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
최강희 지음 / 북노마드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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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최강희 붐이라고 표현할 만큼 그녀의 주가가 마구마구 오를때

이책이 나왔다.

최강동안, 패셔니스타는 물론 애자라는 영화가 제대로 빵~하고 터져주니 처음에는 드디어 그녀의 진가가

발휘되는구나 좋아하다가 이젠 그녀의 연기보다는 미니홈피를 통한 그녀의 사적인 일상이 더 화제가 되는 것 같아

조금..쓴맛이 났던게 사실이다.

 

때문에 출판된지 거의 1년이 다 지나고나서야 읽게된 그녀의 일상.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

제목 참 좋다.

어설프게 그녀가 패션과 관련된 혹은 뷰티서적으로 나오지 않아서 좋다.

 

무엇보다 그녀의 방.

진짜 그녀의 침실인지 확인할 순 없겠지만 독특한 구조가 정말 맘에 들어 나중에 내 집을 갖게되면

꼭 그런식으로 놀이방을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2층으로 되어있는 공간의 높이는 무조건 170cm 이상으로 해둘것이다. 복층에 살아보니 내 고개를 제대로

들지못하는 것은 정말이지 고통이다.)

 

아이슬란드로 떠난 그녀의 다양한 사진들 또한 판매한다면 한장한장 사모으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의 4차원적인 감성에 똑같이 공감할 순 없는건 사실이다.

물론 그녀 역시 똑같이 공감하길 바라고 쓴 글은 아닐테지만.

늦은시간 끼니를 챙겨먹는 착한 일을 하기 위해 라면을 끓여먹는 행위.

그 어떤 행위보다 다분이 위협적이고 구미가 당긴다.

 

하지만 난 그녀처럼 타고난 체질이 아니기에 오히려 끼니를 걸러주시는게

나름의 착한 행동이기도 하다.

티셔츠에 츄리닝을 입고 그위에 속사포 같은 드레스를 걸쳐입어도 멋지기만 한 그녀.

단순히 동안이라서 라는 이유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책속에는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생활의 발견이 참 많이 들어있다.

늘 익숙해져 있으면서도 그녀가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꽤나 멋지고 아름답다.

거리에서 베개하나를 들고 잠이 든다거나 정류장 바에 걸터앉은체 숙면을 취하는 모습.

다소 '미쳐보이는 듯한' 이상행동이 모두 그녀라서 이해된다고 밖에는 못하겠다.

 

최강희.

오래전에...아주 오래전에...그녀를 눈여겨 보았었다.

하지만 어느순간 그녀는 나혼자 눈여겨 보는 그런 배우가 아니었다.

이젠 대부분의 10~20대 트렌드를 아는 이들의 시선에 그녀가 있다.

고백컨데,,,,

그녀는 내가 타인과 나눠듣고 싶지 않았던 음악중에 하나였다.

지금도 그런 욕심과 오기가 슬금슬금 때때로 발동하니 또 한번 그녀가 책을 낸다면

그때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읽을지도 모른다.

나름 승리의 V자를 그려가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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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 1000명의 죽음을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말하는
오츠 슈이치 지음, 황소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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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생각보다 죽을 때 후회할 게 많구나...싶었다.

처음 이책을 만났을 때 말이다.

제목에 죽음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일단 손이 한번 가고마는 일상적이며 평범한 커먼맨인 터라

역시나 서점 한복판에 신간이자 동시에 베스트셀러였던 이책을 훑어본 기억이 있다.

 

중간쯤 읽으면서...뻔한 얘기로세~ 하며 덮어버렸었는데...

우연찮게 정독해야만 하는 일이 생겨서 다시 읽기전까지 난 그냥 어짜피 누구나 죽으면 뭐든

후회는 하게 되어있다고 생각했더랬다.

 

작가가 실제 만났던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이책은 누군가에게는 가슴에 콕콕 박히는

참회의 기록이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아직 경험해 본적 없는 그리고 계획대로 인생이 살아진다면

느껴질 미래예언서와 같은 뼈있는 충고가 될 수도 있다.

나처럼 아이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유독 17,18번째 후회에 쉽사리 공감을 표시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책에서 정리한 후회들이 내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의무감을 얹혀주기 위한건 아마도 작가의 목적이 아니었을거다.

다만...그 어떤 이기심과 현실적인 타협때문에 혹시나 모를 후회를 사전에 막아주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다.

