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7번째 기능
로랑 비네 지음, 이선화 옮김 / 영림카디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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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hH>의 작가 로랑비네의 두 번째 소설, <언어의 7번째 기능>은 롤랑 바르트의 죽음의 배후자가 있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사랑의 단상>이라는 명저를 남긴 그는 1980년 2월 25일 교통사고 난 뒤 한달 후 사망했다. 사고사가 아닌 타살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과정에서 사고당시 바르트의 지갑이 분실되는 설정이 필요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수사관 바야르(읽는내내 '바야흐로' 와 자꾸 혼동되어서 황당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가 사건을 파헤치려고 시도하지만 기호학자이자 철학자인 바르트와 그의 주변인물들을 철알못(철학을 잘알지 못하는)수사관 혼자서는 무리라 '시몽'이라는 젊은 철학교수를 파트너로 영입한다. 시몽은 영화 007을 기호학적으로 분석하는 강의와 함께 등장하는 데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영화 007과 바야르, 그리고 시몽의 수사과정이 자연스럽게 비교된다. 물론 시몽이 바야르의 직업과 가정환경 등을 분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치 셜록을 보는듯한 재미도 누릴 수 있다.


"숫자 00, 더블 제로는 살인 허가를 표시하는 기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숫자의 상징을 뛰어나게 적용한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살인 면허를 숫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끼? 10? 20? 100? 백만? 죽음은 양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무'의 상태이며, '무'를 뜻하는 숫자는 바로 '0'입니다. 49쪽


바야르가 수사를 시작하고 처음 만나러 가는 인물은 미셸 푸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푸코가 맞고 이후에는 자크 데리다, 움베르트 에코처럼 이름은 들어봄직한 철학자,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바야르만큼이나 철학을 알지못하기 때문에 철학자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의뭉스럽지만 읽다보니 등장인물의 실존여부보다 시몽과 함께 사건을 파헤쳐가는 과정이 더 재미있다.


롤랑 바르트는 죽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어머니를 생각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115쪽


실제 바르트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애도 일기>라는 책을 쓰기도 했는데 타살이라고 가정한 이 소설에서는 단연 그런이유가 아니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철학자를 시작으로 대통령까지 바르트의 죽음에 관여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책의 제목, '언어의 7번째 기능'을 바르트가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법적이고도 주술적인 기능인데 단순히 그 기능을 알았다고 해서 그를 죽음으로 까지 몰고간것이 아니라 그 사용법까지 바르트가 알았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기호학'의 역할도 있지만 만약 특정 인물 한사람이 언어의 7번째 기능을 이용하게 된다면 어떨까? 단순히 불필요한 물건을 사들이거나 사기를 당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시몽은 구원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지상의 임무라는 말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미리 정해진 운명이란 없다는 것을 믿었다. 아무리 변덕스러운 사디스트 소설가의 손에 맡겨졌다 할지라도, 운명은 아직 정해져 있지 않아고 믿었다. 603쪽


신이 마치 언어의 7번째 기능을 이용하는 존재이고, 그런점에서 소설가는 신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도 있다. 아니면 이와 반대로 인간이 언어를 이용하고 해석하기 때문에 인간의 운명을 정해지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기호학자로서의 학자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분석해 위기를 모면하는 시몽의 모습이 바로 이를 증명한다. 


철학자들과 좌파들에게 적대감을 가졌던 바야르가 언어학 관련 세미나에 흥미를 느끼는 등의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도있고, 007의 제임스본드가 영국과 'M'의 총애를 받듯 현 대통령의 지시로 프랑스 뿐 아니라 해외까지 범인을 쫓는 장면과 빈번하게 등장하는 노골적인 성적 표현등은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를 연상케했다. 007 제임스본드와 셜록을 넘나들며 사건을 파헤쳐가는 바야르와 시몽의 활약, 그리고 그들 주변에서 자신들의 장기를 맘껏 표출하는 실존인물과 가상인물들을 마주하다보면 어느새 두껍게만 느껴졌던 600여페이지의 소설이 끝나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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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교토
주아현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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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교토

