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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반짝였던 - 자신이 기대했던 흐름에서 벗어난 모든 이에게
김상용 지음 / 하양인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문득, 반짝였던
자신이 기대했던 흐름에서 벗어난 모든 이에게
[문득, 반짝였던]의 저자는 예수회 사제분이시다. 예수회라고 하면 개신교의 한 분파처럼 느끼겠지만 가톨릭에 소속된 남자로만 구성된 공동체라고 검색을 통해 알았다. 사제의 글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근엄하거나 담백하기만한 글이 담겨있진 않을까 싶었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부터 친근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나이든 이발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외관이 허름한 장소에 가면 진열된 물품이나 제공되는 서비스가 형편없을거라고 쉽게 판단한다. 하지만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지저분'한 장소인지 한 곳에서 오랜시간 묵히고 묵혀져 나름의 '낭만'을 간직한 곳인지는 결국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저자가 들렸던 나이든 이발사가 운영하는 곳은 다행히도 후자였다. 손님이 온 줄도 까먹고 TV를 보는 이발사 때문에 저자는 점점 화가나고 불쾌해졌지만 이전에도 경험한 적 없는 말끔한 실력에 마음도 누그러지고 무엇보다 손님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맘씨덕분에 자칫 안좋은 기억으로 남았을수 있는 장소가 추억의 장소가 될 수 있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고등학생 시절 이야기도 등장하고, 아버지를 여의었던 안타까운 추억도 나온다. 시를 알려주고 클래식 음악을 알려준 오래된 벗과의 추억이야기는 지난 해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떠오르게 했다. 둘 모두 스무살 전후 가장 예민하고 감성적인 순간 문학과 음악이라는 '예술'장르를 통해 친분을 쌓아가는 모습이 거의 흡사했기 때문이다. 내게도 그런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가 있었기에 더더욱 친구이야기가 안타깝고 맘에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향기가 꽃의 향기에 앞서 아스라하게 진화하는 까닭은 인간은 희망을 가지며 살기 때문이다. 그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일수록 애달프지만 가치 있는 무엇임에 틀림없다. 76쪽
감정의 현을 건드리는 이야기 뿐 아니라 웃음이 피식하고 나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요구르트 뚜껑안에 있는 글자를 조합해서 단어를 완성하면 여행권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 다량의 요구르트를 사먹기도 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마시고 버린 휴지통을 뒤져보기도 했던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하얀 수사'편도 참 좋았다. 화분에 애정이 생기면 애완동물에게 그러하듯 이름을 붙여주기 마련이다. 직접 붙인 이름은 아니지만 보낸이의 편지를 받았을 때 '하얀 수사'에게 편지를 읽어주었다는 부분에서는 저자의 고운 마음씨가 느껴져서 좋았다. 이 책을 만약 화분을 보낸 사람이 읽는다면 자신의 편지와 선물을 이토록 소중하게 간직하는 저자의 마음이 얼마나 예뻐보이고 고마웠을까? 하얀 수사 뿐 아니라 1부에서 등장하는 양말선물도 보내준 이를 만나러 갈 때 챙겨서 신고간 뒤 짠 하고 보여주는 아이와 같은 순수함이 참 좋아보였다. 이렇게 주는 사람의 마음을 흐믓하게 하는 사람이 의외로 드문 요즘이라 더 감동적이었다.
말씀과 말의 차이는 바로 육중한 상태의 뭔가를 가벼이 해 주고 마침내 춤을 추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면, 내가 내뱉는 말이 입 안에서 나오자마자 휘발되어 가뭇없이 사라지고 마는 인사치레로 남게 되는 것과의 차이일 것이다. 114쪽
인간이기에 갖는 고뇌 뿐 아니라 사제이기에 생기는 고민등도 책에 담겨 있었다. 고백성사가 끝난 뒤 죄를 털어놓고 돌아가는 신자는 오히려 맘이 편해질 수 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뒤 마음의 쌓이는 번민 때문에 잠못이룬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았고, 사이렌 소리를 듣고 잠시 잊고 있었던 주님의 크신 뜻을 깨닫고 크게 뉘우치는 모습은 앞서 들려준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와는 달리 경건한 마음과 신자로서 내가 잊고 있던, 놓치고 있던 주님의 사랑을 함께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솔직히 초반에는 외국생활을 오래하셔서 그런지 쉽게 읽히는 문장이 아니라서 술술 읽히는 즐거움을 느끼진 못했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에 집중하고나니 사용하는 단어의 낯설음은 금새 잊혔다. 혹 처음 몇 페이지만 읽고 문체가 평이하지 않아 꺼리는 독자가 있다면 저자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편안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순간 문득, 반짝였던 저자의 '영감'이 우리에게도 전해지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