 

 첫 번째 후회,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두 번째 후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세 번째 후회,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네 번째 후회,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다섯 번째 후회,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여섯 번째 후회,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일곱 번째 후회,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여덟 번째 후회,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아홉 번째 후회,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열 번째 후회,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열한 번째 후회,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열두 번째 후회,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두었더라면

 열세 번째 후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열네 번째 후회, 고향을 찾아가보았더라면

 열다섯 번째 후회, 맛있는 음식을 맛보았더라면

 열여섯 번째 후회, 결혼을 했더라면

 열일곱 번째 후회, 자식이 있었더라면

 열여덟 번째 후회, 자식을 혼인시켰더라면

 열아홉 번째 후회, 유산을 미리 염두에 두었더라면

 스무 번째 후회, 내 장례식을 생각했더라면

 스물한 번째 후회,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스물두 번째 후회, 좀 더 일찍 담배를 끊어더라면

 스물세 번째 후회, 건강할 때 마지막 의사를 밝혔더라면

 스물네 번째 후회, 치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스물다섯 번째 후회, 신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
 


 

스물 다섯가지 후회를 다 적어보는 것...

그래서 다시금 그 후회들을 하지 않겠다고...

죽을 때 편안하게 후회없이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믿고 싶어지는 것...

그게 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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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의 여왕
백영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백영옥.

난 참 이여자의 책에는 점수가 인색하다고 본다.

분명 재미있게 읽어놓고서도 여전히 평점을 줄때는 4점을 초과해서 줘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전에 백작가의 작품을 두고 힐난했던 과거의 내모습을 100% 버리지 못했기 때문일거다.

그리고 아직..백영옥은 내가 기대하는 그 만큼의 작품을 만나지 못한것도 그 이유다.

 

자신이 쌓아온 커리어에 가려져있다고나 할까.

이전 작품은 스타일도 그리고 다이어트의 여왕도 그녀가 너무나 잘아는 때문에 작가가 아니라

피쳐에디터로써의 잡지기사같은 느낌을 배제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느낌이기 때문에 내가 아니야, 이건 소설이야

라고 아무리 강요한다고 해도 느껴지지 않게 할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문에 재미있고 빠르게 읽히는것 또한  무시할 수는 없는것이다.

 

정연두.

직업은 쉐프. 친구 인경의 소개로 만나 3년 동안 교제해온 정민에게 버림받은 이후 실연의 상처를 '달디 단 디저트'로 견디다

결국 그녀의 몸무게는 90kg를 가볍게 초과해주시고, 보다 못한 인경은 그가 이전에 사겼던 여자와 같이 있었던 모습을 보았다는

말 한마디로 연두를 자신이 맡고 있는 리얼프로그램 '다이어트 여왕'에 참가시킨다.

다이어트 여왕. 아무래도 실제 방영되는 케이블Tv의 모 프로그램를 떠올리며 책을 읽어갈 수 밖에 없다.

100일 동안 함께 합숙하며 서바이벌 프로그램 답게 대놓고 서로를 비난 하고 마치 세상의 존재하는 기구한 사연은 전부다

가진 인생들마냥 애처로움을 발산하며 끝까지 다 살아남았으면 좋겠다와 동시에 '너만은 떨어져!'라고 말하고 싶은 악녀들이

존재하고 결국 결승자도 그 어느누구도 아닌 '그저 성실형'에게 돌아가는 프로그램.

 

정연두. 책으로만 보자면 그녀는 거의 성인에 가깝다.

타인의 비밀발설과 계략을 묵인하고 역시나 뭐든 일들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며

은연중에 상대방이 쏜 화살에 맞게 되면 피해자인냥 이런것이 배신이란건가 하며 조용히 탄식하는 그녀.

하지만 그녀가 주인공인 덕분에 당당하게 그녀는 상금1억, 다이어트 여왕이 되어 현실로 되돌아 온다.

물론 합숙기간 100일은 그녀를 100% 이전의 모습으로 살아가게끔 두지 않는다.

어디선과 자신을 늘 보는 CCTV가 사방에 존재하는 듯 싶고, 실제 거리에서 그녀의 몸을 보며 혹평을 하던 호평을 하던 대놓고

상처주는 사람들과 대면해야 하고 자신의 이력을 상품삼아 매출을 올리려는 혹은 그녀를 깍아내리려는 프로그램 동참자들

사이에 그녀는 거식증에 걸려 치료를 받아야할 상황에 놓이게 되버린다.

