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1인의 자수 라이프 -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행복한 자수 생활
일본 <스티치이데> 편집부 엮음, 박선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무레 요코의 [일하지 않습니다]에서 주인공 교코가 아름다운 자수 작품을 보고 반해 도서관에서 자수 책을 찾아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까지만해도 자수가 얼마나 아름다웠길래 책까지 찾아보고, 결코 저렴하지 않은 자수 도구들을 덜컥 구매할 수 있었을까? 소설이라 가능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심지어 그녀는 책 타이틀처럼 더이상 '일하지 않는'사람인데 말이다. 자수의 아름다움은 종종 느끼곤 했지만 그정도로 매력적으로 다가온 적이 없었다. 하지만 줄곧 교코가 자수책을 찾아보고 혼자서도 한땀 한땀 수 놓는 장면이 뇌리에 남아 기회가 되면 자수를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자수의 다양한 기법과 나라별, 지역별 특색이 각양각색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때는 취미로 잠깐 배워도 좋을 것 같았는데 [31인의 자수라이프]를 읽는 동안 등장하는 자수작가별로 주로 사용하는 기법이 다르고 활용도가 정말 다양해 제대로 매력에 빠진 것이다. 그들의 삶이 너무 멋져보였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는 작가,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꽃과 동물, 곤충을 보며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대로 스티치로 옮기는 작가, 자수가 너무 좋아서 홀로 파리로 떠난 작가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원래는 뜨개질을 좋아해서 블로그를 시작했어요. 그러다 어느새 자수에 푹 빠지게 되었지요. " - 도야마 카오리 89쪽 -
"미국에 체류하게 된 좋은 기회릘 조금이라도 유익하게 쓰고 싶어서 처음에는 퀼트를 배웠어요. 그런데 끈기 있게 하지 못했죠. 그러던 어느 날 친구를 따라 간 자수 전문점에서 충격적인 만남이 있었답니다." - 이케야마 케이코 112쪽-
위에 발췌한 인터뷰 작가들 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수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던가, 충격이었다던가 하는 감상을 이야기 한다. 의류나 직물과 관련된 일을 하던 사람들도 있지만 전혀 다른 분야에서 근무하다가 자수를 업으로 삼을 만큼 매력적인데 프랑스에서 배웠다는 사람들이 상당했다. 빨간실로 수를 놓는 알자스 지방의 자수와 고급 비즈를 섞어서 만드는 오트구튀르 자수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와바타 안나의 동화속 장면을 수로 옮겨놓은 아기자기한 작품들이 가장 맘에 들었다. 원래 미술전공이었던 그녀는 작품을 표현하는 한 방법으로 원 포인트 자수를 활용했는데 이를 시작으로 지금은 자수 클래스를 여럿 운영하는 전문 자수작가가 된 것이다. 토끼피규어, 사슴목각인형과 함께 사진에 담긴 그녀의 자수는 기회가 된다면 책상이나 침실에 장식해놓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다. 천의 일부를 활용하거나, 오브제를 중심에 두고 만드는 작품들도 많지만 북유럽 전통 수작업 방식으로 작업하는 기카와 아코씨의 경우는 보통의 자수실이 아닌 털실을 이용해서 작품을 만든다고도 했다. 기법만 다른 것이 아니라 자수실을 선택하는 것 모두가 정말 창의적이고 다양하게 변주된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 가득한 서재에는 동화의 한 페이지를 수놓은 작품 하나, 달달한 단잠을 잘 수 있는 침실에는 오브제가 아닌 배경 전체가 모두 수놓아진 러그, 주방에는 깨끗하고 하얀 천 위에 꽃 한송이가 수 놓아진 행주 등으로 가득한 집을 떠올리기만 해도 정말 행복해진다. 퀼트, 스텐실, 코바늘, 대바늘등 수예방법도 정말 많지만 자수로 꾸민 내 집을 가져보고 싶어졌다. [31인의 자수라이프]를 보면 아마 다들 그렇게 될 것이다. 물론 '콘테', '네네'와 같은 가족같은 애묘 한마리도 함께 살고 있어야 한다. 자수를 함께 할 친구로 딸을 갖고 싶지만 가지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 애묘 한 마리는 적극적으로 꿈꿔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