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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니아의 작은 집 - 작은 집도 넓게 쓰는 독일식 정리.수납 생활
가도쿠라 타니아 지음, 조우리 옮김 / 홍시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독일인 엄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타니아.

작은 공간을 유럽의 넓은 집처럼 활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그녀의 정리와 수납노하우가 담긴책이다.

살림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자연스레 잡지와 관련 서적을 한 두권씩 모으다 보니 자연스레 일본의 작지만 꼭 필요한 장소가 갖춰진 주택구조와 침실의 아늑함과 주방에서 가질 수 있는 요리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유럽 스타일의 키친을 담은 사진집이 대부분이었다. 나뿐아니라 집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비슷한 취향을 갖고 있을 것 같다. 물론 한옥이 주는 자연과 함께 더불어사는 주택의 구조와 아궁이에 불을 지펴 오랜 인내를 맛보는 것도 좋지만 도시에 거주하는 그것도 핵가족이나 싱글족에게는 조금은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오피스텔에서 거주한지 올해로 만7년. 수납의 필요성이 절실할 때 만나게 된 이 책은 수납이야말로 집 뿐 아니라 집에 사는 주인의 성격과 라이프 스타일까지도 짐작해볼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행사나 파티에 초대받아 가게 되면 늘 받아오던 접시나 컵, 한개라도 더 받아오려고 은근히 눈치를 보았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막상 가져올 때 기쁨은 한 달도 못지나 늘어난 컵을 보고 한숨부터 내쉬었던게 지난 달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오피스텔처럼 선반 하나에도 집주인의 허락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는 타니아의 제안을 따르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집에도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게 바로 책인데 벽장형식의 책꽂이는 늘 선망의 대상일 뿐 실행에 옮기기에는 세입자의 설움이 느껴진다. 하지만 일반 원룸이나 주택의 경우 타니아의 센스를 빌린다면 수납도 넉넉해지고 일본에서 유럽스타일의 주택에서 거주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거란 기대가 든다.  타니아의 작은집은 타이틀에 걸맞게 책의 판형이 작고 어찌보면 다른 인테리어 관련 서적에 비해 페이지수도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내용과 함께 실렸어야 될 사진들이 많지가 않아 다소 아쉬웠다. 인테리어 서적을 이동시에 읽는 경우보다는 한 자리에 머물며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진을 좀 넉넉히 배치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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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 책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
박균호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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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인 오래된 새 책.

타이틀이 지나치게 매력적이라 출간 소식을 접했을 때 아, 저 타이틀은 내가 먼저 사용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었다.

물론 저자명에 내이름 석자가 실린 책이 출간 될 먼 미래의 얘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타이틀과 부제까지 완벽하게 내 맘에 쏙 든 오래된 새책은 천천히 읽어야겠다는 바람과는 달리

침대에 누워 그냥 그 상태로 쭈욱 읽어내려간 간만에 반가운 책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나와 다른 사람이구나를 느끼며 호기심에 빨려들 때도 있고 혹은 정말 내 맘을 대신 써주셨구나 싶을 만큼

맞아,맞아를 연발하게 하는 책이 있는데 두말할 필요없이 이책은 후자이면서도 전자인 책이다.



헌책에 대한 헌사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책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추억을 뿌려놓았는데 무엇보다 공감했던 부분은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대상에 대해 저술한 책이야 말로 '진귀한 책'이라고 정의내린 부분이었다.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을 집필하는 것또한 어려운 일이다. 관심이 많은 책이라는 것은 그만큼 비평의 대상이 될 확률도

높기 때문에 쉽지 않지만 반대로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대상을 저술하기 위해서 저자 홀로 싸워야 하는 밤들은

더 값지고 그때문에 진귀한 책이라 정의해도 아깝지가 않다.



저자의 헌책에 대한 찬사는 절판되어 더는 구할 수 없는 책, 내용이나 책이 지닌 가치가 놓은 책 그리고 개인적으로 혹은

앞서 말한 가치진위 여부를 포함하여 소장가치를 가진 책을 만나면서부터가 시작이라고 했다. 이전까지는 새책에 대한 매력에

빠져있었다고 하는데 이점은 또 나와 다르다. 나는 오히려 헌책방을 기웃거리던 지난날들과 비교했을 때 요즘에는 1년에 3권 미만으로만

헌책을 구입한다. 절판된 책일 경우가 그렇다. 소장가치나 책 자체가 갖는 가치가 높아 헌책마저 고가일지라도

가급적 새책으로 소장하려고 한다. 누군가의 흔적이 더는 반갑지 않은 심경변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이라는게 도대체 무얼까. 가전이나 의류 혹은 가구의 경우 엔틱 혹은 빈티지라는 명명으로 그야말로 '새 것'처럼 대접받는데

책은 여전히 '헌 책'이라는 이름으로 저렴한 것, 아니면 지나치게 고서위주로 의미가 극단적으로 나뉘어 지는게 아쉽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책을 다 읽고나서도 여전히 가급적이면 새책을 구입하겠다는 맘이 변한건 아니지만

책에 대한 애정만큼은 인정해주고 싶다.



