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모든 순간들 - 서로 다른 두 남녀의 1년 같은 시간, 다른 기억
최갑수.장연정 지음 / 인디고(글담)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녕, 나의 모든 순간들 

여행이 일상이 된 남자 / 일상을 여행하는 여자

 



서로다른 두 남녀의 1년 같은 시간, 다른 기억 


잠들기 전 이 책을 읽던 10월의 며칠 동안 정말 행복했다. 여행이 일상이 된 남자와 일상을 여행하는 여자가 1년 동안 찍고 쓴 글은 같은 기간 나는 무얼하며 보냈나를 떠올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봄,여름,가을 그리고 겨울. 각각의 계절에 불어오는 바람의 향과 세기가 다른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도 때 마다 달랐다. 여행이 일상이 되었던 그 남자의 글은 그 누구보다 일상을 사랑하는, 아주 사소한 소품마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느끼게 했다. 우산을 쓰고 걸어가면 우산위로 톡, 톡, 톡 하고 물방울이 떨어진다. 그 소리가 좋다고까지는 생각했는데 그 남자처럼 우산이란게 빗소리를 잘 듣기 위해 만들어낸 물건이라고 까진 생각치 못했다. 그 남자는 사소한 거에 맘을 쓰는게 아니라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여자의 우산은 알록달록 마치 동요에서 나오는 그런 각양각색의 우산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남자의 글도 여자의 글도 모두 우리가 느꼈었던 감정이지만 글로 옮겨내지 못했다. 어쩌면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부지런함과 자기고백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산 위로 울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우산이란 물건이 비를 피하라고 만든 물건이 아니라

빗소리를 들어보라고 만든 물건 같다


-그 남자의 우산-


 


가을이 시작 될 무렵 옷정리를 하면서 운동화 한 켤레를 정리했다. 지난 해 헬스장에 등록하면서 마련한 것인데 신다보니 너무 편해져 이곳저곳 참 많이 신고 다녔다. 지난 유럽여행에도 녀석 덕분에 하루에 만 10시간 가깝게 돌아다니면서도 그렇게 피곤한 줄 몰랐고 물집도 없이 다녔다. 그러다보니 이 녀석은 상할 대로 상해 여기저기 터지고 망가진 게 눈에 확 들어왔다. 곁에 두고 싶지만 신지 않고 보관만 하는 것이 오히려 미안해 정리했는데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이런 정든 녀석은 오히려 잘 보관하는 모양이다. 어릴 때는 그들처럼 이것저것 잘 모아두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그 남자가 말했던 것처럼 살면서 꼭 필요한 물건은 트렁크 안에 다 들어갈 정도로 많지 않다는 것을 나이를 먹을수록 깨닫기 때문이다. 좀 덜 상하게 신었더라면 이따끔 꺼내 신을 수도 있었겠지만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사진에 남아있는 것으로 만족해도 될 것 같다.


여행을 하며 배운 두 가지.


살면서 필요한 웬만한 것들은

60리터 배낭 속에 다 들어간다는 사실.

세상은 넓고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


- 그 남자의 겨울



 

 

 


두 사람의 사계를 읽는 동안 카메라에 담아두었던 내 사계를 뒤돌아보았다. 예쁘게 잘 나온 사진, 못나거나 흐릿하게 나온 사진. 모두 다 내가 보고 담아두었던 내 삶의 한 조각들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외출하는 날에는 평소라면 지나쳤을 많은 것들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쁜 꽃만 보이던게 렌즈를 들이대고 지켜보면 꽃을 감싸는 잎도 남다르게 느껴지고 꽃위에 앉아있는 벌, 나비들에 오히려 시선을 빼앗기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담아보고 싶어 다른 때 보다 더 예쁘게 입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 여자의 말처럼 좋은 사진을 찍고자 하는 그 마음에 따라 오늘 나의 하루도 달라지고 그렇게 조금씩 더 예뻐진 하루 하루가 모여 내 삶의 조각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교적 반복적이고 심심한 생활이지만

어떻게든 보려 하면 나의 하루는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나를 미소 짓게 하거나, 눈물 나게 하거나,

가슴 뛰게 하는 것들은 내가 알아보기 전까진

소리 없이 늘 그곳에 있었다.

나는 조금 미안한 마음으로 그것들에게 새롭게 인사했다.


