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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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 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이동진 평론가의 한 마디 때문에 '캐롤'이 떠들썩했다. 책을 미처 다 읽지도 못했는데 마음이 괜시리 다급해져 정식 개봉 전에 필름버전으로 캐롤을 영화로 먼저 보고왔다. 원작소설이 있을 때 영화를 보기가 상당히 망설여졌었다. 아무래도 영화를 보고나면 소설을 다시 읽는게 내키지 않아서였는데 이번만큼은 과감하게 도전한 셈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영화로 먼저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지만 서로 별개의 작품으로 봐도 상관없을만큼 소설은 소설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좋았으니까.


소설은 아무래도 표현방식이 영상과 다르다보니 세세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영화에서는 테레즈와 캐롤이 만난 시점부터 보여주기 때문에 테레즈가 백화점 인형판매점에서 일하게 된 배경, 안정되지도 바라지도 않았던 공간에서 버텨내는 과정이 많이 축소되었다. 단순히 꿈을 찾지 못하고 있었던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처지와 불안한 미래에 조급해있었다. 멋진 드레스를 입고서도 지금 순간만이 기억될 뿐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크를 벗기는 그 짧은 시간도 못견뎌했으며 멋진 성모상을 받쳐 줄 만한 책장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캐롤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극명하게 대조되는 모습으로 보여지는데 철제 카트 모서리에 긁혀 피가 흐르는 테레즈에 비해 캐롤은 금발머리에 모피를 입은 우아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처지의 대조와는 상관없이 테레즈는 캐롤을 보고 한 눈에 반해버린다.




눈동자에 붙들린 테레즈는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앞에 있는 손님이 재차 묻는 소리가 들렸지만 테레즈는 가만히 선 채 벙어리가 되었다. 55쪽


처음 본 순간 이미 테레즈는 캐롤을 좋아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를 주도하는 사람은 캐롤이었다. 캐롤이 묻고 테레즈가 답하는 방식은 처음 두사람이 개인적인 만남을 가졌을 때부터 시작되었고 한참어린 테레즈에게 캐롤은 연인임과 동시에 이상향이 되기도 했다. 작품의 배경이 1950년대 후반으로 시간적으로만 보면 엄청 오래되고 낯설고 시대적 특수성이 존재할 것 같아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른건 몰라도 간극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철없는 젊은이를 바라보는 시각, 이민자들을 보는 차가운 시선 무엇보다 동성애가 특수하다고 여기는 사회풍속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따라 적어도 한 부분즘은 소외당하는 이유가 같아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성향적 차이로 공감보다는 하나의 이야기로 보여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캐롤 때문에 테레즈는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한 줄기 연기처럼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기분이 들었다. 캐롤은 인간답게 살아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278쪽



으로 보기에 캐롤은 완벽해보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갔을 때도 완벽했더라면 두 사람이 과연 서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 싶다. 분명 테레즈의 일방적인 동경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작품 초반에 외적인 모습만을 보고 캐롤을 판단하는 테레즈의 독백속에는 정말 많은 복선이 깔려있었다. 비밀이 많을 것 같아보인다던가 하는 그런 것들. 테레즈가 어렸기 때문에 현실에서 벌어지는 실제 사건보다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었던 소녀였기 때문에 캐롤도 테레즈를 좋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내게 와서 정말 좋았어요. 하필 왜 나한테 온 거죠?"

캐롤은 잠시 뜸을 들였다.

"좀 바보 같은 이유에서였어. 그 정신없는 와중에 솔직히 네가 가장 덜 바빠 보였거든.