주아현 지음


한달 정도 한 도시에 머무는 것, 랜드마크를 찾아다니는 게 아닌 그냥 일상생활자로서의 여행은 개인적으로도 정말 좋아하는 여행 방식 중 하나며, 서른을 넘긴 이후 혼자떠난 여행은 최소 보름 이상이었다. 주아현의 <하루하루 교토>는 저자가 2017년 4월 한 달 동안 교토에서 머물렀던 기록이 담겼다. 저자말처럼 교토 여행책은 대부분 역사가 깃든 수학여행같었던 것과는 좀 다르다. 도쿄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옛스러운 교토의 풍경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곳의 말소리, 책 넘기는 소리, 그릇 소리, 수도꼭지에서 쪼르르 흐르는 물소리, 드르륵 문을 여닫는 소리가 모두 하나의 음악인 듯, 그 어우러짐이 듣기 좋기만 하다. 이 공간 속에는 우리 모두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조용한 행복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31쪽



저자가 교토에 머무는 동안 매일 같이 방문한 곳은 카페다. 한국에서부터 미리 계획을 하고 찾아간 곳도 있고, 숙소 근처라 우연찮게 들렸다가 뜻밖에 행운처럼 알게 된 곳들도 있다. 어쨌거나 한달 동안 머물면서 카페에 가는 일이 뭐 대수냐 하겠지만,(책에서 저자도 이 부분을 언급했다) 그것이 내가 살고 있는 현지가 아닌 낯선 도시에서의 일과라면 또 다르다. 카페에나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잠시나마 소소한 대화를 나누다가 해가 질 무렵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 만큼 그 도시에서 '생활자'로서의 역할이 또 어디있으랴. 물론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한 시간에 한 대가 다닐 정도로 날잡고 가지 않으면 안되는 시골마을을 가기도 하고, 텍스트로 접하는데도 마음이 설레어 올 정도로 가보고 싶은 장소도 등장한다.


가모가와에서 나무와 풀, 물 흐르는 소리에 집중하며 피크닉을 즐기는 순간은 그야말로 천국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중략-

교토에 온다면 이곳을 두 번 이상은 꼭 방문해야 한다. 하루는 가게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또 하루는 가모가와에서 커피 피크닉을 해보는 것.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좋다는 말을 수십 번씩 하게 되는 곳. 63쪽

가모가와. 가모가와. 아. 아직 교토를 가본 적이 없는 내게 반드시 가야할 장소로 가모가와를 머릿속에, 마음속에 꼭꼭 새겨둔다. 커피피크닉이라니 생각만 해도 정말 좋다. 그곳에서 저자가 그랬듯 나도 좋다라는 말을 연발하면서 피크닉을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 혼자였던 저자가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라고 책 곳곳에 적어둔 것처럼 나또한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저자가 사진을 좋아하고 요리를 배우는 학생이라서 그런지 사진 한 장 한 장이 지나치게 광고사진 같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글과 잘 어울린다. 카페방문이 대부분이라 아이스아메리카노 사진이 많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통얼음을 넣어주는 곳, 대접처럼 큼지막한 잔에 담아주는 곳 등 다양하다. 그리고 저자의 말을 빌자면 거의 대부분 맛있다고하니 점점 더 교토를 가고 싶어진다.


흔히들 자신이 살면서 만난 가장 좋은 것들을 인생옷, 인생음식 등으로 표현하는 것처러 이곳은 나에게 인생카페였다. 이 공간이 유별나게 특별한 것도 아니었고, 이곳에 온 지 고작 5분밖에 되지도 않았는데 모든 게 다 좋게만 느껴졌다. "좋다."라는 말을 혼자 몇 번이나 중얼거렸는지 모르겠다. 89쪽