-그 여자의 프롤로그-


먹지 않으면 존재자체가 불가능한 우리에게 '냉장고'가 가지는 의미는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듯 하다. 꽉 채워진 냉장고를 보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그 남자의 글에도 크게 공감하고, 냉장고를 열었을 때 보여지는 그 모습이 꼭 그때 당시에 자신의 모습과 같다고 느껴진다는 그 여자의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요즘 인기있는 예능프로 중 '냉장고를 부탁해'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15분 이라는 짧은 시간내에 묘기처럼 만들어내는 과정도 볼거리지만 매 회 등장하는 게스트들의 냉장고를 옅보는 재미도 크기 때문이리라. 아주 귀한 식재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를 만나거나 어제 내가 먹었던 혹은 즐겨먹는 음식이 있을 경우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두 사람이 들려주는 냉장고의 풍경은 그렇게 나를 기쁘게도 하고 지금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를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친하지 않은 사람, 혹은 흐트러진 나를 들키고 싶지 않을 때에 냉장고 문을 열어버리는 사람에게 그렇게 차가운 눈빛을 보내는지도 모른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요즘의 내가 보인다고 생각해요.

냉장고가 꼭 지금의 나를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무언가를 들켜버린 그 기분이 왠지 싫기 때문이에요.


- 그 여자의 냉장고-


여행기를 좋아하지만 '여행지'라는 조금 특수한 장소에 머물면서 쏟아내는 감정의 글을 읽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여행지가 특수한 장소가 아닌 늘 마주하는 일상이라 그런지 부담스럽지 않고 쓴 사람보다 내가 더 부끄러워질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남자가 느꼈던 것을 나도 느끼고 있었고, 그 여자가 말하는 그 서글픔이 무엇인지 나도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나도 몰랐던  감정을 깨닫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책을 읽고 가장 좋았던 것은 두 사람 덕분에 나의 지난 1년도 참 행복하고 기뻤고 슬펐고 그래서 아름다웠구나를 깨닫게 해주었던 점이다. 고마운 책, 사랑스러운 책, 2015년 10월 밤을 참 따뜻하게 만들어 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토리니, 주인공은 너야
남상화 글.그림 / 꿈의지도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사람 혹은 뜻이 맞는 사람과 여행하는 것이 낭만이자 행복가득한 일이라고 믿고 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홀로 떠난 여행기가 책으로 많이 출간되어  결코 쓸쓸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몇 년 전만해도 혼자하는 여행보다는 누군가 곁에 있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고 착각했다. 혼자만의 여행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고, 또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둘이서도 함께 잘 살 수 있듯, 혼자서도 잘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둘이서도 잘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경험으로 알기도 하고  <산토리니, 주인공은 너야>덕분에도 알 수 있다.


책의 시작은 여행을 떠나기 전 저자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한 다른 여행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떠나기전의 나와 떠난 그 곳에서의 나, 그리고 돌아왔을 때의 내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그런 것들. 책 내용중에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갖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온 저자가 다양한 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 아이와 관련된 질문을 던진다. 내심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된다는 대답을 듣기 기대했지만 그녀의 대답은 저자가 기대했던 답변과는 달랐다. 오히려 낳지 못하거나 그럴만한 상황이 안되더라도 꼭 아이를 키워봐야 한다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저자와 연배도 비슷하고 결혼과 출산과 관련된 생각이 저자와 비슷했던 내게도 그녀의 답변은 그냥 여행에세이의 한 페이지로 넘길 만한 부분은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책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 <산토리니, 주인공은 너야>라는 타이틀이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주인공이 산토리니이기도 하면서 읽고 있는 독자, 나이기도 하면서.


책을 읽기 전 저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저자의 개인 블로그를 방문 해 산토리니 외에 다른 여행지에서의 에피소드를 읽어 본 적이 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여행기는 단연 모녀여행기다. 털털한 저자 옆에 여전히 고우신 저자의 어머님이 웃고 계시는 사진을 보면서 혼자만의 여행도 좋지만 내가 그동안 너무 이기적인 여행만 했던게 아닌가 반성도 했다. 엄마와 함께 떠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은 그 누구와 떠나도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믿었던 엄마의 배신도 잘 감당하고, 이제는 엄마의 딸 노릇 뿐 아니라 함께 나이를 먹는 동행이자 외조모가 계시지 않는다면 엄마의 엄마의 역할도 자청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여행은 철들게 하는 것이 분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통날의 스타일북 가을-겨울 Autumn-Winter - 매일매일 새로운 365일 코디네이션 보통날의 스타일북 2
기쿠치 교코 지음, 김혜영 옮김 / 비타북스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K.K closet
보통날의 스타일북

 

 

지난 봄, 해외서적 코너에서 아직 번역되지 않은 기쿠치 교코의 <K.K. closet>을 원서로 처음 보았다. 원서다보니 이번에 번역본으로 출간된 책보다 2배 이상 가격이 비싸 책 속 컨텐츠가 정말 맘에 들었지만 그 자리에서 구매를 결정하진 못했다. 왜냐면 내용이 워낙 좋았던데다 잡지에서 해당 책 기사를 몇 차례 보다보니 번역본이 나오리라는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다. 가을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시즌에 맞게 출간 된 보통날의 스타일북. 코디북이라 사진만 봐도 괜찮지 않냐고 하겠지만 번역본을 기다린 것이 비단 가격 때문은 아니었다. 앞으로 소개 할 코너 팁을 보면 이해될 것이다.

