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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밖으로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김승욱 옮김 / 책세상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다비드 그로스만의 책 [시간
밖으로]는 아들을 잃은 저자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책이다. 걷는 남자를 시작으로 그 남자의 아내, 그물을 둘러쓴 말 없는
여자, 켄타우로스 등의 인물이 등장한다. 모두 아이를 잃은 사람들이다. 걷는 남자는 아이가 자신의 곁을 떠나 가버린 그곳을 쫓아가려고 걷고 또
걷는다. 물론 그곳은 갈 수도 없는 곳이지만 설사 갈 수 있다고 한들 살아서는 갈 수가 없다. 가서 아이를 데려올 수조차 없는 곳이다.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을 살고 있지만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아이를 잃은 그 시점에서부터 시간 밖으로 밀려나왔고, 마찬가지로 부모곁을 떠난 아이들도 우리가
결코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밖으로 가버린 것이다. 그물을 둘러쓴 말 없는 여자의 아이는 더더욱 어리다. 함께 지낸 시간보다 앞으로 아이를
그리워하며 고통속에 살아가야 할 날들이 더 많은 그녀의 모습이 정신이상자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것도 같다. 올 초에 개봉한
영화[나를 잊지말아요]의 진영과 석원도 아이를 잃었다. 석원은 아이와 함께 '기억'도 잃었다. 기억을 잃은 동안 석원은 견딜만 했다. 하지만
되돌아온 기억과 함께 아이가 없는 현실이 되살아나며 [시간 밖으로] 속 켄타우로스 처럼, 혹은 걷는 남자처럼 괴로워한다. 그런가하면 아이를 잃고
일상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는 산파에게 불평하는 구두장이의 모습도 측은하다.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아이를 잃은 수많은 부모들의 모습이 어쩌면 산파와
구두장이의 모습과 닮았을 것 같다. 어서빨리 잊어버리고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느냐 하며 아이를 제대로 보내기 전에 마치 없었던 일처럼,
혹은 정말 다 잊은 것처럼 무뚝뚝하거나 폭력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여 영주에게 전달하는 '마을 기록자'는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을 가리키는 것 같다. 마음아프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것 조차 죄스럽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 않으면 안되는 '저자'의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 더불어 저자의 아이가 전쟁으로 죽기 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자며 목소리를 높였던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따가운 시선들을 '마을 기록자'로 표현한 것 같다.
이
공허함,
부재,
죽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것-
이것은
결코
사라짐,
존재의
정지,
무無가 아니야. 171쪽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이 책을 읽고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마을 기록자가 되어 아이를 잃은 사람들의 진짜 '현실'과 심리상태를 전달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원했던 오늘'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단순히 아주 소중한 오늘이란 선물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있어서, 혹은 내 가족이 살아남은 덕분에 이 엄청난 고통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가 살아남아있어 감사해야
하는 것도 많지만 가족을 잃고 고통에 허우적 거리는 이들을 외면하는 일도 없어야겠다. 살만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 밖에 할 수 없기에
살아가는 그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