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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애틋하게
정유희 지음, 권신아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8월
평점 :
[함부로 애틋하게]를 읽으면서 공감하지 못하면 어쩌나 사실 걱정했었다. 동명의 드라마를 보다가 코드가 맞지 않는다며 중간에 시청을 포기해버린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너무나 예쁜 그림체와 페이퍼 정유희의 글은 딱 20대 까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영문인지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만 그런 느낌이 바로 진짜 인연이 되는 책을 만나게 해주었었다는 '과거'가 이 책을 만나게 해 주었다.
죽지 않을 만큼만 대강 숨 쉬며 살고 있지
네 진심을 기다리는 일은
지금 내겐 가장 절실한 임무
똑똑 노크를 할게
문을 열고 내게 정다운 손 내밀어주길 28쪽
초반부터 눈동자가 흔들리고 손이 멈칫했다. 누군가를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밥먹을거 다 먹고, 할 일 다하고, 친구를 만나 수다떨고 Tv를 보며 웃고 울어도 그 때 할 수 있는 일은, 진심으로 '임무'라고 표현할 만한 일은 '기다리는 일'뿐이라는 것을. 지난 봄 읽었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이게 다예요]을 떠올리게 만드는 글이다. 그 사람을 기다리는 것 그 뿐, 그게 다인 것. 언뜻 보면 짝사랑에 관한 내용같지만 사랑하면서 혼자 인것 같은 외로움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어쩌면 그런 외로움을 덜 느끼게 해주는 사람을 우리는 진짜 '인연'이라 말하고 결혼을 원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함께 있어도 외롭게 만들고,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지 끊임없이 묻게 만드는 사랑 또한 분명 사랑인 것은 맞지만 만약 결정할 수 있다면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사랑이기도 하다.
결국 그대가, 날 사랑하기에는 글러먹게 생긴 존재일지라도
그대는 이미 내 머릿속을 온통 점령하고 있는걸
난 나를 완전히 잠식하고 있는 그대를
내게서 몰아낼 묘책도 전혀 없으니... 66쪽
사랑에 빠진 것을 의심하거나 확신하게 된 순간 이미 방법은 없다. 그 방법이란 것은 다름아닌 그 사랑을 그만두거나 잊는 방법이다. 두 눈뜨고, 빤히 쳐다보고 있다고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그야말로 연기처럼 마치 흑마법처럼 다가온다고 느낀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지만 천천히 스며들었던 아니었던 결국 사랑은 마법 혹은 기적이라 불릴 수 밖에 없다. [함부로 애틋하게]는 한 편 한 편이 '연애중'인 사람들에게는 다 내 이야기처럼 들린다. 아니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한 저자의 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사랑얘기가 다 내 얘기인 것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들린다. 오로지 이 세상에 내 사랑만이 '함부로 애틋하기' 때문이다. 그대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랑하거나 받았던 기억조차 가물가물한가. 그럼 읽어라. 기억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사랑이 곁에있어도 사랑인줄 모르니까.