일본에서 출간하는 패션지를 자주 본 사람이라면 거리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화려한 의상은 거의 없고 베이식한 스타일이 많았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오피스의 경우라면 타이즈의 스커트가 기본이 되지만 거의 대부분 컨버스화에 흰 셔츠, 계절에 따라 카디건을 입거나 스웨터를 걸치는 정도로 거의 큰 계절의 변화가 크지 않았다. 무엇보다 국내 잡지에서 보여주는 매일 매일 추천코디는 무난한 날도 있지만 정말 저렇게 입고 출근할 수 있을까? 외출 할 수 있을까? 모델이 입어도 별로인 코디들도 상당한데 <보통날의 스타일북>에는 입고나가지 못할 코디가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 일본 잡지의 경우 부록으로 토트백을 자주 선택하는 까닭도 이 책을 보면 이해가 간다. 우리가 활용하는 고급진 잇백보다 편하게 들고다닐 수 있는 토트백을 정말 잘 활용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새로운 365일 코디네이션

Autumn - Winter 10.01~3.31

 우측에 사진은 흰 셔츠와 가디건, 그리고 컨버스화로 코디한 스타일링으로 우리가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컷이다. 센스가 있거나 옷을 자주 접하는 여성이라면 이런게 코디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베이식하고 심플 그자체다. 안경을 소품으로 활용했는데 별다른 코멘트없이 롱가디건을 활용한 예라고 캡션이 달려있는 코디다. 물론 괜찮은 코디이긴 하지만 이 때문에 이 사진을 고른 건 아니다. 바로 옆에 '여성이 남성복을 입었을 때의 멋을 보여주는 영화'를 소개해준 tip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옷에 성별구분이 거의 없어졌다고는 해도 막상 여자가 남자옷을 입는다고 생각하면 커다란 흰 셔츠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무심하면서도 시크하게 남자옷을 자유롭게 코디할 수 있다면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스타일이 그만큼 많아지지 않을까. 영화에서는 여배우가 남자바지처럼 통이 큰 바지와 커다란 셔츠를 매치해서 등장하는데 저자는 내용보다 패션에 더 관심을 두고 봤다고 말했다. 저가 추천한 영화는 우디 앨런의 [애니 홀]이란 영화다. 좀 오래된 영화라고 하니 나중에 DVD를 빌려서 봐야할 것 같다. 패션은 어짜피 계속 반복된다고 하니 해당 시대의 스타일을 참고하는것도 좋을 것이다.
정말 좋아하는 옷을 입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이 책에서는 182가지 스타일링을 소개합니다.

여기에 복잡한 법칙이나 어떤 정답이 실려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저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건 소개한 옷은 모두 제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옷이라는 사실입니다." - 저자 서문에서-

 


10월 1일 부터 3월 31일까지, 매일 매일의 코디가 담겨 있다. 값비싼 제품도 아주 간혹 등장하지만 이미 우리가 소장하고 있는 제품이 훨씬 많다. 저자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심플하고 베이식한 셔츠, 컨버스화(그것도 흰색으로만)등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옷과 스타일만 담았다고 한다. 옷을 코디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느냐의 여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일본 여행을 하다보면 라멘이나 초밥보다 우리의 시선을 끌고 입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디저트'류라고 생각한다. 편의점이나 마트에만 가도 제과점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맛있고 보기에도 좋은 제과류를 저렴하게 팔고 있다. 나의 경우는 일본에 도착한 첫 날 저녁에는 무조건 마트에 나가 푸딩이나 커스터드 크림이 들어있는 다양한 모양의 슈를 사먹곤 한다.