게다가 유니폼도 입지 않았으니. 내 기억엔 그랬어."  238쪽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이동진 평론가의 평이 영화만 봐서는 그다지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었다. 굳이 캐롤이 아니었어도, 동성이 아니었어도 성별과 무관하게 테레즈의 감성을 촉발시킬 연애 혹은 계기가 필요했었던거라 여겼지만 소설에서는 확연하게 테레즈의 성향이 드러난다. 캐롤을 처음 만난 순간 이미 테레즈는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올거라 확신했고 심지어 계산 말미에 자신에게 점심초대를 해주진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다. 좀 더 확실하게 그녀의 성향을 알 수 있는 부분은 테레즈에게 카드를 보낼 때 '사랑해요'라고 적고 싶어했던 부분이다. 아무리 멋진 사람을 만나더라도 성향이 다르다면 그렇게까지 기대하거나 확신하긴 어렵지 않을까. 원작소설이 있을 경우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작가들이 엮어놓은 감정선을 영화를 이야기할 때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설속 내용만을 부여잡고 영화를 이야기하자면 소설없이 그 영화는 저 홀로 서있을 수 없는 절름발이 작품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 있어서 좋고 영화로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좋은 로맨틱한 작품 [캐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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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아직, 연애가 필요해
차현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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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아직, 연애가 필요해


차현진 지음





아직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을 체험했고

거기엔 특별한 고귀함이 있다고 감히 말해주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잘하든 못하든, 연애가 우리에게 무엇을 안겨주는지 알려주고 싶다.




연애경험이 많은 사람을 보면 조금 부럽기도 하지만 그사람이 내 사람은 아니었음 싶을 때가 간혹 있다. 멋진 장소에서의 '종소리'가 들렸다던 첫키스라던가, 사람 많은 광장이나 카페를 통째빌려 프로포즈를 해주는 남자는 분명 멋지긴 하지만 받는 사람이 내가 처음이 아니라면 엄청 김샌다.


타인의 연애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때문인지 내게 있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연애소설은 잘도 찾아 읽으면서도 지인들의 연애고민이나 마땅히 친구로써 들어주어야 할 자랑이 아닌 이상은 아니 뭐 굳이 찾아서까지 들어야하나 싶었는데 누군가 '연애'를 통해 무엇을 배웠고, 알지 못했던 점을 깨달았다고 하니 이것저것 배우고 싶은 심리가 작동해버렸다. 그렇게 만나게 된 차현진 작가의 [내겐 아직, 연애가 필요해]는 좋은 만남이었다.




그게 그를 만났던 사람의 예의니까.

그가 그렇게 가르쳐줬으니까.




한결같은 남자를 만나는 것,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최선으로 나를 아껴주고 내가 가장 빛날 때를 진심으로 기다려주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 개인적으로 가장 '멋진'남자를 만난거라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변함없다. 저자가 만났다던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던 카페사장님은 읽는 동안 질투가 날만큼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그 순간 최선을 다하는 남자였다. 꽉 부여잡지 않고서도 자신의 안에서 맘껏 뛰어놀 수 있게 해주는 남자, 그러면서도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언제나 조금씩 문을 열어놓는 그 남자분과의 헤어짐에 있어 '예의'를 언급한 저자가 참 맘에 들고 좋았다. 어릴 때는 잘 몰랐다. 사랑에 예의가 무슨, 나이차가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닌데 격식이나 예의따위가 사랑에 침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날 아껴주는 사람,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방식을 맞춰주면서도 자신의 방식을 지켜갈 줄 아는 '좋은 사람'을 만났다면 분명 그에게 '예의'를 지키게 된 다는 것. 그 '예의'를 갖출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흔들릴 때, 서글플 때, 넘어져버리고 싶을 때

늘 그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그 느낌이 좋았다.




1년 정도 일본에서 거주했다던 저자는 힘들 때 도쿄타워를 찾아갔다고 한다. 일본을 떠나온 현재도 이따금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무작정 떠나는 곳이 일본이라고 하는데 격하게 공감했다. 내게는 도쿄타워가 아닌 '샤쿠지이공원(石神井公園)'이 그런 장소다. 친언니가 그 주변에서 3여년을 살았었다. 언니를 만나러 갈 때면 꼭 힘든 때 위로를 받기 위해 가는 것처럼 가다보니 자연스레 공원이 내게 저자의 '도쿄타워'같은 역할을 해준 것이다. 개인적으로 도쿄타워에 올라갔을 때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결혼 피로연이 옆에서 진행중이었는데 아니 힘들게 왜 여기까지 올라왔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을 뿐 옆에서 부러워 하는 언니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다시 일본에 가게된다면 저자가 알려준 팁, 도쿄타워가 보이는 전혀 다른 장소에서 도쿄타워를 바라봐야겠다.