책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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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릅스베데의 풍경화가들 - 지만지고전천줄 176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안문영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8월
절판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시인으로 더 많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읽은 그의 작품은 모두 장르가 시는 아니었다. 첫 완독 작품은 그의 하나 뿐인 소설 '말테의 수기'였으며 두번재 작품은 바로 이 책, 보릅스베데의 풍경화가들로 5명의 화가들을 소개하고 풍경화에 대한 그의 애정과 나름의 정의를 담은 책이다. 하지만 시인으로서의 그의 필체는 이 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풍경화 자체를 예찬하는 도입부부터 예술가를 소개하는 각 페이지마다 예술가의 화풍이나 그들이 보릅스베데로 들어오기 까지의 과정을 한편의 소설처럼 저술했다. 물론 말테의 수기역시 파리의 암울함과 부정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문장 문장이 너무도 감미롭고 시적이라 멜랑콜리 해졌다기 보다 읽고 난 후 리드미컬 해졌는데 이 책은 무작정 화구통을 들고나가 무엇이든 '풍경'이란 것을 두고 그려보고 싶게 만들었다.



머리말과 책의 마지막 끝맺음에서 릴케는 연이어 강조하는 바가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소개한 다섯 화가들에 대한 독자의 평을 지양하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아직 성숙되어가는 과정이며 이전의 그들이 현재(책이 쓰여질 당시)와 다른 모습이며 마찬가지로 미래에 이들의 모습 또한 달라질 것이기에 섣부른 판단은 옳지 않다는데 있다. 이부분은 비단 이들 뿐 아니라 읽고 있는 독자도 심지어 저술하는 작가 본인을 향한 못마땅한 시선들에게도 부탁 혹은 경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소개글을 읽다보면 아이러닉하게도 예술을 바라보는 경향은 다 다르기 때문에 토를 달아도 상관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데 릴케의 시적 묘사를 읽다보면 그가 창조해 낸 새로운 작품의 등장인물처럼 화가 자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말테의 수기가 그러했듯 이 작품에서도 편지나 에세이 등에 담아두고픈 아포리즘 문구들이 즐비하다. 저자인 릴케 뿐 아니라 화가들이 기타 보고서나 학회지 그리고 그들 나름의 어(?)록 들이 화가가 안되었다면 문장가가 되었을 만큼 멋지기 때문이다. 보릅스베데의 풍경을 그리고 싶게 만드는 가장 멋진 문장은 프리츠 오버베크가 1895년 <만인을 위한 예술>지에 기고한 글 중 일부인 다음과 같다.



"은밀한 우울의 숨결이 풍경 위에 퍼져있다. -중략-

수로들은 밝게 빛나고 뱀처럼 꼬인 허벅지 모양의 수면 위로 조용히 떠가는 검은 돛배가 신비스럽게 땅을 가로질러 간다. 그 위에 하늘이 펼쳐져 있다. 보릅스베데의 하늘이..."






책에는 화가들의 이야기 뿐아니라 그들의 작품들도 많지는 않지만 수록되어 있고 무엇보다 애착의 정도일지는 몰라도 할당된 분량도 각각 다르다. 릴케가 소개하는 화가들의 묘사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만의 시점에서 화가를 재해석 해보는 재미도 쏠쏠한 이 책을 여행중에 함께 할 만한 책을 찾는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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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어디에 있는가
허영섭 지음 / 채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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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어디에 있는가 는 대만 역사의 겉흐름만 어설프게 알고 있던내게 꼭 필요한 책이었다. 불과 3년 전만해도 난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해 작은 중국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정확하게 지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 나라인지 헷갈렸었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라는 타이틀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대만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수준이나 사실여부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내가 그나마 대만에 대해 귀를 기울이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반한류 퍼포먼스나 지나칠만큼 폭력적인 반한 대만인들의 뉴스때문은 아니었다. 대만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와 결혼한 친구때문이었다. 내가 그렇듯 주변에서 가장 많이 그녀에게 물었던 질문은 '대만은 중국거야? 아니야?'라는 질문이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만 역사는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중국은 별도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이에 대부분의 국가 역시 중국의 손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이런 미묘하게 건드리기 어려운 부분을 마치 사실 정보만을 전달해주는 사전의 한 페이지처럼 알려준다. 어쩌면 대만과의 수교를 단절한 국가의 국민이기에 그런 까닭일 수도 있겠지만 제3자의 눈으로 조명하는 대만이었기에 진실성을 느끼게 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나라의 지난 100년사와 비슷한 길을 걸어왔음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감정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고들 하면서 문화, 상품, 연예 등 전반적으로 그들의 영향권아래 놓여있음을 부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제 대만에 방문해본 소감을 말하자면 중국과 일본사회를 반씩 나눠놓은 기분이 들만큼 일본스러운 점이 많이 묻어난다. 대만의 전통시장을 방문했을 때는 삭힌 두부 냄새에 코가 괴로워지다가 미니멀한 아이템이나 섬지방 특유의 가옥형태등을 보면 일본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정도였다. 장제스(장개석蔣介石)의 독재정치 아래 있었던 경우도 독재라는 점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대만을 하나의 '나라'로써 자리매김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 또한 우리와 닮아있다.