스타일링 책이라고 패션과 관련된 이야기만 실린 것이 아니라 더 반가웠다. 특정 매장과 제품이 등장하긴 했지만 도쿄에 가면 꼭 다양하고 달달한 제과제빵류를 맛보길 추천한다. 슈크림과 함께 등장한 코디는 가을하면 떠오르는 '트렌치 코트'와 플레어 스커트, 그리고 여성스러움을 한 층 더 살려줄 힐까지, 가을의 어느 금요일, 출근하고 바로 데이트를 하러 가도 괜찮은 코디다. 위의 소개한 영화, 제과류 외에도 진주 목걸이, 자전거, 타이즈, 소도구 등 저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다양한 팁은 일본어를 잘했다면 상관없겠지만 나같은 초급자에게는 번역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저자가 알려준 코디로 가을~겨울 6개월 동안은 옷 때문에 고민할 일이 거의 없어질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계간 아시아 제38호 2015.가을 - 하얼빈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계간 ASIA 가을호에는 지난 호에 이어 기획특집으로 '하얼빈2'기사가 실렸다. 여름호에서 시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낭만적인 정취로 가득한 하얼빈의 다른 모습을 알렸다면 이번호에서는 좀 더 현실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하얼빈을 이야기했다. '조선인'과 '조선족'의 차이가 무엇인지와 관련된 내용으로 시작해서 731부대와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까지 펼쳐지는 과정은 결국 우리가 하얼빈을 기억하는 '독립'을 위한 장소였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했다. 뮤지컬 '영웅'이 하얼빈에서 공연했었던 내용은 국내 일간지를 통해 접했었기에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지만 중국정부에 의해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나 기념관이 제 뜻을 펼치지 못했다는 것은 가슴이 아팠다. 이어지는 심훈문학대상 수상자 발표기사는 앞서 하얼빈 기사의 맥락을 이었다.


심훈문학대상은 '문학상'보다 '심훈'에 방점을 두는 상이다. 심훈 선생은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 상황에서 시대의 아픔을 누구보다 깊이 느끼고, 작가의 사명의식을 불태워 동시대 민중에게 희망을 심어준 살아 있는 문학 정신의 한 이정표다. 92쪽


제2회 심훈문학대상자는 '고은'시인이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바로 고은시인일거라고 손꼽는 그가 수상자가 된 까닭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의 작품이 번역되어 회자되고 읽히는 등 그야말로 현 시대 우리나라가 그에게 거는 기대는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이 다루는 시어나 주제도 현실과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하여 아픔과 분단의 현실을 피하지 않고 맞서는 모습이 국내 뿐 아니라 세계의 다른 시인들에게도 귀감이 될거라고 수상이유를 설명했다. 고은시인은 심훈의 '그날이 오면'전문을 남기며 한반도의 명시인 이 작품을 세계의 양심이 지지할 만한 작품이라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그날이 오면'의 시인 심훈은 나에게는 어느 누구와의 합의 따위도 필요 없이 내가 지향한 바 민족문학의 노선으로서나 그것의 산개 이기도 한 세계문학의 차원으로서나 하나의 원인으로 제공되었는지 모른다. 97쪽

 

고은시인의 글도 아시아 38호를 기대하게 했지만 내게 좀 더 직접적인 현실은 장강명의 글이었는지도 모른다. [알바생 자르기]는 장강명 소설가에게는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영어권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부분들이 있어 간략하게 한국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관계, 세대 갈등, 노동구조 등 한 편의 소설을 통해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노동관련 문제를 대략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가을호의 소시집은 '인도'시인의 작품들이 실려있다. 개인적으로 젊은 시인들의 작품보다 나이든 노시인의 작품을 더 좋아하는데 시인의 국적과 상관없이 인간이 갖게되는 고뇌와 자연의 경이로움을 공통적으로 노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돔 모라에스의 작품은 '인도'하면 떠오르는 향토적인 느낌보다 학부시절 배웠던 영국의 시와 유사한 감성이었는데 손석주의 [돔 모라에스, 그리고 인도]해설글을 읽고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돔 모라에스의 부모 모두 영어를 사용하는 가톨릭 집안 출신인데다 시인 자신도 힌디어나 다른 인도 현지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인도에서의 삶의 증오까지 느꼈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우리가 영시를 떠올렸을 때 생각하는 E.M.포스터와 T.S.엘리엇과 만나기도 했다니 그의 작품배경과 경향이 인도시보다는 영국시에 가까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점에서는 어쩌면 인도시인이기는 하지만 인도시 특유의 감성이 덜 느껴진다는 점에서 꼭 맞진 않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했다. 그렇다고해도 전체적으로 계간 ASIA 가을호를 통해 쉽사리 접할 수 없었던 인도시인의 작품, 베트남 작가의 소설 등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득, 반짝였던 - 자신이 기대했던 흐름에서 벗어난 모든 이에게
김상용 지음 / 하양인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문득, 반짝였던 

