의 그녀의 삶, 잡지나 방송에서 '철인'처럼 보여주던 그 모습외에 모습이었다. 오늘은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통증도 있지만 그 수많은 '고비'를 넘고 있다라는 것이 위안이 된다.


<월든>을 쓴 작가 데이비드 소로는 '모든 사람은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매우 좋아한다. 모든 사람이 존재하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나라는 사람의 존재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만이 정직한 자세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고, 또 스스로를 가꾸고 성장 시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135쪽


성공한 사람들 중 대다수가 단점을 피나는 노력으로 장점으로 승화하라고, 자신들은 그것을 해냈기에 성공했다며 . 그 이후에는 단점은 그대로 두고, 장점에 올인해서 단점이 부각되지 않도록 역시나 피나는 노력을 하라고 말했다. 단점을 바꾸든 장점을 부각시키든 결국 내게 무엇이 장점인지 단점인지를 명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한데 그조차 파악을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타인의 시선과 비교가 판단을 흐려놓기 때문이다. 저자 또한 계획을 세울 때 타인이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컨디션에 맞게 능력에 맞게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그녀는 유학당시 도둑연습을 해가며 동료들을 따라잡으려고 애쓰긴 했으나 그녀의 목표는 타인과의 비교에서 그쳤다면 결국 좌절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툰츠 씨에게 사랑은 무엇입니까?"

한국의 한 기자가 툰츠에게 물었다. 툰츠는 피식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한국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는데, 3시간 동안 옆에 앉아 있어주는 거!" 203쪽


강수진 감독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관심도 팬이라면 없을수가 없는데 줄리엣, 지젤, 티티아나 등 그녀가 보여준 작품속 인물들이 살아숨쉬듯 공주처럼 아름다운 그녀의 마음을 얻은 사람이 바로 현재 남편 툰츠다. 선후배로 만나 15년, 연인으로 13년만에 소박한 결혼식으로 결실을 맺은 이 부부의 결혼생활이 어떨지는 위의 인터뷰 내용만 봐도 짐작이 가능하다. 내 목숨보다 사랑한다든가,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은 사람이라는 과한 표현보다 힘들 때 들어주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을 여자들은 다 공감할 것이다. 

 


20대 후반, 처음으로 당시 내 월급과 비교했을 때 고가의 티켓을 구매했던 까닭은 그 주인공이 강수진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고별무대가 될 수 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늦은 시작과 녹록치 않은 환경에서 매일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의 모습을 두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손을 놓치고 겁에 질렸던 소심한 아이었고 부상으로 인해 아픔도 맛보았던 여린 그녀가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열정과 환희를 책에서 다시 느끼고 싶었는데 첫 책은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적잖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두번째 책은 서두에 밝힌 것처럼 시작부터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10여년동안 홀로 좋아해온 나의 그녀가 인생2막의 무대에서 이전보다 더 활약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녀는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현재진행형 롤모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 혁신의 아이콘 마스다 무네아키 34년간의 비즈니스 인사이트
마스다 무네아키 지음,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는 일본 기업 CCC그룹의 사내블로그에 등록되었던 글 일부를 편집한 책이다. 다이칸야마의 '츠타야 서점'을 10여년 전 당시 도쿄에서 살고 있던 언니손을 잡고 따라간 게 처음이었다. 도쿄는 서울시와 비교했을 때 차비가 꽤 비싼편이라 꽤 긴 거리를 걸어서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니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책을 좋아하는 나를 떠올리며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만큼은 나를 데려오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럴만했다. 동화책에서 보던 서점들은 유럽여행중에 만날 수 있었지만 미술관처럼 건물부터가 취향을 제대로 관통했던 서점은 츠타야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CCC가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의 약자인 것이 결코 과하지 않다. 이곳을 보면서 자본만 있다면, 투자자만 있다면 그대로 한국에 옮겨와도 성공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마치 이런 안일한 생각을 이미 다 안다는 듯 책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PART01 경영편에서는 이부분에 관해 여러차례 반복한다.

 

 

 

고객을 보지 않는,

혹은 일하는 사원의 설렘을 고려하지 않고 만든 매장은

사람이 모일 리 없고 일하는 사원도 즐겁지 않다.