그런데 그가 영화 '굿바이'를 좋아한다고

먼저 말했을 때

그 순간만큼은 정말 우리가 결혼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게도 그런 것(?)이 있다. 만약 누군가 그 책을 읽었다고 한다면, 그 게임을 몇년 째 한다고 하면 결혼까지 생각할지 모른다는 그런 생각. 아마 결혼까진 아니더라도 다시 보게되는 그런 것(?)이 다들 있지 않을까. 어떤 책이고 어떤 게임인지 말하진 않겠지만 아직까지 만나진 못했지만 분명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이 사람이 내 운명의 상대, 소울메이트가 아닐까 의심할 것 같다. '굿바이'란 영화를 미친듯이 보고 싶었다. 책 서문에 저자는 이 책을 보다가 누군가를 만나러 뛰쳐나가고 싶게 만들고 싶었다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무언가 미친듯 보고 싶고, 듣고 싶고 그렇긴 했다.


누군가의 연애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구나, 소설이 아닌데 왜이렇게 재미있고 공감이 될까 고민해보니 '허세', '자랑'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그랬지 싶다. 디젤 모델을 만났다던 저자의 연애담이 전혀 자랑처럼 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세상에 이런 남자도 있구나 하며 신기해했다던 그녀의 경험이 같이 설레고 좋아라했다. 거품을 뺀 그녀, 언제즘 자기책을 낼거냐고 재촉했다던 전 남자친구의 말도 이해가 된다. 이렇게 글이 담백한데도 좋은데 왜이렇게 늦게 출간한걸까. 이토록 예쁜 책을 내려고 그랬나, 그랬던걸까. 어쨌든 저자덕분에 지금 곁에 있는 내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생각하게 된 좋은 순간을 선물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차현진 작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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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재발견 - 내 속에 감춰진 진짜 감정을 발견하는 시간
조반니 프라체토 지음, 이현주 옮김 / 프런티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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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빠른 판단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현명한 사람을 두고 이성적이라고 흔히 말한다. 감정에 휘둘린다는 것은 어찌보면 감정적이라는 말보다 감정을 제대로 느낄 줄 모르는 것, 다시말해 이성적의 반대가 감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아니고 조반니 프라체토의 [감정의 재발견 : how We feel]을 읽고 난 후다. 감정을 과학적으로 이야기 하기전 감정의 중요성과 뇌와 관련성부터 설명해준다. 총 7개의 감정, 분노, 죄책감, 슬픔, 기쁨, 사랑, 불안, 공감등을 이야기하기 전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 혹은 인물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우선 우리에게 진화론으로 잘알려진 다윈이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도 연구했다는 사실과 그 결과가 지금까지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하며 학창시절 우리가 반복해서 외워야 했던 에고, 이드 등의 용어를 통해 인간의 정신구조를 설명한 프로이트도 물론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뿐만아니라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사상도 등장하니 이 모든 용어와 이야기가 인간의 '감정'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편안하게 읽기만 하면 된다.

 