여행에세이는 언제읽어도 좋다. 특히 <하루하루 교토>는 그동안 다뤄지지 않은 장소를 볼 수 있어 좋았고, 여행을 통해 엄청난 걸 깨달았다며 유난떨지 않아서 더 좋았다. 사치스럽다고 느껴지지 않는데도 겸손하게 여행에 있어서만큼은 이라며 전제를 붙이는 소박하며 성실한 저자의 마음이 곳곳에 묻어난다. 그야말로 한 달 간 자신에게 충실한 여행을 하고 돌아온 것이 좋았다. 책으로 출판 할거니까 자랑하듯 쓴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그런 저자의 마음이 겉으로도 드러나서 카페주인들이 그녀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교토에 가고 싶은 마음은 한 가득이지만 그 어떤때보다 편안하 마음으로 읽었던 <하루하루 교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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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의 눈 -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알아보는 지혜
저우바오쑹 지음, 취화신 그림, 최지희 옮김 / 블랙피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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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에는 이 세상에 대한 나의 관심이 담겨있다. 6쪽


빨간머리 앤, 보노보노, 해리포터 등 만화나 소설 속 인물과 상황을 자신의 상황과 결부시켜 고민했던 작가들의 에세이를 심심치 않게 만나왔다. 저우바오쑹의 <어린왕자의 눈>이 앞서 열거한 작품들과 다른게 있다면 개인만의 위로에서 벗어나 사회에 관심, 사회가 개인을 위해 해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반대로 개인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해야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일 것 같다. <어린왕자의 눈>도 마찬가지다. 초반에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장미와 어린왕자가 서로 사랑하면서도 왜 왕자는 행성을 떠나야했고, 거짓말은 물론 잔꾀까지 부려가며 어린왕자의 마음을 붙잡으려 했던 장미가 정작 떠나겠다는 왕자를 놓아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까닭은 무엇이었는지 고민한다. 생각해보니 어린왕자를 몇 번이나 읽었으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어린 왕자가 장미를 떠난 것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오해가 쌓여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51쪽


너무 어려서, 너무 몰라서 사랑에 실패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첫사랑이 결혼까지 이어지는 게, 결혼하고서도 이별없이 살아가는 부부를 보면 부럽기만 하다. 그들은 어떻게 처음인데도 그토록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인가 하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별과 함께 우리를 찾아오는 상처와 좌절감을 겪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깊이 사랑하면 할수록 헤어짐의 여파는 강력하다. 어린왕자에게 '길들여지는 것'에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여우는 이에 대한 답도 함께 알려준다. 떠난다는 어린왕자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여우가 하는 말은 '얻은 게 있어. 밀밭의 색깔이 있잖아." -94쪽- 였다. 슬프긴 해도 얻은게 있다라는말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추억이 있고, 추억으로 살아가겠다는 말로 들린다. 하지만 여우가 하려던 말은 추억을 뜻한게 아니었다는 것을 저우바오쑹의 해석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밀밭의 색이 바로 그거다. 사랑하고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 말이다. 상처가 두려워 사랑을 기피하려는 것의 기저에는 마치 설사 얻을 수 있는 것이 가치있는 것일지라도 눈앞에 고통이 싫어 회피하려는 데 있다. 사랑에 있어서조차 기회비용을 따지려는 것, 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여우가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이어지는 부분이다.


어린왕자가 돌아가기로 선택한 건 장미에 대한 사랑도 있지만 책임으 다함으로써 자신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장미를 신경 쓰면서도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그는 가슴 아픈 게 무엇인지 가르쳐주면서 동시에 존중하는 법 또한 알려주었다. 138-9쪽