성공 체험은 그런 기본적인 것에서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2호점은 실패하는 일이 많다. 59쪽

 

 츠타야의 창업자 마스다가 강조하는 경영방침의 주요내용은 고객이 니즈를 파악하는 것 만큼 기획자의 소신또한 굽혀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소신을 가지고 했을 때 고객뿐 아니라 거래처와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남탓을 하지 않는 경영방식으로 이어진다. 마스다가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1호점의 영광을 그대로 2호점에 재현했을 때 실패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마스다역시 단골집 주인에게서 "매장을 늘리는 것은 회사 마음이지만 그 때문에 소중한 고객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91쪽-과 같은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아무리 발이 빠른 선수라도

공을 받지 못할 것 같으면 열심히 뛰지 않고

동료를 위하는 마음이 없으면 힘들 때 걸어버린다. 144쪽

 

 파트2에서 강조하는 것은 사원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애정이었다. 급여를 무조건 많이 주는 쪽으로 일하게 하는게 아니라 창의성과 하고싶은 이들에게 업무를 맡김으로써 마치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듯 사원역시 스스로 일하고 싶게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파트3에서는 어쩌면 이 책을 '실용서' 혹은 '업무용'으로 읽으려는 독자들이 집중하게 되는 파트일 것이다. 바로 기획에 관한 것으로 앞에서도 해당 부분에 대해 수차례 조언하듯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말한다. 파트1에 등장했던 주변상권, 멋진 손님으로 매장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던 일화등을 좀 더 상세하게 들려준다. 사실 츠타야1호점을 보고 다른 매장을 가보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특히 오키나와 오모로마치 역 인근 매장에 갔을 때 적잖게 놀랐다. 관광객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매장을 가도 1호점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길 바라지만 현지에서 사는 사람들은 생각이 다를 것이다. 지갑을 가볍게 하고 들리고 싶을 때도 있고, 마트에 잠시나온 김에 아이들 책을 사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1호점의 분위기만 고집한다면 고객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파트4와 파트5는 일상기획자로 살아가는 마스다의 삶과 기획자가 아니더라도 인생선배로서 들어도 좋을만한 내용이 담겨있다.  읽다보면 반드시 마스다의 선택이나 의견이 옳다고 볼 수 없는 상황도 있고 원론적으로 말한다는 느낌이 들때도 있어 황당할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기업인의 자기자랑이 아니라 일상기획자인 선배가 들려주는 기분이 드는 이유가 있었다.

 

 

 

필사적으로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기획을 생각한다.

 

"NO"라는 말을 듣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생각한다. 32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창백한 언덕 풍경 민음사 모던 클래식 61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니키, 그러니까 우리 부부가 막내딸에게 붙이기로 최종적으로 합의한 그 이름은 약자가 아니다. 그것은 나와 그애 아버지와의 타협의 산물이었다. 9

 

 

 

이야기의 시작은 소설의 화자인 '에츠코'의 둘째 딸 니키의 이름과 관련되어 있다. 딸, 자녀는 흔히 '미래' 혹은 '희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에 들어있는 형용사는 다름아닌 창백하다는 다소 부정적이고 암울한 상태를 의미한다. 에츠코가 살았던 과거 한 때는 그토록 '창백한'풍경이었을 수 있으나 마치 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저자가 독자에게 던져주고 싶은 바는 '희망'이라고 말하는 듯 싶다.

 

 

소설의 주된 내용은 원폭이후 재건되어 가는 나가사키의 모습과 그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시골의 한 황무지 인근의 아파트와 폭격에도 무너지지 않은 오두막에 살던 사츠코와 그녀의 딸 마리코상을 추억하는 에츠코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와 함께 에츠코의 첫 번째 남편이자 자살한 게이코의 친부인 지로와 그의 아버지 오가타상 그리고 주변인들의 이야기로 연결되어 있다. 또 달리 이야기하자면 전쟁 이전에 부귀영화까지는 몰라도 명예와 안정적 삶을 살았던 아버지 세대와 전쟁이후 실질적으로 재건하는 데 큰 영향력을 미친 아들세대간의 대립도 그려진다.

