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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ㅣ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평점 :

캐 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이동진 평론가의 한 마디 때문에 '캐롤'이 떠들썩했다. 책을 미처 다 읽지도 못했는데 마음이 괜시리 다급해져 정식 개봉 전에 필름버전으로 캐롤을 영화로 먼저 보고왔다. 원작소설이 있을 때 영화를 보기가 상당히 망설여졌었다. 아무래도 영화를 보고나면 소설을 다시 읽는게 내키지 않아서였는데 이번만큼은 과감하게 도전한 셈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영화로 먼저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지만 서로 별개의 작품으로 봐도 상관없을만큼 소설은 소설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좋았으니까.
소설은 아무래도 표현방식이 영상과 다르다보니 세세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영화에서는 테레즈와 캐롤이 만난 시점부터 보여주기 때문에 테레즈가 백화점 인형판매점에서 일하게 된 배경, 안정되지도 바라지도 않았던 공간에서 버텨내는 과정이 많이 축소되었다. 단순히 꿈을 찾지 못하고 있었던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처지와 불안한 미래에 조급해있었다. 멋진 드레스를 입고서도 지금 순간만이 기억될 뿐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크를 벗기는 그 짧은 시간도 못견뎌했으며 멋진 성모상을 받쳐 줄 만한 책장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캐롤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극명하게 대조되는 모습으로 보여지는데 철제 카트 모서리에 긁혀 피가 흐르는 테레즈에 비해 캐롤은 금발머리에 모피를 입은 우아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처지의 대조와는 상관없이 테레즈는 캐롤을 보고 한 눈에 반해버린다.
눈동자에 붙들린 테레즈는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앞에 있는 손님이 재차 묻는 소리가 들렸지만 테레즈는 가만히 선 채 벙어리가 되었다. 55쪽
처음 본 순간 이미 테레즈는 캐롤을 좋아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를 주도하는 사람은 캐롤이었다. 캐롤이 묻고 테레즈가 답하는 방식은 처음 두사람이 개인적인 만남을 가졌을 때부터 시작되었고 한참어린 테레즈에게 캐롤은 연인임과 동시에 이상향이 되기도 했다. 작품의 배경이 1950년대 후반으로 시간적으로만 보면 엄청 오래되고 낯설고 시대적 특수성이 존재할 것 같아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른건 몰라도 간극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철없는 젊은이를 바라보는 시각, 이민자들을 보는 차가운 시선 무엇보다 동성애가 특수하다고 여기는 사회풍속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따라 적어도 한 부분즘은 소외당하는 이유가 같아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성향적 차이로 공감보다는 하나의 이야기로 보여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캐롤 때문에 테레즈는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한 줄기 연기처럼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기분이 들었다. 캐롤은 인간답게 살아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278쪽
겉으로 보기에 캐롤은 완벽해보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갔을 때도 완벽했더라면 두 사람이 과연 서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 싶다. 분명 테레즈의 일방적인 동경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작품 초반에 외적인 모습만을 보고 캐롤을 판단하는 테레즈의 독백속에는 정말 많은 복선이 깔려있었다. 비밀이 많을 것 같아보인다던가 하는 그런 것들. 테레즈가 어렸기 때문에 현실에서 벌어지는 실제 사건보다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었던 소녀였기 때문에 캐롤도 테레즈를 좋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내게 와서 정말 좋았어요. 하필 왜 나한테 온 거죠?"
캐롤은 잠시 뜸을 들였다.
"좀 바보 같은 이유에서였어. 그 정신없는 와중에 솔직히 네가 가장 덜 바빠 보였거든.
게다가 유니폼도 입지 않았으니. 내 기억엔 그랬어." 238쪽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이동진 평론가의 평이 영화만 봐서는 그다지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었다. 굳이 캐롤이 아니었어도, 동성이 아니었어도 성별과 무관하게 테레즈의 감성을 촉발시킬 연애 혹은 계기가 필요했었던거라 여겼지만 소설에서는 확연하게 테레즈의 성향이 드러난다. 캐롤을 처음 만난 순간 이미 테레즈는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올거라 확신했고 심지어 계산 말미에 자신에게 점심초대를 해주진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다. 좀 더 확실하게 그녀의 성향을 알 수 있는 부분은 테레즈에게 카드를 보낼 때 '사랑해요'라고 적고 싶어했던 부분이다. 아무리 멋진 사람을 만나더라도 성향이 다르다면 그렇게까지 기대하거나 확신하긴 어렵지 않을까. 원작소설이 있을 경우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작가들이 엮어놓은 감정선을 영화를 이야기할 때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설속 내용만을 부여잡고 영화를 이야기하자면 소설없이 그 영화는 저 홀로 서있을 수 없는 절름발이 작품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 있어서 좋고 영화로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좋은 로맨틱한 작품 [캐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