어린왕자가 장미를 떠난 것이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면 여우를 만난 뒤에 장미에게 돌아가려고 하는 까닭은 사랑을 잘 알아서였을까? 그보다는 책임을 지기위해서 였을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 여기서부터 개인의 영역에서 사회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사랑 뿐 아니라 우정에도 돈으로 대치할 수 없는 시간과 노력, 즉 책임이 뒤따른다. 여우는 이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에 행성으로 돌아가려는 어린 왕자를 보내줄 수 있었고 슬퍼서 눈물마저 흐르는데도 그를 응원해 줄 수 있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수 있게 하려면 사회제도 역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의식주가 위협받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림을 그리고 싶고, 시를 쓰고 싶은 아이들 혹은 어른들이 꿈만 바라볼 수 없는 것도 사회가 어느정도 책임져야 할 부분을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어서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아이가 맘껏 꿈을 꿀 수 있다면, 돈벌이와 결부시키지 않고 그럴 수 있다면 동심을 잃어버린 부모, 어른들도 더이상 아이들의 꿈을 외면하거나 가로막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모든 사람이 자주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까라는 보편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해답은 간단하다. 국가는 국민이 모든 영역에서 선택의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중략- 정부는 개인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예기치 못한 리스크와 대가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건강한 사회 보장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196쪽


개인의 책임을 사회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개인의 사회참여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느꼈다. 어린왕자가 행성을 계속 이동하는 것도 이런 이유였다. 어린왕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여우 곁에서 머물수도 있었다. 혹은 자신을 받아주는 행성 한 곳에서 머물러도 좋았다. 하지만 그는 헤어짐의 아픔과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른 행성을 이동했던 것은 자신의 방문이 그들에게 있어 변화의 기회, 성장의 매개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이 떠남으로써 유약하기만했던 장미가 독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영국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블라스트 씨어리의 작품 중 <나의 단 한가지 요구>는 1시간 45분 정도의 제법 긴 비디오작품이다. 집회에 모였던 사람들을 시간이 흐른 뒤 찾아가서 그들이 자신의 터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인터뷰 하듯 연결지어 보여주는 내용인데 결국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와 사회참여가 더 나은 사회로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가는'어린 왕자'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내가 어린왕자를 몇 번씩 읽으면서도 동심을 잃고 꿈꾸기를 포기한 어른이 된 나를 반성하는 데에 그쳤던 내게 <어린왕자의 눈>의 저자 저우바오쑹은 감상적인 깨달음에서 벗어나 좀 더 실질적으로 이 시대,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어떻게 동심을 잃지 않고 어린 왕자가 그러했듯 다른 이들과 길들여지는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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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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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은 300페이지가 안되는 얇은 소설이다. 아니 적당한 소설이다. 미혼이든 돌싱이든 어쨌든 혼자나와서 독신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기에는 사족이라고는 없을만큼 적당하다. 가나와의 오랜 연애의 마침표를 찍고 난 후 아내에게 이혼통보를 받게된 다다는 크게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내 눈치보느라 하지 못했던, 단독주택에 대한 로망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 같아 기쁘기까지 하다.

 

 결혼은 친척을 두 배로 늘리고, 짐을 두 배로 늘리고, 싸움을 네 배로 늘린다. 26쪽

 

그렇게 도심 한가운데 오래된 소노다씨의 단독주택을 임대받고, 수리까지 허락받은 후 마치 누군가 짜놓은 것처럼 가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이 무렵 집 여기저기가 수리되는 기쁨과 함께 혼자라는 외로움도 커질때라, 더군다나 아쉬움을 남겼던 가나와의 재회는 기쁘기 그지없다. 마치 이혼도, 이곳으로 이사오게 된 것도 가나와의 재회를 위한 것처럼 느낀다. 집을 보러왔던 날 잠시 보았던 고양이 후미도 그를 맘에 들어했으므로 다다시에게 더이상 외로움은 없다. 후미와 함께 있을때면 그냥 그렇게 평생을 혼자 살아도 상관없고, 더이상 누군가와의 연애 혹은 결혼은 없을거라며 별일아니라는 듯 이야기한다. 그야말로 우아한 독신남의 모습으로 고쳐서 깨끗하고 편리해진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자전거로 장을 보러가는 우아한 꽃중년이라고나 할까.

 

"오카다는 우아하군."