 

하지만...아직도 그녀가 다이어트에 성공하기 이전에 모습으로 살아가는 나와같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주목할 사실은

거식증에 걸렸을지언정 그녀는 173, 49kg의 날씬한 여성, 더이상 다이어트가 필요없는 여성, 정신적 치료만 잘 받으면

앞으로 늘씬한 몸으로 원하는 이성을 내것으로 만들고 살아갈 수 있는 무엇보다 엄마가 억척보험왕이라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정연두' 인것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녀의 몸무게 변화가 다시 70kg를 넘어 80kg로 되돌아간 상태에서도 행복하다는 결말로

끝나주길, 그래서 몸무게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란 통속적인 결말에 이럴줄알았어 하며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고 싶었던

독자들에게는 제대로 배신하는, 맘상하는 소설의 결말이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소설의 평점을 4점이나 줄 수 있었던 것은

연두가 느끼는 고통이나 노력을 결코 몇페이지의 간소화로 죽도록 운동했어 정도로 끝내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그녀는 정말이지 노력했다. 수십페이지에 걸쳐 다이어트 여왕의 참가하는 동안 토나오도록 운동을 했어야 하는 것과

염소나 초식동물이 될 지경의 마른풀을 먹어대며 힘겨워하는 모습, 여왕이 된 이후에도 다시 살이 찔까 겁이나 콩한쪽도

맘놓고 먹지 못하는 그녀의 일상은 처절하리 만큼 '노력은 배신안한다, 안먹은 만큼, 운동한 만큼 살은 빠진다'라는 가장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 이야기를 독자가 옆에서 보듯 생생하게 그려주었기 때문이다.

몸무게를 쫓아 책을 읽어나갔던, 아니면 그녀의 연인이 그래서 정민이야? 시후야? 아님 최피디야? 하며 설레이며 읽었든

그어디를 찾아봐도 연두가 온전히 몸무게와 상관없이 날씬해졌기 떄문에 난 행복해~란 표현은 없기 때문이다.

 

다이어트의 여왕.

책의 내용만으로 보면 연두는 결코 다이어트의 여왕이 될 수 없거나 혹은 제대로 여왕이다.

화려한 모습과 다르게 고개만 돌리면 결혼 하나도 제맘대로 할 수 없는 비운의 일생을 살아야 했던 여왕들의 모습으로

비춰본다고 해도 여왕인게 틀림없고 그와 반대로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을 뿐 보험왕인 엄마, 거의 100% 완소남인 친구

시후와 둘도 없는 인경은 보자관을 둔 여왕의 완벽함과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여왕. 그 어떤 의미로든 여왕이 되려는자는 날때부터 어느정도 갖추고는 있어야 겠지만

아무나 될수도 없는것이지만 가장 중요한건, 바로 그 여왕의 자리를 지켜가는건 엄연하게 본인의 노력이라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언제든 자신을 노리는 반대세력에 의해, 혹은 친인척에 의해 왕위를 내려놓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하는 자리,

그게 바로 여왕인것이다. 그게 다이어트의 여왕의 자리여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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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체호프 대표단편선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강승환 옮김 / 일송미디어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안톤체호프의 단편 중  가장 재밌게 본 2편, 귀여운 여인과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의 리뷰,,

 

귀여운 여인

귀여운 여인의 들장하는 올렌까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는 여성이다.