 

 

 

"아이는 어른이 되지만 성격은 변하지 않지." 171쪽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면 부모님을 이해하기 전에 사회인이 되거나 혹은 자신의 가정을 꾸려 '가장'이 된다. 결국 위의 저 말을 건넨 오가타상도 그의 아버지 눈에는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변함없이 고집센 혹은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로만 보일 것이다. 이 소설을 에츠코의 시각에서 보자면 엄마의 딸의 관계, 혹은 1950년대 전후의 아시아 여성들의 굴레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수도 있겠지만 내 시선을 끈 것은 오가타상과 지로, 오가타상과 게이오의 관계에 더 머물게 되었다. 모처럼 휴가라는 명목으로 아들지로와 며느리 에츠코상 집에 머무르지만 지로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대화도, 체스게임도 진지하게 함께하지 못한다. 그런 지로를 따끔하게 혼내기는 커녕 계속 어린아이 다루듯 하는 오가타상이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들과 크게 다투지 않으려는 약한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글의 배경은 1950년대인데 내용만 봐서는 70년 가까이 지난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가타상과 게이오와의 관계만 보더라도 학창시절 존경받던 교장 오가타상은 그의 제자이자 아들의 친구인 게이오에게 기성세대, 자신의 능력을 옳은 일에 쓰지 못한 편협한 지성인으로 평가된다. 열심히 살아온 것밖에는 없던 오가타상은 게이오의 변명을 곱씹기 보다는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자신의 성실성과 노력을 부정하는 것으로만 들리며 '젊은 사람들'이란 표현을 거듭사용하며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비난한다.

 

 

 

넌 네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해. 237쪽

 

 

 

앞서 이 책의 서두가 딸 '니키'의 이름과 관련되고, 자녀의 이야기로 시작됨은 희망과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려 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고 밝혔다. 위의 말은 에츠코가 이미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 런던에서 살고 있는 니키에게 해주는 말이다. 단순히 최선을 다해 살라고 하는 말이 오가타상 세대의 이야기라면 그 이후 세대, 게이코가 이국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줄 알면서도 재혼한 에츠코의 말은 좀 더 희망적이다. '넌 네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삶'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국가 혹은 사회와 같은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에츠코의 저 말을 보면서 저자가 적어도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저말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전쟁이든 취업난이든 혹은 4포 세대로 살아가는 현실이든 중요한 것은 내 스스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라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픈 시즌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픈 시즌은 '조 피킷'이라는 와이오밍 주 수렵감시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에코 스릴러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스릴러, 사건을 추리하고 범인을 쫓는 괴상하면서도 천재적인 여타의 주인공들과 비교하자면 조 피킷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사랑하는 아내 메리베스 앞에서는 제 의견을 제대로 말할 줄 모르는 어벙한 사내이기도 하고 두 딸앞에서는 엄격하지만 일요일 마다 펜케이크를 굽는 멋진 아빠이기도 하다. 다만 업무에 있어서나 총을 다루는 솜씨에 있어서는 우유부단하고 어리숙한 면도 있다. 하지만 리뷰 타이틀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물, 조 피킷'이라고 적은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업무에 있어서 우유부단하다고는 했지만 미심쩍거나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일은 결코 하지 않는 현실세계나 사회에서는 '따'당하기 딱 좋은 '착한 사람,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다.