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뇌관을 둘러싸고 있는 전전두엽 피질이 감정과 관련되어 있는데 뇌간이 손상되었을 경우 치명적이라 생명자체와 연결되어 있는 반면 전전두엽 피질의 경우 인간만이 다른 동물에 비해 크고 발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감정'과 직접적인 영향을 맺고 있다. 저자는 그 한 예로 쇠파이프가 뇌를 관통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물론 복직이 가능할 만큼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이 회복했던 '피니스 게이지'의 사례를 들어준다. 사고 전후 게이지에게 달라진 점은 온순하고 주변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았던 차분한 심성에서 쉽게 화를 내고 툭하면 남탓하는 비사회적인 성향으로 바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성격덕분에 결국 일자리도 잃고 10여년 뒤 초라하게 생을 마감한다.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정을 제대로 느끼는 것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렇게 쉽게 분노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성향은 제대로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분노와 판단력의 관련성과 함께 설명해주는 것이 앞으로 설명해줄 다른 감정에 비해 도덕적인 기준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 다름아닌 분노라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분노는 일시적으로 타오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장시간 숨죽이고 있다가 크게 터뜨리는 등 감정뿐아니라 한 사람의 전 생애를 지배할 수 있는 위험한 감정이기도 하다. 중요한 사실은 이런 분노는 사례에서도 등장한 것처럼 결코 유전적으로 결정된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분노에 이어 설명할 감정은 '죄책감'이다. 죄책감은 다른 감정이 본인 스스로의 '느낌'이라면 이와는 다르게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 혹은 사회에서 정해놓은 규범등을 위반했을 때 상대적으로 생겨나는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죄책감은 신경과학보다는 주로 심리학에서 오랜시간 다뤄졌다고 한다. 저자는 죄책감을 설명하기 위한 사례로 [다윗과 골리앗]을 그린 화가 '카라바조'를 등장시킨다.  그림을 잘아는 사람이거나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은 알았겠지만 카라바조가 싸우다가 상대편을 죽인 뒤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이후 선과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바로 그런 죄책감에서 비롯되어 앞서 언급한 명작이 탄생할 수 있었던게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었다. 그림속 골리앗이 다름아닌 자신이 죽인 상대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얼굴을 그렸기 때문이다. 저자도 인정한 것처럼 실제로 카라바조가 죄책감을 느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충분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1장과 2장에서 다룬 분노와 죄책감에 관련된 감정만 이야기했지만 리뷰에서 보이는 것처럼 저자가 독자를 위해 사례로 들어준 영역은 의학, 심리학 이외에도 미술, 문학작품 등 다양한 인물을 통해서 감정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지배할 수 있는지 혹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물론 피해갈 수 없는 어려운 용어도 등장하고 미주로 달아놓은 내용만 30여페이지에 달하는 만큼 가벼운 내용만은 아니다. 하지만 초반에 저자가 설명한 것처럼 감정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보다 이성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것 이상으로 '네 자신을 알라'고 했던 철학자들의 이상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는 일이기에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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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 바람이 불었다 내 마음에 파도가 일었다
심은희 지음 / 리스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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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시절 영문학 수업 때 제임스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공부한 적이 있었다. 작품의 배경이 된 역사와 아일랜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면 알수록 한국과 닮은 점이 많은 나라라고 느꼈었다. 기분좋은 공통점은 아니지만 흥이 있고 어른을 곤경할 줄 아는 문화의 유사성은 아일랜드에 호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안타까웠던 것은 여행책을 찾으면 영국을 주제로 한 책에 서너페이지 정도로 할애되어 소개될 뿐 아일랜드만 단독으로 다루게 된 것은 최근에 와서다. 그것도 더블린에 한정되어 있거나 해당 지역을 고르게 둘러본다기 보다는 펍이나 영화속 무대가 된 지역위주의 소개였다. 그런점에서 [아일랜드에 바람이 불었다 내 마음에 파도가 일었다]에서는 더블린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남과 북쪽을 나누어 4개 지역 모두를 소개하고 있어 반가웠다. 다른 독자에게는 아쉬운 부분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가이드북이나 해설자가 아닌 아일랜드 매력에 푹빠진 소녀의 풋풋함이 느껴져 좋았다. 
첫 번째 산책이 아일랜드 여행 전 알아야 할 지리정보와 팁을 담았다면 두 번째 산책부터 본격적인 아일랜드 여행이 시작된다. 여행할 때 펍을 들려 맛있는 맥주와 칩스를 먹었던 추억, 해리포터의 무대배경이 된 트리니티 칼리지와 켈트의 서 등 반가운 내용이 많았다. 무엇보다 영화 원스를 떠올리며 버스커들을 잔뜩 만날거라 믿었던 기대를 제대로 무너뜨렸던 원스 거리에 대한 이야기도 즐거웠다. 기네스에서 흑맥주를 즐겼던 때에 이 책이 함께 있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말할 수가 없다. 세 번째 산책에서 만날 수 있는 오코넬 거리는 세상에서 세번째로 아름다운 스타벅스는 없지만 마치 서울이나 도쿄를 걸으며 마주치게 되는 숫자만큼 스타벅스를 볼 수 있었는데 저자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함께 여행하고 돌아와 추억을 나눌 친구를 만난 것 같아 기뻤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열심히 읽었던 부분은 더블린 외곽과 더브린 외의 지역 트림 성이 있는 렌스터, 로빈 후드와 존 왕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먼스터, 에이츠와 화장품 브랜드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니스프리 호수가 있는 카노트 편이 좋았다. 왜냐면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환상을 잔뜩 심어주고 다시 아일랜드에 가야할 이유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저자 덕분에 더블린 외에, 제임스 조이스외에 가볼 곳, 읽어야 할 작가의 작품이 많다는 사실이 더 많이 이야기될 것이고 아일랜드를 방문하는 여행자도 늘어나서 관련 여행책자가 많이 출간되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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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의 식채
미부 아츠시 원작, 혼죠 케이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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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의 색채