"오카다는 아직 사십대잖나. 월급은 많이 받으면서 마음 편하게 혼자 살지. 이걸 우아하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나."76-7쪽

 

가나와의 연애는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처음에는 도우미까지 필요로 할 정도로 약해진 가나아버지의 등장이 둘의 관계를 힘들게 하진 않을까 했지만 오히려 자연스럽게 가나가 다다시를 찾게 하는 매개가 되어준다. 집도 안정이 되어가고 소노다시의 메일을 통해 전해듣는 그녀의 일상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질병으로 크게 문제만 없다면 혼자인 노년도 크게 나쁘지 않고 오히려 우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해주어 다다시는 스스로의 삶에 어느정도 만족한 것처럼 느낀다. 이렇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아들 히사히코의 느닷없는 커밍아웃에 당황은 해도 성내거나 반대하지 않는 다다시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식을 소유물로, 자기마음대로 하려는 부모일수록 삶의 대한 만족도가 적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다다시의 경우처럼 충분히 만족도 높은 삶을 살고 있을경우 자식을 통한 대리만족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들이 행복한 것이 우선이며 무엇보다 자식은 더이상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들의 진짜 모습을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66쪽

히사히코는 행복해 보였다. 167쪽

 

이렇게나 '우아한' 다다시도 가나앞에서는 마치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하고 싶은 20대 청년과 다를바 없다. 가나에게 반하게 된 것은 그녀 자신도 모르는 매력덕분이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혼자된 다다시에게 있어 가나의 모습은 아버지를 돌봐주는 성숙한 여인이며, 인간으로치자면 여든이 다되어가는 고양이 후미나 소노다씨를 통해 다다시가 느끼는 것은 안정감, 대지와 같은 여성의 품이다. 하지만 가나가 그러했듯 나조차 이런 다다시의 모습이 미덥지가 않다. 그렇게 품어주던 아내를 떠나, 가정을 떠나 혼자만의 '우아한 삶'을 즐기고 있는 다다시가 과연 언제까지고 가나곁에서 그렇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아한, 빈틈없는 생활에 여자가 끼어드는 건 쉽지 않아. 자기가 잡음이랄지, 이물이 되지 않을까 싶으니까." 216쪽

"그런 남자는 자기가 이뤄놓은 혼자만의 생활이 숨 막히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서 어딘가에서 그걸 깨부수고 싶어지거든." 217쪽

 

깨부수고 싶어진다는 다다시의 말이 내게는 때가되면 다시 완벽하게 짜맞추고 싶어질 때도 있다는 말로 들렸다. 가나의 아버지와 함께 셋이서, 가능하다면 귀국하게 되는 소노다씨까지 함께 넷이서 살아도 좋겠다는 다다시. 주변의 30-40대 미혼 여성인 지인들을 보면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 결혼자체에 관심이 덜했다. 그들에게는 그저 운명처럼, 드라마처럼 다가올 사랑에 대한 로망만 남았을 뿐 결혼은 '현실'이었다. 결혼은 곧 '우아함'을 포기하라는 의미였다. 가나역시 아버지와 함께 하는 삶에 어느정도 적응해서였을까. 결혼 혹은 동거로 한집에서 다다시와 함께하기 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원했다.

"나도 다다시씨의 우아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는 편이.....훨씬 더 도움이 될거야."249쪽

두 사람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다. 우아함을 버리고서라도 가나와 함께 하고 싶은 다다시의 마음이 과연 맞는걸까. 가나의 말처럼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지금의 적당한 선의 유지가 낫지 않을까 싶다. 한 때는 결혼을 해야하는 것이 사랑이 식었을 때, 잠깐의 흔들림으로 헤어지지 않을 수 있는 방어책으로 여겼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헤어져야 할 사람은 결국은 헤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상태는 위험하다. 둘이 함께여도 충분히 '우아하다'라고 자신할 수 있을 때까지 다다시가 가나를 기다려주길 바란다. 그 자신이 설사 우아하다는 말에 몸서리를 치게 될 지라도.