어떤 현상이나 사회, 혹은 국가의 역사를 바라볼 때 자국내에서 보면 보이지 않던 사실들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면 길이 보일 때가 있다. 저자가 대만이 가지고 있는 지역감정, 중국과의 정치적 문제, 군사문제를 포함한 외교활동 등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대만국민의 힘과 능력에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고 지난 역사를 반추한 뒤 내린 결론치고는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나라의 국민성이 가지는 힘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우고 느껴왔다. 결국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해주고픈 메시지는 대만이 어디에 있는지 만큼 중요한 사실, 우리 자신이 어디에 와있는지를 깊이 생각해보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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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과 강물
마광수 지음 / 책마루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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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교수이자 작가 마광수,

그는 정말 법이 나서야 할 만큼 혹은 타인에게 명백하게 피해를 주었다고 인정될 만한 나쁜짓을 했던걸까?

외증조할머니부터 내려온 죽음에 그늘이 그로 하여금 보통사람들보다 죽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포함되어 있어 어찌보면 맹목적인 신앙생활을 할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는 태어나 단 한번도 종교, 신앙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에게 신앙이라는 것, 혹은 믿음의 발원지가 있다면 아마도 자연일거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흥미롭고 즐거운 꺼리는 존재할 지 몰라도 목표지향적이라거나 계획을 갖고 실천하며 살아온적이 없는 사람이다. 교수라는 직업 역시 게으르고 초,중,고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방학이 맘에 들어 택한 격이니 엄연한 의미에서의 이상추구는 아니긴 하다. 한 없이 자유롭길 원했고 그렇게 되기 위한 일정의 책임을 갖고 살아온 그에게 '즐거운 사라'사건은 여러모로 스스로를 상처입은 존재로 인정하게 만들었다.



마광수의 장편소설 세월과 강물은 자전적 이야기가 많다고 해도 픽션의 구분이 잘 되지 않을 만큼 그의 삶과 닮아있다. 등장 인물이며 사건까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독자로서는 알길이 없다. 나중에는 이 것은 픽션일까 아닐까 하는 의문마저 사라지고 차라리 맘편히 주인공이 이름도 마광수요, 그가 하는 말은 마광수가 아닌 '인물 마광수'의 이야기라고 남은 의심마저 버려지게 된다. 우습게도 이렇게 다 놓은 상태에서야 비로소 소설로서의 세월과 강물의 맛이 느껴졌다. 기자도 아닌 내가 왜 픽션여부를 논하며 힘겹게 읽으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읽다보니 저자의 생각처럼 독자인 나 역시 어떤 목적이나 계획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게으르고 기왕이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충실한 상태로 마음편하게 받아들이는 것, 구분짓지 않는 그 상태가 되어갔다.


어린 시절 부터 최근에 세월과 강물을 쓰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책의 결말에 해당되는 판타지로 도피하여에서의 공주 '사라'와의 만남을 통해 아직까지도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서 헷갈려하던 독자들마저 미련을 늦추거나 오히려 이전의 이야기 모두가 사실이고 이 사실을 소설인척 하기 위해 심어둔 장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즐거운 사라를 난 읽어본적이없다. 마광수의 작품은 전부 법이 단죄할 정도로 저속하고 야하다고만 생각해왔다. 어느정도 수위가 조절 되었겠지만 이전에 읽었던 책들과 비교했을 때 어떻다고 말하자니 조심스러워진다. 왜냐면 마광수 소설을 좋게 평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짜피 타인의 평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더이상 즐거운사라 안에 마광수라는 작가가 갇혀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실이다. 그 속에 갇혀 있기에 그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담백하고 겸손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p.47
여러 시련을 겪을 때마다 내가 다행스럽다고 생각한 것은, 그래도 어쨌든 세월은 강물과같이 쉼없이 흘러간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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