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7번째 기능
로랑 비네 지음, 이선화 옮김 / 영림카디널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HHhH>의 작가 로랑비네의 두 번째 소설, <언어의 7번째 기능>은 롤랑 바르트의 죽음의 배후자가 있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사랑의 단상>이라는 명저를 남긴 그는 1980년 2월 25일 교통사고 난 뒤 한달 후 사망했다. 사고사가 아닌 타살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과정에서 사고당시 바르트의 지갑이 분실되는 설정이 필요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수사관 바야르(읽는내내 '바야흐로' 와 자꾸 혼동되어서 황당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가 사건을 파헤치려고 시도하지만 기호학자이자 철학자인 바르트와 그의 주변인물들을 철알못(철학을 잘알지 못하는)수사관 혼자서는 무리라 '시몽'이라는 젊은 철학교수를 파트너로 영입한다. 시몽은 영화 007을 기호학적으로 분석하는 강의와 함께 등장하는 데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영화 007과 바야르, 그리고 시몽의 수사과정이 자연스럽게 비교된다. 물론 시몽이 바야르의 직업과 가정환경 등을 분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치 셜록을 보는듯한 재미도 누릴 수 있다.


"숫자 00, 더블 제로는 살인 허가를 표시하는 기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숫자의 상징을 뛰어나게 적용한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살인 면허를 숫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끼? 10? 20? 100? 백만? 죽음은 양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무'의 상태이며, '무'를 뜻하는 숫자는 바로 '0'입니다. 49쪽


바야르가 수사를 시작하고 처음 만나러 가는 인물은 미셸 푸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푸코가 맞고 이후에는 자크 데리다, 움베르트 에코처럼 이름은 들어봄직한 철학자,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바야르만큼이나 철학을 알지못하기 때문에 철학자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의뭉스럽지만 읽다보니 등장인물의 실존여부보다 시몽과 함께 사건을 파헤쳐가는 과정이 더 재미있다.


롤랑 바르트는 죽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어머니를 생각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115쪽


실제 바르트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애도 일기>라는 책을 쓰기도 했는데 타살이라고 가정한 이 소설에서는 단연 그런이유가 아니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철학자를 시작으로 대통령까지 바르트의 죽음에 관여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책의 제목, '언어의 7번째 기능'을 바르트가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법적이고도 주술적인 기능인데 단순히 그 기능을 알았다고 해서 그를 죽음으로 까지 몰고간것이 아니라 그 사용법까지 바르트가 알았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기호학'의 역할도 있지만 만약 특정 인물 한사람이 언어의 7번째 기능을 이용하게 된다면 어떨까? 단순히 불필요한 물건을 사들이거나 사기를 당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시몽은 구원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지상의 임무라는 말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미리 정해진 운명이란 없다는 것을 믿었다. 아무리 변덕스러운 사디스트 소설가의 손에 맡겨졌다 할지라도, 운명은 아직 정해져 있지 않아고 믿었다. 603쪽


신이 마치 언어의 7번째 기능을 이용하는 존재이고, 그런점에서 소설가는 신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도 있다. 아니면 이와 반대로 인간이 언어를 이용하고 해석하기 때문에 인간의 운명을 정해지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기호학자로서의 학자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분석해 위기를 모면하는 시몽의 모습이 바로 이를 증명한다. 


철학자들과 좌파들에게 적대감을 가졌던 바야르가 언어학 관련 세미나에 흥미를 느끼는 등의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도있고, 007의 제임스본드가 영국과 'M'의 총애를 받듯 현 대통령의 지시로 프랑스 뿐 아니라 해외까지 범인을 쫓는 장면과 빈번하게 등장하는 노골적인 성적 표현등은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를 연상케했다. 007 제임스본드와 셜록을 넘나들며 사건을 파헤쳐가는 바야르와 시몽의 활약, 그리고 그들 주변에서 자신들의 장기를 맘껏 표출하는 실존인물과 가상인물들을 마주하다보면 어느새 두껍게만 느껴졌던 600여페이지의 소설이 끝나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