부모님, 그리고 여학교시절의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은 여타와 비교하여 이상할 것도 없고 사랑을 하며 일생을 살아가는게 당연한것이긴 하지만, 간혹 올렌까와 같은 여성에게,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 라는 책을 디민다면 그녀는 읽기도 전에 그자리에 독약을 먹을지도 모를정도다. 만약 그당시 그녀에게 사랑하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처음에는 극장운영자를 그 이후에는 목재상인, 그리고 마지막에는 군대 수의사를 사랑한 올렌까.
언뜻 보기에 그녀의사랑은 원만하다 못해 행복했고, 그녀를 바라보는 타인들의 시선도 따뜻했다. 그녀는 귀염성 있는 외모에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관심이 곧 자신의 관심이었고 자신의 의견이란 것 역시 상대방의 의견과 한치의 오차가 없었다. 하지만 첫번째와 두번째남편 이었던 두사람과 사별하고 세번째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함께 살았던 수의사는 수의학에 관해 그녀가 지인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것에 곤란함을 느꼈다. 왜냐면 의학은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쉽게 학술적인 지식을 배경으로 대화를 나누기에는 다소 진중하며 일반적인 대화 주제로 삼을 만한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군부대가 이동하면서 그는 결국 그녀를 두고 떠나버린다. 세월이 흘러 그녀는 아무런 의견이나 사고없이 거의 사는게 아니라 그저 살아지는 체로 시간을 보낸다. 더이상 귀염성 있던 외모의 그녀는 사라지고 어느새 그녀는 주름이 가득한 뚱보 아줌마가 되어버렸다. 그녀의 삶은 무료해질 대로 무료했고 곁에 있던 고양이 마저 그녀에게는 어떤 위로가 되어주지 못할 무렵 떠났던수의사가 돌아온다. 그의 아내와 아들과 함께. 그런 그에게 올렌까는 방을 내어주고 부부가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의 아들 사샤를 친아들 처럼 돌본다. 이제 그녀의 일상과 화제는 중학생의 학습과 학교생활이 중심이 되어버렸고 다시 그녀에게는삶의 낙이라는게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희망은 사샤가 자라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그녀의 삶은 이제 이전의 행복했던 시절로 완벽하게 되돌아간 듯하다. 적어도 그녀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보는 주변인들과 독자는 그녀가 느끼는 행복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올렌까는 옆방에서 곤히 자고 있는 사샤를 생각하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가끔 사샤의 잠꼬대 소리가 들려왔다.
"싫어, 저리 안 갈 테야? 그만 두라니까!" 


 

사샤가 올렌까에게 한 말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올렌까가 아닌 그 누구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 않은가.

결국 그녀의 결혼생활도 그녀의 일방적인 행복 이었던건 아닌지 입맛이 쓰게 느껴졌다.

 

p.s 중간중간 오탈자가 다른 글들의 비해 많을 수 있습니다. 핸드피씨 모댜에서 작성한 탓이니 이해해주시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개를 데리고라고 해서 꽤나 의미심장한 스릴러물을 기대한 사람은 나뿐이려나.

아주 간단하게 한줄로 요약하자면 바람둥이, 카사노바의 남자가 우연찮게 재미삼아 개를 늘 데리고 다니는 휴양차

놀러온 귀부인에게 작업한번 걸어보려던 것에서 시작된 불륜. 불륜이라고 적어놓고 참...예쁘지 않은 단어인것 같다.

문제가 있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혼생활에 애정을 갖고 있는 '안나'와 썩 맘에 들지 않는 아내를 둔 덕에 여자를 사람

이하의 것으로 비하하는 은행가 '드미뜨리'는 같은 카페테리아에서 동석을 하게 되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늘 그렇듯 드미뜨리는 안나역시 그에게 별다를 것 없는 굳이 이전의 만났던 '스쳐지나가는'이들과 비교하자면,

타향에 개한마디를 데리고 와서는 남편이 뒤따라 올거라는 말을 흘리는 조숙하면서도 스스로는 그렇지 못하다고

울먹이는 조금은 독특한, 어찌하야 그것이 드미뜨리의 가슴에는 '순수 한 여인'으로 인지되었는지 알길 없는 여자다.

어쩌면 난 순수해요를 연발하는 것보다는 전 정숙하지 못해요하며 정숙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이 진짜 정숙하다고

믿는 어리석은 사내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달콤하면서도 위태로운 그들의 사이는 안나의 남편으로 부터 전보가

오면서 끝이 난다.  물론 결론만 말하자면 그둘은 결국 다시만나 모스크바를 거점으로 그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만나

사랑을 이어간다. 마치 홍콩영화 유리의 성의 서기와 여명처럼.

우선 난 세상의 모든 불륜을 적대시하는 사람은 아니다. 가령 요즘 한창 방영중인 이웃집 웬수에서 등장하는 거의 이혼한 것과

다름없는(사실상 이혼했으나 서류를 접수하지 않아 이혼되지 못한) 경우나 한쪽의 일방적인 책임이 있을경우, 혹은 뭐 이래저래

사정을 봐주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분명 존재하니 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특별히 결혼한 배우자를 더 사랑하지 않아서

라던가 지금 만나는 사람이 진짜 운명인것 같아서라는 이유로의 외도는 무조건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소설을 읽으면서 미친듯이 나의 사회적 잣대를 드미뜨리와 안나에게 들이댈 필요는 없겠지만 뭐랄까. 둘의 내숭의 한계를

어디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다소 답답했던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드미뜨리와 같은 인간에게 왜 진정한 사랑이 찾아온걸까.