우선 오픈 시즌이란 책제목의 의미는 평소에는 제한되었던 동물들을 대상으로 한 사냥이 가능해지는 시기다. 하지만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존재할 경우 해당 구역은 수렵은 물론 개발까지 제한된다. 바로 이 오픈시즌에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데 발단은 모두 인간의 '욕심'이다. 자신이 속한 회사가 개발권을 따냈을 때 얻게되는 수입을 욕심내는 사람, 보안관 자리를 욕심내는 사람, 평생 사냥만 하며 살려는 욕심을 가진 사람 등이 그렇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조 피킷의 아내인 메리베스나 그녀의 엄마 미시도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물론 남편이 돈을 잘 벌어오면 좋겠다던가, 내 딸이 적어도 매년 이사를 다니지 않을 정도의 안정된 직업을 가진 남자와 살았으면 하는 바람은 욕심이라고 하긴 어렵다. 그런가하면 조 피킷 보다는 그의 딸 셰리든의 활약이 두드러진 작품이기도 하다. 보호받아야 할 어린나이에 오히려 멸종위기의 동물을 지켜주고, 가족의 안위를 위해 협박까지 당하는 상황을 잘도 견뎌낸다. 오픈 시즌이 조 피킷 시리즈의 첫 편이고 현재 십여편이 나온 상태라고 하니 아마도 시간이 흐를수록 셰리든의 분량이 늘어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이 작품이 놀라운 이유는 일반적이지 않은 '조 피킷'의 성향이 신선함을 준 까닭도 있지만 어떤 시선으로 읽느냐에 따라 장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거듭 강조하게 되는 어린 셰리든의 성장소설로 봐도 좋고, 살인사건이 등장하니 당연 범죄스릴러라 해도 좋고 서두에 밝힌 것처럼 조의 직업이 수렵감시관인 만큼 광활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에코스릴러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보다 더 와닿는 것은 가정폭력에 길들여진 아이들을 향한 저자의 따뜻한 손길이었다. 메리베스가 자신과 가족들에게 지우지 못할 상처를 남기고 간 오티킬리의 딸을 데려왔을 때, 또 그 아이를 이해하는 셰리든을 보면서 사건은 욕심으로 인해 벌어지지만 화해와 용서는 결국 따뜻한 가정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보자면 '오픈 시즌'은 가족애가 진하게 느껴지는 소설이지 않을까 싶다. 결국 독자가 어느 상황, 어느 누구라도 엄지를 척하고 들어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논
폴 하딩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첫 문단에서 찰리의 입을 통해 그녀의 딸 케이트의 죽음을 알려준다. 돌려말하지도 않는다.  케이트의 죽음을 계기로 찰리는 과거의 일들을 추억하는데 시간상으로 정렬되어 있지 는 않다. 다만 그 모든 추억들이 '에논'이라는 장소에서 있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자신이 케이트 만한 나이였을 때 할아버지와 함께 왕진가방을 들고 출장을 나가 시계를 수리하던 때를 추억하기도 하고, 케이트와 함께 새모이를 주고, 신문을 읽거나 낚시를 하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 추억을 읽고, 상상하며 내 머릿속에, 가슴속에 다녀간 사람은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아빠'였다. 종종 지인들과 아빠와의 추억을 나눌때면 빼놓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초, 중학교 시절 이른 새벽 거실에 앉아 조간신문을 읽던 추억이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흔한 추억이 아닐 수 있는데 아빠와 사냥도 다녔다. 사냥만 다녔겠는가. 낚시도 다녔다. 아빠는 분명 내가 '딸'이란 사실을 잊은적도 없고 아들처럼 키울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만 딸이라서 해서는 안된다거나 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것 또한 알려주신 분이다. 좋았던 추억을 곱씹으며 과거에 사는 것도 문제지만 찰리는 다친 손의 통증을 핑계로 약에 의지하게 된다. 그나마 이성을 찾으려했던 아내마저 곁에 없기에 찰리가 점점 더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이 <에논>인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찰리가 에논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 머물고, 케이트가 죽기 전까지 에논의 역사를 공부했던 찰리였다.

나는 피터 로드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에논을 누비며 쏘다니던 밤들을 떠올렸다. 사실 알고 보면 야생에서의 모험이라고 할 만한 면은 조금도 없었지만 떠들썩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케이트와 함께 마을 곳곳으로 긴 산책을 다니며 얼마나 즐거웠는지, 그리고 케이트가 좀 더 어렸을 때 조금 너무 멀리 나갔다가 어두워진 후에 집에 돌아오게 될 때 아이가 얼마나 신나했는지도 떠올렸다. 319쪽 


케이트가 죽은 뒤 1년동안 찰리의 모습을 두고 도저히 원망도 비난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회복되는 모습을 말미에 보여주어서도 아니다. 찰리가 케이트를 잃었던 것처럼 이와 반대로 내가 나의 아빠를 잃는다고 생각하면 그렇게나 밉고 같이 있으면 불편한 아빠인데도 감히 상상조차 하기 싫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건 이런 마음과는 달리 난 또 아빠가 아주 사소한 무언가를 묻거나 부탁하거나 얼굴 보고 싶으니 집에오라고 하면 싫은티를 내며 짜증낼거란 사실이다. 케이트가 죽지 않고 지금의 나처럼 성인이 되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케이트도 나도 각자의 아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어쨌거나 사랑합니다. 당신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