몇 번이고 가나와 이야기하자. 집이 완성되고 나서도 늦지 않다. 우아하다는 말은 이제 그만 듣고 싶다. 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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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바꾸는 52주의 기록 - 일주일에 한 번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한 수업
쉐릴 리처드슨 지음, 김현수 옮김 / 가나출판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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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고객에게는 저마다의 특별한 이야기가 있지만, 목표는 모두 같았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소중한 가치를 반영하는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 6쪽

이 일주일 단위의 과정은 '먼저 자기 자신을 잘 돌보아야 한다'라는 코칭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11쪽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을 읽고 무언가를 직접 해보는 것이다. 12쪽

 

셰릴 리처드슨의 <내 삶을 바꾸는 52주의 기록>은 자기개발서 + 플래너 라고 말할 수 있다. 매 주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행동, 실천에 관한 조언을 들려주고 그 기록을 적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중요하다는 것, 그 중요성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 부터 시작한다.  저자의 조언처럼 책을 펼쳐서 맘에 드는 것 부터 실천해도 되는데 이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왜냐면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를 사랑해야지! 하고 다짐해놓고 첫 주 과제부터 자괴감에 빠졌기 때문이다. 첫 번째 과제가 '나의 성취 적어보기'인데 지난 1년간 가장 잘한 일을 스무가지를 적으라고 되어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적다보면 꽤 많이 나온다고 했는데 트집잡는게 아니라 '가장'잘한일이 어떻게 스무가지나 나올 수 있는지도 의문이거니와 잘한일이 없어서 나를 토닥여주고 다시금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해당 책을 펼친사람들, 그야말로 과거의 나를 바꾸고자 이 책을 집어든 사람한테는 지나치게 잔인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한참 우울해있다가 페이지를 넘겨 4주차, '나를 기록하는 힘'부터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과제는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의 모닝페이지를 근거로 설명해준다. <아티스트웨이>는 내가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집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만났던 책이다. 책은 물론 5권 가량의 모닝페이지 노트도 여전히 소장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아침 시간 나를 기록하는 것은 꽤나 보람을 가지게 하고 뿌듯하게 만든다. 만약 지난 해 내가 모닝페이지를 꾸준히 작성했더라면 첫 번째 과제, 내가 가장 잘한일에 적어넣으면서 기분좋게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계절이 되면 사람들은 건강하고 멋진 몸매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나는 신체 단련에 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 방면에 가장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찾았다. 90쪽

 

위의 발췌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몸매가꾸기가 아니라 저자가 전문가를 찾아나섰다는 부분이다. 사실 <내 삶을 바꾸는 52주의 기록>과 같은 책을 집필하는 전문가에게 내가 배울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사실 <고작 한번 해봤을뿐이다>리뷰에도 적었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익숙치 않다. 악기연주처럼 도저히 혼자서 할 수 없는 영역이 아니고선 더 그렇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 무언가를 책으로 배우려는 성향도 마찬가지다. 셰릴은 서문에도 말하지만 누군가 만나는 것, 조언을 구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렇게 깨닫게 된 나의 약점이나 두려운 점은 26주차 과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한 주의 과제를 마치고 나면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만나고,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만날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것 등은 이미 다른 자기개발서에서 질리게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강점은 '나를 돌보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것과 그것이 단 한 페이지일지라도 '기록'을 남겨두는 것에 있다. 다시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비록 순서대로는 아닐지라도 꼬박꼬박 펼쳐보고 기록을 남길 것이다. 그래서 52주차가 되는 때에 나는 1주차 과제를 꼭 하고 싶다. 이 책대로만 따라한다면, 적어도 이 정도라도 나를 한해 동안 돌봐준다면 스무가지가 대수랴. 52두가지도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문에 어쩌면 이 책의 리뷰는 지금은 미완성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 책 한권을 사고, 저자의 말처럼 예쁜 노트, 일년 내내 볼거니까 다소 과하게 준비해도 좋을 것이다. 한 해를 어떻게 보내야할지, 거창하게 자격증이나 운동을 하는 것이 부담이라면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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