그토록 여자를 비하하던 이에게 진정한 사랑이란것의 존재가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 벌이면 벌일수도 있겠다. 왜냐면

내가 읽은 관점에서 보자면 안나라는 여성은 그가 만났던 그 어떤 여성보다 정숙하거나 교양있는 여자가 아니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으니 말이다. 흠. 무언가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스토리 전개와 결론이 영 아쉬운...멋대로 거장 안톤체호프의 글을

아쉽다고 생각하며 마무리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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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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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소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점을 별3개 밖에 주지 않은 이유는...

날 답답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뻔한 결말일줄 알면서도 혹시나 혹시나 하면서 끝까지 읽어내려간 나의 기대를 버젓이 배신한 댓가로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고는 소심하게도 이정도 밖에 못하는거다.

마치 소설속 범인이 범인이 될 수 밖에 없는 그 까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파반느의 서평을 앞질러 방금전에 다 읽고만 악인을 앞세워 리뷰를 남기는 이유는 그때문이다.

아에 리뷰따위 적지 않을테다, 맘먹으면 그만이겠지만 적어두지 않으면 계속계속 내머릿속에 맴돌아

날 괴롭힐게 뻔해 어서 빨리 해치워버리자 하는 맘, 바로 그것이상 이하도 아닌거다.

 

악인.

제목이 악인이었을 때, 뒷페이지에 나오는 악인을 제멋대로 사랑해 버렸다는 문구를 보았을 때

읽지말았어야 했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 요시다 슈이치라고 해도, 중반을 넘어가면서 거의 악의의 실체가

드러났을 때라도 이거 못읽겠네 하고 덮었다면 지금 이 좋은 토요일밤, 내 맘이 이토록 심란하고 괴롭진 않았을거다.

재밌게 읽고나서, 작가의 글솜씨에 충만하게 반해버리고서도 평점이 좋지 않은 이유, 왠지 타인에게 쉽사리 추천하게

되지않는 게 바로 이런 이유다.

 

한 여자가 죽는다.

일본나이로 21살이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스물 셋, 혹은 넷. 기껏해야 이제 막 20대 중반을 접어든 보험 세일즈의 여성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느정도 예쁘장하고 정상적으로 사람을 만나려고 해도 크게 어렵지 않게 연인을 만들 수 있는 흔히 볼 수 있는

여성이다. 성격 또한 딱,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여자다.

같은 여자가 가장 싫어하는 성격이며 맘에들지 않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이기심과 시기심으로 인해 늘 주변에 친구가

많거나 끊이지 않는 여자. 남자들이 혹 그런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면 당연하다는듯 부러워하면서도 고개를 돌리거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재수없어'를 연발하게 만드는 그런 여자. 딱히 죽어도 싸다는 소리를 들을 법한 그런 여자가 죽었다.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렇고 그런여자라고 까지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도발아닌 구타유발자.

 

그리고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한 이유로 심하게 순수하거나 심하게 한가지의 방향만 보게 되는 남자. 악인이 있다.

사람을 죽여놓고도 태연하게 살아가려고 했던 남자, 그러면서도 새로운 사랑에 기대를 거는, 그 사랑을 위해 제대로 악이이

되어버린 남자.

 

그리고 그 여자와 그 남자를 둘러싼 수많은 '우리', '너희', 그리고 다시 '우리 모두'가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비방한다. 죽어도 싸다고 하면서도 철면피 같은 놈이라고 손가락질 한다.

너희는 그들의 죽음을 애통해 하면서 그녀의 아비와 악인을 동정하지만 결국 기억속에 잊혀질 것을 '우리모두'는 알고 있다.

 

결론만 보자면 '우리'도 '너희'도 '우리모두'가 악인인 사회.

그래서 답답한거다.

비난 하는 나와 동정하려는 나, 그리고 그 어디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악인의 범위에 속한 까닭에 답답하고 싫다.

난 재미있게 이런 소설을 읽었던 내가 싫다. 얼마나 또 한동안을 '악인' 때문에 괴로워해야하냐는 말이다.

동정도 비난도 아닌 그 어정쩡함 속에서 얼마나 내멋대로 소설의 결론과 과정과 악인의 실체를 뒤바꾸려들꺼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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