자신이 기대했던 흐름에서 벗어난 모든 이에게

 

[문득, 반짝였던]의 저자는 예수회 사제분이시다. 예수회라고 하면 개신교의 한 분파처럼 느끼겠지만 가톨릭에 소속된 남자로만 구성된 공동체라고 검색을 통해 알았다. 사제의 글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근엄하거나 담백하기만한 글이 담겨있진 않을까 싶었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부터 친근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나이든 이발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외관이 허름한 장소에 가면 진열된 물품이나 제공되는 서비스가 형편없을거라고 쉽게 판단한다. 하지만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지저분'한 장소인지 한 곳에서 오랜시간 묵히고 묵혀져 나름의 '낭만'을 간직한 곳인지는 결국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저자가 들렸던 나이든 이발사가 운영하는 곳은 다행히도 후자였다. 손님이 온 줄도 까먹고 TV를 보는 이발사 때문에 저자는 점점 화가나고 불쾌해졌지만 이전에도 경험한 적 없는 말끔한 실력에 마음도 누그러지고 무엇보다 손님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맘씨덕분에 자칫 안좋은 기억으로 남았을수 있는 장소가 추억의 장소가 될 수 있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고등학생 시절 이야기도 등장하고, 아버지를 여의었던 안타까운 추억도 나온다. 시를 알려주고 클래식 음악을 알려준 오래된 벗과의 추억이야기는 지난 해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떠오르게 했다. 둘 모두 스무살 전후 가장 예민하고 감성적인 순간 문학과 음악이라는 '예술'장르를 통해 친분을 쌓아가는 모습이 거의 흡사했기 때문이다. 내게도 그런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가 있었기에 더더욱 친구이야기가 안타깝고 맘에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향기가 꽃의 향기에 앞서 아스라하게 진화하는 까닭은 인간은 희망을 가지며 살기 때문이다. 그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일수록 애달프지만 가치 있는 무엇임에 틀림없다. 76쪽

 

감정의 현을 건드리는 이야기 뿐 아니라 웃음이 피식하고 나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요구르트 뚜껑안에 있는 글자를 조합해서 단어를 완성하면 여행권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 다량의 요구르트를 사먹기도 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마시고 버린 휴지통을 뒤져보기도 했던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하얀 수사'편도 참 좋았다. 화분에 애정이 생기면 애완동물에게 그러하듯 이름을 붙여주기 마련이다. 직접 붙인 이름은 아니지만 보낸이의 편지를 받았을 때 '하얀 수사'에게 편지를 읽어주었다는 부분에서는 저자의 고운 마음씨가 느껴져서 좋았다. 이 책을 만약 화분을 보낸 사람이 읽는다면 자신의 편지와 선물을 이토록 소중하게 간직하는 저자의 마음이 얼마나 예뻐보이고 고마웠을까? 하얀 수사 뿐 아니라 1부에서 등장하는 양말선물도 보내준 이를 만나러 갈 때 챙겨서 신고간 뒤 짠 하고 보여주는 아이와 같은 순수함이 참 좋아보였다. 이렇게 주는 사람의 마음을 흐믓하게 하는 사람이 의외로 드문 요즘이라 더 감동적이었다.

 

​말씀과 말의 차이는 바로 육중한 상태의 뭔가를 가벼이 해 주고 마침내 춤을 추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면, 내가 내뱉는 말이 입 안에서 나오자마자 휘발되어 가뭇없이 사라지고 마는 인사치레로 남게 되는 것과의 차이일 것이다. 114쪽

 

인간이기에 갖는 고뇌 뿐 아니라 사제이기에 생기는 고민등도 책에 담겨 있었다. 고백성사가 끝난 뒤 죄를 털어놓고 돌아가는 신자는 오히려 맘이 편해질 수 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뒤 마음의 쌓이는 번민 때문에 잠못이룬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았고, 사이렌 소리를 듣고 잠시 잊고 있었던 주님의 크신 뜻을 깨닫고 크게 뉘우치는 모습은 앞서 들려준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와는 달리 경건한 마음과 신자로서 내가 잊고 있던, 놓치고 있던 주님의 사랑을 함께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솔직히 초반에는 외국생활을 오래하셔서 그런지 쉽게 읽히는 문장이 아니라서 술술 읽히는 즐거움을 느끼진 못했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에 집중하고나니 사용하는 단어의 낯설음은 금새 잊혔다. 혹 처음 몇 페이지만 읽고 문체가 평이하지 않아 꺼리는 독자가 있다면 저자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편안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순간 문득, 반짝였던 저자의 '영감'이 우리에게도 전해지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