친구들, 이웃 블로거들이 자주 찾는 맛집도 궁금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마치 바로 앞에 음식이 차려진 듯 절묘한 표현과 식감을 제대로 전달해주는 저자 덕분에 군침이 돌며 작가들의 맛집도 궁금해진다. 맛집 뿐 아니라 그들이 주로 먹었던 음식은 무엇이 있는지 음식과 관련된 사연은 산문집을 통해 자주 접하는데도 늘 흥미롭고 재미있다. [문호의 식채]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이웃 일본의 대 문호들의 음식과 관련된 일화를 찾아다니는 가상의 인물인 마이초신문 카와나카 케이조와 쿠로다 국장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어떤 작가가 어떤 음식을 좋아했고 자주들리는 맛집을 찾아가보는 정도 일 줄 알았는데 등장하는 작가들의 간략프로필은 물론 작품속에서 그 음식이 어떻게 녹아있는지 그때 그 맛집이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음식을 팔고 있는지 등 자료조사를 정말 열심히 풍부하게 했다는 사실에 두껍지도 않은 이 한권의 책에 감탄이 터진다.
카와나카 케이조가 나츠메 소세키의 작품속 음식에 관한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소세키의 작품인 [도련님]을 다시 읽어보는데 이미 해당 작품을 읽었던 독자들 마저 그의 행동을 따라하게 된다. 케이조의 말처럼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안나는데다 당시에 평론가들이 분석한 내용만이 전부라고 믿었기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작가의 의도를 자기만의 기준으로 다시 알아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작품안에서 도련님에게 키요가 어떤 존재였는지 그녀가 차지했던 비중이 단순히 자신을 돌봐주던 나이많은 보호자의 이미지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신뢰를 가지고 있던 한 여성으로 보았을 수도 있다는 케이조의 의견에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기존의 의견으로 보면 키요가 도련님에게 사줬다는 모미지야키를 쿠로다 국장이 엄마가 사주셨던 간식맛이야정도로 느낄테지만 케이조의 분석대로라면 조금 더 다른 의미의 모미지야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나츠메의 음식이 흥미로운 분석정도로 그쳤다면 마사오카 시키의 음식이야기는 좀 더 절절한 면이 있었다. 척추 카리에스로 누워지냈던 시키에게 여동생 리츠가 해준 음식, 특히 시키가 죽기 1년 전 먹었던 점심밥에 관한 케이조의 상상은 만난적도 없는 시키라는 작가의 인간적인 모습을 갖게 해주었다. 죽음이 자신을 찾아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상태였기에 그럴수록 먹는 것, 음식에 집착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불안이 예술가적 면모의 하나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35세에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관련된 음식이야기는 그런면에서 맛을 느끼는 것, 힐링 혹은 소울푸드를 가진다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했다. 그의 작품속에서 보여지는 음식과 관련된 우울증 증세를 읽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화책 한권을 읽는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지만 케이조가 들려주는 에피소드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등장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먼저 읽어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작품을 전혀 읽지 않았던 저자들의 에피소드를 제대로 느끼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들만큼 문학과 음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성찬 같은 [문호의 식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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